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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6.04.21 21:05

(179) 김희자: 어머니를 그립게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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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6) 4월은 황홀한 달

 

어머니를 더욱 그립게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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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Dandeleon, 23"x23"x4", acrylic on wood with mirrow, 2002

 

 

4! 하면,언제나, T.S 엘리엇의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황무지의 첫 귀절을 떠올리게 된다. 전후의 피폐한 인간들의 황폐한 정신세계를 은유한 시라고 하는데, 전쟁 후유증에서 멀어진 지금엔 불모지와 태동의 역설은 새 생명들의 진통을 노래하는 시처럼 되어 4월의 대표시가  되었다. 이해하려 했을뿐, 가슴을 치는 감동이 전해지지가 않았기에. 아마도 모국어가 아니여서 감각없음 때문이라고 변명을 해야할 꺼다. 

 

오히려 아우슈비츠 캠프 속 좁은 콩크리트 길의 깨진 틈새로 사람들의 발에 밟히면서도, 피어오른 한개의 민들레의 생명력에 감동받아 삶의 희망을 져버리지 않았다는 어느 유태인의 글에 가슴이 찡해질 수는 있었지만. 내가 영시를 배우던 대학 시절, 그 싯귀가 얼마나 운율을 잘 맞춰 아름답고 심오한 뜻에 대해 설명을 하며, 학생들의 감동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던 늙은 영국인 교수의 전쟁의 슬픔을 연출하던 눈과 구절끝마다 -ing가 붙어서 콧소리를 내던 여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서  혼자서 웃는다.   

                                        

나의 4월은 민들레 영토에서 그들의 합창을 들으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억하는 감미로움으로 황홀한 계절이다. 동요 악보 위의 음표처럼 뜨문뜨문하던 민들레 꽃들이 차츰 심포니의 악보인듯 불어나, 드디어 TV 속에서나 보는 양키 스태디움 야구 경기장 만큼이나 와글거린다. 길이고, 농장이고, 정원과 숲을 가리지 않고,민들레가 4월을 온통 점령해 버렸다.

  

나는 민들레를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꽃이라 늘 부른다.

나는 가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민들레를 상징꽃으로 표현한다. 지금은 세상 떠나신지 오래지만, 그녀가 살던 시절 '어미'라 불리던 여인들은 자식을 열명 가까이 낳는 게 보통이던 시절이다. '생기는대로 낳는다'라고 표현하던.  지금 우리들에겐 상상 조차도 되지않는 얘기이지만, 그땐 마치 민들레가 홀씨를 숙명처럼 만들어 퍼트리듯이 많이 낳아야만 했다 한다. 

 

우리 부모님 세대들의 추억담의 시작은 언제나 대동아전쟁, 일제시대 그리고 6.25 사변 등으로 무대 셋팅을 하고서야 시작됐었다. 목숨을 보존하며 살아내기를 바탕으로 언제 죽음을 당하게 될지 모를 남편과 자식들에 대한 보호본능과 대를 끊기게 하지 않아야하는 하늘의 명령을 지키기였다 한다. 지독하고 모진 역경 속에서도 한국여인의 정신을 지배한 건 민들레 정신이였으리라 생각된다.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날려서 멀리멀리 떠나온 나에겐, 언제나, 그 도톰한 노란색꽃이 소담스럽고 다정하던 엄마의 미소처럼 잔잔히 내 가슴에 스미곤했다. 봄이 온갖 색깔들로 짙어 갈 무렵이면, 손톱 만큼도 오차가 없이 똑같은 키의 귀여운 홀씨들이 어미의 가슴을 디디고, 동그랗게 스크럼을 짠다. 곧, 흩어져 온 세상으로 헤어질 것을 아쉬워하며, 더 쎄게 더 가까이 끌어 안고서, 보드라운 하얀 머리털을 비비고 소근대며 바람을 기다린다.  

 

하나 둘씩 어미 가슴팍에 구멍을 남기며, 뜀틀 매트 위로 공중제비를 하듯 몸을 날리며, 까르륵대며 손을 흔들면서 바람을 타고 떠난다. 가슴도 뼈도 다 비어버린체 멍하니 하늘을 응시하는 어미는 서로 잊지말고 꼭 소식하며 살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시들시들하니 주저 않는다. 민들레 홀씨같은 숙명인 형제들은 약속대로 4월이 되면, 다시 어미, 아비가되고, 할미, 할배가 되어, 어미의 얘기들을 전설처럼 전하며, 웃고 울며 소란을 떨다간, 홀씨의 습관대로 바람에 날려선 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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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The flower reminiscent of my departed mother, 50x65 cm./3 pieces, Acrylic on shaped canvas, 1988

 

 

 

람마다 시를 쓰고 듣는 감흥이 매우 다르다는걸 모르는것은 아니지만, 올봄 어느 이민자 시문학지에 오른 민들레에 대한 시를 읽고서, 나는 모욕감을 지울 수가 없어 지금도 화가 나있다. 그 남성 시인의 민들레에 대한 시어들의 나열에 여성성과 민들레꽃, 그리고 나의 봄이 송두리째 능욕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의 민들레를 지칭하는 시어들의 의미가, 옛날 술집에서 만나 희롱하며 놀다가 귀찮게굴어 차버린 술집 작부, 또는 환향녀가 천박스러운, 노랑 저고리를 입고서, 여기 미국까지 따라와 내눈 앞에서 치근댄다는 식의 표현을 한거다. 어딘가 문예지에서 시인으로 인증을 받았노라고, 약력이 쓰여진 그 시인의 이름조차 기억될까 두려워서, 두번 읽어보지도 않았다. 

 

나는 한 여성으로써 너무도 모욕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부르르 치가 떨렸다. 어떻게 민들레를 그런 식으로 연상하는 더러운 인간이 시인이랍시고 번드러이 시를 발표할수 있는가 하고.... 그 시인의 성희롱적 습관성 태도가 엿보이고, 여자에 대한 수치심없는 성적 고정관념과 남자라는 원시적 우월감에 침을 뱉고 싶었다. 나는 그 시를 읽은 후 나의 민들레에 대해 지녀온,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소박함과 사랑스러움, 그리고 어떠한 조건에서도 이겨내는 인내심과 홀씨를 만들어 퍼트리는 운명적 헌신에 대한 숭고함을 난도질당한 느낌이었다. 또한, 내 마음 깊이에 샘물처럼 늘 차오르는 내 어머니에 대한 추억에, 오물을 투척당한이 모멸감을 어찌 해야할지....

 

그 시를 접한 후, 민들레를 볼 때마다 가슴이 쓰리다. 뭐라고 쓰던 자기 자유겠지만, 시라 불리워지는 문학을 통해 무언가 승화의 감상은 느끼게 묘사하지는 못할 망정, 이런 식의 모욕감을 받을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 시인이라는 작자가 노린것이 바로 이걸까? 그리고 그는 어떤 식으로던 유명해지기 위해선, 사람들의 뒷통수를 칠 수 있는 요즈음 행위예술가들이 하는 짓거리 같은 것일까 ? 어쩌면, 요즈음 성범죄로 신문지상에 오르는 정신이상자의 소양을 가진 천박한 인간임에 틀림없을 꺼다. 온갖 부정적인 상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다가 스톱을 건다. 세상의 모든 것엔 양면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보자고..... 그럼에도 계속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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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The beginning of a thought, 65x100 cm, Acrylic on shaped canvas, 1993

 

 

즈음 사회적 이슈인 정신대 여성성 문제가 이 시인의 감성대를 가진 일본 사람들의 조작된 억지 주장과 동일한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 날조된 해석에 대해  한국 여성들이 분노를 참지못함이 이와 같은 맥락이겠구나하며 혼자 쓴웃음을 지으며 과연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일까 생각해본다. 절대적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경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것이 있어서 저것이 있다는 인과 연에 의해서 형성되는 상대적 조건에 대립적이면서도 동시성으로의 상황이나 존재가 있을 뿐이라 한다. 그리고 그 양면성은 시간적 혹은 위치나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영원한 진실이란 없다고 한다. 깊히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내가 사랑하는 민들레를 제거하기 위해 봄 내내 제초제를 뿌리고 땀흘리며 노력을 하는 사람과 장소들 또한 많지 않던가. 나는 나의 감성적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민들레를 숭고하게 생각하지 않는 타인을 경멸한 거구나 싶다. 그러나, 어떤 상황 속에서 사람이기에 갖는 불쾌감은 제초제를 뿌려 제거할 수도 없는것.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면 된다 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사실 몹시 두렵다. 이러한 상한 내 감정이 언제쯤에나 사라질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같은 성정에서 벗어나질 못해서인지 화선지에 먹물 번지듯 스민 생각은 지우질 못한다. 그래서 뭔가 정당한 역설로서의 긍정적인 실마리를 찾아서 대치할수 있을 때까진 참으로 힘이들 꺼다. 내 어머니의 전설같은 민들레에대한 순수한 추억을 구제하고 싶다. 세상엔 순수와 선량함을 이용하고, 짓밟고 서승리자인양 끼득이는 자도 너무도 많이 있지 않던가.

 

이상향의 세계를 지칭하는 유토피아(Utopia)라는 말의라틴어 어원은 'No Where'라고 한다.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상적인 세상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가 라는 푸념에 그런 건 있지도 않았어. 그건 네가 만든 환상일 뿐이야, 에코처럼 대답이 돌아 온다. 모두가 다 다른 생각의 인간들이 모인 곳에 이상적인 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어디에 존재할 수 있겠는지....

 

지금, 여기, 그렇거나 말거나 민들레들에겐 아무 상관이 없다. 민들레 제국의 4월 중순은 불모지의 여백조차 한뼘도 남기지 않고, 무서운 투지력으로 태양의 응원을 받으며, 생명을 찬미하는 희망을 낭송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민들레 제국이여 영원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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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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