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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16.05.03 01:38

(181) 이영주: 세비야의 4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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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34) 스페인 세비아 여행기-2


세비야(Seville)의 4월 축제



글: 이영주/사진: 이명선


photo 1 (2).JPG  눈물의 성모님 성당

 

비야는 골목의 도시입니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조금 가다가 세 갈래로 갈라지는 게 보통입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골목들은 날씨가 더워서 그늘을 만들기 위한 방편이라니 절묘합니다. 그리고 그 골목길을 몇 개 지나면 반드시 성당들이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면 의외로 화려하고 규모가 상당한 성당들입니다. 그 많은 성당들의 금빛 찬란한 모습은 가톨릭 신자인 저도 “종교를 빙자한 얼마나 많은 만행이 전제되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사실 사치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우연히 들어간 성당 중 너무 황홀하게 아름다워서 감탄한 성당이 ‘산타마리아 라 블랑카 성당(SANTA MARÍA LA BLANCA´S CHURCH)’ 입니다. 안달루시아 바로크 건축의 보석으로 불리는 이 성당은 완벽한 구성의 품격 있는 섬세하고 풍요로운 장식들로 하여 보는 이들에게 황홀한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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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벽엔 이런 성화, 성모님들이 무지무지 많다.



‘마카레나 성당’은 우는 것도 같고 웃는 것도 같은 묘한 표정의 성모님상으로 유명합니다. 일요일에 골목길을 돌고 돌아서 어렵게 찾아갔는데, 마침 결혼식이 있어서 성당이 여간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헤치고 제단 쪽으로 가서 사진만 간신히 찍었습니다. 성모님은 얼굴에 눈물 방울이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화려한 왕관을 쓰시고 복색도 여간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에서는 성모님을 여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왕의 복식을 한 성모님이라고 합니다. 정말로 최고로 아름다운 성모님이었습니다. 성주간(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오른때부터 부활하기 전까지 고난의 일주일을 말함)에 열리는 세비야의 기념행사 때 이 성모님상이 가마 위에 올라 퍼레이드에 참여하는데, 이것을 보려고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세비야에 몰려든다고 합니다. 



photo 1.JPG 길거리에서 훌라멩고 드레스 입은 사람들과 함께.



러나 마카레나 성당에서 정작 저의 시선을 끈 것은 솔직히 고백하자면 성모님 보다는 결혼식에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귀족 가문의 결혼인 듯 참석한 사람들의 복색이 영국 왕실의 결혼식 때보다 더 화려하고, 여자들은 모두 뛰어난 미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입은 드레스며 모자들은 또 얼마나 멋지던지요. 신부의 어머니도 신부의 면사포처럼 흰 면사포를 신부보다 약간 짧게 쓴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페인은 가난하다던데, 있는 집의 결혼은 영국 황실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사실 도착한 다음 날, 시내에 나갔으나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시에스타가 있어서 오전에 열었다가 오후에 다시 문을 연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느 시간에 맞춰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건 식당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페인 경제가 매우 나쁘다더니 이러니 나쁘지. 도대체 이 사람들은 경제 활동할 마음들이 통 없구먼.” 우리 일행들은 한 마디씩 군시렁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비야의 ‘페리아 데 아브릴(봄의 축제, Feria de Abril)’ 여파였습니다. 


세비야 봄의 축제는 농목축업자들의 견본 시장이 기원이라고 합니다. 부활절 지나고 1주일 동안 계속된다는 봄 축제는 이젠 스페인 3대 축제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매년 축제 때마다 까세타를 가족이나 동아리별로 세우고 축제 기간 동안 하루종일 먹고, 마시고, 노래하며 춤추며 마음껏 즐깁니다. 덕분에 거리엔 운두 높은 검은 모자에 정장을 입은 마부들이 끄는 꽃장식한 쌍두마차들이 끊임없이 달렸고, 머리에 빨간색 커단 꽃 한 송이를 꽂고, 색색의 축제 의상을 입은 여인들의 드레스 자락이 길 위에서 물결쳤습니다. 



photo 2.JPG 세비야 거리의 마차



*스페인의 3대 축제는 세비야의 봄 축제와 함께 발렌시아의 ‘불의 축제(Las Fallas)’, 팜플로나 시의 ’산 페르민 축제(Fiesta de San Fermin)’,입니다.


불의 축제: 예수의 아버지 성 요셉을 기리는 축일로, 목수들이 작업 후 남은 대패나 쓰레기 등을 아궁이에 넣어 태운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3월 15일 경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며 축제 기간 동안 폭죽을 던져 마귀를 쫓고, 3월 19일엔 구시가지 센트로 광장에서 파야 인형들을 불태우며 대미를 장식한다네요.


산 페르민 축제: 스페인 북부 파로코 지방의 팜플로나 시에서 7월 6일부터 1주일간 도시 수호성인인 성 페르민을 기리는 ‘산 페르민 축제’는 팜플로나 출신으로 기독교를 포교하다 숨진 3세기 경의 페르민 성인을 추모기 위해 16세기부터 7월 축제로 내려온 전통 깊은 축제입니다. 엔씨에로(encierro)라고 투우 소몰이 축제로도 유명한데, 하얀 옷에 빨간 스카프가 필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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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먹었던 타파스들



리들의 숙소는 세비야 구시가지 중심에 있습니다. 비스듬히 오른쪽으로 한 블록만 가면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으로 유명한 ‘마에스트란사 투우장’이 있습니다. 카를로스 3세 때인 1761년 지어진 이 투우장은 론다 투우장에 이어 스페인에서 두 번째로 큰 투우장입니다. 집 앞으로 뚫린 길 중에서 왼쪽으로 5분쯤 직진하면 ‘대성당’이 나오고, 대성당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지면 ‘알카자르’ 입니다. 모든 곳이 다 걸어서 10분 안에 갈 수 있고, 멀어야 15분 거리입니다. 대성당과 알카자르는 다음에 상세하게 설명하겠습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여행사가 있어서 인근 지역 여행도 다 집 앞에서 예약하고, 집 앞에서 떠납니다. 오른쪽 건너편에는 튀김집, 거기서 두 집 더 가면 맛있는 빵집. 튀김집 오른편으로는 바가 있어서 밤이면 생음악 연주를 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젊은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룹니다. 밤이라 약간의 소음이 걸리긴 하지만 맨하튼의 소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관광객이 엄청 밀려다니는 데도 도시는 늘 깨끗합니다. 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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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집들 대문엔 이렇게 손 모양의 손잡이들이 많다.



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3주가 다 되어 갑니다. 세비야 구시가지 골목골목은 거의 다 섭렵한 것 같습니다. 하도 골목이 꼬불탕꼬불탕 해서 도무지 길의 방향을 종잡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누에바 광장 쪽 쇼핑가에서 멜리사가 나를 떨궈 놓은 줄 알고 기겁을 했으나 쉽게 집을 혼자 찾아 왔습니다. 실은 누에바 광장 쪽 쇼핑가도 7분 거리입니다. 우회전해서 두 블록만 가면 아레나 시장이 있고, 시장을 지나 왼쪽으로 돌면 이사벨라 2세 다리가 나옵니다. 


이사벨라 다리를 건너면 트리아나 시장이 바로 다리 끝 오른쪽에 있습니다. 트리아나 역시 15분이면 다리 건너 갈 수 있으니 여간 편리하지 않습니다. 트리아나는 옛날에 집시들이 모여 살던 곳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훌라멩고 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공연도 자주 열립니다. 트리아나라는 지명이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이름에서 연유했다는 전설도 있고(트라야누스는 세비야 명문가 출신 왕임), 과달키비르 강이 세 갈래로 나뉘는 곳이기 때문에 셋이라는 숫자의 라틴어 ‘tri’와 켈트 이베리아족의 강을 의미하는 단어 ‘ana’가 합쳐져서 만들어 졌다는 둥, 라틴어의 ‘강을 넘어서’라는 뜻의 Trans amnem 에서 왔다는 등, 재미난 가설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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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만들어 먹은 음식들



도시에 친구들과 함께 오래 있으니 마치 오래 전부터 이곳에 살았던 것같이 편안합니다. 저녁이면 가방 가득 들고 온 한국요리 재료들과 값싸고 싱싱한 고기와 생선, 채소들을 사다가 진수성찬으로 밥해 먹으면서 매일 포식을 합니다. 처음엔 에밀리가 주방 담당처럼 도맡다가 일주일 후 에밀리가 떠난 후에는 종옥씨가 소매 걷어 붙이고 주방을 점령했습니다. 요리라면 한 가락하는 멜리사도 2주 후 종옥씨가 떠날 때까지 부엌에 잘 근접하지 못했습니다. 왕언니인 저의 ‘뉴욕의 대장금’이란 타이틀은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모두들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서로의 삶의 보따리들을 풀어 놓는 시간도 값졌습니다. 사람 사는 일이 어찌 그리 비슷한지요. 순화씨가 쌍둥이 엄마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습니다. 우리가 만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라 우리가 모르던 연결 고리가 작용했으리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날 만났던 문화와 역사의 현장을 재음미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기 그지없습니다. 


그에 화답하듯 세비야는 수많은 골목만큼이나, 수많은 성당만큼이나,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열어주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물가가 착하고, 타파스가 진짜 맛있고, 사람들이 순합니다. 여기 와서 살까? 싶을 정도로 세비야는 금방 익숙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디에 여행 가서 이런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4월의 세비야 여행이 제겐 저의 ‘페리아 데 아브릴’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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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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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선 Melissa Lee/freelancer RISD(Rhode Island School of Design) 대학원 미술교육학 전공, 사진 부전공. 항상 사진을 찍고 싶은 욕망과 사진을 찍으면서 무심코 지날 수 있는 사물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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