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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 김희자: 오로라 원더랜드(Aurora Borealis Wonderland)
바람의 메시지 (7) 오로라를 기다리며...
'여명을 닮은 북녘의 빛'
오로라 보레알리스 원더랜드(Aurora Borealis Wonderland)
의구심과 실망으로 확실치도않은 추측을 하며, 원망스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츰 그 엷은 구름띠의 움직임이 커지고 불어나며 서서히 색깔이 변해갔다. 마치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두터운 그린색 새틴 커튼을 열며, 겹겹이 부드러운 쉬폰 커튼이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섬세하고 조밀해지며, 레인보우 칼라의 넓고 긴 스카프를 겹겹이 흔들어대다가는 아래 위로 가느다란 하프의 스트링처럼 섬세하게, 파이프 오르간의 반짝이는 파이프처럼 강하고 부드럽게, 천상에서 연주되는 장대한 우주의 심포니와 그 황홀한 나래 춤이 온 하늘을 파동치며 펼쳐졌다.
http://auroravillage.com
*Aurora Substorm (Yellowknife, Canada) by Kwon O Chul <YouTube>
신들의 영혼이 깃들여 있다는 신비로 쌓인 오로라 빌리지(캐나다 옐로나이프).
숲에 사는 정령들과 신화 속 여신들이 우주의 심포니가 연주되는 파티로 초대를 받아 무지개빛 나래를 펼치며, 느리고 고요한 몸짓으로 시작하여서, 빠르고 숨가쁘게 온 하늘을 뛰고, 날며 장려한 춤의 향연이 펼쳐지던 곳. 나의 몸과 마음도 해체되어 신의 아우라 속으로 빨려들어 하늘로 떠오르듯 했다. 억제할 수 없게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벅차 올랐다. 내 의식은 마치 투명하고 밝은 어떤 기체로 변이되어 갔고, 가슴 속 납덩이처럼 뭉쳐져 있던 우울의 응어리가 녹아 풀렸다. 오로라는 그렇게 내 영혼 속으로 들어와 나를 정화시켜 주었었다.
년 전에 어느 과학 전문지의 여행 섹션에서 ' THE NOTHERN LIGHT HUNTING'이라는 제목의 사진을보며 빛을 사냥한다? 매우 시적인, 묘한 호기심이 가시처럼 박혀서 늘 까실거렸다. 귀퉁이 아래 Yellowknife 라고 조그만 지역 이름이 씌여졌고, 오로라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가 여명의 신 오로라에서 따온 이름이며, 태양의 플라스마는 원래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으로 인해 자기권 밖으로 나가게 되어있지만, 극지방은 자기장이 상대적으로 얇아서 스며든 태양의 플라스마가 공기 분자와 반응하여 오묘한 빛을 만들어낸다 라고 설명되어 있었다.
그 사진은 나의 페인팅 작업의 주색인 emerald green과 turquoise blue였다. 짙은 무지개색의 오팔 보석을 어두운 하늘에 프로젝션한 것 같은 그 사진을 핀웍을 해두고, 볼 때마다 그 영롱한 빛깔이 뭔가 알 수 없는 신비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곳엘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내본 일은 없었다. 나는 몇해 동안 어디도 갈 수 없는 나무들처럼 서서, 창앞 수평선의 sun set과 새벽 해뜨기 전 어둑할 무렵의 *moon set을 무감각 상태로 우두커니 내다보며, 아무 감동이 없이 습관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삶에 미소가 사라져버리고, 늘 사랑하여 듣던 음악조차 언제부터인지 꺼져버린 상태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밤이면 계절마다 바뀌지만,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반가운 별자리를 만나고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누구와도 접촉할 일이 없는 낙이었다.
Wheiza Kim, Poem of Winter, 42x13x4,.2007
여러 요인으로 만들어진 우울증이 무의욕에서 무기력 증세로, 차츰 삶이 침몰해가는 걸 알아채린, 나의 싸이코 테라피스트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한다며, 내게 강하게 여행을 권유했다.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없느냐고 계속 물었다. 그러나, 미개의 원시 지역 외엔, 세계 각국 문화적 흥미가 있었던 어지간한 곳은 다 다녀본지라, 아무리 생각해도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집 밖에 나가기도 귀찮은 고치 속의 번데기 상태로 숨만 쉬고있는 지경에 여행이란 생각 밖의 얘기였다. 여러가지로 내 일상을 파악하고 있는 그녀는 나의 오로라에 대한 흥미에 크랭크를 걸고서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그곳은 천상이 아니고 지구 위다, 자신도 가본 일은 없지만, 예술가라면 당연히 bucket list 속에 넣어야할 여행지일 것이 틀림이 없다"라는 메모와 함께 어떤 작가의 사진인지 그림인지 알 수가 없는 오로라 작품 사진 몇장과 동영상을 e-mail로 내게 보내왔다. 내가 가진 오로라 사진들은 모두 그린색이 주색인데, 그 사진은 분명 누군가의 페인팅으로 하얀 쉬폰 커튼처럼 표현된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어떤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한거다. "글쎄"라고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그녀와의 쎄션을 위해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 하기에, 오로라 빌리지에대한 정보를 많이 써치했다.
"그곳엘 가려면 비행기를 세번을 갈아 타야하고, 북극이라 온도가 영하 30도 이하다. 게다가 갑상선 저하증을 앓는 나로선, 여기 겨울도 진저리를 치는데 결코 그러한 추위는 너무나 두렵고, 하늘이 도와주지 않는 한 허탕치고 오는게 다반사여서 아마도 헌팅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그런 행운은 내게는 결코 오지 않을꺼며, 갬블같은 리스크를 지면서까지 가고 싶지가 않다. 다시 말을 꺼내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녀는 화가난 얼굴로, 내가 바로 그 부정적인 것들에만 메여서 자기 콘트롤이 안되는 병에 걸려있는 거라고 정색을 했다. 그리고 온갖 말로 내 자존심을 허트시켰다. 몇 주 세션을 빼먹으며, 모욕을 당했다는 생각에 계속 울화가 치밀고 자기 연민에 빠져서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비사회적이고,부정적 선입견과 편집증의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 된다는 게, 너무도 챙피하고 용납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그녀에게 내 마음의 긍정적 힘이 있음을 보여주고 말리라고 결심을 하게 됐다. 내키지도 않았지만, 경험자들의 정보를 모으고, 그녀 또한 서양의 극지 전문가들의 에쎄이들을 읽고서 오로라에 대한 많은 상상과, 웃음으로, 용기에 불씨를 붙여서 콜탈처럼 엉겨붇은 나의 무기력증에 불을 붙였다. 내 속에 잠재된 에너지와 긍정적인 것들이 녹아흐를 수 있도록 그녀는 테라피스트 이상의 마음의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영상물들 속의 환호성과 뭉클함이 내게도 전해지기 시작하며, 드디어 기나긴 우울증의 터널 저쪽 끝에서 오로라 여신이 나래짓을 하며 나를 불러냈다. 혼자서는 갈 수가 없는 길고 험한 여행일 것이라서 팀을 만들기위해 내가 그간 모은 오로라에 대한 환상적인 영상물을 동원해서 나의 세명 시스터들에게 "일생 한번은 보고 죽어야할 우주쇼"라고 설득시켰다. 그리고 내 친구 커플까지 긴가민가 하면서도 기꺼이 나의 동행이 되어주었다.
Frederic Edwin Church(1826–1900) , Aurora Borealis, 1865, Oil on canvas, 56 in × 83.5 in,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Washington, D.C.
일정 첫날부터 겨울 비수기로 비행기가 켄슬되어 12시간이나 지체되며,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여러가지 상황으로 화가 났다. 하지만, 짜증을 참으면서 첫날부터 지쳐버렸다. LA의 꽃피는 더운 봄날을 떠나, 아름다운 은백의 설국으로 왔는데도 별 감흥도 없이 시종 침묵으로 얼어붙은 빌리지의 리조트에 도착했다. 족히 20 파운드는 될 것같은 카나디언 구스로 만들어졌다는 접히지도 않아 엉거추춤 하니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있는 방한복과 장갑, 장화를 보고서야 겨우 웃음과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눈만 빼꼼이 내놓는 소위 '익스피디션 등급'이라는 장비 속으로 몸을 간신히 밀어넣고 휘청대면서도 키득거리며, 오로라가 출현한다는 언덕으로 버스를 타고 꽤 긴시간을 꼬불거리며 어둠을 헤치고 올라 갔다.
칠흑같은 이라는 형용사로 밖엔 표현되지않는 어둠 속 인디안 티피들과 그 사이 사이, 얼마나 추운 곳인지를 알아차릴 하얀 비단같은 성애로 잔가지 끝까지 곱게 덮은 나무들이 추워서 서로 얽혀서 부등켜안고 있는 풍경이 마치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티피의 캔바스 천 밖으로 따듯한 오렌지색 빛들이 스며나오며 옹기종기 다정하게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적문을 열고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사람들이 카드놀이를 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인사들을 한다. 아~~ 옛 인디안들이 아니구나~~ 나의 환상 동화의 책장이 덮히는 순간이었다.
인디안들이 둘러앉아 피우던 모닥불도 아닌 검은 무쇠 스토브에 장작이 붉게 타고 있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려 오로라에 대해 의견들을 주고 받으며, 우리를 실망시킬 많은 얘기들을 했다. 일주일 전에 오로라가 떠오르곤 하늘에 아무 기척이 없다라는 소식에서부터 오로라는 날씨 조건이 매우 까다로와서 오늘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등등의... 밤 두시가 되도록 콧속까지 어는 매서운 추위 속을 들락거리며 지루함을 메웠다. 가끔 늑대 울부짓는 소리와 눈썰매를 끄는 개들이 짖는 소리로 어둠이 요동을 치곤했다. 구름이 껴서 별조차도 보이지 않는 밤이었다. 침묵이 성애처럼 얼굴 피부에 달라 붙는 북극의 밤, 지독한 인내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앉은 모습들이 마치 사무엘 베켓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인물들 같았다.
http://auroravillage.com
나의 운 없음을 인정하며 마음 비우기 외엔 할일이 없다고 느꼈다. 순수한 밤의 정적 속에서 영화에서 본 인디안이 하던 행위인 공기의 맛을 느껴보려 혀를 내밀어 돌려보았다. 상큼함은 곧 사라지고 얼음같은 냉기가 스몄다. 눈으로 보는 습관을 눈없이 보기, 코로 맡는 냄새를 코 없이 맡기, 귀로 듣는 소리들을 귀없이 들어보기를 생각하며 눈을 뜨고 있어도 볼 것이 없는 어두움, 청정함의 냄새, 소리가 끊어진 침묵의 소리를 즐겼다.
셋째날, 아침 노을이 참으로 곱고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징조가 보인다"고 말을 하면서도 "어제 아침에도 이랬어"하며 시큰둥하며 그래도 희망은 잃치않은 채, 우린 하늘이 미워할 정도로 박복한 사람들이 아니야. 오늘밤을 꼴딱 새더라도 보아야 한다고 마음의 기도를 올렸다. 개썰매 타기와 끈과 나무로 만들어진 인디안 눈신발 신고 걸어다녀보기, 눈 슬라이딩, 머쉬매로 구어먹기 등등으로 낮시간을 보내고서, 예정된 밤 시간에 버스에 올랐다.
지난 새벽 4시쯤에 잠시 오로라를 보았다는 사람들의 얘기와 그것은 오늘밤 오로라의 징조라고, 경험자 가이드의 말에 모두가 흥분해서 시끌벅적했다. 동생이 눈물이 거렁대듯한 목소리로 "만약 오늘밤 오로라를 볼 수 있다면, 이번 여행에 속상했던 모든 것을 다 용서해줄꺼야."라고 말했다. 정말 씨리어스한 표정이었다. 나는 겁이 덜컥났다. 만약 못보면 용서못할 원한의여행으로 남을 테니, 내가 죄인이 될 것 같은 예감에 마음이 조여왔다. 빌리지에 도착하여서 배정된 티피에 들어가 급할 것 없으니 따끈한 차나 한잔씩 먼저 마시구 천천히 나가자하고 찻물을 따르고 있었다. 이때 티피 밖에서 환호성들이 터져나왔다. 오로라다 !!!
사진: 권오철 Kwon O Chul, http://auroravillage.com
달려나가 하늘을 올려보는 순간, 지금까지 그리도 목매며 기다리던 게 고작 저것인가. 그 실망은 다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보통 구름처럼 허여스럼한데, 카메라 렌즈를 통한 그 구름색은 믿기지 않는 그린색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광학과 자연색의 무슨 조화인지, 수많은 사진과 영상물에 속은 것 같아 의심이 들기시작했다. 요즈음 사진작가들이 포토샵에 넣어 칼라 조작들을 너무 하는 것일까 ? 아마도 타임랩 기법이 시간이 쌓여 색도 농축시키는 것일까?
의구심과 실망으로 확실치도않은 추측을 하며, 원망스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츰 그 엷은 구름띠의 움직임이 커지고 불어나며 서서히 색깔이 변해갔다. 마치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기라도 하듯, 두터운 그린색 새틴 커튼을 열며, 겹겹이 부드러운 쉬폰 커튼이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섬세하고 조밀해지며, 레인보우 칼라의 넓고 긴 스카프를 겹겹이 흔들어대다가는 아래 위로 가느다란 하프의 스트링처럼 섬세하게, 파이프 오르간의 반짝이는 파이프처럼 강하고 부드럽게, 천상에서 연주되는 장대한 우주의 심포니와 그 황홀한 나래 춤이 온 하늘을 파동치며 펼쳐졌다.
무슨 형용사로도 표현될 수 없는, 오직 경외심으로 억제할 수 없는 신음소리 같은 탄성들만 흘러 나올 뿐이었다. 이 세상, 어떠한 무엇이, 인간에게 그리도 아름다운 순간을 보여 줄 수 있겠는지. 몸과 마음이 무중력으로 되어 천상에 들고, 꿈속의 꿈과 같은 순간을 소소영영하게 보고 느끼며, 이 지구 위에 살아있음을 깊이깊이 눈물로 감사를 했다.
* moon set :이런 단어가 사전상엔 있는 것 같지 않음. 그러나, 해뜨기 전 어두운 새벽녘 수평선으로 떨어지는 보름 즈음의 달이 지는 것에 대한 나의 단어.
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