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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07 09:47
뉴욕영화제 (6)루이 14세의 최후와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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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뉴욕영화제(9/30-10/16)
옛날옛적 루이 14세의 최후와 에밀리 디킨슨의 은둔
The Death of Louis XIV by Albert Serra A Quiet Passion by Terence Davis
전기 영화는 아웃사이더들이 더 대담하고, 예리하게 연출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선입견이 없기 때문일까?
2016 뉴욕영화제에 초대된 '루이 14세의 죽음(The Death of Louis XIV)'과 '고요한 열정(A Quiet Passion)'은 그러한 아웃사이더 감독들의 시각에 의해 돋보이는 작품이다.
스페인 감독 알버트 세라(Albert Serra)는 '루이 14세의 죽음'에서 프랑스 전제군주 최후의 며칠간을 궁전 안에서만 그렸고, 영국 감독 테렌스 데이비스(Terrence Davis)는 '고요한 열정'에서 19세기 미국 여성시인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의 자폐적인 삶을 거의 실내와 정원에서 담았다. 자유로운 공간 이동이 시네마의 장점이지만, 두 감독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로케이션을 축소하면서 캐릭터를 탐구했다. 전제군주의 육체적인 고통과 여성시인의 정신적인 고통이 대조적이다. 흥미로운 것은 루이 14세는 베르사이유 궁전 대신 포르투갈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매사추세츠 앰허스트 대신 벨기에에서 대부분 촬영됐다는 점이다. 그러면, 왜 2016년 루이 14세와 에밀리 디킨슨의 삶이 재조명될 필요가 있을까? http://www.filmlinc.org/nyff2016
루이 14세의 죽음(The Death of Louis XIV) ★★★★
The Death of Louis XIV by Albert Serra
"짐이 곧 국가니라(L'État, c'est moi)”라는 명언으로 한 세기 권력을 풍미하다 간 전제군주. 초호화 베르사이유궁전의 지휘자. 무려 72년 장기 집권한 '태양왕' 루이 14세(1638-1715)의 역할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배우 장 피에르 레오(Jean-Pierre Léaud)가 맡아 대부분이 침대에 누워 연기한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소아 트뤼포 감독의 '400번의 구타'(400 Blows, 1959)에서 소년 안토안으로 각인된 장 피에르 레오 자신이 반세기 동안 프랑스 영화의 대들보였다. 레오가 72세, 황혼기의 배우로서 루이 14세에 필적할만한 커리어를 지니고 있기때문에 우리는 루이 14세와 장 피에르 레오의 최후를 이중으로 목도하는 체험을 한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어려서 발레를 배웠고, 문화예술을 즐겼던 전제군주이기도 했다. 대머리로 가발을 쓰기 시작, 유럽에 대유행을 시킨 인물이다.루이 14세의 장기 통치는 재위 64주년을 넘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건재함과 대조를 이룬다.
The Death of Louis XIV by Albert Serra
알버트 세라 감독은 철저하게 루이 14세 왕궁과 침실 안에서 카메라 3대를 돌리면서 루이 14세의 주름과 숨결을 하나하나 포착한다. 관객은 명배우 장 피에르 레오와 역사 속의 루이 14세의 말년을 오버랩하며 보게 된다. 레오의 클로즈업으로 드라마는 더욱 긴장감을 유발한다. 연극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시네마의 스타성과 클로즈업의 매혹이다.
이 영화는 회화에서도 영감을 받은듯 하다. 촛불 조명 아래 신하들과 의사들의 모습은 조르쥬 드라 투르(Georges de La Tour)의 회화를 떠올리며,https://en.wikipedia.org/wiki/Georges_de_La_Tour 무능한 의사들의 묘약과 민간요법을 둘러싼 부조리한 대화나 루이 14세 서거 이후 부검 장면은 토마스 잇킨스의 '그로스 박사의 임상강의, The Gross Clinic,1875)'를 연상시킨다.
Jean-Pierre Léaud at the press conference of NYFF54
영화는 루이 14세가 가발을 즐겨 썼으며, 개들을 사랑했고, 삶은 달걀을 좋아했다는 일화를 디테일하게 보여주면서도 궁전 밖 정치사는 신하들의 대화로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로써 괴저병(Gangrene)으로 죽어가는 태양왕의 최후를 정교하게 담는데 성공한다. 그가 생사를 오갈 때 레퀴엠이 흐르지만, 깨어났다가 최후의 숨결을 거두는 것도 리얼리스틱하다. 115분. 10월 6일 오후 6시@앨리스털리홀, 7일 오후 6시@하워드길만시어터 http://www.filmlinc.org/nyff2016/films/the-death-of-louis-xiv
고요한 열정(A Quiet Passion) ★★★
A Quiet Passion by Terence Davis
한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은 빈센트 반 고흐처럼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다가 사후 여동생 라비니아의 출판으로 천재성이 인정된 시인이다. 2000여편에 가까운 시를 남겼지만, 성차별이 팽배했던 시대 세상과의 불화에 윤리의식이 철저해 은거를 택했던 인물이다. 그녀에 대한 영화는 누구도 도전하지 못했지만, '하우스 오브 머스(House of Mirth)'로 유려한 영상을 보여준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이 메거폰을 잡았다. 남북전쟁과 에이브라함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을 배경으로 한 에밀리 디킨슨의 동굴의 박쥐같은 삶은 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에 귀추가 몰려있는 2016년 미국의 정치상황과 콘트라스트된다.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은 첫 장면은 신학교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에밀리 디킨슨의 '당돌한 모습'을 보여주며 캐릭터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변호사의 중산층 가정이지만, 여성의 역할은 극히 제한되어있었다. 딸은 아버지의 소유물과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아 새벽 3시부터 6시까지 사랑, 이별, 죽음, 천국 등을 소재로 시를 쓴 디킨슨은 짝사랑과 남동생의 바람을 목도하면서 세상과 더욱 등지게 된다. 세상의 밝음보다 새벽의 어두움에 더 친숙했기 때문일까? 고통스러운 일상 속에서 생애 인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여동생 라비니아의 지원으로 그녀의 시들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A Quiet Passion by Terence Davis
'섹스 앤더 시티'의 변호사로 각인된 신시아 닉슨(Cynthia Nixon)은 디킨슨의 초상화 속에서 튀어나온듯 유사한 이미지를 넘어서 내면의 고통을 온 몸으로, 섬세한 눈동자와 다소 작위적인 발성으로 열연한다. 여동생 라비니아 역의 제니퍼 엘(Jennifer Ehle)의 지고지순한 지원과 신여성 브라일링 역의 캐서린 베일리(Catherine Bailey)와 나누는 스타카토 리듬의 통렬하고, 유머러스하며, 맛있는 대화가 또 하나의 '자매애(female bond)'로서 귀를 즐겁게 한다. 권위있는 아버지 역의 키스 캐러딘(Keith Carradine)이 카리스마로 드라마의 남성성에서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Cynthia Nixon and Terence Davis at the press conference of NYFF54
하지만, 디킨슨의 발작과 발작 사이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온 가족의 눈물폭포 장면은 지나치게 느껴진다. 기자회견에서 테렌스 데이비스 감독은 10자녀 중 막내였고, 누이들 사이에서 자랐다고 고백했다. '루이 14세의 죽음'이 바깥 세상을 대사로 처리했지만, '고요한 열정'에선 자료 사진으로 보여준다. 이로써 영화는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중산층이었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은둔 시인에 머무를 수 밖에 없었던 에밀리 디킨슨의 내면과 고통을 증폭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125분. 10월 5일 오후 6시@월터리드시어터, 16일 오후 4시30분@프란체스카빌시어터 http://www.filmlinc.org/nyff2016/films/a-quiet-pa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