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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7.02.20 13:29

(249) 김희자: 마음 추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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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17) 입춘대길(立春大吉)


마음 추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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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새에 대한 내 기억/ In my memory of the bird,  82"x52" x2", 1995, Acrylic on shaped canvas

                     

춘대길이라는 검은 붓글씨와 눈밭, 쇠나무 등걸에 꽃 피는 소식이라며 매화꽃 그림을 메일로 받았다. 오래만에 보지만 매우 친밀하다. 한국인들이 구정 새해를 지나고서 입춘 날에 봄을 맞아들이려 대문에 부치던 환영사였다. 이 나라로 오고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인데, 서울 친구가 새삼스레 보내온 카드 메일이 마음의 대문을 삐거덕하며 연다. 내 마음은 아직도 새해를 맞아 들이지도 못한 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무위도식 중이다.  


아마도 의식이란 게 생기고부터 늘 겪어왔던, 한 해도 그르지 않는 겨울 우울증을 앓고있는 것 아닌가 싶다. 내가 사춘기일 적에 '회색 겨울 하늘의 지겨움을 마르고 거무튀튀한 북어의 멍청한 눈알 파내듯 파 버리고 싶다라는 표현과 함께, 흐린 날들에 불투명한 비닐을 덮고 있는듯 숨쉬기가 힘들어 칼로 찢어 버리고 싶다'는 여과없이 솔직한 느낌을 그대로 학교신문에 글을 쓴 적이 있다. 지금도 우중충한 겨울 하늘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혼자서 웃는다. 미술 선생님만 아주 유니크하다고 칭찬을 했을뿐, 항상 아름다움을 추구하시던 문예반 선생님은 표현은 좋은나 심미적으로 순화를 했어야 한다고 나무랬고, 상담 선생님은 잠재 성향이 매우 포악하고 도전적이니 주시해야 한다로 문제 삼던 기억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요주의 학생은 지금도 겨울이면 견딜 수가 없는 불만과 우울로 여전히 시달린다.


그 후로도 중증우울이 문제라 진단되어 중년이 된 후로도 심리상담자들을 찾게 됐는데, 그들의 공통된 결론은 전쟁 무렵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다소 강약은 있으나 흔한 트라우마적인 정신질환 이라고 한다. 태교적부터 시작되는 불안감과 자라면서 혼란스러운 사회환경, 부모가 생존을 위해 매진하면서 아이들은 사랑과 보호를 깊이 받을 수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 한다. 온갖  파괴된 폐허와 불안정한 조건 속에서 사회전반이 전쟁으로부터의 상실과 공허함을 보고 들으며 무의식 속으로 녹아들어 나타나는 증세라고 한다. 극심하여 약물 치료를 요하거나, 어떤 심각한 문제가 발생될 정도가 아니면, 밝고 태양이 강한 따뜻한 곳으로 여행을 하거나, 밝고 긍정적인 무엇에 집중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 한다.


가능한 햇볕 좋은 날엔 긴 산보를 하여 소위 자연 비타민D를 많이 흡수하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나아진듯도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에너지가 고갈되어 생기 자체가 줄어 들어서 특별히 나아질 것도 없는 느낌이다. 작년에는 작업과 전시로 에너지 소모를 과하게 소진시킨것 같아서 이듬해 농사를 위해 땅이 비옥해지도록 유휴지로 버려두듯이, 올해는 생각을 비우고 그냥 충전이나 하러 어딘가로 떠나면 어떨까하고 내게 협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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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나는 그날 한없이 울었네/ The day I wept on and on,  80"x42"x2", 1990, Acrylic on shaped canvas

 

떤 심리상담 책에서 '어떻게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첫째, 사는곳을 바꾸라. 둘째, 만나는 사람들을 바꾸라. 그리고 습관을 바꾸라.'라는 조언을 읽었다. 삶의 조건을 완벽하게 바꾸라는 얘기인데, 딴 나라로 이민을 하거나 가출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게 어디 쉬운 일 일런지. 아마도, 차선으로 그 충고를 받아 들인다면 좀 긴 여행일 것 같다. 그러나 진정한 자기변화를 만들어 돌아오지 못한다면 마찬가지 아닐런지. '돌아오기 위해서 떠난다'라고 하는 어떤 여행가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새로운 가치의 시각을 발견하고 본 자리로 돌아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게 되리란 희망일 꺼라 여겨진다.


나도 언젠가는 인도나 티벳의 어느 아슈람에 묵으며 장기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를 따라서 올해는 힌두교와 티벳불교 공부에 매진한 후에 인류문화의 진원지라는 곳으로 한번 떠나볼까 싶다. 그곳 히말라야에서 발생되는 파동과 아직도 초유처럼 녹아내릴 만년설을 마시면 영혼이 맑아지려나하는 막연한 꿈을 꿔본다. 장소, 사람, 습관으로 부터 떠남이가장 좋은 바뀜인건 사실이겠지만, 모든 미망의 오물자루를 끌고다니는 한 이 지구를 떠난다해도 그곳이 이곳과 다를 것이 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언제나 삶이 권태롭다고 느껴지면, 무엇이라도 좋으니 환상의 깃발을 꽂고 비록 무모한 돈키호테가 될지라도 스스로를 푸시하면서, 뭔가 새로운 무었으로 바뀌도록 저지른 후에 수습해가기로 살던 때가 엊그제 같다. 이젠 의미와 가치가 없이는 한 발자국도 뗄 수 없을 뿐 아니라 세상이 너무도 흉흉하다는 노파심까지 더해서 위험한 짓거리이거나 장소는 생각을 냈다가도 접어버리기 일수다. 내 자신이 나약해져서 옛 습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서 너무나 싫다. 체인에 메여 길들여진 코끼리가 체인에서 풀렸음에도 그 영역 밖을 결코 나가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가 떠오르면, 내 마음은 황야를 달리는 코끼리라고 외치며 달리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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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Awakening, 36"x14"x3", 2009, Acrylic on natural wood with mirrow


년이 넘도록 숙명을 믿고, 지천명에 대한 동양인이면 당연지사로 받아들이며 의심없이 살았었다. 무엇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닌, 의지와는 아무 상관이 없이 순종하며,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 처럼 모든게 운명으로 주어졌다고. 언젠가부터 도대체 이렇게 살다 가는 건가라는 질문으로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었던 즈음에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의 혁명>이라는 책을 만나서 인간에게는 본래 무한한 내면의 힘이 주어져 있어 그것을 어떻게 개발하냐에 따라 운명을 바꿀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을 내가, 내 의지에 의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 나가는 무한히 열린 가능성에 대한 연구서였다. 인생은 숙명지어진 것이 아닌 본래부터 스스로 열망하기 나름으로 각자 고유한 기쁨과 자유의지로 된 행복감으로 충만시킬 수 있는 것이란 걸 깨우쳐 주었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기엔 나는 이미 너무 늦었구나하는 절망감으로 나는 한없이 울었다. 그 나이가 되도록 나를 규정된 틀 속에 넣어서 주입시키고 세뇌시킨 교육, 내가 믿고 따랐던 신앙조차도나를 속이고 있었구나하는 배신감으로 분노가 치밀었었다. 기복 종교의 원죄의식 혹은 인과응보라 부르는 결코 있지않는 내 생의 지옥관을 만들어 겁주기를하고, 착하게 살도록 하기와 그 공포를 이용하여 교회와 절들이 부를 축적하고 확장하여서 과시하기가 음모였음을 역력히 알아버렸다. 그리고 유교적 남존여비 사상으로 태어날 때부터 죽는 날까지 그 사회제도에 저항할 수 없도록  길들어져서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저주같았다.

           

세월이 약이라고 했던가. 스스로 깊은 통찰의 시간을 보내며 나에게 그런 숙명이라 규명된 억압이 없었다면, 어찌 깊은 성찰을 할 수 있었겠느냐는 터득에 이르르게 됐다. 모든 걸 용서하는 길이 내가 용서받는 길이라는 걸 진정한 의미의 종교와 철학서들을 통해 자각한 후로 모든 증오나 미움을 내려 놓게 됐다. 과거에 매달려 후회하느라 현재를 죽이는 어리석음과 자기연민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로소 억압의 껍질을 깨고 나와 다시 태어난 느낌으로 세상에 감사하며 철저하게 자의식을 들여다 보면서, 데이비드 호킨스의 영혼 에너지 진화에 관한 제의가 용기를 주고, 가이드가 되었다. 진정한 인간으로의 자존감을 지니고 정신을 고양시켜가는 자발적인 자유의지가 창의적인 충만을 더해 주었다. 그러나, 가끔은 정신이 무디어지고 낡아서 삶을 숙고할 능력이 줄어들고  의지가 녹아내려 우울과 권태의 늪에 빠질 때가 자주 있다.

 

그럴 때면, 비록 인간이 아닌 독수리임에도 그 본성 속에 데이빗 호킨스가 말하는 최상승 의식에 속하는, 에너지 수치가 600은 될 것같은 지혜롭고 용기있는 생에 대한 의지를 되새겨 보곤 한다. 나이가 40살이 넘어 늙어가는 독수리는 자신의 낡아서 사냥을 할 수 없게된 부리와 발톱 그리고 너무나 무거워 날기조차도 힘든 깃털을 재생시키기 위해서 자신과의 사생결단을 내고자, 깊은 산 어딘가로 홀로 숨어든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거는 투쟁을 한다고 한다. 둔탁해진 부리를 높게 공중으로 날아올라 바위를 향해 하강 질주를 하여 부리가 깨져서 뽑히게 될 때까지 계속 찧는다. 피투성이가 되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새로운 부리가 나오길 기다린다. 기어코 새부리가 나오면, 자신의 발톱을 쪼아서 뽑은 후 새 발톱으로 재생되길 기다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낡아서 무거워진 깃털들을 부리와 발톱으로 속아 내어 몸을 가볍게 만든다. 그리고서, 그간 살아온 경륜과 지혜를 더하여서, 더욱 세차고 멋지게 활공하며 대 자유를 누리며 남은 생을 살다 간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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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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