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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바람의 메시지
2017.04.10 00:35

(261) 김희자: 초의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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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메시지 (19) 인간이라는 별


초의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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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heiza Kim, Coming across with self, the indescribable, 1989, 88"x44"x3", acrylic on shaped canvas



젠 추위도 물러 난듯하고, 작업실의 하루종일 틀어놔야할 훈풍기 소리가 듣기싫어서 안들어간다는 핑계도 없어졌다. 작업을 하려고 새 캔바스를  짜며, 겨우내 생각 속에서만 그려낸 드로잉들을 펼쳐보며 새로운 에너지를 자아올릴 수 있을 뭔가를 찾아본다. 계절이 바뀌고, 생명이 죽고, 살아나고 하는 것은 창조의 본성인 에너지가 만물에 작동되어 생기는 진동과 파장의 간섭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한다. 그 에너지의 흐름 속에서 먼지 크기에 불과할 미미한 나라는 존재가 미명과 욕망으로 가득 채운 에고를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고있는 거다. 


백년이나 살까 싶은 인간들이 광년이니, 억겁이니를 운운하며, 상상 속의 시간을 얘기한다. 광년은 빛의 속도라는 찰라를 이른다 하고, 한겁이라는 전설적 시간은 천년에 한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집채만한 바위를 뚫어내는 시간을 말한다고 하니, 참으로 황당한 상상을 해낼 수 있는게 생각의 힘이다. 그러나 생각 너머의 사유능력으로 드디어는 수억 광년이 떨어져 있다는 별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고, 우리가 사는 은하계와 꼭 같은 또 다른 은하계가 무수하게 있다는 가설로 우주를 파악해내는 인간의 위대함이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이미 밝혀진 과학적 규명들이겠지만, 나에게는 생소한 이론들을 옛날엔 강의료를 내고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 유튜브를 통해서 인문학과 양자 물리학, 생명공학 등에 대한 영상강의를 듣고 보며, 지식을 공유함으로 해서 인류전체가 향상되게 살고자 하는 요즘 사람들의 나누는 마음이 고맙고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지구의 진동 주파수와 인간의 맥박수는 같다고 한다. 지구가 살아 있어 화산이 터진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항상 숨을 쉬며 맥박이 뛰고 있다는 개념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무생물이라 여기는 모든 물질들도 고유 파동지수를 가졌다는 것도 배웠다. 그리고 드디어, 내가 오랫동안 의구심을 가졌던 우리의 귀가 한 잎 떨어지는 낙엽 소리는 듣고 감지할 수 있어도, 지구가 자전하는 굉음은 왜 듣지 못할까에 대한 답을 얻게되어 얼마나 기뻤던지. 그것은 마치 물 속에 사는 물고기에게 물이 생리적 환경조건인 것과 같은 이치일 뿐이다. 그 당연함이 얼마나 오묘한 신의 섭리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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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iza Kim, A being of the infinite, 2015, 56"x48"x8", acrylic on wood with mirrow

                                                                                                                                                 

즈음 나는 인간에게 잠재되어 있고, 인간만이 갖고 있는 사유 능력을 넘어 깨어있음이라는 상태의 인간의 내면을 탐험하는 초의식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깊은 흥미에 빠져있다. 볼래도 볼 수 없는 그 미지의 마음 세계를 탐험하고 증명하여 시각적 영상으로 만들어서 이해될 수 있도록 보여준다는 것이 참으로 경이스럽다. 인간의 의식구조와 우주의 구조는 동일하며, 큰 은하계 속의 작은 은하의 관계처럼 연결되어 있다 한다. 에너지의 파장 속에서 같은 진동으로 서로 공명하고, 소통하며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뇌 역시 그러한 자연의 신비한 구조의 법칙을 따라 마치 미로와 같은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미지의 우주 에너지로 작동된다고 한다. 뇌과학자의 좌뇌와 우뇌에 대한 역할과 그한 가운데에 비어있는 송과체(Pineal Gland)라 불리는 오로지 인간이 신과 같은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인간이 우주의 진동을 감지하며 연결되는 부분이 있음을 상상으로만 알던 것을 영상으로 보았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위의 자연물들의 외형 혹은 근본 조직세포의 패턴 또한 자기 유사성으로, 신의 지문이라 불리는 프렉탈(Frectal)의 본질인 카오스적 형태로 배열되어 변형되고 생성된다고 한다. 


그 영상을 보며 나는 계속 감탄 밖엔 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기가 막히는 하모니로 연결되어 공생하고 있음을 생명공학과 양자 물리학에서 수수께끼처럼 풀어나가고 있다. 우리가 다만 신비의 세계라 여겼던 그 많은 의문들이 더 이상 신비도 아니며 가설도 아니게 되었다. 그중에 내가 가장 관심이 있었던 것은, 인간이 호흡 집중을 통해 에테르(기)적 초의식에 이르는 명상에 대한 연구이다.

 

많은 책 속에서도 인도의 요기나 신비가가 아니어도, 깊은 명상 체험에 관해 읽어 왔었다. 명상화가라 불리는 프레데릭 프랑크. 칼 융의의 꿈을 기록하고 드로잉한 초의식적 경험도 매우 흥미로웠었다. 또한 내가 매우 좋아하는 명상가이며, 시인인 윌리엄 브레이크는 모든 존재들을 깊은 통찰과 관조적 명상을 통해 “생장력 있는 우주는 영원이 깃든 지구의 중심에서부터 꽃을 피운다. 우주는 별로부터, 평범한 조개껍질까지 팽창하며 거기에서 다시 안과 밖에서 영원을 만난다”고 표현했다. 


철학자인 데카르트 역시 명상을 통해 “인간 뇌속의 송과체는 제3의 눈으로, 의식과 물질의 접속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철학자이며 신비가로 불리는 마이스트, 에크하르트는 “내가 신을 보는 눈과 신이 나를 보는 눈은 하나이며 같다.” 아마도 그들은 서양 철학의 원류인 인도의 요가에서 말하는 7단계 챠크라의 경험을 한 사람들인 것 같다. 그리고 니체의 글에서도 “깊은 심연을 오래동안 응시하면, 결국에는 심연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고 명상을 통해 얻어진 얘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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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Thinker/ Le Penseur, 1904, 79" x 51 1/4" x 55 1/4", bronze. Detroit Institute of Arts


역시 홀로 고요히 앉아 단전 호흡에 집중하면, 그러한 순간들을 접하고 내 속의 또 다른 나를 만난다.  그것은 우리 몸에 본래 부여된 능력이며 처음 접하면 일종의 신비경험처럼, 몸과 마음이 그지 없이 고요하고 마치 무중력 상태에 놓인듯 하며 평화롭다. 일상속의 너절한 망념과 집착을 여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이다. 오래 오래 전부터, 나라고 여기며 더불어온 내 자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며 무수히 방황했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다 차원을 오가며 느낄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고유하고 오묘한 존재인지를 선수행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좀더 일찍 초의식에 대한 이론체계를 접해 보았어야 했다. 잘못 교육된 선입견이 그것을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인 무식한 샤만이나, 종교적 신비로 사람들을 홀리는 자들의 일일 뿐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배운터라 지나치며 버린 시간이 참 후회스럽다. 이제는 세상의 사회적 고정관념은 내게 더 이상 어떤 가치나 의미도 없으며, 걸릴 것 없이 다 놓아 버려도 된 시절인연이 온 것 같다. 지금이야 말로 모든 지적 의도를 다 내려놓고, 초월의식에 몰입하여 제대로 영원으로서의 내 존재를 깊게 느끼고, 볼 기회를 갖게된 것 같다.

                                           

생각한다는 것이 오감과 동시적 자각인 여섯 감각중 하나일 뿐인데, 좌뇌가 관장한다는 '생각하기라'는 지적감각에만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에 길들여지고 습관화되었다. 물론 생각할 수 없었다면 어찌 지금의 문명이 만들어져서 풍요를 누리며 살수 있었겠는가만, 풍요의 뒷면인 정신적 핍박으로의 양면성 또한 인간이 감수해야 하지 않은가. 가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을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감상이 있다. 


마치 생각할줄 알기 때문에 인간으로의 가치를 갖게 된  "인간은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의 표상처럼 여겨져서 모든 문화인들로부터 숙고하는 자세로 존중받고 있다는 점이 나는 늘 못마땅하다. 조각은 지옥문 앞에 앉아 죽도록 생각한다는 행위가 인간에게 씌어진 '형벌'인 동시에 '신의 선물'이라 할 모순된의 덫에 걸린 비참한 모습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인간은 무한 속에서 긍정과 부정을 선택하고 느낄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다. 소위 지성적이라고 하는 생각으로 지어진 비자연적 감옥에 갖혀 오로지 지성의 칼날을 사용하며, 번뇌와 성찰로 끝냄으로서 숭고해지는 존재가 아니다. 또한, 어떤 누구에 의해 창조되지도 않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스스로 자전하는 고유한 별이며, 온 우주의 파동으로 연결되어져 하늘처럼 자유롭고 순수한, 우리가 신의 영역인양하던 초의식 세계로도 도달할 수 있는 영원의 존재임을 터득하며 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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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자 Wheiza Kim/화가

이화여고 시절 문예반에서 활동한 후 서울대 미대를 졸업했다. 결혼 후 10여년 동안 붓을 꺾고 있다가, 30대 중반을 넘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작업을 시도하기 위해 성신여대 대학원에서 판화를 전공했다.1997년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SUNY) 방문 초청작가로 와서 한국현대미술을 가르쳤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국전을 시작으로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100 여회의 그룹전과 22회의 개인전을 열며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현재 롱아일랜드 끝자락 노스포크 사운드에 거주하며, 자연과 더불어 작업하고 있다. 

http://wheiza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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