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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7.04.21 00:01

(264) 허병렬: 롤 모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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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23) 독서는 영양소 


롤 모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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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자는 흉내쟁이다. 아기도 흉내쟁이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흉내 내며 삶의 기술을 배운다. 그가 차차 자라면서 좋아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까지를 따르려고 노력한다. 성인이 되어도 이런 경향이 계속되며 ‘숭배한다’ ‘존경한다’는 대상을 찾아 그를 흠모하고 거울로 삼는다. 이런 행동의 바탕은 자기 성장을 희구하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그 모델을 찾기 어렵다는 탄식이다. 정말 그럴까. 사람마다 삶에 대한 가치관이 다르니까 그 모델 역시 같을 리가 없다. 또한 같은 한 사람한테서 모든 것을 배우려는 욕심은 없을까. 마치 여러 가지 교과를 종합한 단일 학과로 인생을 배우려는 욕심은 없을까.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여러 사람한테서 따로 따로 다양하게 배우는 것이다. A한테는 대인 관계를, B한테는 경제생활을, C한테는 삶의 철학을, D한테는 예술적 분위기 조성을, E한테는 자녀 교육방법을…. 마치 학교에서 과목별로 공부하듯 개인별 계획을 세우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겠는가. 


독서는 개인 성장을 좌우하는 영양소이다. 책의 선택은 마음의 방향이고, 독서 경향은 삶의 지침이 되어 마치 닭과 달걀의 관계에 흡사하다. 하지만 독서는 읽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직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전자 매체에 밀리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기쁨과 슬픔을 통한 인생의 깊이를 깨닫는 과정을, 텔레비전은 한 시간에 영상으로 보여준다. 현대인의 조급함은 후자로서 대리 만족하는 데 익숙해졌다. 여기에 비하면 어른이 주는 교훈(소위 잔소리)은 반응 없는 메아리일 뿐이다. 우리들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무엇일까. 교훈, 독서, 매스 미디어, 모델을 생각할 때 가장 강렬한 것은 ‘사람’이라고 본다. 그것도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이라 하겠다.


계 올림픽의 꽃 김연아를 생각해 보자. 스케이팅에 한하지 않고 빙상 스포츠 전반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비약을 가져오리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매스 미디어가 성공한 사람이 거기에 도달한 과정, 고생을 이겨낸 노력과 집념을 전하기보다 성공으로 얻게 되는 혜택에 초점이 맞춰짐은 유감이다. 


어린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친구를 자랑하는 눈을 뜨게 하고 싶다. 내 친구는 어른 말을 잘 들어. 거짓말을 안 해. 물건을 아껴서 써. 숙제를 잘 해. 남을 잘 도와줘. 책을 많이 읽어. 언니 헌옷을 입어... 등 친구의 선행을 눈여겨보면 좋겠다. 제 나이에 알맞는 ‘영웅’ 찾기에 익숙해지면 그게 자라서 좋은 모델을 찾는 힘이 될 것이다.


다음 단계의 학생들이라면 저 친구는 리더십이 있어. 시간 관리를 잘 해. 좋은 일과표를 만들 수 있어. 친구들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잘 돕고 있어. 장래에 대한 꿈이 있어.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어. 독서력이 왕성하고 읽은 책 내용을 친구들에게 알려줘. 항상 무엇인가 새로움을 찾고 있어... 등 친구를 바라보는 눈높이가 높아짐이 자연스럽다. 이렇게 되면 성인이 되었을 때 존경하는 인물을 찾는 바탕이 든든하게 마련된다. 그것으로 여러 사람의 좋은 점을 모아 재구성한 나 자신의 모델을 창조할 수 있다. 


이 모델은 독서, 매스 미디어, 교훈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나 자신을 격려하게 된다. 우리에게 영향력이 큰 것은 동시대를 살고 있으며, 바로 내 옆에서 생활하고 있는 인물이 강력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독서하는 부모 옆에서 독서하는 자녀가 성장함은 확실한 일이다.


모델은 서예시간에 보고 그리는 원본이다. 이 작업에 익숙해지면 본인의 창조력으로 새 작품이 나타난다. 이게 바로 나 자신이다. 모델은 창조의 도약대가 된다. 그래서 좋은 도약대를 얻으려고 모델을 찾게 된다. 좋은 원본이나 원화를 찾는 일은 창조물을 생산하는 지름길이다. 바로 나 자신을 창조하는 첩경이다.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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