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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 스테파니 S. 리: 사소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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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행복
책장과 그림. 석채 원석들과 고당 조두연 선생님의 소품들.
새집으로 이사와서 집을 꾸미기 시작한다. 야심차게 새로 산 장식용 세라믹 병을 한참동안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남의 편이 지나가며 혀을 끌끌 찬다. 또 ‘쓸데없는 일’에 집착해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못마땅해 하는 남의 편에게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뒷통수가 따갑다.
아직 풀어야 할 다른 짐들이 가득있고, 못다 정리한 물건들이 태반이지만 나에겐 이 병들의 각도와 높이와 간격이 몹시 중요하다. 그런데 이 별것 아니고 쓸데없어 보이는 행위가 어째서 중요한지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사실 말문이 막힌다.
한국에서 달항아리를 공수해 오는 것에 실패해서 인터넷을 죄다 뒤져 마음에 드는 모던한 디자인의 하얀색 병을 찾아냈고, 디자인은 좋았으나 터무니 없이 작은 것을 구매한 한번의 실패 끝에 작가와 직접 의논해서 제대로 된 크기의 작품을 골라 골라 마침내 무사히 전해받았단 말이다. 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이 소중한 작품들이 깨지지 않고 도착한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 귀한 작업들을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배치하는 일이 어찌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화롭게 놓여진 병들을 오가며 보는 것이 이 집에 사는 동안 줄 흐뭇함을 생각하면 이 정도 수고로움 정도는 오히려 즐거운데, 이처럼 사람의 기분을 좋게하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소한 것들의 가치와 중요성을 대체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까? 어떤 사람에게는 쓸데 없어 보이는 일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왜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시킨다는 건 어쩌면 예술이 갖는 의미에 대한 설명으로 확장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왼쪽 Artist Sara Paloma’s works (위), 가일아트 석채(아래)/오른쪽: 한국 갈때마다 사모은 미니 옹기 항아리(위), 박상준 작가의 작품(중간), 고당 조두연 선생님의 소품들(아래).
꼭 미술관에 가지 않더라도 괜찮다. 동네 커피숍에만 가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은 누구나 한 적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잘 디자인 된, 조화로운 환경 속에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색과 재질이 잘 어울리는 가구들이 짜임새 있게 배치된 공간에 놓여 커피향과 음악과 함께하는 몇분의 시간. 그 순간의 시각, 미각, 청각적 만족감이 빈틈없이 돌아가다 조금만 어긋나도 부딪혀 망가질 하루를 구원해준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잠시의 기분좋음이 삐걱거리며 조여오는 빡빡한 일정들 사이에서 윤활유가 되어 하루를 무사히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더해져 인생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가 부드럽게 돌아가게 하는데 얼마나 큰 보탬이 되어주는지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일상 속의 그 흔하고 형이하학적인 모든것들이, 거대한 꿈과 이상이 아닌 자잘하고 사소한 디테일들이 얼마나 인생의 큰 부분을 차지 하고 있는 지를 알면 이토록 쉽게 무시하고 지내지는 못할텐데… 예술과 문화라는게 그런 것 같다. 어느 건강 식품의 광고문구 처럼 참~좋은데 뭐라 설명할 방법이 없다.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과 효능을 안다.
어쨌거나 비록 정확히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확신한다. 예술과 문화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좋은 것이란 것을. 삶의 높고 낮은 길을 헤쳐나가는 데 문화라는 쉼터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그리고 앞으로 문화는 더욱더 인간의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중요해 질 것이라는 것을.
그릇 하나 놓이는 자리가, 오늘 달고 나갈 귀걸이의 선택이, 빵의 바삭한 정도와 커피의 온도 차이가, 한번의 웃음이, 한끼의 제대로 된 식사가, 주고받는 문자 끝에 걸리는 이모티콘 답글이 하루를 망치기도 하루를 기분좋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쓸데 없어보이는 모든 것들은 우리를 긴장으로부터 자유롭게 해 삶을 정화시킨다. 그리하여 인생을 즐겁게 살 수 있도록 힘을 준다. 그러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한번 잡숴보시라.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