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로 플래쉬백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Merchant House Museum)

랜드마크 건물 머천트하우스뮤지엄과 8층짜리 호텔이 들어설 부지. 공사가 시작되면, 뮤지엄의 구조가 흔들릴듯.

뉴욕의 부동산 개발붐으로 건물들이 도미노로 철거되고, 럭셔리 콘도가 치솟으며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다. 1963년 보자르 양식의 펜스테이션이 사라진 후 수많은 뉴요커들의 광분을 샀고, 1965년 건물을 보존하는 랜드마크법이 제정되어 역사적인 빌딩들이 불도저에 밀려 먼지 속으로 사라질 위험을 낮추었다. 

하지만, 랜드마크로 지정된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조차 개조 공사에 항복하지 않았나? 2017년 맨해튼과 브루클린의 오래된 건물들은 위태롭다. 뉴요커들도 역사의 조각들이 사라질까 불안해하고 있다. 터미네이터같은 개발업자들에 의해 '풍전등화(風前燈火)'가 된 건물들. 그중 하나가 맨해튼 노호(NoHo)의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The Merchant's House Museum)이다.

 랜드마크 플라크. 목요일에 연장 오픈한다.

노호 4스트릿의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  바로 옆 부지(27 East 4th St.) 건물은 이미 철거됐고, 그 자리에 8층짜리 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다. 호텔 공사에 들어가면, 랜드마크인 이 뮤지엄 건물이 손상될 위험에 있기 때문이다. 뮤지엄 측에서는 생존을 위해 변호사를 별도로 기용했으며, 투쟁을 위해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마침 방문객 세자매가 가이드를 번갈아 낭독해서 오디오 가이드처럼 편하게 투어를 할 수 있었다.

1832년 철물, 장비로 재산을 축적한 상인 씨베리 트레드웰(Seabury Tredwell) 가족이 대대로 살다가 1936년 뮤지엄이 된 이 건물은 '올드 머천트 하우스(Old Merchant's House)' 혹은 '씨베리 트레드웰 하우스(Seabury Tredwell House)'로 불리우기도 했다. 1965년 첫 랜드마크로 등재된 뉴욕의 20개 건물 중 하나였다. 

 그리스리바이벌 양식의 인테리어

맨해튼에서 가장 오래된 주택으로 알려져 있는 건물은 로어맨해튼의 프론세스 태번(1719). 로어맨해튼의 세인트 폴 채플(1764)과 워싱턴하이츠의 모리스-주멜 맨션(1765)이 꼽힌다.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은 브루클린 하이츠의 교회(세인트앤 처치 홀리 트리니티 처치, St. Ann and the Holy Trinity Church, 1847)의 건축가인 메나드 레이피버(Menard Lafever)가 설계했다. 레이피버는 외부는 초기 페더럴 양식(벽돌, 좌우대칭)로, 내부는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기둥, 벽기둥, 대칭) 으로 디자인했다.   

엄마의 방엔 아기 침대와 욕조, 그리고 요강이 있었다. 사진 안은 트레드웰씨의 막내 거트루드로 93세까지 살았다.

원래 이 건물은 조셉 브류스터(Joseph Brewster)는 건축업자가 판매를 목적으로 지었다가 1935년 씨베리 트레드웰이 1만8천 달러에 매입했다. 트레드웰은 딸 거트루드를 비롯 2남6녀를 이 집에서 길렀다. 이 주택엔 트레드웰 부부, 자식들과 4명의 하인, 그리고 끊임없이 친척들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자식 8명 중 딸 2명과 아들 하나만 결혼하고, 나머지는 독신으로 살았다.

씨베리 트레드웰은 뉴저지 럼슨에 850에이커의 땅을 사서 별장과 농장, 호수를 마련했다. 여름에 뉴욕에 창궐했던 황열병과 콜레라를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방은 인테리어가 심플하다. 침대와 장 하나, 편지 쓰는 책상 정도.

아버지 씨베리씨는 1865년 사망했고, 1909년 언니 줄리아가 사망한 후 막내 딸 거트루드는 24년을 홀로 살면서 재정난을 겪으면서도 아버지 생전의 분위기로 집을 꾸몄다. 1933년 거트루드가 93세로 사망한 후 압류와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먼 사촌 조지 채프만이 건물을 매입해 보수 공사를 거쳐서 1936년 뮤지엄으로 오픈하게 된다. 

지하의 키친은 하녀 4인이 모두 음식을 준비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 하녀들을 부르는 벨, 쥐도 몇마리 게스트로.

뉴욕에서 가장 핸섬한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 주택 중의 하나인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은 내부 오리지널 가구와 장식품, 19세기 의류와 모자 등 장신구 등이 마치 영화 세트 속으로 들어간 느낌을 준다. 그리스 이오니아 양식의 기둥, 마호가니 가구, 가스 샹들리에, 패션 등까지 ,지하의 부엌에 재현된 쥐, 거실의 피아노와 가구, 여성의 방 한켠에 있는 욕조와 요강, 식당 한켠의 신사를 위한 식사 에티켓, 아이들의 방, 그리고 아이리쉬계 하녀들의 다락방까지 150여년 전의 뉴욕 상류사회 인테리어와 라이프 스타일을 보존하고 있다. 

모자를 써야 외출할 수 있었던 시대. 패셔너블한 모자들. 고착시켜주는 핀은 무기로 오해받기도 했다.

할리우드 필름누아(암흑가 영화)에선 버버리 코트에 중절모(fedora)를 쓴 남성들이 대거 등장한다. 19세기 배경으로 한 영화에선 여성들이 '켄터키 더비' 경마대회처럼 멋진 모자를 쓴다. 모자를 써야 패션이 완성되던 시대였다. 밀짚, 벨벳, 실크, 펠트, 말총 등에 리본, 깃털, 레이스, 망사, 구슬 등 장식을 이용한 모자 컬렉션도 전시되어 있다. 

또한, 장식이 달린 모자 핀(hatpin)은 모자를 고정시키는데 필수였는데, 사실 모자핀은 무기로 간주된 적도 있었다. 1908년 영국의 한 판사는 법정에서 여성 참정권자들에게 모자와 모자핀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이는 뾰족한 핀이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뉴스가 퍼져나가자 미국의 여성 참정권 지지자들은 모자와 모자핀을 명예의 뱃지처럼 자랑스럽게 쓰고 다니곤 했다.    

아이리쉬 이민자 하녀들이 쓰는 다락방. 천주교 십자가 목걸이를 곁에 두고 잠을 잤다.

1800년대 뉴욕 상류층의 가정부는 아일랜드에서 갓 이민온 10대 소녀(Irish Girls)들이 대부분이었다. 14-16살의 나이에 뉴욕에 와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식모였다. 요리와 청소, 세탁 등 중노동에 24시간 대기상태로 보수는 적었지만, 방과 빵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트레드웰가에서는 모두 4명의 하인을 두었다. 키친과 방에 걸린 종은 하인들을 부르는 벨이었다. 

거실 인테리어가 우아하다.

187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한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로맨스 '순수의 시대(The Age of Innocence)'의 시절로 들어가보는 상상을 하면 더욱 흥미롭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 위노나 라이더, 미셸 파이퍼가 영화 속에서 숨쉬던 그 시대다. 하녀들의 다락방은 상층에 있지만, 상류사회에서 고된 일을 해야했던 하류계급의 아이리쉬 이민자들이었다. 영화 '브루클린(Brooklyn)'에서 아이리쉬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 방은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빈민촌 아파트 테너먼트뮤지엄(Tenement Museum)과는 확연히 대조되는 박물관으로 이민자들의 성공과 애환을 감지할 수 있다.  

머천트 하우스 뮤지엄은 1965년 랜드마크, 1966년 미사적지구, 1981년 내부 랜드마크로 지정됐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오후 2시(*목요일엔 오후 6시 30분) 가이드 투어가 진행된다. 셀프 가이드 북으로 나 홀로 투어를 할 수 있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는 세자매가 번갈아서 낭독을 해주어서 편리했다.  

프랑스 스타일 식사 테이블 세팅, 글래스, 찻잔과 접시, 그리고 계란보울.

정중한 신사의 에티켓, 1848

# 항상 정시에 도착하세요.

# 수프부터 시작하세요. 수프는 절대로 거절하지마세요. 만일 먹기 싫다면, 다음 생선요리가 제공될 때까지 그대로 두세요.

# 언제나 포크로 먹어야 합니다. 나이프는 자를 때만 사용합니다. 타트, 푸딩 등 먹을 때는 디저트 스푼을 사용하세요.

# 손가락 글래스는 디저트와 함께 나옵니다. 내프킨의 한쪽을 적신 후 입을 닦으세요. 그후 손가락을 물 안에 적셨다가 내프킨으로 말리세요. 하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입을 가글하거나, 물을 글래스에 내뱉는 역겨운 짓은 하지 마세요.

# 숙녀 옆에 앉아있다면, 그녀의 접시를 너무 상세히 관찰하지 않으면서도 그녀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세요.

# 당신이 식사하는 중 하인이 무엇을 깨트리더라도, 아는체 하지 마세요. 만일 그들이 서투르고, 어리석더라도 공석에서 질책하지 마세요. 

 

The Merchant's House Museum           

29 East Fourth St.(bet. Lafayette St. & Bowery St.)

http://merchantshous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