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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2) 허병렬: 청산에 살어리랏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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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靑山)에 살어리랏다
정선, <금강내산도>, <<해악전신첩>>, 견본담채, 32.5x49.5cm, 간송미술관 소장
‘인생도처유청산(人生到處有靑山)’.
이 글귀는 뜻이 밝아 삶에 힘을 준다.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생활은 방방곡곡 가는 곳마다 초목이 우거진 푸른 산이 있다고 말한다. 거처에 관계없이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한 번 신나게 살만한 이 세상이 아닌가.
여기서 학생들에게 한국 전래 동화를 소개하다 보면 ‘또 다른 호랑이 이야기인가. 웬 호랑이가 그렇게 많은가’ 라는 그들의 질문을 받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 산이 많아서 예전에는 호랑이들이 여기 저기 출몰하였던 모양이다. 하여튼 한국에 산이 많은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는 산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렇다면 산으로 이루어진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해방직후 미국에서 파견된 교육사절단이 콜로라도 주의 교육과정을 참고로 가지고 와서 의외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에 산이 많은 것을 고려하여서 비슷한 지형의 참고물을 가져왔다는 설명을 하였다. 사실 한국에는 산이 많다. 그것을 별로 의식하지 않고 살던 것이 이상스럽게 느껴진다.
‘인생도처유청산’의 어느 구절이 마음을 끄는가. 그 중의 ‘도처’라는 말은 웅비정신을 자극한다. 가는 곳이 어디거나 거기에 청산이 있다면 생활권을 자유자재로 옮길 수 있게 된다. 이런 경향이 20세기 후반, 21세기의 특징 중의 하나로 보인다. 사람들의 진취성은 ‘산 설고, 물 설다’를 넘어서 ‘어딜 가든지 청산이 있다’의 굳은 신념으로 ‘나라’를 넘어서 ‘지구’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각자가 꿈을 이루고 싶다는 그 의욕에서 보편성을 본다.
앞에 나온 글귀의 중핵은 뭐니 뭐니 해도 ‘청산’이다. 도처에 있다는 청산은 자연으로 우뚝 솟은 지형 이상의 것을 뜻한다. 즉 희망과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이 산에서 새로운 창의성이 성장하고, 생산품이 양산되는 녹색의 젊은 산이다. ‘有’는 분명히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본래 그 곳에 있다는 뜻도 되고, 내 힘으로 만들어서 ‘있게 한다’고 발전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누구나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청산을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결과는 거대하고 풍부한 청산이 될 수도 있고, 속이 꽉 찬 앙증스러운 청산이 될 수도 있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공통점은 이 청산을 이루는 작업에 내 자신이 참가하였다는 기쁨이다.
이토록 깊이 생각한 것이 아니지만, 평상시 산을 좋아하는 성향이 선택한 이 글귀는 읽을수록 새로운 뜻을 전하는 묘미가 있다. 세상만사를 관조하듯 의젓하게 우뚝 솟아있을 뿐, 조용히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연의 산은, 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에 공헌하고 있다.
여기에 사람마다 제각기 구축한 희망의 청산들이 보태져서 세상은 한층 더 풍요롭다. 사람들의 청산은 전연 부피가 없어서 무제한으로 쌓아올려 온 우주를 채울 수 있는 재주가 있다. 거기에 다양한 크기와 내용의 청산들이 마주 손을 잡으면, 지구를 돌릴 수 있는 능력도 갖췄다. 그 뿐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산이 고국의 산맥과 이어진 혈맥이라는 사실이다.
미래 지향적인 이 산들의 모임에 기어코 참가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제각기 자신의 청산을 가꾸고 있다. 이 청산에 내 마음과 꿈을 가득 실어 개성적인 나만의 청산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다가 내 자신의 청산이 바람직한 모습을 갖출 때 제각기 외칠 것이다. ‘인생도처유청산’이라고. 여기에도 청산이 있어 살만하다고.
‘이것은 어느 분의 휘호인가...’ 혼잣말을 하며, 벽에 걸린 붓글씨를 들여다보는 친구를 위해 필자의 이름을 가린 꽃병 자리를 살짝 옮겼다. 그렇더라도 왜 이 글귀라야 했는가. 그동안 마음에 깔렸던 잠재의식의 발로인가. 아니면 끈질긴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인가. 여기에 산다는 것에 대한.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