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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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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천지창조' 프레스코와 드로잉

Michelangelo: Divine Draftsman and Designer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11/13-2/12, 2018)


"이 계절에 반드시 봐야할 전시" -뉴욕타임스-

"엄청나게 형이상학적인 시각적 발산...그저 가보라." -뉴욕 매거진-

"위대한 전시" -뉴요커-

"올해의 전시" -옵저버-

"기념비적인 전시" -빌리지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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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쇼 미켈란젤로 드로잉전을 기획한 카르멘 C. 밤바크 큐레이터는 록 콘서트처럼 강당을 채운 청중에 감사했다. 미술 애호가들은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르네상스 천재'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의 드로잉전 '미켈란젤로: 성스러운 제도공 겸 디자이너'(Michelangelo: Divine Draftsman and Designer)가 지난해 11월 13일부터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조각이나 유화와는 달리 종이 작품인 드로잉/스케치는 빛에 약한 성질로 인해 3개월이 최대로 보여질 수 있는 기간이다. 전시는 2월 12일까지 계속된다. 


조각가, 화가, 건축가, 시인이었던 미켈란젤로는 88세로 당대로서는 장수했지만, 남겨진 드로잉은 고작 600여점뿐이다. 르네상스 라이벌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67세)의 드로잉 4천여점에 비하면, 현격하게 적은 수치다. 이유는 미켈란젤로가 수많은 밑그림을 그렸지만, 자신이 노력파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에 말년에 자신의 드로잉을 대거 불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자신이 숨기고 싶었던 드로잉이 오늘날 전시되는 것을 알면, 괴퍅한 성격의 미켈란젤로는 분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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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에서 리비아의 시빌라 프레스코화(왼쪽)와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소장 드로잉. 동성애자였던 미켈란젤로는 여성 모델을 쓰지 않고, 근육질의 남성처럼 묘사했다. 데이빗 엑서지안 레스터대 교수 특강 슬라이드.



따라서 미켈란젤로 드로잉 133점이 소개되는 이 전시는 평생 한번 볼까말까 할 정도로 특별하다. 전시 작품은 메트뮤지엄 소장품을 비롯, 바티칸 뮤지엄, 루브르뮤지엄, 바르겔로뮤지엄(피렌체), 아쉬몰리안뮤지엄(옥스포드), 영국 왕실컬렉션과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컬렉션, 우피찌미술관(피렌체), 부오나로티(미켈란젤로의 성)하우스, 나폴리뮤지엄, 알베르티나 미술관(비엔나), 브리티시뮤지엄 등지 컬렉션과 개인 소장품에서 대여해왔다.


메트뮤지엄은 이 특별전을 기해 지난 1월 7일 특강을 마련했다. 미켈란젤로 드로잉전 큐레이터 카르멘 C. 밤바크(Dr. Carmen C. Bambach)가 주재한 특강에는 마리아 루볼트(Maria Ruvoldt) 포담대 교수, 윌리엄 E. 월레스(William E. Wallace) 워싱턴대 교수, 제임스 사슬로우(James Saslow) 뉴욕시립대 교수, 데이빗 엑서지안(David Ekserdjian) 레스터대 교수가 초대되어 주제 발표를 했다. 


메트뮤지엄의 카르멘 C. 밤바크 큐레이터는 이날  그레이스레이니로저스오디토리움(The Grace Rainey Rogers Auditorium)의 700여석을 가득 채운 청중을 향해 "마치 록 콘서트나 오페라, 발레 공연같다. 입석 밖에 없다. 오늘처럼 많은 청중은 처음"이라고 감격했다.  



<1> 시스티나 예배당 '천지창조'의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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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창조' 중 센터피스 '아담의 창조'에서 아담 프레스코화와 브리티시뮤지엄 소장 드로잉. 하나님의 오른손을 통해 아담의 왼손으로 영혼을 받는 장면은 영화 'E.T.'에서도 패러디했다.



드로잉의 역사는 1만 6천년 전 인류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진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됐다. 드로잉은 모자이크, 벽화나 건축의 습작 스케치부터 보조적인 미술의 형태로 여겨지다가 14세기 말 북부 이탈리아 베니스 등지에서 독립적인 하나의 장르로 인정받게 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로 와서 드로잉은 더욱 중요해졌다.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 르네상스 시대 거장들은 작품의 스케치로서 뿐만 아니라 완성작품의 연구 대상, 작가의 스타일을 드러내는 드로잉이 무수히 제작됐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드로잉은 미술의 한 장르로서 쇠퇴했다. 1850년 이후 마네, 세잔, 피카소, 마티스 등 위대한 화가들조차 드로잉전은 거의 열리지 않았으며, 미술학자들의 관심도 적었다. 잭슨 폴락과 프란시스 베이컨은 드로잉에 열등감이 있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작가들 마다 작업 스타일이 다르다. 티치아노, 카라바지오, 벨라스케즈, 베르메르 등은 드로잉을 거치지 않고, 직접 캔버스에 그렸다. 미켈란젤로와 드로잉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가 전해진다. 미켈란젤로와 비평가이자 자신의 전기를 쓴 바사리는 어느날 티치아노(Titian)의 로마 작업실을 방문했다고 한다. 거기서 주피터가 황금비로 변신해서 누드의 다나에를 임신시키는 장면을 묘사한 회화 '다나에'(현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를 구경했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조각 '메디치 예배당의 밤'에서 빌려온 다나에의 포즈를 보면서 티치아노의 컬러와 스타일에 칭찬을 했다. 하지만, 티치아노를 비롯 베니스 화가들은 드로잉 기초부터 방법론적으로 배우지 못했다며, 티치아노가 드로잉을 잘 배웠더라면 위대한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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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흙의 분리' 중 한 인물로 석공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켈란젤로가 태어난 후 친모가 아파서 유모에게 보내졌고, 유모의 남편은 석공이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가가 된 것도 우연은 아닐듯. 



석공의 아내였던 유모의 품에서 자란 미켈란젤로는  24세에 피에타상, 29세에 다비드상을 완성하며 조각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된다. 그가 1508년 33세에 바티칸의 시스틴 예배당(Sistine Chapel) 천장화를 위임받고 화가로서의 재능도 입증하게 된다. 


원래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은 푸른 하늘에 별들이 있는 단조로운 그림으로 채워졌다.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를 주제로 천장을 9개로 나눈 후 다시, 34개로 분할해 4년간 매달려 300여명의 성서 속 인물을 그려냈다. 예수의 조상/ 성경의 창세기와 탈출기(빛과 어둠의 분리, 해와 달의 창조, 물과 흙의 분리, 아담의 창조, 이브의 창조, 유혹받은 아담과 이브 & 에덴동산에서의 추방, 노아의 번제, 대홍수, 술에 취한 노아)/예언자와 무녀 등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 하나 하나는 드로잉에서 발아되어 밑그림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메트뮤지엄은 시스틴 천장화 '천지창조'를 디지털로 재현, 설치해서 미켈란젤로의 오리지널 드로잉과 비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카르멘 C. 밤바크 큐레이터는 "미켈란젤로에게 드로잉은 언어였다. 우리는 종이 위에 펼쳐진 아티스트의 생각을 포착할 수 있다. 드로잉은 즉각적이며, 즉흥적이다."라고 밝혔다. 미켈란젤로의 즉흥적인 스케치로서의 드로잉뿐만 아니라 인물 습작, 실물 드로잉, 실물크기 드로잉, 밑그림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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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자커리아(Zacherias)와 드로잉. 천장화 프로젝트를 위임하고 간섭도 많이 한 줄리어스(율리오) 2세 교황을 모델로 했다고. 그래서 아기가 손가락질하고 있는지도.


Motropolitan Museum of Art



000.jpg  *미켈란젤로 드로잉전@메트뮤지엄 (11/13-2/12. 2018)

*미켈란젤로, 그의 코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People: 미켈란젤로 드로잉전의 사람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뉴욕 오다@오큘러스 사진전 Up Close: Michelangelo's Sistine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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