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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 홍영혜: 희망은 한 마리의 새
빨간 등대 <3> 내 마음의 보석상자
희망은 한마리의 새
뉴욕에 이사온 후 짐을 이고지고 살며서 매일매일 뭐 버릴 것 없나 뒤져 보게 되고, 버릴 것을 찾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 없다. 시카고에서 이사올 때 짐 3분의 2를 버리고, 또 뉴욕에 와서도 더 버렸는데 아직도 갑갑하다는 느낌이 든다. 연말이 되면 일년에 한번 쯤은 열어보는 상자가 있다. 뭐 버릴께 없나 해서… 그간 살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보냈던 편지, 카드를 모아 놓은 상자들이다. 남편은 사진을 찍고 버리라고 하는데 나한테는 소중한 기억들이어서 매년 열어보고, 버릴 것을 찾아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초등학교 3학년때 짝이 미국으로 가면서 그해 크리스마스때 보내 준 꼬부랑 글씨(영어 활자체) 'Christmas'라고 쓴게 너무 신기해서 모아 놓았던 카드. 50년 전엔 미국 가는 것도 드물었고, 더군다나 친구가 꼬부랑 글씨 쓴다는게 놀라왔는데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중학교 때 친구가 손으로 정성껏 그려준 카드와 조그만 단풍잎, 읽고 있다 보면 한나절이 다 가버린다.
그러다가 한두해 전 쯤 세상을 떠난 친구의 카드를 보게 되었다. 에밀리 디킨슨의 희망에 관한 시 "Hope is the thing with feathers"가 카드 안에 적혀 있었다. 원래 영시을 읽으면 번역이 갑갑할 때가 많은데 이 시는 한국어 번역이 더 좋은 것 같다.
희망은 한마리의 새
영혼 위에 걸터 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며
그칠 줄을 모른다.
모진 바람 속에서 더욱 달콤한 소리
아무리 심한 폭풍도
많은 이의 가슴 따뜻이 보듬는
그 작은 새의 노래 멈추지 못하리.
나는 그 소리를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들었다.
허나 아무리 절박한 때에도 내게
빵 한조각 청하지 않았다.
-에밀리 디킨슨 -
전에는 이 시가 좋아서 보냈나보다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이 친구에게는 당시 희망이 무엇보다 절실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건강으로 약을 장기 복용하고 있었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내색을 하지 않았다. 친구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하고 싶은 일들을 차곡차곡 했다. 그 리스트 안에 기억나는 것은 핫에어 벌룬 타기, 번지 점프하기 등도 있었고 , 오지지만 본인이 가고 싶었던 타히티, 갈라파고스 아일랜드 등도 기억난다. 중년에 우리는 말렸지만, 스키 대신 스노우 보드를 고집하여 넘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콜로라도 윈터파크를 내려오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영화를 무척이나 즐기던 이 친구는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살지 못한 여러 주인공들의 삶들을 간접경험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내가 키모 치료를 받는 중에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려고 시카고를 방문했을 때 그 친구가 숙소까지 내가 좋아하는 미역국을 끓여다 주었던 따뜻한 사랑의 나눔이다. 행복하고, 건강할 때는 삶이 유한하다는 존재를 의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죽음이 우리와 바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면, 삶을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절망은 희망을 잉태하는 모태인가 보다. 희망이란 새를 영혼 속에 품고 그 달콤한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산 내 친구가 몹시 그리워진다.
뉴욕에 이사해서 내 ID 사진을 바꿀 때, 맨하탄 53스트릿과 7애브뉴에 설치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의 조각 'HOPE'를 골랐다. 그 때부터 쭉 내 ID 사진으로 쓰고 있다. 그때는 단순히 희망이란 밝은 것, 낙관적인 기대라는 긍정적인 한면만 보았는데,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이 글을 쓰다 보니 희망의 뒷면도 보게 되는 것 같다. 익숙한 것들을 떠나 새로운 환경, 사람, 일에 대한 내 안의 걱정, 불안,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친구나 친지가 없는 낯선 도시에서 새 출발선에 있는 나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 메세지로 희망을 고르지 않았나 싶다.
로버트 인디애나도 유아기에 입양되었고, 여기저기 떠돌던 결핍과 힘든 시기를 견디어 나가면서 LOVE 나 HOPE를 그의 작품세계에 구현했다고 읽은 것 같다. 지금 누군가 우리 중에 절망에 빠져있다면, 내 영혼에 걸터 앉은 새의 노래 소리에 귀기울이며 희망을 향해 뚜벅뚜벅 걸으라고 하고 싶다. 그 절망으로 인해 더 값진 귀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희망의 끈을 붙드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친구가 희망의 시와 함께 카드에 썼던 글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우리가 세상에게
희망으로 다가 설 수 있기 바라며,
그리고
멋진 인생 꾸려나가시길 바랍니다.
나이 들수록
나눌 수 있고, 아름답고, 멋지고, 재미있고, 보람있게…”
PS. 이 글을 쓰면서 본회퍼 목사님의 옥중 고백시를 노래한 “선한능력”이 떠올라 유튜브 링크를 첨부합니다.
*선한 능력으로 VonGuten Macuthn Dietrich Bonhoef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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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에밀리 디킨슨의 같은 시를 '희망은 날개 달린 것'으로 번역 소개해드렸는데요. 느낌이 확 다르네요. 홍영혜 선생님이 소개한 한국어 버전 참 좋습니다. 그래서 번역을 반역이라고 하는가 봅니다^^ 따뜻한 글 감사드립니다.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137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