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스(The Guardians)' 5/4 콰드시네마 개봉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18
밀레에게 바치는 전쟁 로망스
가디언스(The Guardians/Les Gardiennes) ★★★★
March 8-18@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
밀레의 '이삭줍는 사람들'과 브뤼겔의 '수확'에서 영감을 얻은 듯한 영화 '가디언스'(The Guardians/Les Gardiennes).
*The Guardians / Les Gardiennes (2017) 예고편
2010년 알제리 산골 수도원의 이야기 '신과 인간(Of Gods and Men)'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2등상)을 수상한 자비에 보부아(Xavier Beauvois) 감독의 신작 '가디언들(The Guardians)'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시골 농가를 배경으로 전쟁의 참혹함과 여성들의 강인한 삶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소설가 에르네 페로숑(Ernest Pérochon)의 'Les Gardiennes(수호하는 여성들, 1924)'인 만큼 영어 제목에선 드러나지 않지만, 원제는 여성들에 관한 경의를 표현하고 있다.
영화는 1915년부터 1919년까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와 끝난 후 농가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부유한 농가의 여주인 오르땅스(나탈리 바예 분)은 전쟁에 나간 두 아들과 게으른 딸 하나, 무기력한 남편과 살고 있다. 동네 젊은 남자들이 모두 참전했기에 농사에 일손이 부족한 터에 고아 소녀 프랑시느(아이리스 브라이 분)가 고용된다.
'가디언스'의 일꾼 프랑시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테스'(나스타샤 킨스키)를 연상시키는 인물. The Guardians/Les Gardiennes
프랑시느는 열심히 일을 해서 오르땅스 마음에 들어 장기로 일하며 눌러 살게 된다. 교회에선 전사한 마을 청년의 추모 기도를 올리고, 집집마다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을까 전전긍긍한다. 오르땅스의 큰 아들이 전쟁 중 사망하고, 사위는 독일에 포로로 잡혀간다. 작은 아들 조르쥬(시릴 데스쿠르 분)가 전선에서 휴가차 집으로 왔다가 프랑시느에게 반한다. 조르쥬에겐 어릴적 여자친구 마거리트가 있지만, 전선으로 돌아간 조르쥬는 프랑시느와 편지로 애정을 키워나간다.
어느날 마을에 미군들이 나타나고, 오르땅스의 딸 솔랑쥬(로라 스메트 분)는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미군과 어울린다. 마을에선 나쁜 소문이 돌고, 이즈음 다시 휴가 나온 조르쥬는 프랑시느와 사랑을 나눈다. 오르땅스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조르쥬에게 프랑시느가 미군과 놀아난다고 거짓말을 해버린다. 그러자 전선으로 돌아가던 조르쥬는 배신감으로 프랑시느를 해고하라고 엄마에게 말한다. 농가에서 쫒겨난 프랑시느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는데...
프랑시느와 주인집 아들 조르쥬의 청순한 사랑은 시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The Guardians/Les Gardiennes
'가디언들'은 반전 영화지만, 전쟁 장면은 두번에 불과하다. 오프닝에 전쟁 터에 깔린 시체들과 조르쥬가 적과 싸우다 자신과 같은 얼굴에 총구를 겨누는 악몽을 꾸는 장면뿐이다. 나머지는 전쟁 탓에 고요하지만, 어두운 침묵이 깔린 오르텡스 농장과 부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준다. 농가에 동이 트면, 씨를 뿌리고, 서레질을 하고, 장작을 패며, 소젖을 짜고, 빵을 만들고, 펌프질하고, 빨래하며, 재봉틀질까지 남성부재 시대에 여성들의 업무를 포착한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음악을 배제함으로써 감성적이지 않고, 신성하게 노동의 현장을 그린다.
테렌스 말릭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에서 눈부신 자연광 속의 농장,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걸려있는 농민화가 피터 브뤼겔의 '수확하는 사람들(The Harvesters, 1565)'와 파리 오르세미술관이 소장한 장 프랑소와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Des Glaneuses)'을 연상시키는 화면이 이어진다. 자비에 보부아 감독의 콤비인 여성 캐롤라인 샹페티에르(Caroline Champetier)가 촬영을 맡아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다.
'가디언스'는 페미니스트 영화다. The Guardians/Les Gardiennes
농장의 일꾼 프랑시느 역을 맡은 아이리스 브라이는 연기 데뷔작이다. 브라이는 나타샤 킨스키의 '테스(Tess)'처럼 관능적이거나, 비극적이지 않고, 성실하며, 강인한 여성상이다. 스물한살의 프랑시느는 조르쥬에게 버림받았지만, 아이가 자신을 위해싸울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카바레 가수가 되어 희망을 노래한다. 전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았지만, 프랑시느에겐 자신의 보물이 생긴 것이다. 가디언들은 혹독한 노동과 상실의 트라우마 속에서 "전쟁이 끝나면... 잘 될꺼야"로 희망을 갖는다.
한국의 탤런트 김용림씨처럼 강인한 시어머니상인 오르땅스 역은 베테랑 배우 나탈리 바예(일주일간의 바캉스)가 절제된 연기를 보여준다. 딸 솔랑쥬는 100년 전 여성으로는 너무도 모던한 마스크와 메이크업으로 느껴졌는데, 사실 나탈리 바예와 전설적인 프랑스 로커 자니 할리데이(Johnny Hallyday) 사이의 딸이다. 본명이 장-필립 레오 스메트인 자니 할리데이는 지난해 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록스타 자니 할리데이의 부인이었던 나탈리 바예와 딸 솔랑쥬가 모녀지간으로 출연한다.
보부아 감독은 전쟁 중 여인들이 주도하는 농사와 가족, 그리고 교회의 의미를 펼치면서 반전과 상실감을 이야기한다. 절제된 대사는 1960년 모스크바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 일본 신도 가네토 감독의 흑백영화 '벌거벗은 섬(The Naked Island /裸の島, Hatagano Shima)'를 연상시킨다. 조그만 섬에서 부부가 고단하게 농사를 짓는데 아들이 갑자기 죽지만, 슬퍼할 여유조차 없다. 그들은 관성대로 농사를 지어간다.
'가디언들'도 토지에 대한 애착,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숭고한 정신이 담겨있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콤비였던 영화음악의 전설 미셸 르그랑의 서정적인 음악이 시너지 효과를 낸다. 138분. 3월 16일 오후 8시. 자비에 보부아 감독과 Q&A. https://www.filmlinc.org/films/the-guardians
티켓: $17(일반), $12(회원, 학생, 노인)
상영관: Walter Reade Theater(165 West 65th 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