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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은총의 교실
2018.03.25 01:05

(331) 허병렬: 주인공으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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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교실 (37)


주인공으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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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 학생들 행렬이 지나가고 있다. 일제히 교복을 입고 정렬해서 걸어가는 모습과는 아주 다르다. 

어느 쪽이 보기 좋은가. 어느 쪽이 훈련을 잘 받고 있나. 어느 쪽이 자연스러운가. 어느 쪽 학생의 만족도가 높은가 등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더욱이 그 중에서 누가 주연인지 가릴 수도 없다. 있을 리도 없다. 


연극에서 주연과 조연이 맡고 있는 역할이 다르고, 관객의 관심이나 조명을 받는 정도에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주연만 있는 연극이 있을 수 있을까? 극본을 짜기 나름이라고 생각한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맡은 대사의 길이, 무게, 동작, 영향 등에 별 차이가 없다면 누가 주연일까. 모두 주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토록 주연 조연의 차이에 생각이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사자들의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이 주연을 맡게 되면 몹시 흥분하여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각오를 피력한다. 주위 사람들도 축하한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이 주연을 맡는다면 분명 삶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기쁨이 첫째이고, 삶의 기백이 달라지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여유가 생기며 파란 하늘 아래를 휘파람 불며 걷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살고 있는 세상의 사실상 주연인 것이다. 다만 각자가 뚜렷하게 의식하지 못할 따름이다. 때로는 자신을 다른 사람의 삶을 반주하는 부수적인 존재로 착각을 하기도 한다. 


학생들도 종종 이런 현상을 보인다. 각종 활동에 무관심하거나, 관찰자가 되거나, 오직 자리차지가 되는 학생들이다. 멀찌감치 자리를 정하고 편안한 자세를 취한다. 교사는 이런 학생들을 놀이 한마당으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그에게 공을 쥐어주고 공을 던지게 한다. 다음에는 공을 받게 하면서 놀이판에 섞이게 한다. 이어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하면서 간간이 말을 나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돕는다. 학생은 차츰 마음을 열면서 친구도 사귀고 일거리도 찾으면서 방관자의 자리를 벗어나게 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세심한 도움이 필요하지만 본인이 마음을 열고 친구와 사귀는 즐거움, 일을 하는 성취감을 어렴풋이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게 바로 주연이 될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이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빗장이 있겠지만 항상 꼭 닫아 놓으면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된다. 마음을 영구적인 자물쇠로 꼭 잠가버려 자기 자신이 갇혀버리게 된다. 우리는 제각기 하는 일은 다르더라도 한데 어울려 삶을 즐기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이 때 모인 개인들은 하나같이 주연이 된다. 모든 생명은 틀림없는 주인공이니까.  


연극에 뽑혀서 흥분한 꼬마를 위해 온 가족이 손님까지 모시고 학예회 구경을 갔다고 한다. 그런데 연극 진행 중 꼬마의 모습이 통 보이지 않더니, 맨 끝 장면에서 나와 꼬마가 큰 소리로 한 마디를 외쳤다고 한다. 꼬마 생각에 그가 틀림없는 주인공이었다. 


생각은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준다. “내가 주연이다” “내가 주인공이다”는 생각은 누구에게나 활력을 불어넣게 된다. 사회 추진력의 중심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은 에너지의 근본이다. 하지만, 기억할 것은 여기에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내 일은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 주연. 주인공의 책임은 조연과는 다른 무게가 있게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주인공이 되어 얻게 되는 기쁨과 삶에 대한 보람과 에너지를 포기할 수 있겠는가. 



허병렬100.jpg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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