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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 이수임: 우리들의 파자마 파티
창가의 선인장 (66) 이대로
우리들의 파자마 파티
비가 촉촉이 내리던 금요일 저녁, 허드슨강 건너 비에 젖은 맨해튼이 운치 있는 한 폭의 그림처럼 회색 조를 띄며 차분하다. 뉴저지 에지워터 강가 콘도에서 우리들은 만났다. 전면이 허드슨강과 맨해튼을 마주한 술맛 땅기는 분위기의 집이다.
한 달에 한 번 만나 수다 떨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우리에게 넉넉하고 푸짐한 멤버 한 명이 남편이 출장 간다며 자기 집을 선뜻 오픈했다. 우리 나이에 귀찮아서 누가 초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도 1박 2일을. 모두 13명, 집주인이 술과 장소는 제공하고 음식은 각자 만들어 가기로 했다. 놀 때는 노는 것에 올인하며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던 나는 열 일 제치고, 전날 밤을 설치고 제일 먼저 달려갔다.
비가 그쳤다. 노을은 허드슨강을 붉게 물들이며 황금빛을 발했다. 이제는 다시 갈 수 없는 지난날들이 떠올라 과거 속에서 헤맸다. 푸르스름해지는 하늘에 밀려 노을은 서서히 강물 속으로 잠겼다. 어두움이 고개를 들자 기어나 온 보름달이 묵묵히 흐르는 강물 위에 은은한 빛을 발했다. 현실로 돌아와 술잔을 기울이며 행복에 젖었다.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맨해튼 야경이 어두운 강물 뒤에서 더욱 반짝이며 빛을 발하자 알 수 없는 미래에 희망을 품어봤다.
보름달만한 잔에 따라준 코냑 향기에 취했다. 굳이 말이 필요 없는 밤이었다.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화목한 모임, 그리고 준비해 온 음식, 모든 종류의 술 특히나 풍광에 넋을 잃었다. 이대로 멈췄으면 했다. ‘이대로!’라고 우리는 소리 높여 건배했다.
사실 ‘이대로’는 친정아버지 친구들 모임의 이름이었다. 아버지도 내 나이 때부터 ‘이대로’라는 모임을 만들어 친구들과 노년을 즐기시며 모임에서 생겼던 일화를 재미있게 들려주셨다. 늘 아버지 모임을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잠재해 있었던 걸까? ‘뭐로 건배할까?’ 했을 때 내 입에서 ‘이대로’라는 단어가 저절로 굴러떨어졌으니. 무의식 중에 가두어 놓은 부전여전의 DNA가 그만 분위기에 빠져나왔나 보다.
그 많은 사람 중에서 우연히 만난 인연, 살면서 즐거웠던 날 중의 이틀을 함께 했다. 누구 말대로 한 이불에서 자고 나면 더욱 친밀해진다더니. 뭘 더 바라겠는가? 이대로, 이대로, 이대로이길.
드디어 5월이다! 친구들아, 햇볕 아래 벤치가 따듯해지는 포근한 날 바람 따라, 구름 따라 봄나들이 가자.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