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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베닝, 서샤 로난, 엘리자베스 모스 연기 앙상블

사랑과 야망, 명예와 죽음의 심포니 '갈매기(The Seagu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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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agull, 2018

 

해마다 여름이면 센트럴파크에서 셰익스피어 무료 공연(Shakespeare in the Park)를 연다. 몇번 가본 것은 분위기를 보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는 것은 내게 일종의 고문이다. 아서 밀러, 유진 오닐, 테네시 윌리엄스 등 거장들의 작품을 브로드웨이에서 보는 것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Anton Chekhov)도 마찬가지다. 종종 본전 생각나게 만드는 연극들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방인의 비애다. 

 

하지만, 그들의 작품을 각색한 영화는 덜 부담스럽다. 연극보다 친숙한 배우들이 등장하며, 친절한 클로즈업이 있다. 대사가 연극보다 짧고, 장면전환이 많아 볼 거리가 많다. 티켓 가격 또한 저렴한 복제예술이 영화다. 

 

'벚꽃동산(The Cherry Orchard)' '세자매(Three Sisters),  '바냐 삼촌(Uncle Vanya)'과 함께 안톤 체홉의 4대걸작으로 꼽히는 '갈매기(The Seagull, 1896)'가 영화로 제작됐다. 4월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5월 11일 맨해튼 파리 시어터와 안젤리카필름센터에서 개봉됐다.

 

*'갈매기(The Seagull)'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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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agull, 2018

 

영화 '갈매기'엔 '20세기 여성들'의 아네트 베닝, '레이디 버드'의 서샤 로난, '핸드메이드 테일'과 '스퀘어'의 엘리자베스 모스까지 연기파 여배우들이 출연한다. 메거폰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Srping Awakening)'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리골레토'의 배경을 16세기 이탈리아 시골에서 20세기 라스베가스로 옮겨 히트한 마이클 메이어(Michael Mayer)가 잡았다. 

 

노쇠해가는 소린(브라이언 데니)의 러시아 시골 별장, 그의 동생인 도도한 배우 이리나(아네트 베닝)와 그녀의 애인인 유명 작가 보리스(코리 스톨)이 온다. 이리나의 아들인 작가 지망생 콘스탄틴(빌리 하울)은 이웃집 처녀 니나(서샤 로난)를 사랑하지만, 배우 지망생인 니나는 성공한 보리스에 빠져든다. 별장 관리인 일리야의 딸 마샤는 콘스탄틴을 짝사랑하고, 교사인 메드베덴코는 마샤를 짝사랑한다. 마샤의 엄마 폴리나는 의사 도른과 불륜 관계다. 엇갈린 애증의 멜로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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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agull, 2018

 

아네트 베닝은 '20세기 여성'으로 대기만성형의 연기파로 공인됐다. 남편 워렌 비티가 지난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치매에 가까운 실수를 하며 이미지가 추락하고 있는 반면, 아네트 베닝은 연기파로 부활 중이다. 베닝은 이기적이며, 격정적인 디바 이리나의 캐릭터를 현란하게 연기한다. '차세대 메릴 스트립' 서샤 로난은 성공한 작가 보리스에게 무한대로 빠지는 열망을 순수하고, 섬세한 눈표정으로 포착해낸다. '핸드메이드 테일'과 '스퀘어'의 엘리자베스 모스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콘스탄틴에 절망하며, 검은색을 입고 인생을 저주하는 냉소적인 여인 마샤 역을 맛있게 소화한다. 모스는 기억할만한 대사들을 뱉어낸다. 베닝, 로난, 모스의 트로이카는 마치 '세자매'처럼 발군의 연기로 '갈매기'를 살린다. 

 

문제는 남성 배우들의 열세다. 작가 보리스는 애인의 아들이 사랑하는 마샤를 빼앗는다. 그리고, 그녀와 살다가 차버린다. 코리 스톨은 성공에 탐닉하면서도 창작에 고뇌하고, 이리나의 애인으로 마샤의 유혹에 굴복하는 보리스의 딜레마를 표현하는데 역부족이다. 콘스탄틴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처럼 다부진 체격이지만, 장래가 불투명한 작가 지망생으로서 마샤에 대한 사랑과 질투, 배신감과 좌절, 그리고 잔혹함을 절묘하게 분출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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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agull, 2018

 

'갈매기'의 배경은 러시아 시골이지만, 실제 영화 촬영은 뉴욕주 먼로의 우드버리 아웃렛 인근 애로우파크(Arrow Park)에서 이루어졌다. 감독은 라흐마니노프의 '러시안 랩소디' '서곡', 차이코프스키의 '명상' '세레나데', 그리고 스크리아빈의 '에튀드'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삽입했다. 

 

그러면, 갈매기는 무엇일까? 콘스탄틴은 어느날 갈매기를 총으로 쏘아 죽인 후 그 시체를 사랑하는 니나의 발치에 던진다. 호숫가에 사는 니나는 갈매기처럼 자유로운 영혼이었지만, 보리스에게 매혹당해 버린다. 하지만, 갈매기를 쏘았던 콘스탄틴은 니나만을 짝사랑하다가 그 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체홉은 '갈매기'를 통해 사랑과 야망, 배신과 복수, 그리고 죽음이라는 화두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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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agull, 2018

 

의사 출신 작가 체홉은 콘스탄틴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의사 도른에게서 현재를, 보리스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본듯하다. 즉, 세 캐릭터는 자신의 세가지 모습을 투영한 셈이다. "의학은 나의 아내요, 문학은 나의 애인이다"라고 말했던 체홉은 마흔네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화 '갈매기'는 남자 배역(보리스와 콘스탄틴)의 미스캐스팅으로 밀도높은 캐릭터간의 갈등에 불이 붙지 못한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아름다운 호숫가 별장, 아네트 베닝과 서샤 로난의 카리스마, 그리고 러시아 클래식 음악의 메들리가 체홉의 세계를 이해하는 첫걸음으로는 만족감을 주는 작품이다. 러닝타임 1시간 38분.

 

'갈매기' 상영관: 파리 시어터, 안젤리카필름센터

https://www.citycinemas.com/paris/showtimes-and-tickets/now-playing

https://www.angelikafilmcenter.com/nyc

 

*뉴욕영화제 리뷰: 서샤 로난 주연 '레이디 버드 Ladybird'

*뉴욕영화제 리뷰: 아넷 베닝 주연 '20세기 여성들 The 20th Century Women'

*뉴욕영화제 리뷰: 엘리자베스 모스 출연, 칸황금종려상 수상 '스퀘어 The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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