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카알라일과 우디 알렌
수다만리 (14) 와일드 맨 블루스 2016
재즈, 카알라일 호텔과 우디 알렌
지난 20일 카페 카알라일에서 에디 데이비스재즈밴드와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우디 알렌(왼쪽에서 세번째). Photo: Sukie Park
오스카상보다 중요한 콘서트
뉴욕에 20년쯤 살면서 이것저것 보고, 듣고, 먹고, 즐기면서도 버킷 리스트에 꼽았다가 잊어버린 것이 있었다.
처음 뉴욕에 왔을 때부터 영화감독 우디 알렌(Woody Allen, 80)이 클라리넷 연주하는 콘서트를 보고 싶었다. 우디 알렌은 마이클즈 펍(Michael's Pub)에서 월요일 밤마다 재즈 콘서트를 하며, 1978년 '애니 홀(Annie Hall)'로 LA에서 열린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오리지널 시나리오상, 여우주연상(다이앤 키튼)을 수상했지만, 시상식에 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이 콘서트를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쨋거나 그는 상에 연연해하지 않는다. 영화에 상이란 무의미하다는 것. 멋진 예술가다.
*Woody Allen: Martha <Youtube>
사실 필자가 뉴욕에 오게 된 것도 그의 영화를 수토록 많이 보면서 마음이 뉴요커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1990년대 초 영화잡지 '스크린'의 청탁으로 로만 폴란스키, 데이빗 린치, 첸 카이커에 이어 우디 알렌 감독론을 쓰게 됐다. 당시 LD도 구하기 힘들었고, 유튜브도 없었다. 영화마을 비디오숍에서 출시 비디오를 대여하거나, 해적판 비디오를 10편 내외 구해서 장면 분석을 하고, 대사도 옮겨 적으면서 비교적 꼼꼼히 보았다. 뉴욕은 어느새 나의 도시처럼 친밀해졌다. "사랑은 식기 마련이라우(Love fades away.)"나 "비극 플러스 시간은 희극(Tragedy plus Time is Comedy.)"같은 주옥같은 대사를 명언으로 간직했다.
충무로 취재시절 조감독 친구들과 소주를 마시면서 미아 패로우의 양녀 순이 프레빈(Soon-Yi Previn)과의 스캔달에 대해서도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했다. 사실 순이 프레빈은 미아 패로우와 작곡가 앙드레 프레빈 사이의 양녀이지, 우디 알렌의 양녀는 아니다. 미아 패로우와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근친상간은 아니다. 하여간에 영화 속의 인물들은 자석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뉴요커가 되어야 했다.
이윽고, 1996년 뉴욕에 온지 얼마 되지않아 컬럼비아대 어학생이던 시절 우디 알렌 감독의 '셀레브리티(Celebrity)'의 엑스트라가 되었다. 우디 알렌 영화 찍는 것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엑스트라 인생들과의 만남도 흥미진진했다.
*뉴욕 스토리 <95> 우디 알렌 영화 엑스트라의 추억
이듬해엔 우디 알렌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와일드 맨 블루스(Wild Man Blues, 1997)'가 개봉됐다. 마침 런던에서 여행온 대학 친구와 함께 보러 갔다. 우디 알렌이 클라리넷을 들고 에디 데이비스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와 유럽 투어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였다. 바바라 코플(Barbara Kopple) 감독은 우디 알렌을 영화감독이 아니라 재즈 뮤지션으로 포커스를 맞추었다. 여기에 마침 순이 프레빈과 동행한 베니스 여행 모습도 담았다. 순이 프레빈은 역시 한민족의 DNA를 갖고 있어서 강인한 여인이었다. 나이가 35세나 많은 남편 알렌을 거의 구박하듯이 다루고 있었다.
*Woody Allen - Concerto Parigi 1996 - Wild Man Blues <YouTube>
어느덧 세월이 흐르면서 우디 알렌은 미아 패로우가 꾸민듯한 양녀 딜란 성추행 혐의까지 받으며 많은 뉴요커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뉴욕에서만 영화를 찍던 그는 해외로 로케이션을 바꾸었고, 베니스(모두가 사랑한다고 말하지, Everyone Says I Love You/1996), 런던(매치 포인트/Match Point, 2005), 바르셀로나(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Vicky, Cristina, Barcelona, 2008), 파리(파리에서 한밤중/Midnight in Paris, 2011), 샌프란시스코(블루 자스민/Blue Jasmin, 2013) 등을 만들었다.
80세의 노령, 우디 알렌은 매년 자작 시나리오로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거의 매주 월요일 밤엔 클라리넷 콘서트를 놓치지않는다. 장소는 이전의 마이클스 펍에서 카페 카알라일(Cafe Carlye)로 바뀌었지만, 에디 데이비스(Eddy Davis)가 이끄는 뉴올리언스 재즈 밴드와 콘서트(WOODY ALLEN & THE EDDY DAVIS NEW ORLEANS JAZZ BAND)를 하는 것이다. 마침 뉴욕컬처비트를 후원해주시는 선생님들의 초대로 지난 6월 20일 카페 카알라일 프리미엄석에서 우디 알렌의 연주를 볼 수 있었다.
뉴욕 온지 20년 만에 '버킷 리스트'가 이루어진 것이다. 우디 알렌 콘서트는 워낙 티켓이 비싸 '그림의 떡'이라 포기한 후 잊고 있었다. 게다가 콘서트는 6월 20일과 27일만 남아 있었다. 커버 차지(*공연 입장료)는 일반석($165), 바석(Bar Seating, $120), 프리미엄석($215), 게다가 미니멈 음식/음료는 1인당 $75이니 우디 알렌 콘서트에 $300 이상의 경비가 들어가는 셈이다. 우디 알렌 프리미엄이 서민으로서는 너무 부담스런 가격이었다.
돌이켜보면 우디 알렌 콘서트 전, 우연이겠지만, 징조가 보였던 것 같다. 5월 말 뉴욕필하모닉의 세인트존더디바인 성당의 메모리얼데이 콘서트 오프닝에서 윈턴 마살리스가 이끄는 재즈엣링컨센터 밴드가 지난해 12월 작고한 지휘자 쿠르트 마주어를 추모하는 '뉴올리언스' 장례 행진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지난 17일 브루클린 프로스펙트파크에서 뉴욕필의 '콘서트 인더 파크' 에선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솔로이스트 안소니 맥길, Anthony McGill)을 선사했다. 그러니, 카페 카알라일 호텔에서 우디 알렌과 뉴올리언스 재즈, 그리고 클라리넷이 절묘하게 합류한 셈이었다.
'비밀의 궁전' 카알라일 호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뉴욕 백악관'이었던 카알라일 호텔 펜트하우스(녹색타워)에선 마릴린 먼로가 낀 파티가 열렸다.
사실 카페 카알라일이 자리한 호텔에도 드라마가 있다. 어퍼이스트사이드 매디슨애브뉴의 카알라일(The Carlyle) 호텔은 대공황 직전인 1929년 실반 비엔(Sylvan Bien) 설계로 지어진 아르데코풍의 35층짜리 빌딩이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루프가든에서 어퍼이스트사이드를 보면 푸른 모자를 쓰고 나 홀로 우아하게 서있는 건물이다. 카알라일은 뉴욕타임스가 "비밀의 궁전(Palace of Secrets)'라 부를 만큼 대통령급들이 즐겨찾던 호텔이다.
1960년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34-35층 펜트하우스를 소유했다. 그래서 '뉴욕의 백악관(The New York White House)'라는 별명도 붙었다. 플레이보이였던 JFK는 카알라일을 아지트로 삼았다. 1962년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케네디 생일 갈라에서 마릴린 먼로는 축가 "Happy Birthday, Mr. President"를 불렀고, 그날 밤 카알라일 호텔의 77스트릿 비밀 문을 통해 케네디 아파트로 올라간 것으로 알려졌다. JFK는 형제 로버트, 테드와 3총사로 마릴린 먼로, 프랭크 시나트라와 친구들을 불러 섹스파티를 종종 벌였다.
아이러니하게도 JFK가 암살당한 후 재클린 케네디는 딸 캐롤라인, 아들 JFK 주니어와 이 호텔에 10개월간 31층에 머물렀다. 비오는 날 JFK 주니어는 로비에서 놀았다고. 그리고, 1999년 7월 16일 아들 JFK 주니어가 마사즈 비니야즈로 가기 전 아침식사를 한 곳이 카알라일이었다. 그날 JFK 주니어는 자신이 몰던 비행기 추락으로 동승한 부인, 처제와 함께 사망했다.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카알라일호텔에 들어서고 있다.
영국의 다이애나비, 별도로 찰스 황태자와 카밀라,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리더 믹 재거, 할리우드 스타 잭 니콜슨과 조지 클루니가 뉴욕에서 집처럼 생각했던 곳이 카알라일 호텔이었다. 톰 크루즈와 케이티 홈스는 딸 수리의 티 파티를 베멜만스 바에서 열어주었다. 론 하워드 감독은 두 딸의 미들네임에 '카알라일'을 넣어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정치인과 스타들이 카알라일을 사랑했던 이유는 럭셔리하고도 '프라이버시'가 특급비밀처럼 지켜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카알라일은 2011년 로즈우드 호텔을 매입한 홍콩의 억만장자 쳉 유텅 손으로 넘어갔으며, 대표는 손녀 소니아 쳉(Sonia Cheng, 34)이 맡고 있다.
카페 카알라일(Cafe Carlyle)은 1955년 오픈한 후 주디 콜린스에서 블론디의 싱어 데보라 해리, 뮤지컬 스타 서튼 포스터까지 유명 뮤지션들의 무대였으며, 가장 인기있는 뮤지션은 다름 아닌 우디 알렌(클라리넷)과 에디데이비스 뉴올리언스재즈 밴드(Eddy Davis New Orleans Jazz Band)다.
이보다 캐주얼한 베멜먼스 바(Bemelmans Bar)는 1947년 오픈했다. 영화로도 제작됐던 동화 '마델린(Madeline)'의 작가 루드비히 베멜먼스(Ludwig Bemelmans)가 벽화를 직접 그려서 바 이름을 붙였다. 이듬해 트루만 대통령이 체류했으며, 케네디는 1950년 상원의원 시절부터 카알라일 호텔의 34-35층 듀플렉스에 묵기 시작했다.
우디 알렌, 감독이자 뮤지션
"난 평생 엄청난 재즈 팬이었다.
모던 재즈를 물론 좋아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재즈는 뉴올리언스 재즈다.
여기엔 단순하고, 직접적이며 원초적인 느낌이 있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내게 가장 가까운 재즈 스타일이다."
-우디 알렌-
*The Greatest Woody Allen's Movie Music <YouTube>
우디 알렌은 코미디언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며, 배우이자 감독이며 뮤지션이다.
1935년 12월 1일 브롱스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알란 스튜어트 코니그스버그(Allan Stewart Konigsberg). 이름은 17살 때 그의 우상이던 클라리넷주자 우디 허만(Woody Herman)의 이름을 따 헤이우드 알렌(Heywood Allen)으로 바꾸었다가 우디 알렌이 됐다.
우디는 세살 적에 엄마가 만화영화 '백설공주'를 보여준 후 영화에 빠지고, 영화관을 집처럼 삼았다. 브루클린으로 이주해 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지능지수(IQ)가 너무 높아서 월반을 했지만, 학교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반항적이었다. 숙제를 하지 않았고, 선생님한테 대들며 수업을 방해했다. 너무 쉽고 다 아는 것이라서였을까? 천재는 학교를 죽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1950년대 브루클린에서 살던 우디는 맨해튼의 재즈 레코드 센터(Jazz Record Center)를 드나들었다. 17살 때는 클라리넷주자 진 세드릭(Gene Sedric)으로부터 시간당 2달러를 주면서 개인교습을 받기 시작했다. 시간당 2달러엔 세드릭이 브롱스에서 브루클린까지 오는 지하철비(10센트)가 포함됐다.
소년시절 그의 꿈은 사실 영화감독이 아니라 뮤지션이었다. 클라리넷을 배우면서 스웨덴 감독 잉그마르 베르히만, 이탈리아 감독 페델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보면서 클라리넷은 매일 연습하는 취미가 되었고, 영화는 직업이 된다. 시나리오를 쓰며, 영화를 연출하면서도 알렌은 80세인 오늘까지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연주하고 있다.
영화 '애니 홀(Annie Hall)'에서 다이앤 키튼과 우디 알렌.
그가 매주 월요일 콘서트를 시작한 것은 1973년 마이클즈 펍(Michael's Pub, 211 West 55th St.)에서 뉴올리언스 퓨너럴 & 래그타임 오케스트라(New Orleans Funeral and Ragtime Orchestra)의 뮤지션으로서였다. 1978년 아카데미상 시상식 때 '애니 홀(Annie Hall)'이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오리지널 시나리오상,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휩쓸었을 때 그는 마이클즈 펍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날 알렌은 연주 사이에 TV로 무덤덤하게 시상식을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렌은 종종 칸느와 베니스 국제영화제에 초대되지만, 경쟁 부문은 사절한다. 영화에 점수 매기고, 시상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알렌의 연주 무대였던 마이클즈 펍은 1996년 문을 닫게된다.
그후 알렌은 33년 전 시카고에서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함께 올랐던 밴조 연주자 에디 데이비스(Eddy Davis)가 이끄는 정통 뉴올리언스 앙상블과 재회한다. 피아노, 베이스, 밴조, 드럼, 클라리넷, 트럼펫, 트럼본의 7인조 밴드를 구성 카페 카알라일에서 1910-20년대 재즈를 레퍼토리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올해는 카페 카알라일 월요일 콘서트 20주년이다.
*Woody Allen & Eddy Davis New Orleans Jazz Band no Cafe Carlyle <YouTube>
알렌이 즐겨 연주하는 음악은 시드니 비솃(Sidney Bechet), 조지 루이스(George Lewis), 조니 도즈(Johnny Dodds), 지미 눈(Jimmie Noone), 그리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등이다. 우디 알렌은 뉴올리언스 재즈 앙상블과 'The Bunk Project'와 'Wild Man Blues' 2개의 CD를 출반했다. 2008년엔 몬트리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연주했다.
"난 하루라도 연습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지만, 못할 경우엔 무척 죄책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루에 5시간 연습해서 위대한 재즈 연주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난 결코 위대한 뮤지션이 될 소질이 없다."
-우디 알렌-
*치네치타 NYC <35 > 뉴욕 스토리, 우디 알렌/마틴 스콜세지/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