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 브로드웨이 뮤지컬 '컴포트 우먼(Comfort Women)'과 공장장 김현준씨
컴포트 우먼 Comfort Women: A New Musical
오프 브로드웨이 최초 올 아시안 캐스팅 뮤지컬
9월 2일까지 피터 J. 샤프 시어터 공연
Comfort Women: A New Musical
1997년 8월 한국산 뮤지컬 '명성황후(The Last Empress)'가 링컨센터에서 공연됐다. 그리고, 2011년 8월엔 '영웅(Hero)'이 링컨센터 무대에 올려졌다. 두편 다 한국 뮤지컬의 대부 윤호진씨 연출작으로 '뉴욕 브로드웨이에 진출한 뮤지컬 한류의 효시'라고 언론이 떠들어댔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해 두 뮤지컬은 '브로드웨이'에 상륙한 것이 아니다. 브로드웨이는 타임스퀘어 인근 극장가와 링컨센터에 자리한 500석 이상 극장 41개를 지칭한다. 링컨센터에선 비비안 보봉 시어터(1080석)만이 브로드웨이 극장이다. 사실상 '명성황후'와 '영웅'이 공연된 데이빗 코크 시어터(구 뉴욕스테이트시어터)는 브로드웨이가 아니라 뉴욕시티발레와 뉴욕시티오페라의 홈공연장이다.
'명성황후'와 '영웅'은 구한말 한국의 비극적인 역사 속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이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 안중근이 살해한 이토 히로부미, 두 뮤지컬 속에서 일본은 조선의 적이며,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역사에 무지한 미국인에게 안중근은 테러리스트로 보일 수도 있다. 뉴욕 한복판에서 한국의 민족주의는 흥행에 장애가 되는, 마케팅의 불발이었다.
Comfort Women: A New Musical
2018년 여름,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는 진정한 한류의 파고가 높다. 희곡작가 이영진(Young Jean Lee)씨의 연극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Straight White Men)'이 헤이즈 시어터(597석)에서 공연되면서 그는 브로드웨이 사상 첫 아시안 여성 희곡작가로 기록됐다. 남성은 꼭 30년 전인 1988년 'M. 버터플라이'를 무대에 올린 중국계 데이빗 헨리 황이다.
그리고, 오프 브로드웨이도 한류가 강세다. 김현준(Dimo Hyun Jun Kim)씨가 공동으로 대본을 쓰고, 연출한 뮤지컬 '컴포트 우먼(Comfort Women: : A New Musical)'이 7월 20일부터 피터 제이 샤프(Peter Jay Sharp Theater, 128석)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2015년 세인트 클레멘츠 시어터(151석)에서 초연되어 매진 속에 호평받았던 '컴포트 우먼'은 리바이벌 작으로 오프 브로드웨이 사상 최초의 아시안 연출, 전원 아시안 배우 출연작으로 기록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용비어천가'를 썼던 이영진씨의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은 미국에서 특권층인 백인남자 가족의 이야기를 풍자적으로 그린 연극인 반면, 김현준씨의 '컴포트 우먼'은 아직도 한국인에게는 민족적 트라우마이며, 일본은 사죄를 거부하는 위안부 이야기를 고발한 뮤지컬이라는 점이다. '스트레이트 화이트멘'엔 아시안이 없고, '컴포트 우먼'엔 백인이 없다. ('컴포트 우먼' 프로그램(playbill) 안에 이영진씨와의 인터뷰가 수록되어 있다.)
Comfort Women: A New Musical
'위안부'로 포장된 '성노예(sex slave, 종군위안부, 정신대)'의 이야기는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김대실 감독의 '깨어진 침묵(Broken Silence)' 등 다큐멘터리와 뉴욕 아티스트 이창진씨의 프로젝트 시리즈 'COMFORT WOMEN WANTED'로도 잘 알려져 있다. 김현준씨의 앵글로 보는 뮤지컬 '위안부'는 어떨까? 디즈니 만화, 쥬크박스, 10대 풍의 뮤지컬이 범람한 브로드웨이까지 갈 잠재력이 있을까?
뮤지컬 '컴포트 우먼'은 1941년 일제강점기 성노예로 팔려간 한인 여성들의 이야기다. 도쿄 설탕공장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속임수에 끌려간 10대 소녀 고은(아비게일 최 아레이더 분)은 결국 인도네시아에서 하루에도 수십명씩 일본 군인들을 상대하는 성노예로 살아간다. 고은 위안부 친구들과 한국 군인 민식의 도움으로 탈출을 계획하는데...
Comfort Women: A New Musical
'컴포트 우먼'은 인신매매와 강간이라는 범죄의 피해자로서의 위안부 10여명을 피상적이지만, 개성있는 인물로 그려낸다. 스타성을 갖춘 아비게일 최 아레이더와 공동 운명체 여인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그런데, 위안부들에게 평생의 상처가 된 성폭력 장면이 특수효과와 안무로 처리되어 배우들에게 흡인되는데 역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10대 소녀들 매일매일 겪어야 했던 고통이 좀더 강화되었다면, 강력한 고발극으로 기억될 수 있었을 것같다. 여기에 인도네시아의 익살스러운 일꾼 나니(매튜 보티스타 분)는 코믹 릴리프 캐릭터지만, 오히려 극의 주제를 반감시키는 아쉬움이 있다.
민식(매티어스 팅 분)의 고은에 대한 플라토닉한 사랑과 구출하는 과정, 그리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결말은 슈가코팅이 된 해피엔딩처럼 느껴진다. '컴포트 우먼'은 고은과 위안부 여성들의 고통과 비인도주의적인 일본제국의 대응을 고발하는 작품이지, '쉰들러의 리스트'식의 영웅주의는 아닐 것이다. 김현준, 오스커 데이빗 아귀레와 조안 미에시스가 공동으로 집필한 대본은 브로드웨이 뮤지컬, 게임의 규칙을 따랐다.
작곡가 브라이언 마이클스(Bryan Michaels)와 박태호(Taeho Park)씨는 위안부 스토리를 브로드웨이 스타일의 관습대로 곡을 썼다. 하지만, 낯선 땅에서 낯선 남자들로부터 한인 여성들의 고행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색채가 가미되었으면 관객들에게는 더 이국적이며, 리얼리티 있는 뮤지컬이 되지 않았을까?
나타날 김(Natanal Kim)의 안무는 좁은 무대를 십분 활용한다. 장총이 우산으로 변한 군무나 천으로 엮는 안무는 여성들의 자매애, 연대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커튼과 나무를 주조로 한 오현주(Stella Hyun Joo Oh)씨의 세트 디자인은 장면 전환에도 신축성있고, 유용했다. 루시우스 서(Lucius Seo)의 의상은 전체 극의 톤과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용해된 디자인으로, 잔꽃무늬 패턴의 위안부 원피스는 꽃다운 나이에 성노예가 된 여인들의 운명을 비장하게 보여준다.
Comfort Women: A New Musical
김현준(27)씨는 디모 김 뮤지컬 시어터 팩토리 Dimo Kim Musical Theatre Factory)를 설립, 2015년 '컴포트 우먼'으로 오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이어 2016년 한인 유학생이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 미국 여성과 위장결혼하는 이야기를 그린 창작 뮤지컬 '그린카드(Green Card)', 2017년엔 다중인격자의 살인사건을 다룬 한국산 뮤지컬 '인터뷰(Interview)'를 세인트 클레멘츠 시어터 무대에 올렸다. 김씨는 뉴욕시립대(CUNY) 연극과 졸업 후 후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공연제작을 전공하고 있다.
뮤지컬 공장장 김현준씨는 '아시아계 배우들의 대부'인 데이빗 헨리 황 이후 가장 참신한 아시아계 연극인일 것이다. 한인 희곡작가 이영진, 줄리아 조가 주류의 이야기로 합류하고 있는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이 해야할 이야기와 창작 뮤지컬로 아시아계 연극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패기만만한 인물이다. 디모 김 뮤지컬 공장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컴포트 우먼'은 오는 9월 2일까지 계속된다.
*시어터 매니아(Theater Mania)가 위안부 문제에 객관적일 수 없는 일본인 비평가의 리뷰를 실었다. 물론, 그는 혹평했다.
Comfort Women: A New Musical Explores the Plight of Korean Sex Slaves, Theatermania, by Kenji Fujishima
https://www.theatermania.com/off-broadway/reviews/comfort-women-a-new-musical_85980.html
CAST: Abigail Arader, Matheus Ting, Leana Rae Concepcion, Roni Shelley Perez, Kenny Mai, Ben Wang, Shuyan Yang, Sara States, Emily Su, Chloe Rice, Sam Hamashima, Mathew Bautista, Matthew Ting, Tenzin Yeshi, Michelle Lim, Genevieve Shi, Andrew Lee, John Bernos, Jake Vielbig, Yoomi Kim, Michelle Tsai, Stephanie Gong, Paulina Breeze, Dan Chen
Comfort Women: A New Musical
공연 기간: 7월 20일-9월 2일
티켓: $59-$79 https://www.ticketcentral.com
극장: Peter Jay Sharp Theater(416 West 42nd St.)
*브로드웨이 1호 아시안 여성작가 이영진씨의 '스트레이트 화이트 멘'
*브로드웨이에 한국계 돌풍: 진 하(M. 버터플라이), 줄리아 조, 애슐리 박(민걸즈), K-팝 뮤지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