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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이영주: 몬태나 일기(2) 옛 영광 흔적의 도시 뷰트(Butte)
뉴욕 촌뜨기의 일기 (48) 몬태나 일기 2
옛 영광 흔적의 도시 뷰트(Butte)
글, 사진: 이영주
뷰트의 구리광산이 폐광 후 호수가 된 버클리 핏 (Berkerly Pit), Pissers Palace 클럽 앞에서 필자.
토마스는 엔슬리의 남동생입니다. 나이가 막내와는 11살 차이가 나는데, 유머 감각이 뛰어난 천재 중의 천재입니다. 그리고 매우 착하고 순수합니다. 막내와 토마스는 생일이 똑같습니다. 우연이라기엔 필연 같은 우연입니다. 둘이는 거의 띠동갑 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생일이니 쌍둥이라며 매우 친하게 지냅니다. 언젠가 둘이서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는데, 둘이서 너무 재미있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하니 웨이츄레스가 ‘어쩜 그렇게 다정한 커플이냐? 보기 좋다.“며 덕담을 해서 ”우린 커플이 아니고 쌍둥이“라고 했더니 아주 이상한 표정으로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 보더라며 깔깔 웃습니다. 엔슬리 부모 글렌과 토마스는 막내를 저세상에 먼저 간 딸을 대신해서 얼마나 아껴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글렌네 가족은 이제 우리와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지난 7월 5일, 아들 토마스가 뷰트(Butte)에 같이 가겠느냐고 물어 왔습니다. 보즈맨에 수없이 왔지만, 작년에 글렌 부부와 함께 Three Fork 에 로데오 보러 가고, 옐로우스톤 파크 외엔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어서 무조건 예스!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10시 조금 지나 토마스가 와서 신나는 데이 투어가 시작됐습니다. 걸후랜드 케이트는 어제 친구 결혼식에 가기 위해 떠났고, 부모인 글렌과 토마스는 매년 독립기념일마다 불꽃 터지는 소리에 개들이 놀라기 때문에 피난 아닌 짧은 여행을 친구네 목장으로 갑니다. 토마스는 부모의 집 뒤 넓은 뒷마당 한쪽에 작년에 트레일러 타이니 하우스를 지었습니다. 타이니 하우스는 정말 작습니다. 그 작은 공간을 요모저모 실용성 있게 장치한 게 재미있습니다. 침실은 지붕밑 방처럼 낮아서 머리를 빡빡 깎은 토마스의 정수리엔 언제나 그곳에 부딪쳐서 생긴 빨간 상처가 지워질 날이 없습니다.
차에는 그의 애견 ‘더치’가 뒷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식구들이 모두 떠나서 어젯밤엔 더치와 케이트의 개 두 마리까지 세 마리의 개와 한 침대에서 동침을 했다며 토마스는 해맑게 웃었습니다. 난 원래 어릴 때부터 개를 몹시 무서워하는데, 몬태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개를 좋아해서 어떤 때는 사람보다 개가 더 많은 것 아닌가, 헷갈릴 때도 많습니다. 시트에는 개털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지라 꾸-욱 참고 차에 올랐습니다.
뷰트 입구의 바위산
뷰트 가는 길은 몬태나답게 산으로 둘러싸인 풍광들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특히 뷰트 들어서자 마자 만난 바위산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멋진 모습은 유타의 자이언 캐년 다음으로 놀라운 풍경이었습니다. 물론 규모는 달랐지만 둥글고 모난 커다란 바위들이 불쑥불쑥 솟아 있고, 그 사이에 키 작은 침엽수들이 손짓하는 모양새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Oh my god! So~~~beautiful!!!" 짧은 영어로 감탄사를 날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뿔사! 사진 찍는 걸 잊었습니다. 그제서야 전화기를 서둘러 꺼내 차창을 통해 셔터를 눌렀지만, 거의 파장 쪽이라 장관은 찍지 못했습니다. 아쉽기 짝이 없었습니다.
뷰트는 18세기 말과 19세기 초까지 구리 광산으로 영광을 누렸던 도시입니다. 한창 융성했던 시기엔 모든 상가가 밤새 영업을 했다고 합니다. 새벽 3시에 이발소에 가서 머리를 깎을 수 있고, 새벽 1시에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밤새 부어라 마셔라, 흥청대던 도시, 몬태나서 가장 부유했던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광산 붐으로 유럽과 아시아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이민을 왔고,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 사람들이 특히 많아서 지금도 뷰트 인구의 대다수를 아일랜드계가 차지한다고 합니다.
광산 표지
뷰트 시내 어디에서든 보이는 가장 높은 산 봉우리 가운데 서 있는 성모상은 어찌 생각하면 뷰트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뷰트 주민의 종교 성향이 가톨릭계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1886년부터 1974년까지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이었던 ‘The Con' 광산은 깊이가 5, 291피트 인데, 이 광산에서만 172명의 광부가 죽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키 큰 흔적만 남은 모습이 조금 서글펐습니다.
토마스는 골목골목 오르막 내리막이 심한 뷰트 시내를 곡예하듯 차를 운전해 다니며 소상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당시의 부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구리 광산왕의 샤또가 박물관이 되기도 하고, 어떤 맨션은 호텔이 되기도 했지만, 19세기 초의 문화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Sparky's Garage
지금은 폐업한 곳이 많지만 시내 곳곳엔 술집 간판과 사창가 건물까지 당시의 흥청거렸던 퇴폐의 흔적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Pissers Palace라는 웃기는 상호가 그 중 대표적이라며 토마스는 나를 그 앞에 세워 놓고 사진을 찍으며 재미있어 했습니다.
점심은 제일 좋다는 Sparky's Garage라는 식당에 갔습니다. 식당 안에 실제 자동차도 있고, 실물대 카우보이도 있어서 기대가 컸는데, 음식은 이하 생략입니다. 한국은 시골에 가면 갈수록 향토적이고 구수한 맛집들이 반드시 있습니다만, 미국 시골 식당의 음식은 맥도날드가 그 중 최고입니다.
어느 도시든 가면 그 도시의 모습이 읽혀집니다. 생동감 넘치는 도시에 가면 뭐든 잘 될 것 같은 희망에 넘치고, 죽어가는 인상의 도시에 가면 마음이 스산해지고 사는 게 애달파집니다. 뷰트는 후자였습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