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370) 허병렬: 다름의 뿌리는 하나
은총의 교실 (43) 비교의 철학
다름의 뿌리는 하나
Benetton By Oliviero Toscani – United Colors Of Benetton
‘비교’라는 말은 둘 이상의 사물을 서로 견주어 볼 때 사용된다. 비교하는 사물에는 구체적인 것과 추상적인 것이 있다. 구체적인 것이라면 사과와 복숭아 같은 실제 물건을 비교할 수 있고, 추상적인 것이라면 성취감·행복감 같은 실제가 없는 것을 비교할 수 있다.
둘 이상의 것을 비교해 보는 까닭은 우열이나 차이점을 찾는데 흔히 사용되는 방법이다. 그런데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비교한다는 것은 꼭 ‘하나’만이 아니고, 다른 여럿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다시 말하면 생각의 폭을 넓혀 준다. 생각의 폭을 넓힌다는 것은 알고 있는 ‘하나’를 좀 더 똑똑히 이해하는 방법이다.
우리들이 일상 용어에서 사용하는 비교격 조사(토씨)에는 ‘과’·‘와’·‘같이’·‘만큼’·‘보다’·‘처럼’ 따위가 있다. 한국말에서는 체언이나 용언의 명사형 뒤에 붙여서 사용하며 그것과 다른 것을 서로 견줌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비교’라는 말을 생각할 때 연상되는 말에 ‘비교 문학’이 있다. 즉 두 나라 이상의 문학을 비교하여 서로의 문학 양식·사상·조류·영향 관계 등을 과학적·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좀 더 생각을 넓히면 ‘비교 미술’ ‘비교 음악’ ‘비교 언어’ ‘비교 의상’ ‘비교 식생활’ ‘비교 예술’, 더 나아가서 이것들을 한데 묶은 ‘비교 문화’ 등으로 생각의 폭이 넓어진다.
경제의 세계화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한 나라 안에 갇혀있던 모든 것이 국경을 허물고 밖으로 뛰쳐 나가더니 각자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뜻에서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게 되었다. 이와 같은 활동은 결코 배타적일 수 없다. 상대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고, 서로 협력하려는 과정으로 해석되며, 결국은 자기 자신을 명확하게 알게 한다.
아득한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는 어떻게 동서양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을까. 각국의 전래동화를 예로 들더라도 이야기의 줄거리에 비슷한 것이 많다. 그것이 생활 양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각색되었더라도 줄거리의 흐름이 비슷하다.
또, 식생활을 보더라도 ‘국수’ ‘밀전병’ ‘만두’ 등이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며, 조금씩 같은 점도 매우 재미있는 현상이다. 국수가 자장면·스파게티·냉면으로 나타나고, 밀전병이 피자·빈대떡·카사디아로 나타나고, 만두가 편수·군만두·라비올리로 나타난다. 얼마나 재미있는 현상인가.
이번에는 세시기를 생각해 본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미국과 한국을 비교해 본다. 한국의 음력 8월 보름은 한가위인 추석이다. 이와 비슷한 것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이다. 풍성한 가을의 수확에 감사드리는 근본 정신은 동일하다. 다만 추수감사절이 신의 가호에 감사드리는 것과는 달리 추석에는 선조들에게 감사드리며 햅쌀로 빚은 송편과 햇과일 등을 조상께 바치고, 민속놀이를 즐기는 명절이다.
또, 10월 31일의 할로윈(Halloween)을 생각해 본다. 이 날은 어린이들이(아니 요즈음 어른들도 퍼레이드와 파티를 열며 즐기지만) 모두 꼬마 도깨비가 되어 여기 저기 다니며 내게 한 턱을 내라, 그렇지 않으면 골탕을 먹이겠다고 ‘Trick or Treat’을 외치며 캔디나 다른 먹거리를 조르는 날이다. 이 날은 죽은 영혼을 달래는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을 회상하게 된다. 바로 ‘부럼’ 받으러 다니던 기억이다. 음력 정월 보름날 까서 먹을 밤·잣·호두 따위를 그 전날 동네를 돌면서 모아오는 것이다. 대문을 두드리며 ‘부럼 주세요’라고 하던 생각이 난다. 그 한 해 동안에 부스럼을 앓지 말라고 하는 행사란다. 대개 각 가정에서 부럼을 장만하지만 어떻든 재미있는 추억이다.
세시기에 있는 기록은 세월과 더불어 없어진 것도 많고, 변질된 것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 성장기의 즐거운 추억 만들기의 좋은 자료가 된다. 다만 우리가 외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기존 문화와 가져온 한국문화의 어느 것에서도 주인 노릇을 못하는 폐단이 있다.
두 가지 다 남의 일로 생각한다면 어린이들에게 미안한 일이다. 될 수 있으면 두 가지 다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미국 세시기에도 관심을 가지고 어린이들과 함께 즐기면 좋겠다.문화는 지식이기 이전에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비교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생활권에 있는 것도 다행이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