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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이영주: 미줄라의 래틀스네이크 캐년
뉴욕 촌뜨기의 일기 (51) 몬태나 일기 마지막 회
미줄라의 래틀스네이크 캐년
글, 사진: 이영주
Missoula Rattlesnake Canyon in Missoula, MT
보즈맨 사람들은 몬태나에서 어느 도시가 젤 좋은가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미줄라(Missoula)를 말합니다. 도대체 어떤 도시이기에 이들이 그렇게 찬사를 헌정하는가 싶어 많이 궁금했습니다. 그런 궁금증을 글렌이 해결해주었습니다. 자동차로 1박2일의 여행 도우미로 나선 것입니다. 원래는 막내의 쌍둥이 아들인 글렌의 아들 토마스가 같이 가겠다고 하더니, 엄마인 글렌이 대타가 되었습니다.
글렌은 보즈맨에서 미줄라까지 3시간 넘는 길을 왕복 모두 논스톱으로 운전했습니다. 시속 85마일에서 87마일로. 비록 고속도로이긴 해도 몬태나의 고속도로는 꼬불꼬불 돌아가는 구간이 첩첩인데, 그런 구간에서도 그녀는 84마일을 유지해 옆의 사람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도 자기는 태평입니다. (쉿! 비밀을 하나 말하자면 그녀는 저보다 다섯 살 연하입니다.) 그래도 미줄라에 오면서 차 안에서 거의 한 시간 동안 잤습니다.
몬태나주 서부에 위치한 미줄라는 몬태나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입니다. 인구가 약 11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몬태나주 최대 명문이었던 ‘몬태나 대학교’가 있는 도시인데, 몇 년 전, 운동코치와 학생들의 스캔들이 터진 후 학생 수가 현저히 줄어들어 현재는 보즈맨의 몬태나 주립대 보다 학생 수가 적다고 합니다. (제 막내가 보즈맨 주립대 음악대학 정교수입니다.) 몬태나 주립대가 이공계가 강하다면 몬태나 대학교는 인문학 쪽에 집중돼 있습니다. 산에 등을 대고 지어진 대학 캠퍼스는 듣던 대로 캠퍼스가 무지무지 넓었습니다. 더구나 엄청 큰 산이 캠퍼스를 끌어안고 있으니 그 산의 정기만으로도 학생들에게 남다른 영감을 키워줄 것 같아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Missoula Rattlesnake Canyon in Missoula, MT
작고 귀여운 보즈맨에 비해 미줄라는 도로의 폭도 시원시원하게 넓었고, 훨씬 정리, 정돈이 잘돼보였습니다. 글렌은 보즈맨 사람들은 너나없이 “파타고니아 자켓만 입고 다니는데, 미줄라 여성들은 훨씬 패션이 다양하다”면서 부러워하는 눈치였습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보즈맨에서 패셔니스타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막내만 하더라도 하도 촌뜨기 같이 화장도 안 하고, 여름엔 맨날 반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나다녀서 “교수면 교수답게 옷을 품위 있게 입어라.”, 잔소리하며 뉴욕에 오기만 하면 쇼핑하러 끌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일, 이년 전부턴 자기도 뉴욕에 오면 달라졌다는 걸 느끼는지 제법 스타일리쉬하게 옷을 입기 시작해서 안심입니다. 하하.
점심은 시내 한 가운데 있는 꽤 규모가 큰 카페에서 먹었습니다. 분위기가 뉴욕 변두리 카페처럼 제법 멋을 낸 카페였고, 샌드위치 맛도 수준급이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나니 뜨거운 햇살도 견디기 힘들고, 걷기도 싫어서, 차로 패티 캐년(Pattee
Canyon) 과 래틀스네이크 캐년(Rattlesnake Canyon)을 둘러봤습니다. 하이킹은 나중에 하기로 했습니다. 패티 캐년은 키가 몇 십 미터나 되는 침엽수들이 꽉꽉 차 있었습니다. 숲 속에 가만히 서 있으면 소나무 비슷한 향내가 은은히 풍겨나는 게 참으로 고혹적이었습니다. 어느 산이고 오르다가 소나무 숲이 있어서 소나무 향내를 맡게 되면 마치 힐링 받는 것처럼 기분이 편안해지고, 저절로 마음이 나비처럼 가벼워집니다. 패티 캐년이 딱 그랬습니다. 잠시 숲을 둘러보기만 하는 데도 언젠가는 정식으로 트래킹 하면서 이 깊은 숲 속을 탐색해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억누르기가 힘들었습니다.
저녁은 실패였습니다. 아들 토마스가 ‘이자’라는 누들 플레이스가 좋다고 오기 전에 강력 추천해줬습니다. 저는 매운 우동을, 글렌은 불고기 덮밥을 주문했습니다. 불고기는 그런대로 비주얼이 괜찮아 보였으나 저의 매운 우동은 어찌나 맵던지 혀가 잘라지는 것처럼 매워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옆집인 ‘차오 맘보’라는 이탈리안 식당이 미줄라의 첫 손가락에 꼽히는 맛집이었습니다.
Missoula Rattlesnake Canyon in Missoula, MT
래틀스네이크 캐년은 정말 아름답다며 아들 토마스가 꼭 가야 한다고 당부한 곳입니다. 전날 두 캐년을 답사하며 래틀 스네이크 캐년을 선택한 것은 트레일을 따라 흐르는 개울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패티 캐년은 단지 숲이어서 더운 여름 날 트래킹 하기엔 너무 뜨겁고 건조합니다. 트래킹을 하면서 물소리를 들으면 몸의 에너지가 달라집니다. 조금씩 다른 물소리가 귀에선 아름다운 음악처럼 날아들어와 발걸음이 물소리 따라 리드미컬해집니다.
래틀스네이크 트레일에서 처음 발견한 것은 나무 가지마다 앉아있는 연두색 이끼였습니다. 보즈맨은 해발 5천 피트지만 미줄라는 3천 피트입니다. 그리고 도시 가운데에 강이 흘러서 보즈맨처럼 건조하지 않고 훨씬 습합니다. 에어콘 소리가 싫어서 밤에에어콘을 끄고 자려니 습한 공기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습니다.
Missoula Rattlesnake Canyon in Missoula, MT
래틀스네이크 트레일에선 승마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트레일 입구부터 걷는 내내 말똥이 자주 눈에 띄었습니다. 8월만 돼도 몬태나는 벌써 황금 벌판으로 변합니다. 산이고 벌판이고 황금빛으로 물들고, 들꽃들도 거의 다 지는 바람에 상심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아직 남은 몇 몇 들꽃들이 그나마 반가운 인사를 해주어서 기분이 업! 되었습니다. 대신 유난히 베리 종류들이 많았습니다. 보기만 해도 예쁜데, 먹을 수 있는 베리들이 아니라고 해서 실망이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미줄라에 와서 아름다운 계곡에서 하이킹을 해서 기분이 흡족했습니다. 트레일은 한없이 계속 되었지만 우리는 2.5마일 지점에서 돌아왔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보이는 미국 시니어 하이킹 그룹을 만나서 기뻤습니다. 그들이 계곡 바로 옆의 트레일까지 가르쳐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비를 갖추고 제대로 트래킹 하는 팀이었습니다. 오래 전, 파타고니아 트래킹 원정 갔을 때도 산 속에서 뉴욕 시니어 알파인 그룹을 만나 감동 받은 기억이 났습니다. 저도 사는 날까지 그들처럼 트래킹하며 살고 싶습니다. 미줄라에 다시 돌아와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Missoula Rattlesnake Canyon in Missoula, MT
이것으로 몬태나 일기를 끝내고 다음부턴 다른 얘기들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몬태나 이야기를 많이 쓰다 보니 마치 제가 몬태나 홍보대사라도 된 느낌입니다. 사실 몬태나 이야기를 이토록 지루하도록 많이 들려드리는 이유는 그곳의 생활이 제가 꿈꾸는 사람 냄새나는 생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들끼리 거리낌 없이 왕래하며 소금이나 설탕도 빌리러 가고, 마당에선 토마토며 오이, 고추, 브로콜리를 기르고, 닭을 키워 계란도 받아 먹고, 과일나무를 심어서 과일도 따먹고, 사냥해서 고기도 나눠 먹고 하는 게 도시에 사는 저에게는 무조건 부럽고, 멋있고, 위대해 보입니다. 그래서 몬태나 일기의 마무리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 제가 제일 좋아하는 프랑스의 자연 시인 ‘프랜시스 잠(Francis Jammes)’의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라는 시로 하겠습니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나무 항아리에 우유를 담는 일,
꼿꼿하고 살갗은 찌르는 밀 이삭들을 따는 일,
암소들을 신선한 오리나무들 옆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일,
숲의 자작나무들을 베는 일,
경쾌하게 흘러가는 시내 옆에서 버들가지를 꼬는 일,
어두운 벽난로와, 옴 오른 늙은 고양이와,
잠든 티티새와, 즐겁게 노는 어린아이들 옆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는 일,
한밤중 귀뚜라미들이 날카롭게 울 때
처지는 소리를 내며 베틀을 짜는 일,
빵을 만들고 포도주를 만드는 일,
정원에 양배추와 마늘의 씨앗을 뿌리는 일,
그리고 따뜻한 달걀들을 거두어들이는 일.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