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에 시간이 멈춘 마을, 샤르트르 올드 시티(Old City, Chartres)
2018 프랑스 여행 <3> 샤르트르: 올드 시티
그림 동화에서 튀어나온듯 샤르트르 마을의 매력
Old City, Chartres, France
첫 여행지는 주마간산으로 여러 곳을 밟으며 사진으로 담아두기에 바쁘다. 세계는 넓고, 가볼 곳은 많다.
언제나 여유로운 여행자가 될 수 있을까? 프렌치 고딕 건축의 백미 샤르트르 대성당(Chartres Cathedral)을 보러 자동차로 간 것과 하룻밤을 묵은 것은 잘한 일이었다. 자동차 덕에 샤르트르 '올드 시티(Old City)'를 구경했고, 1박 하면서 대성당의 환상적인 조명쇼를 즐길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프랑스 샴페인과 독일 모젤 와인 테이스팅을 빼고는 즉흥과 우연을 테마로 했다. 파리에서 당일치기로 인기있는 샹틸리 궁전(Chantilly Château)과 샤르트르 대성당은 파리에서 북과 남으로 떨어져 있다. 샹틸리 궁전을 구경한 후 파리를 지나 샤르트르로 가는데 2시간이 걸렸다. 당일 샤르트르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파리로 갈 계획을 세웠지만 호텔도 잡지 않았다. 잠보다 배가 고픈 저녁 샤르트르로 다가가니 대성당의 트윈타워 첨탑이 마치 예전의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처럼 반갑게 나타난다.
Old City, Chartres, France
밤 9시 경 옐프(yelp.com)로 성당 근처 식당 르 설리(Le Sull)y를 점찍어 두고, 아이폰의 구글 맵 내비게이션을 따라 식당 근처 주차할 곳을 찾기 시작했다. 중세 도시의 골목골목길은 주차불가였다. 겨우 샛강 옆 공원에 주차한 후 샤르트르 트윈타워를 따라 갔다.
졸졸 시냇물이 흐르는 돌다리를 건너는데, 가로등 아래 고요한 타운이 마치 영화 세트 속 중세고을에라도 들어간듯 고풍스러운 운치가 느껴졌다. 골목을 지나 계단을 수십개 올라서니 성당에 현란한 빛이 드리워졌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 요기를 하러 식당 설리를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다. 인근 빵집도 술집도 거의 다 깜깜했다. 월요일이라 영업을 하지 않거나, 밤 8시 지나면 닫는 것일까?
겨우 불빛이 보이는 레스토랑을 찾았다. 유일하게 문이 열린 브라써리 라넥세(Brasserie L'Annexe)는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은 하얀 식탁보가 있는 고급 식당, 브라써리는 술과 식사를 파는 캐주얼 식당, 비스트로(Bistro)는 아담한 식당이라고 한다. 라넥세는 술집이라서인지 늦게까지 영업 중이었다.
Old City, Chartres, France
웨이트레스가 영어 메뉴를 가져와서 달걀 샐러드(Salade Oeuf)를 주문했다. 주인공인 달걀(수란, poached egg) 외에도 마치 남은 재료 뒤처리하듯 햄과 치즈, 생버섯까지 들어갔다. 그릇도 샐러드 보울이 아니라 주철 냄비에 나왔다. 사연이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여행자에게는 영양만점의 샐러드.
프랑스어에 둘러 싸여 모든 것이 모기 소리가 증폭된 것처럼 웽웽웽~으로 들린다. 옆 자리의 프랑스 여성이 주먹만한 날쇠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여자친구와 대화 중이었다. 그녀의 육회요리(Beef Tartar/Tartate de Boeuf)에 침이 꿀꺽 넘어가고 있었다. 단백질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녀의 접시에 놓인 갖은 양념도 유혹했다. 뉴욕에서 21클럽과 리버카페의 육회를 먹어봤지만 사이드 양념까지 나오진 않았다.
Salade Oeuf and Tartate de Boeuf, Brasserie L'Annexe, Chartres, France
궁금해져서 나도 그녀를 따라서 주문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먹는 법을 물어보았더니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계란 노른자, 렐리쉬, 양파, 케이퍼, 우스터 소스까지 넣어 비벼먹는 것. 결국 비비고, 비볐는데, 위장은 단백질을 반가와했어도 혀는 탐탁치않았다. 한국의 배와 설탕이 들어간 시원달달하게 입에서 녹는 육회야말로 최고의 비프 타르타르. 게다가 프렌치 프라이는 눅눅했다. 뉴욕 셰이크 섁(Shake Shack)의 바삭한 쪼글쪼글 냉동감자 튀김이 단연 한수 위다.
10시가 가까운 시각 호텔투나잇과 부킹닷컴으로 잠만 잘 호텔을 검색해서 블랙베리로 아주 저렴한 에이스 호텔을 예약했다. "넓고 깨끗하다"는 리뷰가 끌렸는데, 외곽에 있는 호텔에 가보니 정말 파리의 호텔방들보다 2배는 컸다. 소박하지만, 깔끔한 편이었다. 그동안 프랑스와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근사한 호텔들에 묵었기에 샤르트르의 모텔급 에이스는 감내할 수 있었다. 벽 TV에는 프랑스의 프랭크 시나트라 '샤를르 아즈나부르(Charles Aznavour, 1924-2018)가 별세했다며, 카네기홀의 공연 모습을 방영하고 있었다. 뉴욕은 안녕하신지.
Old City, Chartres, France
Old City, Chartres, France
다음날 아침, 전날 밤의 그 자리 근처에 주차를 한 후 돌다리로 건너려니 중세에 세워졌다는 '기욤 문(Porte Guillaume)' 표지판이 들어왔다. 돌다리 아래로 흐르는 유레강을 따라서 베니스처럼 집들이 이어진다고 한다. 루이 14세가 유레강과 베르사이유 궁전(Château of Versailles)을 잇는 운하를 지으려던 계획은 무산되었다고. 대성당의 두 첨탑 아래로 옹기종기 모인 집들이 그림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영화의 세트처럼, 그림엽서처럼 이어졌다. 샤르트르의 올드 시티(Old City). 중세의 향기가 남아 감도는 마을이다.
올드시티를 거닐면 팀버(목재) 프레임(timber-framed house)가 종종 나타난다. 중세 건축 양식인 튜더(Tudor) 스타일 하우스로 뉴저지 프린스턴대학교 앞에도 한 채가 있다. 샤르트르에선 언덕길의 15세기 집(Maison a Colombage)과 샤르트르 관광 안내소 건물(Maison du Saumon)이 하이라이트.
Quiche at Bucherie Chacouterie, Chartres, France
허름한 빵집 'Boulangerie de la Porte Guillaume'에서 사과 저며 올린 것이 윤이 반지르하게 나고 있는 애플 타르트를 사갖고 나왔다. 커피 없이 골목길을 걸으며 먹는데, 입안에서 사르르르 녹는 것이 감동의 타르트였다. 딱 하나 밖에 없었기에 더 살 수도 없었던 애플 타르트. 몇 걸음을 더 가니 세련된 푸줏간(Bucherie Chacouterie)이 보였다. 맘씨 착하게 생긴 프랑스 청년이 음식도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그는 코르동 블루 출신일지도 모른다. 퀴셰(Quiche)와 파테(Pâté)를 샀다.
야채 퀴셰는 대성당 투어 끝난 후 차 안에서 먹는데, 부드럽게 호박, 피망, 양파 등 야채가 달걀, 크림과 어우러져서 품어내는 부드러운 화음이 절묘했다. 링컨센터 앞 다니엘 불루의 에피서리 블루(Épicerie Boulud), 브루클린 마케트 파티써리(Marquet Patisserie)보다 훨씬 맛있다. 아니, 눈물이 찔끔 나놀 정도로 감동적인 맛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셰프/오너가 직접 정성스럽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달걀의 맛일까? 가게에 닭 인테리어 소품이 여러개인 걸로 짐작하건데 셰프는 마치 닭을 숭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포르투갈 여행에선 국가대표 닭(Gallo de Barcelos) 소품을 곳곳에 진열되어 있었다.
여행 중 이름 모를 조그만 가게에서 산 음식에서 소울이 느껴질 때 나그네는 행복하다. 순대에 끼워주는 돼지간과 푸아그라를 섞은 파테는 아꼈다. 다음날 루브르뮤지엄 근처 튈르리 공원에서 피크닉하며 까마귀들과 함께 먹었다.
Old City, Chartres, France
말콤 밀러씨와 샤르트르 대성당을 투어한 후 고소 공포증으로 종탑에는 오르지 못했다. 성담 바닥 미로에도 관광객들이 많아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대성당의 뒷 마당에서 마을의 전경이 시원하게 들어왔다. 성당 옆에는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은 휴관 중이었다. 몇 가지를 남겨두면, 다음에 다시 샤르트르에 갈 때 더 여유로운 여행자로 올드시티를 거닐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