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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19.05.29 20:25
(418) 이수임: 우리 집 효자들
조회 수 591 댓글 0
창가의 선인장 (82) Mother's Day
우리 집 효자들
마더스 데이라고 아이들이 와서 함께 노닥거리느라 피곤했는지 지난 밤 푹 잤다.
"아이들이 식당에서 만나자는데?"
"난 무슨 날 밖에서 먹는 것 싫어. 북적거리는 곳에서 느긋하게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도 없잖아. 그냥 집으로 오라고 해요."
"엄마 뭐 필요한 것 있어요?"
"너 먼젓번에 한국에 갔다 오면서 사온 일회용 마스크팩 쓰지 않고 남았지? 가져와. 마침 그걸 사려고 하던 참이었어."
남편이 마더스 데이라고 꽃을 사러 꽃가게를 기웃거리겠지? 며칠 전부터 투명한 화병에 파 한 움큼의 반을 잘라 뿌리 부분을 담가놨다. 푸른 부분이 올라와 이미 잘라먹기도 했다. 나는 스테이크와 새우를 손질해 놓고 남편은 집안 청소를 한다고 소란을 피웠다. 아이들은 오븐 옆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나이스!", "스멜 굿!"하면서 연신 떠들었다.
모양내지 않고 편한 옷만 입는 작은 아이에게 잔소리 좀 했다.
"너 이렇게 낡고 색바랜 티셔츠 입고 데이트하냐? 옷 좀 제대로 입고 다녀야지. 여자들이 싫어하겠다."
"이런 옷 입어도 말로 웃기면, 예쁜 여자들이 좋아해요. 엄마, 여자는 예뻐야 해요. 강아지도 예뻐야 자꾸 생각나서 안아 주잖아요."
검은 프렌치 불독이 사랑스럽다고 가슴에 껴안고 자는 작은 놈이 말하는, 예쁘다는 기준이 헷갈리고 의심스럽다.
멋을 부리는 큰 아이에게 궁금해졌다.
"요즈음 만나는 여자 있니?"
"어제 온라인으로 블랙 여자 만났어요."
"먼젓번 홍콩 여자는?"
"지금 홍콩에 있어요. 6월에 오면 만날 거예요."
"골고루 만나봐라. 블랙이랑 아시안이 아이를 낳으면 예쁠 거야"
"블랙 여자들이 착해요."
남편이 끼어들었다.
"너 그 한국 재벌 집 딸은 어떻게 됐니?"
"재벌은 우리와 맞지 않아요. 피곤해요."
"그 하버드 나온 여자는?"
"부모들이 너무 딸 일에 간섭해서 밝고 행복해 보이질 않아 안 만나요."
"잘했다."
"너희들 온라인 데이트 프로필에 솔직하게 사실대로 올렸지?"
"그럼요!"
"만나는 여자들도 속이지 않고?"
"그런 일 없었어요."
참 편리한 세상이다. 예전 같으면 아이들 결혼시키려고 친인척들이 중매 선다고 야단법석이었는데. 알아서들 온라인으로 각 인종 여자들을 만나고 부담 없이 헤어지고들 하니 이 또한 효도가 아닌가.
나를 닮은 작은 아이와 나는 침대에 누워 속닥거렸다. 남편을 닮은 큰 아이와 아빠와 TV로 농구를 보며 응원하느라 떠들썩했다. 마더스 데이 선물과 꽃이 없어도 그저 건강하고 밝은 모습의 아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냥 즐겁다.
점심과 저녁까지 먹고 난 후 아이들이 가겠다고 일어났다. 농구를 좋아하는 큰 아이 그리고 암벽 등반에 열 올리는 작은 아이의 떡 벌어진 가슴을 두들기며 작별 인사를 했다. 아이는 자기 가슴에 묻힌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엄마, 점점 작아지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는 컸던 적이 있었던가? 아이들이 훌쩍 커버린 모양이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