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치아노 파바로티 다큐멘터리 파바로티 Pavarotti by Ron Howard ★★★
Pavarotti by Ron Howard ★★★
'클래식계의 왕' 루치오 파바로티의 오페라같은 삶
Pavarotti by Ron Howard
이제 전설로 남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1935-2007)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2001년 1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아이다(Aida)'에 이집트 장군 라마데스로 출연했다. 65세의 거구 파바로티는 숨을 거칠게 쉬면서 노래하고 있었다. 인터미션 때는 막 백악관을 조지 W. 부시에게 넘겨준 은발의 빌 클린턴 대통령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는 것을 목격했다. 잊혀지지 않는 밤이었다. '아이다' 이후로 파바로티의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다.
파바로티는 그즈음 프렌즈를 결성해 U2, 스팅 등 팝 뮤지션들과 자선 공연으로 오페라의 대중화에 기여했지만, 정작 오페라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34년 동거동락한 부인과 이혼한 후 세 딸보다 어린 34살 연하의 어씨스턴트와 밀애 중이었다. 2003년 그녀와 재혼해서 67세엔 낳은 쌍둥이 중 아들은 죽고, 딸만 살아남았다. 이탈리아의 모데나에선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세기의 테너 파바로티의 삶은 영광 만큼 오명도 따라왔다. 희비의 쌍곡선을 그려가다가 2007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버금가는 목소리를 만나지 못했다.
Pavarotti by Ron Howard
2019년 루치아노 파바로티 다큐멘터리 '파바로티(Pavarotti)'가 6월 4일 뉴욕에 개봉됐다. 감독은 놀랍게도 론 하워드(Ron Howard)다. '아폴로 13(Apollo 13)' '뷰티풀 마인드(Beautiful Mind)' '다빈치 코드(Da Vinci Code)'의 흥행 감독이 오페라 가수 다큐멘터리를 연출했다. 론 하워드에게 다큐멘터리가 처음은 아니다. 2013년 제이 지(Jay-Z)가 창단한 음악 축제 'Made in America', 2016년 비틀즈 다큐멘터리 'The Beatles: Eight Days a Week – The Touring Years'를 만든 바 있다. 아역 배우 출신 론 하워드는 픽션과 넌픽션을 오가며 균형을 잡는듯 하다.
Young Luciano Pavarotti
다큐멘터리는 '파바로티'의 성장 배경부터 오페라계의 수퍼스타로 우뚝 서기까지의 과정을 파바로티의 인터뷰와 자료 필름으로 보여준다. 그가 태어난 모데나는 경주용 자동차(Ferrari, Maserati)와 발사믹 식초로 유명한 지방이다. 교회 성가대의 테너였던 아버지는 빵집을 운영했고, 소년 루치아노는 아버지를 따라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파바로티는 축구 골키퍼가 꿈이었지만, 초등학교 교사가 됐다. 어머니는 파바로티를 큰 세계로 나가라고 부추겼다. 아버지처럼 빵집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파바로티는 오페라계로 입문하게 된다.
Pavarotti by Ron Howard
1963년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 '라 보엠'의 주연 테너가 병으로 출연을 취소하는 바람에 로돌프 역으로 무대에 오르며, 스타로 탄생하게 된다. 이어 1972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에서 '연대의 아가씨'의 토니오로 하이 C음이 9개나 나오는 아리아를 불러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기 시작했다.
론 하워드 감독은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Angela Gheorghui), 메트오페라 전 단장 조셉 볼프(Joseph Volpe), 록밴드 U2의 보컬리스트 보노(Bono), 콘서트 프로모터 등과의 인터뷰로 파바로티의 무대 뒤 비하인드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Pavarotti by Ron Howard
폭풍으로 재난을 맞은 런던 하이드파크에 내리는 빗 속에서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비롯한 청중이 우산을 거두고 그의 노래를 감상하는 모습, 신이 내린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공연할 때면 늘 '죽으러 나간다'고 되뇌이던 테너의 무대 공포증까지도 드러난다. 하지만, 파바로티는 낙관주의자였고, 빵집 아들답게 식성이 좋았다. 해외 공연 때는 음식이 담긴 러기지가 9개에 달했으며, 호텔방 안에 꼭 키친이 있어야 했으며, TV 인터뷰에선 매운 파스타를 요리하는 모습을 과시했다.
Pavarotti by Ron Howard
파바로티의 사생활은 첫 부인 아두아 베로니(Adua Veroni)와 그 사이의 세딸(로렌짜, 크리스티나, 줄리아나), 두번째 부인 니콜레타 만토바니(Nicoletta Mantovani), 그리고 그 두 여인 사이에 파바로티의 연인이었던 소프라노 마들린 르네(Madelyn Renee)의 육성를 통해 청년 파바로티, 아버지 파바로티, 전성기의 파바로티, 그리고 노년에 사랑을 다시 찾은 파바로티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관객은 그의 건장한 카리스마 속에 가려져 있던 여린 심성을 읽어낸다.
론 하워드 감독은 파바로티의 오페라 공연 장면을 삽입하면서 그의 픽션(오페라)와 넌픽션(생활)을 직조한다. '라보엠(La Boheme)'의 로돌포, '연대의 아가씨(La Fille Du Regiment)'의 토니오, '사랑의 묘약(L'elisir d'amore)'의 네모리노 '토스카(Tosca)'의 카바라도시, 그리고 '투란도트(Turandot)'의 칼라프 왕자 등의 아리아 부르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포착하며 오페라 속 인물과 무대 밖 파바로티의 삶을 오버랩한다.
Pavarotti by Ron Howard
다큐멘터리 '파바로티'는 전설의 테너가 부재한 오늘, 파바로티의 삶을 반추하면서 그의 열창을 감살할 수 있는 기회다. 유튜브로는 체험할 수 없는 영화관 시네마다. 하지만, 론 하워드 감독은 가족과 음악계 인물들을 인터뷰했지만, 그의 노래에 취한 청중의 다각적 반응은 들려주지 못했다. 파바로티의 노래가 보통 사람들에게 준 의미가 추가되었다면 더 입체적인 모습의 파바로티를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이다. 50여만명이 관람했던 1993년 전설적인 뉴욕 센트럴파크(Central Park) 콘서트가 빠진 것도 아쉬움이다.
Pavarotti by Ron Howard
파바로티는 오페라 공연이 아닌 솔로 콘서트에서 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흰 손수건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손수건은 그의 천둥같은 가창력, 빅 스마일과 함께 시그내쳐가 됐다. 영화가 끝난 후 느끼게 되는 것은 PBS 다큐멘터리로 볼만한 다큐같다는 인상이다. 그러고 보니 제작사가 TV 방송사인 CBS 필름이다. 하지만, 파바로티의 거구 속에 숨은 천진난만한 미소, 천둥같은 목소리와 떨림은 영화관 안에서만 느낄 수 있는 디테일이다. 맨해튼 플라자 호텔 옆 파리 시어터(Paris Theater)에서 관람하면, 더욱 운치 있을 것이다. 러닝타임 1시간 54분. https://www.pavarottifilm.com
Pavarotti
The Paris Theatre: 4 West 58th St. https://www.citycinemas.com/paris/showtimes-and-tickets/now-playing
Angelika Film Center: 18 West Houston St. https://www.angelikafilmcenter.com/n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