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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김호봉: 뉴욕 탈출, 뉴저지 정착
Memory <3> 이사 이야기
뉴욕 탈출, 뉴저지 정착
Hobong Kim, Stopped memory, oil painting, 2018, 36x18 inch
강건너 뉴저지 포트리로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한달 정도 치룬 후 몸이 천근만근, 진정 노동의 댓가를 몸소 느끼며 경험했던 때였다. 그후엔 이런 일을 다시 하기란 결코 쉽지않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둑 맞고 몇개월간 고민 후 우린 이사를 하기로 결심을 했다 그후부터 뉴저지의 또 다른 환경에서의 유학생활이 시작된다. 뉴저지로 이사하게된 것은 단지 뉴욕에서 가깝고 안전하다는 이유도 있지만, 또 한가지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교회를 중심으로한 한인 커뮤니티다.
교회와의 인연은 고작 어릴 적에 크리스마스 즈음에 가끔 간게 전부다. NYU를 다니면서 우연히 뮤직 테크날리지를 전공하고있는 한 유학생과 인연이 되었다. 그 학생도 나와 같은 나이여서 쉽사리 친구가 되었다. 알고보니 그 친구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작곡가로 활동을 하다가(작곡한 곡들중 꽤 한국가요로 유명한 곡들도 있는 친구다) 나처럼 늦게 유학의 길로 들어섰다. 전공은 다르지만 어쨌든 예술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우린 서로의 관심사를 얘기하다가 종교라는 주제에 다가갔다. 그 친구가 "교회 한번 같이 가볼래?"하며 제안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뉴저지 러더포드에 있는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우리가 맨하탄에 살면서니 차가 없었으므로 교회 다니기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교회 담임 목사님이 손수 차로 이스트빌리지까지 라이드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그분의 도움으로 길지는 않았지만, 교회에 다닐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와 그 또래 친구는 가끔씩 교외로 나갈수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또한 한식을 먹을 수 있는 큰 기쁨을 누렸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한인교회의 점심 제공
사실 언급하기 창피하지만 '불편한 진실'?로서 어쩔수없다. 그만큼 우리에겐 그 당시 형편으론 비싼 한식을 사먹을 여유가 없었다. 요즘이야 한식당들이 많이 생겨서 골라 먹을 수 있고, 그만큼 그때보단 바싸지않아 한식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지만. 아무튼 유학자금을 매달 받아 쪼개쓰는 우리에겐 비싼 한식은 어쩌다 한번 큰맘 먹고 사먹는 처지여서 교회의 점심 제공은 우리에겐 어떤 만찬보다도 소중한 것이였다.
뉴저지는 뉴욕과는 달리 안전하고 좀더 미국적인 뷰를 가지고 있고, 도둑을 처음 당해본 우리에겐 포근하고 안정감이 들었다. 이스트빌리지에서 강 건너 포트리로 이사를 하게된 이유다. 이스트빌리지의 아파트는 계약 기간이 남아서 사실 우리가 나가면 안되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서브렌트로 들어오겠다고하는 지인 덕분에 이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새로 이사온 그 지인은 다름아닌 마종일 작가다. 나보다도 좀더 일찍 뉴욕컬처비트에 컬럼을 써왔던. 물론 우리는 그때의 사건을 그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었고, 우리 마음은 이미 이사를 해버렸던 터라 마 작가는 우리에겐 고마운 분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뉴저지 포트리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알바할 때 나의 애마였던 자전거도 누군가가 가져갔다. 뉴저지에서는 도둑 걱정은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김호봉/화가, Artcomcenter 대표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주요 미술 공모전 등에서 여러차례 수상했다.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Studio Art를 전공하면서 비디오 아트에 매료되어 졸업후 수년간 비디오 작업을 하며 전시를 했다. 이후 뉴저지로 건너와 평면작업으로 이어져 수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와 개인스튜디오 아트컴센터(Artcomcenter)에서 성인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하고 있다. https://www.artcomcen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