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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 이수임: 착한 여자
창가의 선인장 (84) 천만다행
착한 여자
친구들과의 수다가 보통 날보다 길어졌다. 비가 카페 유리창을 치며 줄기차게 쏟아졌기 때문이다. 그칠 줄 모르고 퍼붓던 비가 잦아들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지 워싱턴 다리를 건너려고 카풀을 하자마자 경찰 사이렌이 뒤에서 울렸다. 경찰이 앞차로 가길래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웬걸 우리 차 쪽으로도 왔다. 드라이버즈 라이센스를 달라고 했다. 백미러로 보이는 착한 인상의 운전자는 난감한 표정이다. 뒷 좌석에 앉은 나는 어찌해야 할지 안절부절 좌불안석이다. 티켓값의 다문 얼마라도 물어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 책임을 분담하는 길만이 운전자를 위로하는 길이겠지? 한참 후에 경찰이 다시 왔다. 더욱 난감하다.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함께한 책임은 져야 한다. “이번은 봐준다. 조심해.”라고 경고만 줬다. 그에게 하루 일당이 살아나는 순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운전자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착한 그가 티켓을 받지 않아 다행이다.
나는 착한 사람과 단둘이 있는 것을 꺼린다. 같이 착해져야 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사람과의 만남도 힘들다. 어두침침한 터널 속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서너명이 만나는 것은 선호한다. 이야기를 돌아가며 분담할 수 있어 부담감이 없다. 게다가 각자의 다른 면을 엿 볼 수 있어 더욱더 흥겨워진다. 그중의 누군가는 알찬 정보를, 또 누군가의 유머와 지혜로운 이야기에 슬며시 빠져든다. 대꾸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말을 하면 창밖을 내다볼 수 있어 좋다. 만나자는 사람 다 만나서 쓰잘데 없고 하찮은 이야기 다 들어줄 만큼 내가 착하지 않아 참으로 다행이다.
특히 둘만의 만남을 더욱 피하고 싶은 사람은 종교와 정치 얘기를 하는 착하고 외곬인 사람이다. 요즈음은 여자들도 정치에 무척이나 관심이 많다. 고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지라는 둥 구원을 받아야지 않겠냐는 둥. 꾹 참고 있다가 끝맺음을 마무리하듯 젊잖게 꼭 꺼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 싶지만 혼자 남을 그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앉아 있기가 고역이다. 이래저래 피하던 지인들이 드디어는 내가 만남을 꺼린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요즈음은 소식이 뜸하다. 천만다행이다.
모임에서 한 여자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본인 주위 사람들 예를 한명씩 들어가며 길게 이야기한다. 이제 끝났구나 하면 또 다른 예를 꺼내며 이야기가 이어진다. “돈 내놔.” 했다. 자기 이야기에 도취돼서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수다는 이어진다. 돈을 받아도 듣기 싫은 이야기다. 물론 나도 내 수다로 상대방을 지루하게 할 때가 많다. 내 글을 읽어주는 독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읽어 준 사람에게 차라리 수고비를 지불하고라도 편해지고 싶은 욕구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음을 고백하고 싶다.
수다나 글을 멈추면 된다. 그러나, 알면서도 고장 난 수도꼭지에서 물이 새듯 줄줄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