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할리우드에서' ★★★☆
50년 전 스타, 스턴트맨과 타란티노의 백일몽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
스턴트맨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 A Love Letter to Stuntmen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퀜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1963- ) 감독의 영화 사랑은 어릴 적 영화광 아버지를 따라 다니면서 시작됐다. 고등학교 중퇴 후 포르노 극장의 수표원으로 일했고, 배우 수업도 받았다. 20대에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5년간 일하면서 걸어다니는 영화백과사전이 됐다. 그는 특히 쿵후와 홍콩영화의 열혈팬이었으며, 복수극을 사랑하는 폭력 탐미주의자이기도 하다. 타란티노는 1995년 '펄프 픽션(Pulp Fiction)'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돌아와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Oldboy)'에 심사위원대상을 수여한 것도 그의 취향을 반영한다.
브로드웨이 연극 'Wait Until Dark'에서 배우 퀜틴 타란티노.
1998년 뉴욕에서 퀜틴 타란티노를 만난 적이 있다. 타란티노는 당시 브로드웨이 연극 '어두워질 때까지(Wait Until Dark)'에서 스토커로 출연 중이었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도 있었다. 타란티노는 한국을 좋아했다. '펄프 픽션'이 세계 최초로 개봉된 나라가 한국이었고, 서울에 와서 보신탕(dog soup)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한때 스탠드업 코미디언 마가렛 조와 연인 사이였고, 뉴욕의 한식당 '도화(Dohwa)'의 투자자로 돼지갈비도 잘 먹는다고 들었다.
그달 마침 표지가 '재키 브라운(Jackie Brown)'이었던 잡지'Screenwriters'를 읽던 중이라 대사의 귀재인 그에게 '어떻게 하면 시나리오를 잘 쓸 수 있냐?'고 물었다. 타란티노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관찰하라. 시나리오 쓰는 것은 드로잉와도 같다"고 말해주었다. 폭력성이 난무한 영화를 만들어온 타란티노는 무척 부드럽고, 상냥했다.
촬영 현장에서 퀜틴 타란티노 감독
퀜틴 타란티노의 9번째 영화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Once upon a Time in Hollywood)'는 세르지오 레오네 (Sergio Leone)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서부극 장르도 함께 빌려왔다. 타란티노 감독은 5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옛날 옛적 할리우드 이야기를 들려준다.
1969년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이라는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 있었지만, 미국은 지난한 베트남 전쟁에 지쳐있었고, 히피 문화가 꽃피웠으며, 업스테이트 뉴욕에선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던 해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는 무시무시한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찰스 맨슨이라는 컬트 조직이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임신한 부인 샤론 테이트 등 5명을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이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하지만, 영화는 그들의 이웃에 사는 배우 릭 달튼(레오나르도 드 카프리오 분)과 그의 단짝인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의 버디 영화로 이끌어간다. TV 서부극 스타였지만 인기가 추락한 릭과 그의 운전수이자 친구인 클리프는 허구의 캐릭터지만, 주변인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 분), 로만 폴란스키 감독, 브루스 리(마이크 모), 스티브 맥퀸, 미셸 필립스(*'마마즈 앤 파파스' 싱어), 찰스 맨슨과 그 패밀리 등은 실존 인물들이다. '펄프 픽션'에서 시간을 뒤죽박죽 재배치하며 관습적인 서사구조를 해체했던 타란티노는 '원스 어폰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허구와 실재를 버무리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로의 명장면.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꿈의 공장' 할리우드는 사실 지루하기 짝이 없으며, 현실의 할리우드엔 악몽같은 일들이 도사리고 있다. 스타덤에 올랐던 배우(릭 달튼)는 알콜중독자에 악당 조연으로 전락해 우울증에 빠지며, 겨우 8살짜리 소녀 배우로부터 인생 교훈을 얻는다. 스턴트맨 클리프는 사실 릭보다 미남이며, 브루스 리(이소룡)까지 휘어잡다. 호러영화 '로즈마리의 베이비(Rosemary's Baby, 1968)'로 스타 감독이 된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 된 조연 전문 배우 샤론 테이트는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보러 가서 자아도취적인 시간에 빠져든다.
한인 2세 마이크 모(Mike Moh)가 이소룡으로 완벽하게 변신.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결국 타란티노 감독이 찰스 맨슨 일당의 살인극을 비튼 마지막 시퀀스에서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스턴트맨 클리프다. 물론 그의 애견도 쿵후 실력을 발휘했지만. 반면, TV 서부극의 영웅이었던 릭은 풀가에서 헤드폰 끼고 술마시면서 어떤 참극이 일어났는지 모른 채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풀장으로 뛰어든 맨슨 일당의 여자를 향해 화염 방사기를 들고, 화형식을 치른다. 그가 드라마 속에서 나치 일당을 향해 발사했던 것처럼.
샤론 테이트 역의 마고 로비.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서부극의 공식은 한 마을에 악당이 문제를 일으키자, 영웅이 나타나 해결한 후 떠난다는 것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악당은 찰스 맨슨 일당이요, 영웅은 스타 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아니라 무명의 스턴트맨 브래드 피트다. 스턴트맨은 그는 부상을 입고 앰뷸런스에 실려간다. 한편, 릭은 이웃집 저택의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 부부의 초대를 받고, 맨션으로 들어간다. 이들간의 우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퀜틴 타란티노 감독은 샤론 테이트를 살려두고, 릭 달튼의 집에서 찰스 맨슨의 살인극을 펼친다. 그리고, 릭 대신 스턴트맨이 찰스 맨슨 일당을 피가 낭자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복수한다. 스타의 그림자에 불과했던 스턴트맨을 영웅으로 부상시키지만, 혜택은 스타가 누리는 것을 시사하며 할리우드를 비꼬고 있다. 이 폭력의 시퀀스에 바닐라 퍼지의 사이키델릭 록 노래 "You Keep Me Hangin' On"가 도도하게 흐른다. 찰스 맨슨 일당이 환각제에 취해서 하는 살인극에 음악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감독이다.
'옛날 옛적 할리우드에서'는 타란티노 감독의 상상력으로 할리우드 배우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며, 샤론 테이트를 살려내려는 욕망이 절절하게 드러내는 그의 가장 개인적인 노스탈지어 영화다.
사실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스턴트맨(브래드 피트)이다. 그는 알콜 중독에 빠진 스타(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과대망상적이며 염세적인 캐릭터와는 달리, 낙천적인 성격에 불의에 맞서는 행동주의자다. 결국 찰스 맨슨 일당을 때려잡은 것은 스턴트맨이었고, 스타는 고요히 풀장에서 노닐다가 마지막 화염 방사기로 마무리한다. 누가 진짜 영웅인가? 이 영화는 퀜틴 타란티노가 할리우드에서도 스턴트맨에 보내는 러브 레터인 것이다.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by Quentin Tarantino
우리 시대 스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가 화면을 누비는 것은 눈요기 거리다. 알 파치노가 릭 달튼의 매니저로, 브루스 던이 찰스 맨슨 일당이 진을 치고 있는 목장주로 등장하며, 커트 러쎌, 마이클 매드슨, 릭 오웬 등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재미도 있다.
하지만,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속도가 느릿느릿하다. 타란티노의 비바체 리듬은 결혼과 함께 중년에 들어서면서 라르고로 느슨해진 것일까? 아니면, 1969년의 노스탤지어에 고착되었을까? 1960년대를 거친 미국인들에겐 빈티지 풍경을 하나하나 즐길 수 있겠지만, 이방인에게는 상영시간 161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브래드 피트에 따르면, 퀜틴 타란티노 감독은 이메일도 텍스트도 하지 않고, 음성 녹음으로 소통한다고. 촬영장에서 셀폰 사용을 금지한 것도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형 감독임을 입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