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MA 재개관 (4) 여성작가들의 재발견 Feminists/ Humanists
The New MoMA 재개관 <4> 여성작가들의 재발견
Feminists? Humanists?
Cady Noland, Tanya as Bandit, 1989 #206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4개월간의 확장 보수 공사를 마치고, 10월 21일 공식 재개관했다.
MoMA는 전시 공간을 30% 넓혔고, 갤러리를 24개가 늘어났다. 그리고, 여성작가들의 작품을 25%로 2001년 대비 5배 이상 증가했다. 새로워진 MoMA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1> 새 MoMA의 혁신적 변화: 더 넓고, 더 많이 The Bigger Space, The More Artworks
<2> MoMA 소장품 디스플레이: 주제와 변주 Themes & Variations
<3> MoMA 재개관 특별전: 여성, 흑인, 남미작가 오마쥬 Women, Black & Latin Artists
<4> New MoMA: 여성작가들의 재발견
<5> New MoMA: 흑인작가 전성시대
<6> New MoMA: 남미작가 뜬다
Mary Beth Edelson, Some Living American Women Artists(1972) #415
페미니스트 작가 메리 베스 에델슨(Mary Beth Edelson, 1933- )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토대로 예수와 12사도에 조지아 오키프, 알마 토마스, 요코 오노, 페이스 링골드, 리 크래스너, 헬렌 프랭켄탈러, 엘레인 드 쿠닝, 조안 미첼, 그레이스 하티간, 야요이 쿠사마, 아그네스 마틴, 마리솔, 앨리스 닐, 루이스 네벨슨, 루이스 부르주아, 주디 시카고, 리 본테쿠, 마리암 샤피로, 아그네스 데니스, 메리 베스 에델슨 등 여성작가들로 대치했다.
메리 베스 에델슨은 페미니스트이자 인권 운동가로 만난 적이 있다. 필자가 1996년 어학생으로 뉴욕에 왔을 때 급우들과 인턴/도우미로 에델슨의 스튜디오에서 하루 일했다. 그때 에델슨은 뉴욕의 여성작가들을 모아놓고 '게릴라 걸스'와 유사하게 뉴욕 미술관에 여성미술가들의 작품을 더 걸기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몇년 후 MoMA, 구겐하임, 휘트니를 상대로 성차별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필자와 이탈리아에서 온 영화감독 지망생, 일본에서 온 실험영화 작가 셋이서 화가였던 어학원 강사의 소개로 소호 머서 스트릿의 에델슨 스튜디오를 찾아갔다. 우리는 영어가 능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편물 정리와 카피일을 배당받았다. 주류 미술관의 백인 남녀 차별과는 또 다른 차원의 외국인 여성들에 대한 식민지주의와 차별을 실감하고 우리는 하루만에 그만 두었다.
Hilma af Klint, The Dove, No. 2, Series UW, Group IX (1915)/ Georgia O’Keeffe, Lake George, Coat and Red (1919) #505
지난해 구겐하임뮤지엄 회고전으로 널리 알려지게된 스웨덴의 모더니스트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가 미국 모더니스트 조지아 오키프와 나란히 걸렸다. 조지아 오키프(1887-1986)가 남편인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와 살던 업스테이트 뉴욕 애디론댁 공원의 레이크 조지 별장에서 그린 추상 풍경화다.
*추상회화의 선구자 힐마 아프 클린트 회고전@구겐하임뮤지엄, 2018
Paula Modersohn-Becker, Self-Portrait with Two Flowers in Her Raised Left Hand(1907) #504
독일 표현주의 화가 폴라 모더손-베커(1876-1907)의 자화상으로 오른손으로 딸 마틸드를 임신한 배를 잡고 왼손으로는 꽃 두송이를 들고 있다. 베커는 출산 후 합병증으로 이 그림을 완성한 후 31세에 사망했다. 모더손-베커는 시인이자 친구였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화가였던 남편 오토 모더손의 초상화를 비롯 700여점을 남겼다. MoMA는 2017년 독일, 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 노이에갈러리(Neue Galerie)와 이 회화를 공동으로 구입했다.
Gabriele Münter, Interior(1908)/ Vasily Kandinsky, Picture with an Archer(1909) #504
독일 표현주의 화가 가브리엘 뮌터(1877–1962)는 러시아 출신 미술학교 스승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를 만나 제자이며, 연인이자 예술적 동지로 청기사파(Der Blaue Reiter)에서 함께 활동했다. 유부남이었던 칸딘스키와 뮌터는 비밀스런 관계로 시작, 칸딘스키의 이혼 후엔 약혼에 이르렀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갔고, 다른 여인과 재혼하며 뮌터를 배신했다. 뮌터는 칸딘스키와 결별 후 은둔생활을 하며 작업을 하다가 생을 마쳤다.
Salvador Dali, Retrospective Bust of a Woman(1933)/ Frida Kahlo,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1940, back)/ Meret Oppenheim, Object(1936) #517
프리다 칼로(1907-1954)는 1939년 화가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하고, 머리를 자른 채 가위를 들고 남성 차림으로 앉아 있는 자화상(양성애 시사)을 그렸다. 그림 위엔 멕시코 가요 악보와 "이봐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건 당신의 머리카락을 좋아했기 때문. 이제 당신은 머리카락이 없고, 나는 당신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내용을 썼다. 독일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메레 오펜하임(1913-1985)은 어느날 파리의 한 카페에서 피카소와 사진작가 도라 마르와 만났다. 피카소는 오펜하임의 모피달린 팔찌를 보고 "모피는 무엇이든 덮을 수 있소."라고 말했고, 오펜하임은 "이 컵과 받침대도!"라고 응수한 후 "웨이터, 모피 조금만 더!"라고 주문했다. 여기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악명높은 초현실주의 작품이 'Object'다. 왼편의 여성의 신체를 물화한 살바도르 달리의 조각과 대조된다.
Florine Stettheimer, Family Portrait II(1933) #509
플로린 스테타이머(1871-1944)는 동료들과 함께 'Florine Stettheimer and Company' 갤러리에 소개되고 있다. 코닥필름 본사가 있던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태어나 아버지가 가정을 버린 후 엄마와 함께 뉴욕으로 이주했다.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한 후 유럽 여행에서 화가, 시인, 러시아 발레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화풍을 구축했다. 2017년 쥬이시뮤지엄에서 특별전 'Painting Poetry'가 열렸다.
*플로린 스테타이머: 시를 그리다@쥬이시뮤지엄, 2017
Lee Krasner, Gaea(1966)/ Grace Hartigan, Shinnecock Canal(1957) #405
Action Painting 2 갤러리(#405)에는 남편 잭슨 폴락에 가려졌던 리 크래스너(1908-1984)와 로버트 마더웰의 부인이었던 헬렘 프랭켄탈러, 그리고 조안 미첼, 그레이스 하티간, 그리고 헤다 스턴까지 여성작가들이 대거 등장했다. 뉴저지 뉴왁 출신의 그레이스 하티간(1922-2008)은 뉴욕스쿨에 소속되어 폴락, 드쿠닝 부부, 프랭켄탈러와 어울렸다.
*메트뮤지엄 서사적 추상화전 <13> 리 크래스너(Lee Krasner)
Willem de Kooning, Woman I(1950-52)/ Hedda Sterne, New York, VIII(1954) #403
루마니아 출신 화가 헤다 스턴은 마초들이 장악했던 추상표현주의의 메카 뉴욕스쿨 화가들과 어울렸다.
1950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오늘 미국 회화(American Painting Today)' 특별전의 보수적인 심사위원단에 반대해 메트 관장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 서명한 28인(화가 18인, 조각가 10인) 작가 중 한명이 된다. 이 화가들은 언론에 의해 '분노한 18인(Irascible 18)'으로 불리웠으며, 라이프(LIFE)지는 이중 잭슨 폴락, 윌렘 드쿠닝, 클리포드 스틸, 로버트 마더웰, 마크 로스코, 바넷 뉴만, 애드 라인하르트, 아돌프 고트립 등 15인의 사진을 실었고, 그중 유일한 여장부가 헤다 스턴이었다.
*메트뮤지엄 서사적 추상화전 여성작가들 <1> 헤다 스턴(Hedda Sterne)
Marisol, Love(1962)/ Jasper Johns, Flag(1954) #408
파리의 베네수엘라계 가정에서 태어나 11살 때 엄마의 자살로 뉴욕에 이주한 마리솔(본명 Marisol Escobar, 1930-2016)은 파리(에콜드보자르)와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 뉴스쿨)에서 공부한 후 팝아티스트로 활동했다. 동갑나기 재스퍼 존스(1930- )는 국기, 타겟, 숫자, 글자 등으로 팝아트 작업을 했다.
Yayoi Kusama, Accumulation No. 1(1962) #412
야요이 쿠사마(1929- )는 1958년 조지아 오키프의 후원으로 뉴욕에 왔다. 그의 나이 29세. 아시안 여성이 작가로 설 자리는 좁았다. 아웃사이더로 팝아트, 미니멀리즘, 퍼포먼스, 페미니즘을 흡수하고, 1973년 일본으로 귀국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0년대부터 호박, 점박이, 무한대 거울 시리즈 등으로 글로벌 인기 작가가 됐다. 이제 야요이 쿠사마는 수퍼스타 아티스트로 앤디 워홀과 클라에스 올덴버그 등 남성 팝 아티스트들의 작품들 한가운데에 설치됐다.
Vija Celmins, Bikini(1968) and Sigmar Polke, Flying Saucer(1966) #412
라트비아 출신 미국의 포토리얼리스트 비야 셀민스(1938- )의 작품이 독일 작가 시그마 폴케(1941-2010)의 작품과 나란히 걸렸다.
Joan Jonas, Mirage, 1976. #418
뉴욕에서 태어난 조안 조나스(1936- )는 모스턴미술관 스쿨에서 조각과 드로잉,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조각을 전공했다.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을 사사했고, 안무가 이본느 라이너와도 함께 작업했다. 1960년대부터 조각으로 이름을 알려오다가 1968년부터 퍼포먼스와 거울, 비디오 아트를 혼합한 작업을 했다. MoMA 재개관으로 자기만의 갤러리(#418)를 갖게된 조나스는 1976년 맨해튼 다운타운의 실험영화 상영관 안솔로지 필름 아카이브(Anthology Film Archives)에서 해온 영화, 비디오, 드로잉, 소도구, 제의식을 혼합한 퍼포먼스 작품 'Mirage'를 전시하고 있다. 휘트니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재즈 뮤지션 제이슨 모란(Jason Moran) 특별전에도 조안 조나스가 소개된다.
Sheela Gowda, Of All People(2011) #212
인도 출신 쉴라 가우다(Sheela Gowda, 1957- )는 나무문, 셔터, 문틀, 창문, 기둥, 테이블 등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Christopher Wool, Untitled(2007, left)/ Laura Owens, Untitled(2013) #214
2018년 휘트니뮤지엄에서 회고전을 연 로라 오웬스(1970- )가 크리스토퍼 울(1955- ) 옆에 걸려있다. 로라 오웬스는 1960-70년대 신문에 난 섹스 광고를 캔버스로 옮겨왔고, 크리스토퍼 울은 그래피티에서 영감을 받은 스타일을 캔버스에 구현했다. 1998년 LA현대미술관, 2014년 구겐하임뮤지엄과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에서 회고전을 열었다.
Yoko Ono, Peace is Power, 2019, Vinyl wallpaper and fabric
오노 요코(Yoko Ono, 1933- )는 1969년 남편 존 레논과 함께 베트남전에 대한 반발로 'War is Over!(If you want it)'이라는 컨셉트로 작업했었다. 2000년대 초엔 빌보드, 광고, 포스터, 트윗으로 'Imagine Peace'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MoMA 재개관전에서는 'PEACE is POWER'를 타이틀로 벽과 천장을 푸른 하늘색으로 도배하고, 창문엔 한국어를 포함 세계 24개의 언어로 '평화는 힘이다'를 부착했다. 그리고, 자신의 손글씨로 'yes, yes, yes'라 새겨진 천으로 싼 의자를 배치했다.
MoMA Museum of Modern Art
11 West 53 St.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폐관.
티켓: $25(성인), 노인(65세 이상, $18), 학생(풀타임, $14), 16세 이하, 회원(무료)/ *유니클로 금요일 무료(Uniqlo Free Fridays, 금요일 오후 5시 30분-9시, 54스트릿 입구) https://www.mom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