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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8) 김호봉: 목수 아저씨께
Memory <7> New House
목수 아저씨께
Hobong Kim, My town River Ridge, Oil painting, 2005
이젠 나 스스로 이 칼럼을 연재한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쓰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즐겁게 써야겠지. 이것이 스트레스가 되는건 나의 처음 컬럼을 쓰겠다는 의도와는다르니 다시 마음가짐을 초심으로 돌아가자. 이번에 십수년 동안 암과 투쟁하셨던 어머니를 하늘로 주님께 보내드리고 온 뒤의 컬럼이라 쉽게 손이 잡히질 않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이젠 다가오는 삶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누구든 죽음 앞에서는 모두 나약한 존재이니 말이다.
다시 나의 새집 이야기다. 정확히 2003년 1월 초에 입주를 하기위해서는 한달 전부터 그집을 손봐야될 곳들이 좀 있어서 지인에게 소개받은 목수분에게 대부분의 것들을 부탁하였다. 그분은 오랜 세월을 이런 일에 종사하신 분이라 한눈에 봐도 베테랑이란느낌을 받았다. 적당히 마른 체구에 잔주름이 많아 6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일은 야무지게 하시는 것같아 만족스러웠다. 이분이라면 마음을 놓아도될듯한 신뢰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얼마간은 열심으로 해주시는듯 하였는데 어느날 모습을 감추었다. 전화 연락을 해도 통화가 되지않고, 메세지를 남겨도 영소식이 없다.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전화 연락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실망했다. 그러면서 일주일이 지나버렸다. 공사를 다 마치기로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오고, 당시 살고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야할 시기가 다가오니 우리 부부는 안절부절 목이 타고 있었다. 어찌 이럴수가 있나 실망과 화가 치밀어올라 당장이라도 고소라도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니...
하지만, 이곳 상황상 계약을 구두로 하였고 별다른 계약서도 없고 해서 딱히 우리로선 이런 상황에 대처할만한 처지도 안되있는지라 더더욱 화가 났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남의 전화번호로 다시 그 목수분애게 전화를 시도했더니 그제서야 받는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내가 누군지 밝히고 그분의 아내되는듯한 분에게 바꿔달라고 했다. "미안하다"고, "그동안 사정이 있었다"고 한다. 변명도 되지도 않은 아주 궁색한 변명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대체로 한인들을 상대로하는 목수들이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시작하고, 중간에 새로 일이잡히면 그곳으로 가서 일을 또 시작함과 동시에 그전에 하고있던 일은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동시다발로 일 건수를 잡아 돌아가면서 하니 몸이 몇개도 아니고... 어찌 여러집을 일을 한번에 다 하겠는가? 기가 막히다.
아무리 돈벌이가 중요하지만, 이런 식으로 피해를 보는 우리같은 사람들의 사정은 아랑곳 하지않아 보이니 얼마나 황당한가. 다들 이런 식으로 당한 분들이 적잖케 많았으니, 그중에 한집이 우리집이었다 하하! 화는 차밀어 오르지만 어쩌겠는가? 그가 또 감춰버리면 우리만 손해인데. 그래서 살살 분위기 맞춰주면서 우여곡절 끝에 스리와 페인트를 다 끝마치게되었다. 우린 이일로 한 일년은 늙어버린 기분이다 . 이러니 집을 새로 짓는 분들의 심정은 어쩌겠는지 짐작이간다. 이 일로 인해 또 이 건축 공사쪽 사람들을 통해 우린 그들의 생리를 간파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마음 먹으면서.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이런 일들을 하시는 분들이 영세해서 미리 선금으로 공사비의 반을 달라고하는 것이 관례다. 이래서 선금이 아까워 나중에는 할 수 없이 끌려다니기가 십상인 것이다. 계약서 상에 반드시 피해를 보기 전에 상세하게 언제까지 끝내주도록 날짜를 명기하고, 선금은 가능한한 적게 몇번에 걸처서 내게끔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절대 미리 다 완불하는 것은 위험천만의 일이니 이곳에 살고계신 대부분의 분들은 알고 계실 것이다. 당해본 사람이 아마 더많이 있을것이기에.
실례로 내가 아는 동생이 일 잘하는 목수분을 나에게 소개해달라고 한적이있다. 그래서 어느 한분이 떠올라 그분을 소개해주면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절대 선금을 많이주지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 그 목수분이 본인은 돈이 없어 자재를 사야하니 먼저 선금을 많이 달라고해서, 사정이 딱하기도 하고 해서 주었다고했다. 결국 그분은 며칠 일하다가 자취를 감추었고, 공사는 한달 이상을 끌었다. 일주일 정도면 충분한 것을 말이다.
그동안 다른 곳에가서 또 새 일을 시작하는 것, 아니면 그전에 공사하다가 이 동생 일을 새로 맡아 하다가 그곳으로부터 컴플레인을 들어 분명 그곳으로 갔거나 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 동생은 변호사와 같이 고소 준비를 하며 그 목수분의 전화를 걸어 고소장을 접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단다. 그랬더니 그제서야 다시 돌아와서 일을 마무리했다.
동포들을 상대로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일들의 행태는 이제 사라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누군가가 이런 상황에 분명 처해서 피해보는 분이 있을 것이다. 제발 그러지 마시길 진정 부탁드리고 싶다.
김호봉/화가, Artcomcenter 대표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 서양화과와 동 대학원 졸업 후 주요 미술 공모전 등에서 여러차례 수상했다. 뉴욕대학 대학원에서 Studio Art를 전공하면서 비디오 아트에 매료되어 졸업후 수년간 비디오 작업을 하며 전시를 했다. 이후 뉴저지로 건너와 평면작업으로 이어져 수차례 개인전과 단체전을 가졌으며 현재는 코리안 커뮤니티센터와 개인스튜디오 아트컴센터(Artcomcenter)에서 성인들과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하고 있다. https://www.artcomcent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