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0.01.12 19:09

(454) 이수임: 자린고비 여행자

조회 수 480 댓글 0

창가의 선인장 (90) '시월드' 카운트다운

자린고비 여행자


자린고비의 고백.jpg


아이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을 기회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아이들이 결혼하면 그들 와이프에게 미련없이 자리를 내주고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남편과 둘이 다닐 때보다 비용이 엄청 많이 든다. 비용은 전부 우리가 부담하니까.


일단 나는 여행지에서 호텔 위치에 중점을 둔다. 걸어서 구경하다가 피곤하면 호텔로 돌아와 쉰 후 다시 나가 걸을 수 있다. 또한,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곳을 선호한다. 그리고, 청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밥맛이 떨어지고 신경 쓰여서 지친다. 쇼핑은 전혀 하지 않지만, 나 때문에 호텔 비용이 많이 나간다.


남편은 후지고 깨끗한 것은 눈에 들어 오지 않고, 오직 좋은 식당에서 먹기를 원한다. 고기를 먹지 못하기 때문에 해산물 위주로 주문한다. 식사 중에 서너 잔의 맥주를 마시거나 와인 한병을 주문한다. 나는 배가 약간 고파야 속이 편하고, 몸이 가벼워서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런데, 아이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인지 식당에서 꼭 애피타이저와 메인 디쉬를 주문하고, 점심에는 주스, 저녁에는 알코올 한잔 정도를 시킨다. 골고루 맛보고 싶다면서 우리 것까지 애피타이저를 서너 개를 시키기도 한다. 호텔로 오는 길에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주류 외에 우리 부부가 대부분 건너뛰는 것들에 비용이 많이 나간다.


아이와 남편은 걷다가 피곤하면 우버를 타고, 기차도 일등석만 타려고 한다. 그러지 말라고 말도 못하고 속으로 부글거리면서 점잖게 참는 내 속을 그 누가 알랴!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도시 내에 고색창연한 옛 공동묘지를 방문할 때면 죽으면 이렇게 땅으로 돌아가는데 가져갈 것도 아니고 그래 ‘쓰자. 써.’ 하며 다짐하고 마음을 푼다. 여행지에서 돈 때문에 아이와 남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다 해주자고 마음 먹었다가도 다시 깜박 갔다가 돌아오고를 반복한다. 나는 가끔은 공동묘지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정신이 번쩍 들어 제자리를 찾는 체질로 굳어졌나 보다.


남편은 "그동안 아끼며 살다 보니 쓰는 것에 습관이 되지 않아서"라며 "써버릇해야 한다"며 옆에서 부추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행히 아이들과 우리 부부는 문화적, 예술적인 면은 아주 잘 통해서 서로 보고 싶고, 가고 싶은 곳은 같다.


당장이라도 우리애들이 결혼한다면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여행비용을 댄다고 할지라도 어느 며느리가 함께 시부모와 여행하고 싶어 할까? '시월드'(시댁, 시집살이)에 들어올 며느리와 여행한다는 상상만 해도 피곤하다. 특히 새로운 도시의 속살을 후벼파듯 뒷골목 누비기를 좋아하는 우리와는 달리 오직 쇼핑에만 환장하는 며느리라면.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