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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 이수임: 병 주고, 약 주고
창가의 선인장 (91) 병원이라는 이름의 지옥
병 주고, 약 주고
건강 검진을 했다. 의사는 혈액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변검사에서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소량의 피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다시 검사했다. 또다시 발견됐다. 걱정할 일은 아니라며 스페셜 닥터에게 보내졌다.
CT 스캔으로 신장 검사와 또 다른 검사를 해야 한다며 수시로 불려갔다. 짜증이 밀려왔다. 구글에 검색해 본 결론은 검사를 애쓰고 한 후 결국엔 별일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질 것이 뻔했다. 그래서 남은 예약을 취소하려고 했다.
"엄마, 요즘 바빠요?"
전화 건 큰 아이에게 검사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들이 의사 친구에게 알아보더니, 검사를 다 받으란다. 귀찮아서 싫다니까 "엄마는 왜 말을 안 듣냐"며 어릴 때 내가 아이를 야단치듯 했다.
CT 스캔하기 전에 맞는 조영제(Contrast agent) 알레르기(*부작용으로는 가려움증, 두드러기, 얼굴 부종, 호흡곤란, 경련 등이 있다)가 있냐고 간호사가 물었다. 난 맞아본 적이 없어 모른다고 했다. 사인하란다. 주사를 맞고 스캔 도중에 귀와 목이 근질거렸다. 갑자기 의사를 불러야 한다며 나갔다. 또, 다른 간호사와 의사가 왔다. 오른쪽 목젖이 조이는 듯했다. 의사가 이것저것 묻고 간호사 한명은 아예 내 옆에 붙어 계속 혈압을 쟀다. 혈압은 점점 올랐고 목도 점점 조여졌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목젖에 걸쇠가 채워지는 듯 숨이 막히고 침 삼키기도 힘들어졌다. 또 다른 의사가 왔고 베나드릴(*알레르기 치료제) 주사를 놓았다. 보호자를 부른다고 난리더니 나를 침대에 눕혔다. 응급실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죽음이 이렇게 다가오는구나! 죽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느낌이 들며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바둥거리며 살다가 아파서 병원을 들락거리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세상사 골칫거리들에 시달리지 않고? 나 자신을 포기했다.
혼자 있다가 목이 막혔다면 불안했을 텐데 깨끗한 하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이목구비가 반듯한 아시안 의사와 인도 의사, 그리고 나이 든 간호사가 계속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인지 마음이 편했다. 그들이 나를 죽이던지 살리던지 알아서 하겠지. 천정을 쳐다보고 누워있다가 잠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간호사가 물을 마시라며 흔드는 순간 목젖을 막은 걸쇠가 살짝 풀린 듯했다.
조영제 부작용과 긴장이 겹쳤던 것이리라. 이놈의 긴장이 항상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검사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내 그럴 줄 알면서도.
하얀 시트에 누워 차라리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했던 순간이 문득문득 떠오르는 까닭은 왜일까? 산다는 것은 몹시도 피곤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