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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곽애리의 푸에르토리코 올드 산후안 여행

호아킨 피닉스 고향 올드 산후안과 국민음식 모퐁고(Mofo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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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위에 올려놓고 천천히 굴려보는 강(River), 비(Rain), 여름(Summer)...

풀벌레 소리, 빗소리, 파도소리, 눈의 창으로 펼쳐지는 야자수, 선착장, 푸에르토리코 섬! 오스카 시상식의 여운이 남아서인가 '조커(Joker)'로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호아킨 피닉스의 고향, 푸에르토리코 수도인 올드 산후안 방문에 가슴 설렌다. 부모가 미국인 사회운동가들이자 히피로 자식의 이름을 리버, 레인, 섬머, 리버티, 호아킨으로 지었다. 호아킨의 형이 '스탠드 바이 미' '허공에의 질주' '아이다호' 등에 출연했던 배우 리버 피닉스(1970-199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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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후안의 명소 카스티요 산크리스토발(Castillo San Cristóbal), 엘 모로(El Morro) 요새를 방문하였다. 유럽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거대한 돌로 쌓았던 높은 성벽의 요새 안에는 대포가 비치된 여러 초소들이 미로의 길 따라 숨겨져 있었고, 그 시대의 배경이 지도로, 사진으로 잘 전시되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오랜 세월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을 병사들의 허름한 침대와 밥그릇 숟가락이 전시된 내무반 유적지 앞에서니 역사라는 오랜 세월의 시간 속에 묻어간 모든 것이 덧없고, 해변 앞의 올망졸망한 공동묘지 석탑조차도 그림같이 보이는 압도적이게 아름다운 풍경 앞에 그저 시간 속에 묻혀가는 찰라만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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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 해안에 우뚝 솟은 유명한 가리타 델 디아블로(Garita del Diablo, 악마의 초소)는 혹독한 지나간 전쟁의 세월이 무색 하리 만치 아름다움으로 만 남은 유적지, 돌탑의 작은 창(窓)으로 넘실대며 흰 거품을 토해내며 절벽에 부딪쳤다 사라지는 철썩이는 파도가 온몸으로 절규하며 일상의 평화, 모멘토 모리하고 내 귓전에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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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를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해변에 정박한 컬러풀한 조각배들, 스패니쉬 스타일 하우스 담장에 핀 장미꽃, 빵을 들고 걸어가는 여자, 조깅하는 남자, 술에 취한 노인, 지구의 어느 끝에 가던지 아무것도 아닌 듯 최상(?)의 경건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일상을 보며 '아! 어린 호아킨 피닉스도 분명 이곳을 거닐며 바람에 파도에 자기의 예술 혼을 키우지 않았을까' 뜬금없는 생각도 해보며, 나는 나의 삶에 배경이 되어 흘러가는 모든 것을 와인 잔에 담아 푸에르토리코 하늘을 향해 높이 들었다. 모든 찰라의 꽃, 삶의 경이로움, 아름다운 도시, 건배!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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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 그 지방에 사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행운이요, 안도요, 위안이다. 친구 알린(Arlene)과 로버트(Robert)와 함께 노랑, 빨강, 터코이스 색색의 집들을 지나 레스토랑을 향해 걷다보니 컬러풀하고 약간은 반항적이고 갱스터적인 느낌의 스트릿 아트가 눈을 끈다. 푸에르토리코의 역사를 테마로 그린 그래피티 아트를 감상하는 것은 여행자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길을 따라 푸른 물감으로 칠해놓은 캔바스 같은 하늘을 머리에 이고 어깨를 활짝 펴고, 눈을 크게 뜨고, 바람 향에 코를 벌름 거리며, 보랏빛 울트라마린 조약돌의 감각을 발에 물씬 느끼며 거리를 걷다보니 산후안은 그 자체가 예술품인 듯하다.  

 

본토박이 음식을 체험하고 싶다는 나를 데리고 간 곳은 엘 지바리토(El Jibarito) 레스토랑. 다른 식당은 빈자리가 많은데 이곳은 35분을 기다려야 한다니 제대로 온 맛집인가? 본토박이들을 믿어 보자라는 심산, 이름과 전화번호를 건네주고 주변의 옷 가게와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린다. 어디에서나 퍼져 나오는 라틴 음악, 웃통을 벗어던진 근육질 남자가 멜랑게를 추니 그 앞에 웃고 있는 여자의 웃음이 하늘을 나른다. 기후와 토양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낙천적 기질의 사람들, 그래! 잠시 가는 인생인데.... 뭐 그리 심각하게... 순간을 즐기는 그들의 천성이 은근히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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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려 앉은 식당, 주문한 음식이 나온 접시, 컵, 포크, 나이프 등은 아주 소박하였다. 그제야 외향 보다는 맛을 위주로 한 맛집임을 더욱 실감! 푸에르토리코 방문하면 반드시 먹어봐야할 모퐁고(Mofongo, *바나나 종류인 플랜테인을 튀긴 후 올리브 오일, 마늘, 돼지고기를 섞어 으깬 음식)는 너무  질지도, 너무 드라이 하지도 않게 만드는 것이 조리 비법이라는 귀뜸. 올드 산후안에서 이 집의 모퐁고가 최고라는 알린과 로버트의 말에 전적 의지, 그들의 말이 맞았다. 결국, 식사가 끝나기 전  3개의 모퐁고를 더 주문하였으니…누가 그랬나! "음식은 혼이고, 기억의 반은 맛"이라고.. 


레드 와인과 과일 즙이 섞어 만들어내는 붉은 상그리아(Sangria), 독하지도 순하지도 않게 적당히 첨가된 와인의 농도와 같이 우리의 대화는 서로의 삶을 보듬어주며 무르익었고, 우리의 웃음은 과일의 향이 되어 식탁에 피어올랐다. 생명, 활력, 열정, 정력! 붉은 피를 지닌 푸에르토리코 친구들과 상그리아를 들고 건배! 푸에르토리코에서의 아쉽도록 짧은 여행, 떨어지는 모래시계에 태양에 이글거린다.     



100.jpg 곽애리/시인·수필가

강원도 평창에서 태어나 1985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2012년 한국수필로 등단, 같은 해 경희 해외동포문학작품 공모전 우수상 수상, 2017년 문학청춘에 '나야' 등 3편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뉴욕 라디오코리아 '장미선의 여성살롱'에서 '스쿱(SCOOP)' 코너를 진행했으며, 여성중앙, 국방일보, 뉴욕 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메리 올리버(Mary Oliver)의 시 "Wild Geese"에 진영우씨가 작곡한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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