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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한류 33 코드 #9 눈치의 달인들, Homo Nunchius Korean
수다만리 (38) 호모 눈치우스 코리안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9 눈치의 달인, Homo Nunchius Korean
2020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감동의 무대로 만든 것은 봉준호 감독의 '눈치'와 '재치'였다. 영화 '기생충'에서 김씨네 가족은 빠른 눈치와 거짓말로 박사장네 집에 전원 취업하게 된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눈치 빠른 것이다. 눈치는 한국인들의 육감, 수퍼파워로 불리운다. 이제 한국인을 '호모 눈치우스(Homo Nunchius)'라 불러도 좋으리.
한인 2세 유니 홍(Euny Hong, 홍은이)은 '눈치의 힘: 한국인들의 행복과 성공으로 이끄는 비밀(The Power of Nunchi: 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 펭귄)'에서 눈치는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인들의 초능력(superpower)이며,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단어일 것"이라고 밝혔다.
황경식 시인은 '삼(3)치를 부탁해'를 강조한다. 삼치는 염치(廉恥, 순결한 삶을 위한 부끄러움), 재치(才致, 지적인 능력), 그리고 눈치다. 황 시인은 이중 상대의 기분이나 의도에 맞춰 자신의 언행을 조절하며, 공감하는 능력으로서의 눈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소한 눈치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으며,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펴봐주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오스카상 시상식: 봉준호 감독의 눈치와 재치
*Bong Joon Ho Accepts the Oscar for Directing <YouTube>
올 2월 9일 LA 할리우드 돌비시어터에서 열린 제 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외국어 영화사상 최초의 작품상을 휩쓴 한국 영화의 쾌거로만 기억될만한 시간은 아니었다. 봉준호(Bong Joon Ho, 50) 감독과 '기생충(Parasite)'의 4관왕 석권은 물론 통쾌했지만, 즉흥적으로 펼쳐진 훈훈한 감동의 드라마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것은 감독상 시상 무대에서였다. 올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임명된 흑인감독 스파이크 리(Spike Lee, 63)가 무대에 올라 "Bong Joon Ho!"를 호명했다.
'기생충' 팀 객석에서는 환호가 터졌다. 감독상까지 넘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예상 밖의 수상이었다. 봉 감독은 흥분된 표정으로 무대에 올라가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야심작 '아이리쉬맨(The Irishman)'으로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가 고배를 마신 거장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77) 감독에게 헌사하는 소감을 밝혔다. 스콜세지는 스파이크 리의 뉴욕대 영화과 선배다.
"어렸을 때 영화 공부를 하면서 가슴에 새겼던 말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봉 감독은 이어 영어로 "That quote was from our Great Martin Scorsese! (그 인용구는 우리의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말입니다)"라고 밝혔다. 스콜세지 감독의 눈시울은 붉어졌고, 객석에선 "브라보!"와 함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봉 감독은 "학교에서 이분 영화를 보며 공부했는데,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이라고 이어 말했다. 딸 옆에 앉았던 스콜세지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나 영화인들과 봉감독에게 두손 모아 감사의 뜻을 전했다.
봉준호 감독은 눈치와 재치로 제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을 감동의 무대로 연출했다.
1981년 '성난 황소(Raging Bull)'부터 아카데미 감독상 9회 후보에 올랐던 마틴 스콜세지는 'The Departed'(2007)로 단 한번 오스카상을 품에 안았다. 그날 '아이리쉬맨'은 무려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가 트로피 1개도 건지지 못하는 낭패를 겪고 있었다. 객석의 노장 스콜세지는 비록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봉준호 감독 덕분에 오스카의 주인공이 되어 마치 상패 없는 평생공로상을 받은듯 했다. 스콜세지는 오스카상 루저(Loser)가 아니라 위너(Winner)였다. 봉준호 감독의 따뜻한 소감 덕분이었다.
그 감동의 장면은 물론 시상식 각본에는 없었다. 후에 봉 감독은 인터뷰에서 "감독상에 호명되어 무대에 올라갔을 때 스콜세지 감독님과 딱 눈이 마주쳤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스콜세지와 '눈'이 마주친 후 '빠른 눈치'로 거장을 배려하는 진심어린 소감을 말했고, 아카데미 시상식을 감동의 시상식으로 깜짝 연출한 셈이다.
봉준호 감독에겐 '눈치'와 '재치'가 있었다. 사실 영화 '기생충'에서 김씨네 가족은 빠른 눈치로 박사장네 집에 전원 취업하게 된다.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가 눈치 빠른 것이다. 눈치는 한국인들의 육감, 수퍼파워로 불리운다. 이제 한국인을 '호모 눈치우스(Homo Nuncius)'라 불러도 좋으리. (*눈치우스는 라틴어로 메시지라는 뜻이며,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문학 책 '시데레우스 눈치우스(Sidereus Nuncius/ Starry Messenger, 1610)'를 썼다.)
*Bong Joon Ho Accepts the Oscar for Directing <YouTube>
#한인 2세 유니 홍과 눈치의 힘, The Power of Nunchi by Euny Hong
지난해 11월 펭귄에서 출간된 한인 2세 유니 홍의 '눈치의 힘'.
눈치를 채다, 눈치를 주다, 눈치가 빠르다, 눈치가 없다, 눈치를 보다, 눈치가 보이다, 눈치를 살피다, 눈치가 다르다, 눈치껏 하다, 눈칫밥을 먹다, 눈치 싸움...
눈치란 무엇인가? 눈치는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남의 마음이나 뜻을 그때그때의 상황으로 미루어 얼른 알아차리는 힘"이다. 눈치는 조직사회에서 상황의 파악력, 통찰력, 감성, 직감, 센스, 공감능력을 의미한다. 영어로는 wits, sense, tact, hint, social cue, ability to read a situation 등으로 번역될 수 있겠다.
외국인들은 우리의 '눈치'를 눈치챌 수 있을까? 한인 2세들에게도 우리같은 눈치가 있을까?
한인 2세 언론인 출신 유니 홍(Euny Hong, 홍은이)은 지난해 11월 한국의 눈치 문화를 분석한 '눈치의 힘: 한국인들의 행복과 성공으로 이끄는 비밀(The Power of Nunchi: 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 펭귄)'을 출간했다. 이 책에 따르면, 눈치의 본래 의미는 '눈으로 측정하다(eye measure)'이다. 눈치는 타인의 생각과 느낌을 재빠르게 간파하고, 그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미묘한 기술이다. 눈치는 감성 지능에서 오며, 상대의 몸짓이나 말투 등 무의식적 신호에서 마음을 읽는 능력이며, 주위 사람들 반응에서 알수 있는 분위기 파악력이기도 하다. 눈치는 5천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인들의 초능력(superpower)으로 유니 홍은 "내가 배운 가장 중요한 단어일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인들은 '눈치가 좋다'라는 말 대신, '눈치가 빠르다'는 말을 쓴다. 그러므로, '느린 눈치'는 소용이 없다. 유니 홍은 일 잘 못하는 직장 동료가 나보다 승진이 빠른 이유, 요가 클래스에서 그 여자가 특별히 인기있는 이유는 아마도 눈치가 빠르기 때문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셜록 홈즈, 스티브 잡스, 고양이는 눈치가 빠르다. 한인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에게 "왜 눈치가 없니?"라며 종종 질책한다. 눈치야말로 여성이나 소수계 등 사회적 약자들의 비밀병기다. 눈치가 빠르면, 직장일도 더 잘 하고, 더 즐기며, 더 오래하고, 더 많은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말로 하기 전에 조용히 용의주도하게 들으면서, 정보를 수집하면서, 협상도 더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Emotional Intelligence - The Power Of Gibun Noonchi Nunchi Designed by deichmonster
유니 홍은 자신이 눈치의 힘에 대한 산 증인이라고 고백한다. 1973년 뉴저지 태어난 그는 12살부터 부모 따라 한국에 가서 공부하게 됐다. 한국어도 모른 채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기 위해 말 없는 '눈치'에 의존했고, 눈치는 자신의 육감(sixth sense)이 됐다. 그때 그 경험에서 한국의 교육은 '눈치 교육'이라고 회고한다. 교실에서 학생들은 질문하지 않았으며, 교사들은 의도적으로 학생들에게 교재나 시험장소 등에 대해 애매하게 말해주었다. 때문에 학생들은 눈치로 파악하더라는 것. 자신이 1년 후 반에서 1등을 하고, 1년 반 후엔 부반장으로 선출된 이유는 바로 연마된 눈치 덕분이라고 밝혔다.
유니 홍은 성공과 행복의 열쇠는 똑똑할 필요도, 부자일 필요도, 특권층일 필요도 없이 '빠른 눈치'에 있다고 결론 짓고 있다. 예일대 철학과를 졸업한 유니 홍은 파리의 TV 뉴스 채널 'France 24'에서 일한 후 파이낸셜타임스, 뉴욕타임스, 월스트릿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에 기고해왔으며, 2014년 '한국적 쿨의 탄생(The Birth of Korean Cool: How One Nation is Conquering the World Through Pop Culture)'을 출간했다.
*The Korean Secret to Happiness and Success, NYT
#눈치의 달인이 되는 비결, 처세술 책 홍수
한국에서 출간된 눈치에 관한 책1
지난해 영어권에서 유니 홍의 'Nunchi'에 관한 책이 처음 출간됐지만, 한국에선 이미 눈치에 관한 도서가 무궁무진하다. 자기계발, 처세술에서 심리학, 자녀교육, 수필, 소설, 동화, 언어학, 설화, 시집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눈치를 제목으로, 혹은 부제로 한 책들이 속속 나왔다. 눈치는 가정부터 학교, 직장까지 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에서 필요한 기술이다. 특히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눈치는 생존의 무기이기도 하다.
박근영의 '왜 나는 늘 눈치를 보는 걸까'(소울메이트, 2013)에서는 "눈치를 건강하게 활용하지 않으면 폐쇄성·변덕·자기소진·자기부재·불균형·착취·집착이라는 무서운 덫에 걸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삶을 힘들게 하는 눈치증후군으로 #다른 이의 시선 때문에 보는 눈치, #남과 비교하느라고 보는 눈치, #의존심 때문에 보는 눈치, #관심을 끌려고 보는 눈치, #어느 편인지 알려고 보는 눈치, #세상이 험해서 보는 눈치, #남을 이용하려고 보는 눈치 등으로 나누고 있다.
김은성은 '더 센스(THE SENSE): 네가 힘든 건 눈치가 없어서야'(anotherbooks, 2019)에서 "건강하게 눈치를 살피는 사람이 곧 '센스있는 사람'이며, 현명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늘상 대화 공간에서 반짝이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출간된 눈치에 관한 책2
한국에서 '사회 생활의 절반은 눈치'라고들 한다. 허은아의 '눈치코치 직장매너'(지식공작소, 2007)에서는 "근무시간에 병원이나 은행 다녀오려면 눈치 보여요" "회식 중간에 효과적으로 도망가는 비결 있나요?" "싼 밥 얻어먹고 비싼 커피 사야 하나요?" "음악 들으면서 일하면 찍히나요?" "인사는 볼 때마다 해야 하나요?" 등 취업 준비생들이 알아두어야할 필수예절 270여 가지의 경우를 소개했다.
한편, 시부야 쇼조의 '마음을 잡는 심리학(心をつかむ心理学)'을 번역한 '눈치코치 심리학'에서는 말투와 행동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법, 즉 눈치를 빨리 챌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한다. '쉽게 승낙하는 사람이 나중에 쉽게 번복할 확률이 높다' '세번 이상 고개를 끄덕이면 'NO'라는 사인이다' '헤어스타일이 자주 바뀌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한다' '패키지 투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지쳐있다' 등을 예로 들고 있다.
눈치 보지않고 사는 법에 관한 책. 눈치가 부제로 붙여졌다.
외국어 도서의 제목은 한국어 번역판에서 종종 '눈치'로 의역된다. 일본어로 출간된 심리학, 처세술 책은 원제 대신 눈치를 제목이나 부제에 넣는다. 한국에서 눈치는 화두이며, 눈치라는 단어는 마케팅에도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왜 눈치를 보는가: 나를 발견하는 심리학'(가토 다이조 저/이인애 역/고즈윈)의 원제는 '자신을 깨닫는 심리학(自分に氣づく心理學)'이다. '선 긋기의 기술: 눈치 보지 않고 당당하게 거리 두기'(와키 교코 저/오민혜 역/ 알에이치코리아(RHK))의 원제는 '인간관계의 정리술(人間關係の整理術)', '이제부터 민폐 좀 끼치고 살겠습니다: 남 눈치 따위 보지 않고 나답게 사는 용기'(고코로야 진노스케 저/박재영 역/걷는나무)의 원제는 '50살부터 인생의 대역전(50歲から人生を大逆轉)'였다.
원제 '마음을 잡는 심리학(心をつかむ心理学)' 역시 '눈치'를 픽업한 제목 '눈치코치 심리학: 상대의 진심을 빨리 알아차리는 나만의 노하우'(시부야 쇼조 저/정은지 역/ 바이북스)'으로, '공감장애(共感障害)'는 '눈치가 없어 고민입니다'(구로카와 이호코 저/김윤경 역/ 넥서스BIZ)로, '틀어박히는 힘(こもる力)'은 '눈치 보지 않고 진짜 나로 살아가기 위한 '틀어박히는 힘'(이치무라 요시나리 저 /편설란 역/페이퍼로드)으로 출간됐다.
또한, 캐티 케이와 클레어 쉬프만의 공저 '소녀들을 위한 자신감 코드(The Confidence Code for Girls: Taking Risks, Messing Up, & Becoming Your Amazingly Imperfect, Totally Powerful Self)'는 '나는 왜 자꾸 눈치를 볼까?: 열네 살부터 시작하는 첫 자신감 수업'(하연희 역/ 리듬문고)로 번역됐으며, 미국인 심리학자 닐 라벤더와 알란 카바이올라가 쓴 '만족시키기 불가능한: 어떻게 완벽주의 동료, 통제적인 배우자와 기타 늘 비판적인 이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Impossible to Please: How to Deal With Perfectionist Coworkers, Controlling Spouses, and Other Incredibly Critical People)'는 '눈치 보지 않을 권리: 사람은 못 바꿔도 관계는 달라질 수 있다'(최승희 역/미래의창)으로 번역됐다. 그리고, 터키 작가 아지즈 네신의 동화 '나도 아이였어(Ben De Cocuktum)'는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노석미 그림/이난아 역/살림 Friends)로 번역되어 나왔다.
#눈치 안테나: 성공과 행복의 열쇠
영화 '기생충'에서 '눈치의 달인'인 기우와 기정은 연교의 순진함을 이용한다.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도 새우젓을 얻어먹는다" "눈치가 참새 방앗간 찾기" "의붓 어미 눈치 보듯" "짐작 팔십 리" "눈치는 형사다" "빨리 알기는 칠월 귀뚜라미라" "눈치가 빠르기는 도갓집 강아지" "귀머거리 눈치 빠르다" "십 리 눈치꾸러기" "눈치가 발바닥" "눈치가 있으면 떡이나 얻어먹지" "눈치를 사 먹고 다닌다" "소경 눈치 보아 뭘 하나 점 잘 치면 됐지" "산지기 눈치 보니 도끼 빼앗기겠다" "앉을 자리 설 자리를 가리다" "남의 걸상에 끼여 앉다"...
눈치에 관한 속담도 참 많다. 유니 홍에 따르면, 한국인들의 눈치는 5천년 역사를 지녔다고 한다. 눈치는 왜 한국인들에게 특이한 감각이 됐을까?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직관력을 구비하게 됐을까?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공자님의 도덕지침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따라 아랫 것은 윗님들의 눈치를 잘 봐야 했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으로서 끊임 없이 눈치 외교를 해야했던 한반도의 역사도 병행된다. 상대의 의도와 기분을 간파하는 독심술, 눈치는 대인관계와 의사소통의 기술, 약자의 생존기술이기도 하다. 강자는 당당하고, 약자는 눈치를 보기 마련이다. 강자가 눈치를 챌 때는 상대에 대한 배려일 수 있으며, 약자가 눈치를 볼 때는 강자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분위기를 파악하는 직관력, 눈치 안테나가 잘 작동하면 인간관계, 사회생활이 무난하다. 한편, 집단사회에서 튀면 안된다. 한국사회에선 눈치껏, 적당히 하는 '중용'이 중시되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소신대로 행동하면, 집단에서 왕따 되기 쉽다. 이는 군대문화와 획일주의의 영향이기도 할 것이다.
박근영의 '왜 나는 늘 눈치를 보는 걸까'(소울메이트, 2013) 표지(위)/*[Live ONE] 폴 김 (Paul Kim)-길(The Road)
물론 밀고 당기는 남녀관계에서도 눈치의 기술은 절실히 필요하다. 유행가, K-Pop에도 눈치가 등장한다. 가수 폴 김은 '눈치'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눈치는 우리 민족의 영원한 화두인듯 하다.
내 얘기 좀 들어 봐/ 난 말야/ 어릴 적 친구들이 하는 말들에/ 너무 관심을 둬서 너무 휘둘렸어/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지나가던 사람들/ 의미 없이 던지는 말들에 또/ 상처받고 힘들어했지 Uh/ (내 삶의 주인공은 나니까)
끝없이 날아오는 화살들을/ 여태 요리조리 피해/ (Ddu du ddu du ddup ddu du)
잘 지내왔는데/ 무슨 말을 해도/ 아무 소용 없는 것 같아/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가 않는 것 같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아직 너무 많은데/ 왜 자꾸 안 된다고만 하니
또 눈치 보지 난/ 아무 말도 못 하고/ 들리지 않는 내 목소리/ 시간은 자꾸만 가고/ 아직 보고 있어 네 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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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눈치 보지 마/ 커져가는 마음처럼/ 더욱 가까워지는 우리/ 시간은 깊어만 가고
다시 보고 있어/ 눈치 보지 마/ 커져가는 마음처럼/ 더욱 가까워지는 우리
시간은 깊어만 가고/ 난 또 보고 있어 네 눈치
*폴킴, 헤이즈, 픽보이-눈치(Tic Tac Toe) <YouTube>
황경식 시인은 교사 시절 첫 수업에서 '삼(3)치를 부탁해'를 강조했다고 한 칼럼에 썼다. 삼치는 염치(廉恥, 순결한 삶을 위한 부끄러움), 재치(才致, 지적인 능력), 그리고 눈치다. 황 시인은 이중 상대의 기분이나 의도에 맞춰 자신의 언행을 조절하며, 공감하는 능력으로서의 눈치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소한 눈치만 있어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별 어려움이 없으며, 오늘날 한국 정치판에도 국민의 눈치를 살펴봐주기를 기대한다고 주문했다. <계속>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