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0.05.05 01:57

(492) 이수임: 우리는 다시 만나리

조회 수 554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95) 잔인했던 4월


우리는 다시 만나리


사월이 지나면.jpg


누가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대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방황한다. 그러나 나름대로 즐거움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산책이 나의 일상 중 가장 큰 행복이다. 허드슨 강가를 조용히 걷기 위해 평소보다 더 일찍 자고 빨리 일어난다.


복도에서 만난 옆집 여자가 나보고 엘리베이터를 혼자 먼저 타고 내려가라고 했다. 그녀의 배려가 고맙다. 결국, 그녀는 버몬트 시골집으로 떠났다. 콘도 안, 많은 사람도 떠났는지 인기척이 없다. 엘리베이터는 나의 전용이 되었다. 나는 그저 도어맨과 텅 빈 빌딩을 지키는 느낌이다.


선글라스와 장갑을 끼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산책하러 나간다. 거울 속 내 모습에 나 자신도 섬뜩할 정도다. 산책 중 나를 피해 가는 사람이 정말 고맙다. 사람을 피해 걷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강아지들처럼 길도 아닌 길을 헤맨다. 강아지들은 같은 무리와 어울리기 위해서라지만, 나는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다.


딱따구리 우는 나무 아래 바위 위에 올라간다. 뉴저지 사는 친구들이 이번 코로나 사태를 잘 견디고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강 건너 뉴저지를 한동안 응시한다. 자연의 모습이 예전과 다름없다면 아무 문제 없이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다.


핑크빛 목련은 흐드러지게 피어 얼굴만 내밀고 길 가던 나를 붙잡고 하소연하는듯 하다. 수선화는 나를 위로하듯 고개를 떨구고 인사한다. 개나리는 사람들이 움츠러든 듯 샛노란 색채를 드문드문 감추고 있다. 활짝 흐드러진 벚꽃 아래 잠시 머물며 잔잔한 황홀경에 빠져 코로나바이러스에 관한 생각을 잊는다. 갑자기 옆으로 덩치 큰 남자가 씩씩거리며 뛰어갔다. 바이러스가 나에게 들러붙기라도 한 듯 깜짝 놀랐다.


산책하고 돌아와서도 아쉬운 듯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본다. 아무도 없다. 한참을 두리번거린다. 나보다 더 늙은이가 마스크도 쓰지 않고 지나간다. “용감하네!” 중얼거리며 나도 장 보러 나가볼까? 용기 내다가 도로 주저앉는다.


저녁 7시만 되면 사람들은 몇 분간 창문을 열고 소리 지르고 식기를  두드린다.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베란다 함성이 바이러스처럼 뉴욕으로 번졌다. 집안에만 있던 사람들이 사전 교감을 이룬 듯 악쓴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길 건너 아파트 사람들과 손을 흔들었다.


나도 친정 아버지의 애장품이던 커다란 징을 두드린다. 징~ 징징, 징~. 그 옛날 화려한 원색 복장의 무당들이 악귀를 물리친다고 놋쇠로 만든 꽹과리를 카랑카랑 두드리듯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바에 모국에서 용하다는 무술인들을 동원해 타임스퀘어 한가운데서 걸판지게 굿판 한번 벌이면 어떨까? 극동에서 수천 년간 간직한 ‘기’로 코로나 잡귀들을 철퇴한다는 심정으로.




Soo Im Lee's Poto100.jpg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http://sooimlee3.blogspot.com  


?
  • yh77 2020.05.07 17:07
    한편의 콩트같은 칼럼 그리고 멋진 삽화.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라 않은 기분을 사이다처럼 시원하게 풀어주는 글 이애요, 창문에서 커다란 징으로 두두리는 소리와 함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