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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4) 이수임: 코로나 적자생존(適者生存)
창가의 선인장 (97) 뉴요커를 위한 무료 음식
코로나 적자생존(適者生存)
장 보기가 두렵다.
밖에 나가지 않는 나에게 코로나에 걸릴 수 있는 곳은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식품점(그로서리 마켓)이다. 그러나, 아침 7시부터 마켓 들어가는 줄이 끝없이 이어진다. 긴 줄에 서서 기다리다 장 보고 나와서 조금이라도 몸이 이상하면 ‘마켓에 들어갔다 나와선가?’ 하는 상상의 고민을 하는 것은 더욱 더 괴롭다.
24시간 문을 여는 마켓도 사람이 없는 새벽과 밤에 가봤다. 사람들이 다니는 공간이 홀푸드처럼 넓지 않아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했다. 배달도 해봤다. 배달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고, 주문한 물건이 제대로 오지 않아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굶어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 아침 산책이 끝나면 7시 30분에 두 블록 떨어진 초등학교(P.S. 75 Emily Dickinson)에서 아침과 점심을 픽업한다. 뉴욕시가 아이들에게만 주던 음식을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반인에게도 무료로 배급하는 Meal Hub를 운영하고 있다. 정말 거짓말 조금 보태자면 빛의 속도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마켓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하다.
샌드위치, 우유, 시리얼, 요구르트, 과자, 치즈 그리고 주스 등등 특히나 사과를 많이 준다. 몇명분을 줄까 물어본다. 남편이 브루클린 스튜디오에서 지내기 때문에 나는 1인분만 가져온다. 일주일에 두세 번만 가도 나 혼자 먹기에, 충분한 양이다. 스푼, 포크 그리고 냅킨도 주기 때문에 설거지할 필요도 없다. 먹기 싫은 샌드위치에 사과를 납작하게 썰어 끼워서 먹으면, 그런대로 먹을 만하다.
빛의 속도는 아니지만 운 좋게 가까운 교회 앞 길가에서 장바구니 가득 온갖 채소, 깡통, 쌀, 콩, 호두, 과일 등을 얻었다. 채소들은 잘게 썰어 고춧가루 조금 넣고 김치 샐러드처럼 만들었다. 수입 따지지 않고 한 달에 한 번만 준단다.
어느 날, 한두 명뿐이거나 아예 줄을 설 필요가 없는 와인 가게에 들어가려다 홀푸드 앞에 줄 선 사람이 대여섯 명뿐이었다. 옳다구나하고 들어갔다. 그동안 먹지 못한 고기, 새우, 달걀 두부 등을 샀다. 가격도 예전과 별반 차이가 없다. 내 돈 내고 사는데도 횡재라도 만난 듯 신이 났다.
집에 와서 기운이 없고 으슬으슬 떨렸다. 아! 혹시 걸린 것이 아닐까? 아니면 밥을 자주해 먹지 않아서 기운이 없어서일까? 걱정했다. 안남미 쌀과 깡통에 든 검은 콩을 잔뜩 넣고 밥을 했다. 김치 샐러드에 스테이크를 칼질하며 와인을 한 잔 죽~ 들이키니 살 것 같다. 옛 어른들이 끄떡하면 밥심이 어쩌고 하며 곡기를 끊지 말라고 했던가? 와인 한잔 가득 또 따랐다. 세상만사 걱정 붙들어 맨 듯 황홀경이다. 이래서 불경기인 요즈음 사람들이 술타령으로 술 가게가 불이 나는 모양이다.
일단 바이러스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병원에 들어가서 온갖 의료장비 코에 꽂고 누워 있지 않는다. 지금 나의 사명은 가족을, 이웃을, 사회를 그리고 나라를 위해 자조가 최선의 도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