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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홍영혜: 거미야, 거미야, 뭐 하니?
빨간 등대 <29> 숲 속의 설치작가
거미야, 거미야, 뭐하니?
아침녘의 숲속 길은 신선해서 좋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숲이 지루하지 않다. 걸어가면서 눈에 익은 튜울립 나무, 사사프라스 나무, 산월계수의 이름을 불러주고, 들풀들도 하나씩 이름을 떠올려 본다. 숲 속에 있는 무수한 거미줄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매일 지나가다 걸려 얼굴이 근질근질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손으로 얼굴을 만질 수가 없어 얼굴 근육을 실룩실룩 움직이며 지나간다.
그러다 어느 날 언덕이 가파른 숲길에 햇빛이 드리우니 멋진 예술 작품처럼 거미집이 “"짜잔" 하고 나무에 걸려 있었다. 마치 이 비 화이트 (E.B. White)가 쓴 동화책, '샬롯의 거미줄'(Charlotte’s Web)에서 거미 샬롯(Charlotte)이 돼지 친구 윌버(Wilbur)를 구하기 위해 "멋진"(TERRIFIC)이라고 거미줄에 쓴 순간처럼.
친구에게 이 멋진 거미집 사진을 보내주니 "그런데 거미집 주인은 어디 갔지?"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때론 삶의 근본적인 질문을 잊고 살 때가 많은 것 같다. 친구한테 신선한 질문을 받고 나선 거미 숲을 걸을 때, 거미를 열심히 찾아본다. 어떤 때는 나뭇가지에 캐모플라지 하고 있고, 거미줄에 가만히 걸려 있기도 한다. 꽁꽁 숨어서 내 눈에 안 띌 때도 많다. 빛의 각도 때문에, 사진에 담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친구에게 거미 사진을 보내주니 "상상한 것 보다 거미가 뚱뚱하지 않네. 거미집으로 봐서는 먹을 거리가 이 거미줄에 많이 걸릴 것 같은데."
그 다음부터는 거미집을 지날 때 거미가 너무 말랐나? 먹이가 걸리는 게 얼마 없어 신경이 쓰였다. 그렇게 애를 쓰고 촘촘히 집을 만들었는데….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무섭게 들이닥치는 날 숲 속 거미집과 거미의 안부가 걱정되었다. 비가 멈추어 숲을 찾았다. 다행히 거미집은 무사하였다. 커다란 구멍은 전에도 있었던가? 갑자기 하늘에서 후두둑 빗소리가 났다. 비는 안오는데 바람이 부니 나무에 머금고 있던 빗방울이 주르륵 떨어졌다. 거미들이 참 영리하기도 하지. 큰 숲 나무 밑에 비바람의 보호를 받으며 눈에 띄지 않게, 죽은 앙상한 가지에 집을 지었구나. 음습한 숲과 햇빛이 비치는 길의 경계에.
친구와 거미 사진으로 이렇게 깊숙한 관찰을 하게 될 줄 몰랐다. 알고보니 친구에겐 어릴 적 거미와의 추억이 있었다.
"어릴 적 살던 집 기와지붕 모서리에 거의 둥그런 모양으로 크게 지어 놓은 거미집, 아침 햇빛에 반짝반짝 너무 예뻐 학교 가기 전 한 번씩 나가 보던 생각이 나는데, 거미 주인이 하루 나와서 걸린 파리랑 조사하는데 어찌 무섭게 생겼던지 …"
거미줄의 우측 하단에 거미가 매달려 있다
어느날 통나무집 아침 해가 반짝반짝 비출 때, 현관 유리창에 비치는 거미집을 보고 깜짝 놀랐다. 친구가 이야기한 동그란 거미집에 모기와 파리들이 촘촘히 잡혀있는 것을 보고. 거의 석 달을 지내면서 왜 여태 못 보았을까? 아침 햇살에만 잠깐 보이고 거의 눈에 띄이지 않는다. 청소 잘하는 집주인을 만나면 위험하지만, 대분분의 거미들은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모기나 해충을 잡아주어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고 한다. 집거미들은 친구의 어린 시절 지붕 모서리의 거미처럼 통통하게 먹을 걱정 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거미 숲길을 걷다 보면 길가보다 좀 더 깊숙한 숲 속에 하얀 비닐우산 같은 것이 세 개가 엎어져 있었다. 전에 뱀과 지렁이도 만난 음습한 곳이다. 자세히 보니, 다 거미집이다. 이 숲 속에서는 벌레를 잡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으로 집을 짓는 것 같다. 집을 우산 수준으로 짓는 것을 보면.
석달 동안 매일같이 걷고 친숙해진 숲, 심지어 거미의 안녕까지 걱정하는 이 숲을 떠날 날이 머지 않은 것 같다. 이 숲이 너무 고마워서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간 주말에는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고무장갑을 끼고 숲에 떨어져 있는 쓰레기를 주었었다. 호숫가를 따라가는 숲길에는 피크닉 테이블도 있고, 배가 정박하는 곳이 있다. 날이 좋아지니 주말이면 배를 타고 이곳에 와서 낚시도 하고 놀다 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숲길이 끝나는 바위 언덕은 한눈에 호수가 보이고 전망이 좋다. 바위 주변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플라스틱 병, 유리병 깨진 것, 캔, 휴지, 먹다 봉지째 놔둔 쓰레기들이 널브러져 있다. 비바람이 불면 다 호수 속으로 빠지는데….
쓰레기를 주우며 "개새들!" 하고 소리쳐본다. 욕이 이렇게 정화의 효과가 있는 줄 몰랐다. 이때다 하고 겸사겸사 쌓인 분노까지도 함께 떨쳐 보낸다. 이 쓰레기 봉다리를 공원 입구 앞에 참수시켜 걸어 놓을까, 봉다리마다 사진을 찍어 프린트해 게시판에 붙일까. 오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쓰레기를 이렇게 버리고 간다고, 가득찬 봉다리를 흔들고 지나간다. 동양 사람들이 우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게 아니라 숲을 정화하고 있다고 광고를 하면서.
숲에서 주운 꼬부랑 할망 나무 지팡이를 짚고, 마스크를 쓰고 쓰레기를 줍는 나를 혹시 넝마주이로 보는 건 설마 아니겠지?
PS 1. 센트럴 파크 노스우즈(North Woods)에서도 만난 적이 있는 사사프라스 나무(Sassafras), 한 나무에 보통 잎사귀, 벙어리 장갑, 세 갈퀴 잎,이렇게 세 가지 다른 잎이 달려있다. 뿌리와 나무 껍질은 차와 루트비어의 향을 내는데 썼는데 발암성분이 있다고 한다. 어느 날 산책길에서 다섯 갈래의 잎을 만났다. 다섯 갈래의 잎은 드문데 네잎 클로버처럼 행운을 가져온다고 필자가 정했다.
PS 2. 숲에서 만난 튜울립 나무, 노랑색에 밑에 붉은 두 줄이 쳐진 꽃들이 어느날 우수수 떨어져 꽃길을 만들 때까지 그 존재를 몰랐다. 이 꽃이 어디서 왔지 하고 쳐다보는데 쭉뻗은 키다리 나무가 우뚝 솟아있다.
PS 3. 산 월계수, 진짜라고 하기엔 별사탕 같은 꽃. 4월에 앙상하지만 운치있게 가지가 벌어져 있는 이 나무는 무얼까 궁금했는데 6월 초에 꽃이 달리고 풀렸다. 모홍크 산장의 라비린스 트레일에 처음 보았던 산월계수 꽃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