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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Artist & Muse <14> Rodin, Camille & Rose 

순정과 열정 사이...로즈와 카미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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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노 뉘이탱 감독, 이자벨 아자니와 제랄 드빠르듀가 출연한 영화 '카미유 클로델'(1988)/ 로댕의 동반자 로즈 뵈레. Auguste Rodin, Jeune femme au chapeau fleuri(Rose Beuret), terre cuite, 1865/1870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은 당대의 미켈란젤로였던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의 제자이자 조수, 뮤즈이자 연인이었다. 카미유는 스무살 때 마흔 셋의 로댕을 만나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로댕에겐 이미 20년 동거동락하며 아들을 낳은 여인 로즈 뵈레가 있었다. 


바람둥이 로댕은 1917년 77세가 된 로즈와 정식 결혼식을 올렸지만, 그녀는 2주 후 세상을 떠났다. 로댕은 같은 해 11월 눈을 감는다. 클로델은 30여년 정신병원에 수용됐다가 1943년 눈을 감았다.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클로델의 비극적인 삶은 이자벨 아자니와 줄리엣 비노슈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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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Claudel, Bust of Rodin, 1888-1889/ Auguste Rodin, Rose Beuret en mignon, 1870/ Rodin, Head of Camille Claudel, 1884


오귀스트 로댕은 1840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경찰국 서기였고, 14살 때부터 미술학교 프티트 에콜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1857년 에콜 드 보자르에 지원했다가 낙방했고, 두번 더 응시했지만 또 떨어졌다. 


1862년 누나 마리아가 수녀원에서 복막염으로 사망했다. 로댕은 누나에게 바람둥이 남자를 소개했던 죄책감에 시달려 사제가 되려고 수도원에 들어갔지만, 그의 재능을 알아본 신부의 권고로 속세로 돌아간다. 그리고, 위대한 조각가가 되었다.


*로댕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 10가지, 메트뮤지엄 로댕 100주기 특별전, 2017



#로즈 뵈레...77세에 로댕과 결혼식 2주 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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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를 모델로 제작한 작품. Auguste Rodin, Je suis belle/I am Beautiful, 1882(left)/ Mother and Child, 1985


로댕의 첫 뮤즈는 로즈 뵈레(Rose Beuret, 1844-1917)였다. 샴페인 생산지에서 포도원을 소유한 가문에서 태어난 뵈레는 1864년 파리에서 재봉사 겸 모델로 일하다가 로댕을 만났다. 로댕 전기 'Rodin: The Shape of Genius'에는 로댕 친구가 회고하는 로즈 뵈레가 나온다. 


"스무살의 마리-로즈는 그저 예쁜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는 약간 소년같았고, 갈색 눈을 가졌다. 갈색의 곱슬머리가 화려하게 독창적으로 다듬어졌으며, 개성있게 잘 차려입은 패션에 늘 커다란 모자를 썼다."



Rainer Maria Rilke (far left) with Auguste Rodin and the sculptor’s long-time companion Rose Beuret.jpg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로즈 뵈레, 오귀스트 로댕.


로댕은 자신이 모델이 된 로즈를 "미뇽(Mignon)" "큐티(Cutie)"라고 불렀다. 곧 로즈는 임신했으며, 로댕은 '모자상(Mother and Child, 1865)'을 제작했다. 로즈는 이후 로댕의 뒷바라지를 하며, 로댕이 수많은 여자들과 바람 피우는 것까지 눈감아주었다. 로즈는 결혼을 원했지만, 로댕은 결혼을 원치 않았다. 결국 만난지 57년 후인 1917년에야 정식 결혼식을 올렸지만, 로즈는 2주 후인 2월  세상을 떠났다. 그녀 나이 73세였다. 로댕도 그해 11월 2일 77세로 눈을 감는다. 


로즈 뵈레는 로댕과 살면서 캉캉 댄서, 모델, 사교계 여인들, 제자, 작가들과 무수히 바람 피우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중 로즈가 질투심을 불러일으킨 유일한 여인은 카미유 클로델이었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30년간 정신병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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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작업실에서 카미유 클로델, 1887/ 카미유 클로델 초상


1883년 43세의 로댕은 20세의 카미유 클로델을 만났다. 그리고, 15년간 제자, 모델, 동료이자 뮤즈로 열정적이고, 파멸적인 관계를 갖게 된다.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 1864-1943)은 프랑스 북구 에인의 페레랑타르드누아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등기소 소장이었고, 19세 어린 엄마는 의사의 딸이었다. 엄마는 여동생 루이즈와 남동생 폴을 편애했고, 카미유를 소외시켰다. 폴은 훗날 시인이자 외교관으로 독신녀로 정신병원에 수용됐던 누이 카미유의 보호자가 된다. 


카미유는 12살 때부터 진흙을 주물러 인간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고, 카미유는 아버지 소개로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Alfred Boucher)를 사사했다.



002-Camille Claudel, Young Girl with a Sheaf, before 1887, [S.6738].jpg 

 Camille Claudel, Young Girl with a Sheaf, before 1887(left)/ Sakuntala,1888

 

1881 카미유는 엄마, 동생들과 파리의 몽파르나스로 이사했다. 1883년 부셰가 로마의 작가상을 수상한 후 1년간 이탈리아에서 살게 되면서 자신의 여학생들을 친구 로댕에게 맡기게 된다. 카미유는 로댕의 작업실로 들어가 모델이자 연인이 되었지만, 로댕과 20년 동거한 로즈의 자리를 뺏지는 않았다. 하지만, 질투심으로 로댕이 다른 여학생을 받거나 애인을 만들지 않는다는 계약에 서명하도록 만들었다. 


조각하는 딸을 반대했던 엄마가 로댕과의 관계 노발대발하자 카미유는 집을 나와 혼자 살게 된다. 엄마와의 나쁜 관계도 카미유의 정신착란에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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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Kiss, 1884. Baltimore Museum of Art


1887년 카미유는 로댕의 조수가 되어 그의 걸작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키스' 제작에 함께 참여했다. 로댕은 카미유를 '공주님'이라 불렀다. 카미유는 그즈음 '뇌부르그의 왕란' '이교도의 농지' 등을 제작했다. 이듬해 카미유는 파리 살롱에서 최고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1891년엔 남자들의 클럽이었던 미술협회의 심사위원으로 발탁될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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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Gates of Hell(La Porte de l'Enfer), 파리 로댕 뮤지엄(좌)/ 파리 오르세뮤지엄


그녀의 성공에 질투한 것은 로댕이었다. 1892년 로댕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낙태를 하게 된다. 이후 로댕과는 서서히 멀어지다가 1898년에서야 종지부를 찍게 된다. 


로댕과 헤어진 후 카미유는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Claude Debussy, 1862-1918)와 사귀기 시작했다. 둘다 에드가 드가와 호쿠사이(Katsushika Hokusai, 일본 판화가)를 좋아했고, 어린 시절과 죽음에 대한 관심 등 공통점도 많았다. 하지만, 카미유는 곧 관계를 끝냈다. 드뷔시는 결별 후 "나의 꿈 중의 꿈이 사라져서 울고 있다"고 썼다. 드뷔시는 자신이 모델로 추측되는 조각 '왈츠'를 그가 죽을 때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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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ille Claudel, La Valse/ The Waltz, 1889 


1899년 살롱에 출품한 대리석 작품이 도난당하자 카미유는 '로댕이 훔쳐갔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이후로 카미유는 가난에 시갈리며, 난방 없는 집에서 살면서 알콜 중독에 빠진다. 1906년 카미유는 자신의 작품을 깨부수고, 우울증과 피해망상으로 인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09년 중국 텐진의 영사였던 남동생 폴 클로델이 귀국 후 아버지와 함께 카미유를 돌보아주었다.


하지만, 1913년 아버지 사망으로 카미유의 정신 상태는 더욱 황폐해진다. 그녀는 로댕의 집에 돌을 던지고, 자신의 작품을 훔쳐갔고, 음식에 독을 넣어 자신을 죽이려 한다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폴은 누이를 요양소/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카미유는 30년간 외출을 금지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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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의 로댕과 로즈 뵈레.


한편, 1917년 1월 로댕은 57년간 동거해온 로즈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해 2월 로즈가 사망했고, 11월엔 로댕도 별세했다. 카미유는 이후 수용소에서 지내다가 1943년 10월 세상을 떠났다. 남동생 폴은 30년 수용생활 중 7번 면회를 갔다. 카미유 사망 후 무연고자로 공동 매장되고 말았다.  2017년 카미유가 자랐던 노젱쉬르센느에 카미유 클로델 뮤지엄이 오픈했다.


카미유 클로델한 한동안 잊혀진 작가였다. 하지만, 1984년 남동생 폴의 손녀 렌 마리 파리(Reine-Marie Paris)가 전기 '카미유 클로델: 천재는 거울과 같다(Camille Claudel: Le génie est comme un miroir)'을 출간하며 세상에 알려지며, 영화로 제작되기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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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상 랭동 주연 '로댕(2017)'/ 이자벨 아자니 주연 '카미유 클로델(1988)'/ 줄리엣 비노슈 주연 '카미유 클로델 1915(2013)' 포스터 


프랑스에서는 카미유 클로델의 전기 영화 두편에 당대 최고 배우들이 출연했다. 이자벨 아자니는 1988년 브뤼노 누이탱 감독의 '카미유 클로델(Camille Claudel)'에서 로댕과 만나는 19세부터 정신병원에 수용된 48세까지, 줄리엣 비노쉬는 25년 후인  51세의 카미유가 정신병원에서 지낸 사흘을 그린 2013년 브뤼노 뒤몽 감독의 '카미유 클로델 1915'에 출연했다. 


삼천포:  필자는 1989년 동경국제영화제에서 '카미유 클로델'을 보았다. 당시 이자벨 아자니와 그의 연인이었던 브뤼노 누이탱 감독의 '카미유 클로델' 기자회견은 일본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꿈(Dreams)'와 같은 시간에 잡아놓고, '꿈' 회견장에는 취재진에 호텔 리무진까지 대절해주었다. 그 차에 여권이 담긴 백 하나를 두고 내렸는데, 호텔 경비원이 바로 다른 차로 따라와 백을 전해주어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기자회견 후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사인까지 받았다. 아자니는 그즈음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5년간의 연애를 시작했고, 1995년 그의 아들 가브리엘을 낳았다. 루이스는 이듬해 극작가 아서 밀러의 딸인 영화감독 레베카 밀러와 결혼, 두 아들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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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e Rodin, The Thinker, 1903. Rodin Museum, Paris



*아티스트와 뮤즈 <8>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여인들

*아티스트와 뮤즈 <9> 구스타프 클림트와 뮤즈들

*아티스트와 뮤즈 <10> 폴 세잔과 부인 오르탕스 피케

*아티스트와 뮤즈 <11> 마크 샤갈의 등대, 뮤즈, 부인 벨라 로젠필드

*아티스트와 뮤즈 <12> 에곤 쉴레와 '비엔나의 모나리자' 발리(Wally) 

*아티스트와 뮤즈 <13> 바실리 칸딘스키와 가브리엘 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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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10.27 13:16
    로댕의 삶이 혈기왕성했음을 여실히 보이고 있네요. 조각 작품도 남녀가 정열에 넘쳐서 금방 뛰어나올듯한 느낌을 줍니다. 두 여인의 뮤즈도 로댕 못지않게 열정을 가진 것을 알았습니다. 위대한 작품은 끊임없는 사랑과 정열이 합하여 탄생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