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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영주의 트래블로그 

버진 아일랜드 세인트 존 일기 <3> 안트리오 콘서트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화산처럼 폭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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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의 안트리오


딸들이 연주자지만, 그렇기 때문에 딸 얘기엔 무척 조심스럽다. 사람들이 딸들에 대해서 물을 때마다 착하다거나 엄마한테 잘 한다거나 환경주의자 라거나 하는 얘기는 편하게 하는데, 그런 말만 해도 딸 자랑한다는 뒷담화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오늘은 대놓고 딸 자랑을 할 작정이다. 


금요일, US 버진 아일랜드의 세인트 존 예술학교에서 안트리오와 재즈 드럼 연주자 디안 파슨(Dion Parson)의 연주회가 있었다. 이번 연주회가 특별했던 것은 2010년 작고한 씨스 후랭크(Sis Frank) 컨서트 시리즈 40주년 연주회기 때문이다. 씨스는 40년 전에 세인트 존에 예술학교를 세우고, 섬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에게 새 세상을 열어준 섬의 전설적인 문화대통령이다. 생전의 씨스는 안트리오를 20대 때부터 수시로 섬으로 초대해서 연주회를 연 분이다. 덕분에 나도 여러번 이 섬에 와서 아름다운 섬의 비치를 즐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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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프로그램/ 아트센타 벽에 둘째 사위 크리스찬이 그린 포스터


이번 연주 초청을 받자 안트리오의 PD인 첫째는 “이번 연주회는 특별히 뜻깊은 연주회니만큼 로컬 아티스트 중에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소개 받은 연주자가 재즈 드러머 디안이었다. 2012년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디안은 주로 뉴욕서 활동하지만, 출신지도 집도 버진 아일랜드 내의 세인트 토마스(St. Thomas)다.


안트리오는 그간 많은 예술가들과 콜라보를 해왔다. DJ 스푸키부터 Parsons를 비롯한 무용단들, 싱어들, Percussion, 비보이 하휘동까지. 그러나 재즈 드러머는 처음이라 드럼과의 조화가 어떨지 매우 궁금했다.


워낙 세인트 존은 안트리오 팬이 적지 않다. 표가 매진됐고, 사람들이 몰려서 빈 자리에 의자를 추가로 들여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문을 열어놓고 연주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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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안 파슨과 안트리오/ 우리 블루와 디안 아들. 둘은 만나자마자 친구가 되었다.


처음 두 곡은 트리오의 연주였다. 그리고 드럼과의 랑데부가 포문을 열었다. 사실 드럼과 피아노 트리오가 이렇게 잘 어울릴 줄 몰랐다. 드럼이 들어오니까 오히려 트리오의 색깔이 훨씬 디테일하게 드러나면서 전체적으로 소리가 풍요해지는 것이었다. 난 드럼이 그렇게 섬세한 악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디안의 드럼은 비단실로 천을 짜듯, 미세한 부분까지 촘촘하면서도 부드럽게, 훈풍처럼 매끄럽게, 트리오의 선율 안에서 자유자재로 유영했다. 그러면서도 트리오가 더 빛나게 받쳐주는 겸손의 미덕까지 넘쳐 그 훈훈한 인성이 듣는 이들을 감동의 늪으로 이끌었다. 


트리오는 이 힘을 받아 세 악기 모두 열정적으로 하늘을 날아올랐다. 둘째 피아노의 생동감 넘치는 오케스트라와 첫째 첼로의 폭발적인 감성, 막내 바이얼린의 영롱한 음감들이 드럼과 어우러져 요동치니 청중들이 열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트리오 음악의 신기원이 열리는 순간이었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연주가 끝나자 모든 청중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면서 ‘앙코르’를 연호했다. 기립박수는 언제나 있던 일이지만 그 열기가 확연히 달랐다. 그 열기는 앙코르 연주까지 이어져서 식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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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루시아


이번 연주회를 진행한 킴은 청중들이 좌석이 넘치도록 매진된 것도 처음이고, 이렇게 청중들이 열광한 것도 유사 이래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가족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나도 적잖이 포옹을 받고 인사도 받았다.


딸들이 뮤지션이어서가 아니라 원래 음악을 좋아하므로 연주회에 자주 다닌다. 그렇게 다니면서 연주를 보지만, 청중이 연주자와 함께 용광로처럼 끓어올라 화산처럼 감동이 폭발하는 연주회는 극히 드물다. 이번 연주회는 여리여리한 세 명의 여자 사이에 듬직한 거구의 남자가 앉아 있으니 그림까지 금상첨화였다. 


아직도 금요일 밤의 열기가 가시지 않는다. 그런 연주를 내 생애에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멋진 1월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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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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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 sukie 2020.11.12 20:54
    안트리오의 음악 천재성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자랑을 해도 거짓이 한점도 없기에 엄마인 영주씨의 딸 얘기를 귀담아 듣습니다. 각자가 다른 악기를 배워서 트리오를 구성해서 어느 곳에 가서도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아름답습니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를 함께 연주하는 여자 삼형제가 또 있을까요? 한국의 자랑이고, 미국의 자랑입니다. 멋진 예술가를 셋이나 길러낸 이영주씨의 숨은 힘에 찬사를 드립니다. 엄마를 포함해서 여자 넷이 매력을 한껏 뿜어내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