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수필가 이영주의 트래블로그 

버진 아일랜드 세인트 존 일기 <4> 'Heaven' 로니네 집



01.jpg

바다와 이마를 맞대고 있는 로니네 집 풀에서.


일요일엔 로니(Ronnie)네 브런치에 초대받았다. 프렌치 토스트가 메뉴였다. 방금 구운 빵인 듯 매우 신선하고 소프트해서 매우 크고 두꺼웠는데도 두 쪽이나 먹었다. 세인트 존같은 섬에선 먹을 수 없는 고급스런 맛이었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특별히 주문한 빵이란다. 섬 다운타운에 있는 식당 중에 헝가리 출신 셰프가 운영하는 집이 있는데, 그 식당은 주인인 셰프가 매일 빵을 구워서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한다. 원래 사람들에게 팔지 않는데, 특별히 부탁해서 주문했다고 한다.


헝가리 음식이 보편적으로 우리 입맛과 비슷하다. 음식 뿐만 아니라 빵도 맛있고, 과자도 맛있다. 우리가 묵는 집주인 글렌다는 외할머니가 헝가리 사람이어서 할머니의 레시피로 만든 케이크와 과자 맛이 출중했다. 암튼 로니가 해준 프렌치 토스트는 내가 먹어본 프렌치 토스트 중 비교할 수 없는 최고였다.


 

IMG_6410.JPG

로니네 집 베란다 테이블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로니의 집 수영장이다. 바다 절벽 위에 세워진 로니의 집은 바다와 나란히 길게 지어진 1자형 집이다. 그러나 높이는 2층 높이다. 시멘트로 지었다는 집은 18년 전부터 시작해서 3년만에 완공했다니 15년 된 집이다. 워낙 단단하게 지은 집이라서 허리케인이 섬을 초토화시켰을 때도 베란다 천정에 달렸던 전등 하나가 떨어졌을 뿐,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고 한다.



IMG_6407.JPG 리빙룸


집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이 인상적이다. 위에서 아래로 층계를 통해 내려가는 구조다. 큰집임에도 인테리어며 장식들이 여간 세련되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는 본채 옆의 독립된 2층 건물이다.


거대한 리빙룸이며 하나 뿐인 매스터베드룸 모두 바다를 향한 구조다. 리빙룸 바깥 긴 벽을 등을 삼아 천정을 머리에 이고 있는 베란다에도 리빙룸처럼 카우치 셋트가 있고, 긴 식당 테이블이 있다. 우리는 그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마주 보며 토스트며 과일, 차를 느긋이 즐겼다.



IMG_6406.JPG

로니네 집 베란다에서 본 풀장, 바다와 섬.


그리고, 바다와 면한 수영장이 베란다와 바다 사이에서 물을 넘실대며 유혹하는 바람에 블루와 딸들 사위들까지 모두 수영장으로 첨벙 들어갔다 로니의 와이프 팻은 자기와 내가 체형이 비슷하다며내게 자신의 수영복을 내다줬다. 얼결에 수영장에 들어간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나자 갑자기 신세계가 열린듯 눈 앞의 신기한 풍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바다와 이마를 맛대고 있는 풀에 들어가자 바다와 풀의 수면이 일직선으로 보여서 어디까지가 풀이고, 어디부터 바다인지 그 경계를 가늠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치 꿈처럼, 환상처럼, 나는 풀 안에서 나도 모르게 유영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황홀한 경험은 처음이다.


풀 안에서 로니와 팻은 우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마치 인터뷰하듯 얘기를 나누며 함께 즐거워했다. 율 브리너가 처음으로 브로드웨이에서 ‘왕과 나’를 공연할 때, 로니도 조연으로 출연했다고 한다. 그렇게 배우로 일하다가 브로드웨이의 거물 프로듀서로 성공한 로니는 키는 작아도 그 카리스마가 범상치 않았다. 와이프 팻도 너무 인물이 좋고 총명끼가 넘쳐서 여배우였었느냐니까 아니라며 웃었다.



IMG_6401.JPG

둘째 루시아 내외


이렇게 현실감 없는 마치 꿈같은 착각마저 드는 풀에서 우리는 시간가는 줄 도 모르고 한나절을 흠뻑 취했다. 처음 브런치에 초대받았다고 했을 땐 비치에 가고 싶어서 마음 내켜하지 않았던 사위들도 맛있는 프렌치토스트에 오믈렛, 그리고 멋진 풀에서 바다를 즐기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기분들이 마냥 업! 되었다. 글렌다 집에서도 프라이빗 비치를 즐겼지만, 이렇게 바로 코 앞에서 마치 비치에서 노는 것처럼 바다 냄새를 맡으며 수영하고 노니까 바다보다 안전하고 편리한 로니네 풀이 완전 천국 같았다. 로니 역시 집에서 수영하므로 비치에 갈 일이 없단다. 수영하고, 금방 샤워하고, 배고프면 또 금방 먹으면 되고. 이보다 더 이상적인 비치가 있을까.


베란다 옆에선 절벽 아래 바다로 내려가는 길까지 조성해 놓았다. 물론 엄청 큰 바위들이 많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손자들이 오면 그리로 내려가서 스노클링을 한단다. 손자들이 얼마나 신날까, 상상만 해도 내가 더 즐겁다. 딸들 덕분에 백악관 국빈 초대 만찬에 초대 받아가서 정말 자랑스러웠는데, 로니네 초대 역시 그에 버금간다 하겠다.



IMG_6409.JPG

로니와 나. 로니의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여러번 오니까 미국 진짜 부자들의 생활을 조금은 눈치채게 된다. 글렌다며 로니며 이들 친구들은 매년 11월 1일에 여기 와서 다음 해 5월 1일에 떠나는 게 루틴이다. 추운 6개월을 따뜻한 섬에서 보내는 것이다. 글렌다는 이스트햄튼에 집이 있고, 로니는 웨체스터가 집이다. 물론 맨하튼에 아파트도 가지고 있다. 섬에서 뉴욕으로 돌아오면 나머지 6개월은 집과 맨하튼을 오가며 생활하고, 여행도 다닌다. 


그러면서 섬에 왔을 땐 이곳 섬 사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며 섬의 발전을 위해서도 물심양면으로 큰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뒤 이곳에 집을 가지고 있는 블룸버그 뉴욕 시장 사업 파트너가 섬 전체 전기공사를 도맡아 해주어서 빨리 복구됐다는 얘기는 부럽기만 하다. 그냥 부자가 아니라 그런 여유와 봉사가 몸에 배인 그들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에 좋다. 딸들 덕에 좋은 경험을 많이 하면서 이렇게 또 많은 것을 배운다.



000lee-headshot100.jpg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