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 경매 나오는 화가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작품 세계
안젤리나 졸리 소장 풍경화 크리스티 경매
화가로서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as a painter)
윈스턴 처칠에 대해서 놀라운 사실 세 가지. 청년시절 영화배우 뺨치는 미남이었고, 헤밍웨이를 제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화가로 그림 500여점을 남겼다는 것이다. 처칠은 빅토리아 여왕, 아돌프 히틀러, 프란시스코 프랑코, 율리시스 그랜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지미 카터, 조지 W. 부시처럼 아마추어 화가였다.
Winston Churchill, 1950/ Winston Churchill, Valley of the Ourika and Atlas Mountains, 1948
크리스티 런던이 3월 1일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874-1965) 전 영국 총리가 그린 회화를 경매에 내놓는다. 처칠은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처칠은 그림으로 우울증을 치료했으며, 약 500여점을 남겼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Tower of the Koutoubia Mosque'(1943)는 모로코의 마라케쉬에 있는 쿠투비야 이슬람 사원을 담은 풍경화. 처칠은 1943년 1월 14일부터 24일까지 프랑스령 카사블랑카에서 열린 연합군 지도자 회의 직후에 그렸다. 카사블랑카 회의엔 처칠,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 프랑스의 샤를 드골이 참가해 제 2차 세계 대전 후의 계획을 논의했다.
Angelina Jolie Photo by Annie Leibovitz, Vogue, January 2007/ Winston Churchill, Tower of Katoubia Mosque, 1943. (Update: 1천200만 달러에 경매)
윈스턴 처칠은 회의 후 FDR에게 자신이 매혹됐던 마라케쉬의 아틀라스 산을 구경할 것을 제안했으며, 그들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12세기 이슬람 사원을 그려 선물로 준 것이다. 이 그림은 처칠이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그린 유일한 작품으로 알려졌다. 원래 처칠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었던 아일랜드의 초상화가 존 레이버리(Sir John Lavery)가 처칠에게 모로코를 꼭 방문할 것을 제안했으며, 처칠은 훗날 모로코의 풍경화 45점을 완성했다.
이 그림은 FDR의 아들 엘리엇 루즈벨트가 유산으로 받았고, 몇 콜렉터를 거쳐 영화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2011년 뉴올리언스의 세일에서 구입했다가 이번에 팔게된 것이다. 예상 가격은 210만-340만 달러. (Update: 3월 1일 런던 크리스티에서 1천200만 달러에 팔렸다.) 이제까지 처칠 그림 경매 최고 기록은 2014년 소더비에서 280만 달러에 팔린 '차트웰의 금붕어 연못(The Goldfish Pond at Chartwell,1932)'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전 남편 브래드 핏과 뱅크시(Banksy), 네오 라우치(Neo Rauch), 스쿠니(Schoony), 돔 패틴슨(Don Pattinson) 등의 작품을 수집했으며, 총 컬렉션의 가치는 2천500만 달러에 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Winston Churchill, The Goldfish Pond at Chartwell,1932
윈스턴 처칠은 마흔살 즈음에 그림을 시작했다. 1915년 5월 악명높은 갈리폴리 전투에 실패한 처칠은 해군장관에서 해임되어 우울증에 빠졌다. 처칠은 그해 6월 가족과 함께 서섹스의 시골집에서 휴가를 보내게 된다. 이곳에서 취미로 그림을 그리던 제수 그웬돌린 처칠이 수채화를 그리는 것을 보고 붓을 잡게 됐다.
즉각 그림에 매료된 처칠은 수채화에서 유화로 옮겨갔고, 자신이 '검은개(Black Dog)'라 불렀던 우울증이 어느 정도 완화됐다. 사실 처칠은 자살 충동을 막기 위해 평생 발코니나 기차 철로 가까이엔 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1921년 2월 처칠은 식민지 국무장관으로 임명되었고, 3월엔 파리에서 첫 개인전이 열렸다. 이때 처칠은 가명 '샤를 모랭(Charles Morin)'을 사용했다. 이듬해 가을 처칠의 다섯번째 자식인 막내 딸 메리가 태어났고, 켄트에 별장 차트웰을 구입했다. 이곳에서 처칠은 그림을 그렸고, 딸 메리 소아메스(Mary Soames)는 훗날 화가로서 아버지 처칠에 대한 회고록 'Winston Churchill: His Life as a Panter'(1990) 을 출간했다.
Winston Churchill, Painting as a Pastime, 1948/ Self-portrait/ Mary Soames, Winston Churchill: His Life as a Panter, 1990
처칠은 1922년 맹장염 수술을 받는 동안 보수당의 총선에서 실패했다. 이에 처칠은 "사무실도, 의자도, 파티도, 맹장도 없었다"고 썼다. 이후 6개월간 프랑스 칸 근처의 시골마을 레브도르 빌라에서 제 1차세계대전 회고록 'The World Crisis'를 쓰며, 그림을 그리는데 전념했다.
1924년 10월엔 에핑 의원으로 재선되어 총재로 임명되어 그림 그릴 시간이 줄었다. 하지만, 1927년 1월 지중해에서 휴가를 보내면서 몰타, 나폴리, 아테네, 로마 등지에서 틈틈히 그림을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여행할 때마다 이젤과 물감을 갖고 다녔다.
처칠은 누구의 영향을 받았을까? 영국 풍경화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부인 클레멘타인이 파리에서 만났던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폴 메이즈(Paul Maze), 자신의 어머니 초상화를 그려준 미국화가 존 싱거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그리고 바다 풍경화가 줄리어스 올슨(Julius Olsson)과 윌리엄 니콜슨(William Nicholson)의 작품을 연구하고, 흡수했다.
한때 로열아카데미오브아트(Royal Academy of Art) 전시에 가명으로 작품을 출품했지만, 1948년엔 로열아카데미오브아트의 공식 명예회원이 되며 화가로 인정받았다.
1890년, 16세의 윈스턴 처칠/ 처칠은 여행 중에 늘 이젤과 물감을 갖고 다녔다.
처칠은 1953년 총리 시절(1951-1955)회고록 '제 2차 세계 대전(The Second World War)'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해 강력한 후보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헤밍웨이는 이듬해 수상했다. 20대 초반 보어 전쟁 종군기자였던 처칠은 평생 43종의 책을 출판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1948년엔 자신의 화가로서의 삶을 담은 회고록 'Painting As a Pastime'을 출간했다. 샴페인과 시가를 즐겼던 처칠은 1965년 90세로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Winston Churchill, Bottlescape, c. 1926
"나는 컬러에 대해 공정한 척 할 수 없다.
찬란한 색깔들과 함께 기뻐하고, 불쌍한 갈색에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내가 천국에 가면, 그것은 첫 백만년 동안 그림을 그리는데 상당히 소요하며, 그래서 주제의 뿌리까지 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주황색과 주홍색이 가장 어둡고, 침침한 색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 너머에는 천체의 눈을 즐겁게 해줄 멋진 새 컬러들이 있을 것이다."
-Winston Churchill, Painting as a Pastime, 1948-
Winston Churchill, A Flat Calm on a High-Prowed Boat, c. 1925
안젤리나 졸리가 처칠 수상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매력이 넘치는 미녀 배우로 알고있었는데 그림을 사서 소장하는 사실을 컬빗을 통해 알았습니다. 그녀의 안목에 찬사를 보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