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1.05.05 18:48

(568) 이수임: 꼰대가 침묵하게된 이유

조회 수 137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11) 강 건너 불구경만 

 

꼰대가 침묵하게된 이유  

 

lee-kkondae-01.jpg

 

나도 역시 꼰대였다.

꼰대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환경적으로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단다. 꼰대 짓을 전혀 하지 않았던 친정 아버지를 닮은 나는 꼰대와는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하며 살았다. 주위에 꼰대 짓 하는 사람을 보면 아예 못 들은 척 대꾸를 하지 않거나 딴소리를 하다가 자리를 뜨곤 했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꼰대의 기질은 내재해 있다. 꼰대의 특징은 무조건 자기가 맞다고 주장하며 남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다. 지나간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자기 자랑을 많이 한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충고를 한다’는 등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나 또한 그런 부류의 행동이 없었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전혀 꼰대 짓을 하지 않고 조용히 살며 엄청 건강을 챙기는 친언니가 있다. 그녀가 나에게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백신 예약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다지 반가워하지도 않고 백신을 맞고 싶지도 않다는 투다. 

“한 사람이라도 빨리 주사를 맞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잘났다고 나는 언니에게 충고하며 꼰대 짓을 했다. 그로부터 2주 후, 내 글이 신문에 나오는 날 언니와 다시 통화했다. 

“맞았어요?” 

“아니” 

“왜 맞지 않는데. 무슨 사연이 있는 거야?” 

“나 인침 맞으려고.” 

“인침이 뭐야?” 

“하나님이 주시는 주사.” 

 

언니는 요한계시록을 늘어놓으며 코로나 백신과 666이 어쩌고저쩌고. The Epoch Times에서 얻어들은 이야기를 열거하면서 평상시와는 달리 방언하듯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능변을 토했다. 

“언니, The Epoch Times 혹시 파룬궁에 소속된 언론사 아니야?” 

“아니.” 

 

더 말 해봤자 먹혀들어 갈 틈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언니에게 인침을 놔 주신다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가 왜 걱정하며 꼰대 짓을 했던고. 잠시 깜빡했다. 무척 후회한다. 

 

‘꼰대들의 행동이 의욕을 떨어트리고, 꼰대로 인해 발생하는 조직의 손해를 꼰대 비용이라고 한단다. 꼰대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손실은 막대한 상황이란다.’ 

 

언니에게 꼰대 짓을 하다가 자매간의 의욕이 떨어졌고 꼰대 짓을 왜 했던고 후회하느라 정신적으로 손실을 봤다. 앞으로는 인침을 맞던 백신을 맞던 강 건너 불구경하듯 입을 다물어야겠다.

 

*"당신 주변에도 있나요? 꼰대" 외신 SNS에 전세계 누리꾼 관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9241537374628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
  • sukie 2021.05.06 22:11
    이수임 작가님, 반갑습니다. 꼰대를 고개를 끄덕이면서 잘 읽었습니다. 제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꼰대노릇을 합니다. 자존심을 건드리는 꼰대도 있고, 자기가 뭐나 되는듯이 꼰대노릇을 하는 칠푼도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나도 이런 부류의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나는 꼰대 자체를 잔소리로 치부해 버립니다. 꼰대는 존재감이 있지만 잔소리는 너 혼자 자꺼려라하고 놔두니까 약이 오르나 봅니다. 내말이 말같지않냐고 핏대를 내지만 답은 '응'입니다. 그리고 서로 픽 웃고맙니다. 이수임씨의 꼰대를 읽고 나니까 이수임 화가가 모든면에서 넉넉함이 묻어납니다.
    KKONDAE가 BBC에서 2019년에 오늘의 WORD로 선정됐었다니 많은 사람들이 꼰대로 인해서 stress를 받았나봅니다. 이수임씨의 삽화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