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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오른 '플란다스의 개' 두 버전을 보니...

빈곤, 예술혼, 정직, 우정, 상실...부조리한 사회의 잔혹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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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주제가 

https://youtu.be/g-E6_fS-h98

 

먼 동이 터오는 아침에

길게 뻗은 가로수를 누비며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이 길을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

하늘과 맞닿은 이 길을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 라랄라랄

랄랄라 랄랄라 랄라라라랄 라~~

 

1970년대 TV 만화 '플란다스의 개'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우유 수레를 끌고 가던 고아소년 네로(Nello)와 충견 파트라슈(Patrasche)의 이야기, 주제가는 생생하게 줄거리는 아련하게 남아 있는 '플란다스의 개'.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Barking Dogs Never Bite, 2000)'으로 추억을 소환했다. 

 

애니메이션 '플란다스의 개'는 1975년 일본 후지 TV에서 제작한 52부작이 오리지널(フランダースの犬)이었고, 동양방송(TBS)에서 방영했다. 이후 장편영화로 리메이크됐다. 장편 애니메이션은 유튜브에도 올라 있어서 한국어 더빙판과 영어 더빙판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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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영화> -한국어 더빙 

https://youtu.be/uZYcRtfNsoA

 

 

10대에 흑백 TV로 보았던 '플란다스의 개'를 50대가 되어 다시 보면서 이 만화영화의 매력을 다시 발견했다.

 

#배경: 이야기의 배경이 벨기에 안트와프이며, 주인공 네로는 푸른 언덕 위의 풍차와 교회가 있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외할아버지와 오두막에서 함께 살고 있다. 

 

#화가 지망생: 주인공 네로는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고, 안트와프의 미술대회에 참가하고 싶어 한다. 원작자가 미술에 대한 열정을 네로를 통해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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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폴 루벤스 작 성화 3점을 소장한 벨기에 안트와프의 대성당/ 루벤스의 제단화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대성당 앞 Tist(Batist Vermeulen)의 조각 'Nello & Patrasche'(2016).  http://studiotist.be

 

#루벤스 성화: 네로는 안트워프 대성당(Cathedral of Our Lady, Antwerp)에서 피터 폴 루벤스(페테르 파울 루벤스, 1577-1640)의 걸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The Descent from the Cross, 1612-1614)'를 보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가난한 네로는 금화 1냥을 내야하는 그림을 볼 수 없었다. 안트워프 대성당에는 루벤스의 3단 제단화 '십자가를 세움(The Raising of the Cross, 1610-11)'과 '성모 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Mary, 1626)'까지 세점이 소장되어 있다. 

 

#계급 갈등: 네로는 돈이 없어서 성화를 볼 수 없었으며, 부유한 풍차 방앗간집의 집 딸 아로아(Alois)와 우정을 나누었지만, 계급 차이 때문에 서글픔을 당했다. 아로아의 아버지의 눈에 그림은 게으른 자들의 몫이었다. 또한, 네로가 참가한 미술대회 우승자는 연줄이 있는 부자집 소년에게 주어진다. 원작자는 부패하고,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가족애: 가족 관계에 대해서도 교훈을 준다. 가난하지만, 외할아버지는 네로의 재능을 격려해준다. 할아버지는 "좋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숨을 거둔다. 한편, 부자인 아로아의 아버지 코제트는 가난뱅이 네로를 경멸하고, 딸을 과잉보호하며, 이들의 우정을 짓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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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영화> -한국어 더빙 https://youtu.be/uZYcRtfNsoA

 

#동물애: 플란더스 토종의 개 파트라슈는 그릇 장수의 학대로 쓰러져 있다가 발견되어 네로와 할아버지의 집에서 머물며 우유배달을 한다. 주인 그릇 장수는 짐꾼으로 파트라슈를 학대하고 버린 후에도 소유권을 주장하는 비정한 인물이다. 사랑을 베푸는 자만이 가족이 될 자격이 있을 것이다. 

 

#화재(Burning): '플란다스의 개'에서는 풍차 방앗간에 화재가 발생하고, 네로가 방화범으로 추궁당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Burning, 2018)에선 비닐하우스를 불태우는 것이 취미인 벤이 나오며, 리 아이삭 정 감독의 영화 '미나리(Minari, 2019)'에서 순자 할머니의 실수로 농장에 불이 난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는 가난에 찌들었고, 무시당했으며, 미술을 혼자 공부했으며, 미술대회 우승을 부잣집 아들에게 빼앗긴다. 원작자 위다는 화재로  통열하게 계급과 부조리한 사회에 응징하는듯 하다. 불은 일종의 카타르시스이자 새출발을 의미하는 메타포처럼 보인다.   

 

#크리스마스 이브, 비극적 결말: '플란다스의 개'는 할리우드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처럼 솜사탕같은 해피 엔딩이 아니다. 잔혹하고, 비극적인 결말로 끝난다. 집에서 내쫒긴 네로는 크리스마스 이브 대성당에서 루벤스의 그림을 본 후 파트라슈 옆에서 눈을 감는다. 다시는 추울 일도, 슬플 일도, 배고플 일도 없는 나라로 간다. 자신의 유일한 소망이었던 루벤스의 성화를 본 후에 파트로슈와 천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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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란다스의 개' 원작자 위다/ 영문판 동화/ 최남선 한글 번역판(1912)/ 봉준호 감독의 풍자 영화(2000)

 

#원작자: 이 일본 애니메이션은 영국 여성 작가 위다(Ouida, 1839-1908)의 소설이 원작이다. 위다의 본명은 마리 루이즈 드 라 라메(Marie Louise de la Ramée)로 1872년 '플란다스의 개(A Dog of Flanders)'를 출간했다. 위다는 애견가였으며, 페미니스트로 풍차 방앗간집 딸 알로아를 당당한 캐릭터로 그렸다. 알로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아 소년 네로의 재능과 착한 마음씨를 알아보고 지켜준다.

 

#최남선 한국어 번역 동화: 놀랍게도 식민치하 1912년 육당 최남선이 '플란다스의 개'를 한국어로 번역했다. 네로는 호월이, 파트라셰는 바둑이, 아루아는 애경이로 개명해 '불쌍한 동무'(신문관)로 출간됐다. 

 

#할리우드 영화: 1924년 재키 쿠간 주연 영화를 비롯, 1935년, 1959년, 1999년 존 보이트(안젤리나 졸리 아버지)와 셰릴 라드 주연의 영화로 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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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g of Flanders(1997) by Yoshio Kuroda <영화>-영어 더빙 https://youtu.be/RMXm_qZvpMs

 

#일본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는 일본 후지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일본, 한국과 필리핀에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1997년 송죽(쇼치쿠) 영화사에서 요시오 구로다 감독이 극장용 장편영화 'The Dog of Flanders'를 연출했다. 수녀가 된 아로아가 회상하는 이야기다. 재즈 싱어 다이안 리브스(Dianne Reeves)가 부른 영어 주제가 "When I Cry"에 영어 더빙판이 유튜브에 올라 있다. 

 

#네로와 파트라슈 동상: 2016년 벨기에 작가 티스트(Tist/ Batist Vermeulen)가 제작한 조각 'Nello & Patrasche'가 안트워프 대성당 앞에 설치됐다. 네로와 파트라슈는 포옹한 채 자갈 담요를 덮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다. 가혹한 세상 속에서 서로 의지했던 두 친구의 우정이 영원하리. All Dogs Go to Heaven.  해피 엔딩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디즈니가 결코 만들 수 없는 스토리의 두 주인공은 아시안팬들을 맞고 있다.   

 

*플란다스의 개 <영화> -한국어 더빙

https://youtu.be/uZYcRtfNsoA

 

*The Dog of Flanders(1997) by Yoshio Kuroda <영화>-영어 더빙

https://youtu.be/RMXm_qZvp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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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5.26 22:28
    반세기도 훨씬 더 지난 중학교 때 우리반에서 한글 번역으로 "플란다스의 개-집없는 소년"이란 제목으로 이 친구에서 저 친구로 돌아가면서 읽었습나다. 너무 슬퍼서 눈물을 닦고 또 닦고했던 기억이 납니다. 명작이란 오랜 세월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서 카타르시스(catharsis)를 느끼게 합니다. "플란다스의 개"를 읽은지가 1950년대였는 데 가슴에 남아 있다니 눈물을 많이 흘려서일까요?
    소설에서만이 아닌, 가난은 사랑마저도 빼앗고, 사랑도 할 수없는 계급사회가 아직도 주위에 있어서 마음이 아립니다.
    -Elaine-
  • 마리아 2021.06.01 04:58
    서울에 사는 50대(여) 입니다. 우연히 이 사이트에 들어와 본 이후 북마크 해 두고 가끔씩 뉴욕 문화와 분위기를 즐기던 중, 이 기사는 몹시
    뭉클한 감동을 전해주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sukie 2021.06.02 01:46
    마리아님, 멀리서 뉴욕컬처비트를 방문해주시고, 따뜻한 댓글도 달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