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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Food Obsession <20> Marie Antoirnette's Diet 

 

'베르사이유의 장미'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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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Antoinette(2006) directed by Sofia Coppola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rnette, 1755-1793)는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와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란츠 1세의 16자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본명은 Maria Antonia Josepha Johanna. 어려서부터 불어와 이태리어를 배우고, 하프를 연주하며, 미술 공부를 하면서 성장했다. 1762년 6살 짜리 모차르트(1756-1791)가 궁궐에 왔다가 넘어지자 동갑내기 마리 공주가 일으켜주었다. 모차르트는 마리 공주에게 반했다. 연주가 끝난 후 테레지아 여제가 모차르트에게 보상으로 무엇을 원하냐고 물었더니 마리 공주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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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트와네트와 모차르트/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만나는 모차르트. Archduke Joseph introduces the young Wolfgang Amadeus Mozart to Maria Theresia

 

오스트리아 공주 마리는 14살 때 한살 많은 프랑스의 루이 15세의 왕세손 루이 오귀스트와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정략 결혼하게 된다. 1774년 루이 15세가 서거한 후 남편이 20살로 즉위해 프랑스 왕비의 자리에 올랐다. 

 

프랑스의 국모, 19살의 앙투아네트는 도자기 같은 피부와 탐스러운 머리, 날씬한 몸매의 유럽의 유행을 선도했다. 그녀의 별명은 '베르사이유의 장미'. 당대를 풍미한 로코코 스타일의 화사하고, 로맨틱한 패션(레이스, 러플, 꽃장식, 리본, 어깨노출, 머리 분칠 등)과 인테리어(파스텔 색조, 화려한 문양 등)를 감독했으며, 마리의 큰 가슴을 본딴 샴페인 잔도 만들어졌다.  

 

1789년 프랑스 경제가 최악에 직면하면서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며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됐다. 그해 10월 파리의 빵값이 치솟으며 7천여명의 분노한 아낙네들이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해 행진했다. 이들이 "빵을 달라"고 하자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Qu'ils mangent de la brioche!)"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 프랑스어로는 부드러운 빵 브리오쉬, 밀가루가 적게 들어가는 빵이다. 브리오쉬가 영어로 케이크로 번역되면서 앙투아네트는 악녀가 된 것이다. 

 

1793년 1월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국고낭비, 오스트리아와 결탁, 루이 16세 타락 혐의, 백성 기만, 프랑스 멸망 시도, 전쟁 유발 등 반역 음모 혐의로 콩세르쥬리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0월 38세 생일을 2주 앞두고 머리카락이 잘린 채 콩코드 광장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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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eph Ducreaux, Marie Antoinette at the age of thirteen, 1769/ É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 Marie Antonine with a rose, 1783/ Élisabeth Louise Vigée-LeBrun, Portrait of Marie Antoinette with Her Children, 1787, Palace of Versailles, Versailles, France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르사이유를 '사치와 환락의 궁전'으로 만든 프랑스 파산의 원흉으로 알려져 있지만,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정치로 때 남성들에 의해 왜곡, 과장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실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 '쁘띠 트리아뇽(Petit Trianon)을 정원, 동굴, 작은 폭포 등이 있는 시골처럼 꾸미고 목가적인 소박한 생활도 즐겼다. 취미가 프랑스식 농사짓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군은 마녀사냥이 필요했고, 오스트리아 출신 마리 앙투아네트에겐 적이 많았다. 

 

16세기 남미에서 유럽으로 보급된 감자는 당시 프랑스에서 '악마의 음식'이라 불리웠다. 감자싹인 솔라닌을 먹고 사망한 사람들이 속출했기 때문. 유럽에 대기근이 시작되자 마리 앙투와네트는 모자에 감자꽃을 꽂아 백성에게 홍보하는 한편, 제빵학교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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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 Antoinette(2006) directed by Sofia Coppola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 감독의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2006)에서는 마카롱과 퐁당(fondant, 아이싱)을 넣은 페이스트리, 그리고 샴페인이 이어지는 축제로 묘사했다. 

 

'마리 앙투와네트 다이어트: 케이크를 먹어라 그리고, 여전히 체중을 줄여라(The Marie Antoinette Diet: Eat Cake and Still Lose Weight, 2014)'의 저자 카렌 휠러(Karen Wheeler)는 앙트와네트 왕비가 아침식사로 커피나 핫초콜릿(코코아)과 함께 페이스트리를 즐겼다고 한다. 달달한 페이스트리와 고향 비엔나에서 자라면서 먹던 크롸쌍을 즐겨 먹었다. 사실 크롸쌍은 13세기경 오스트리아에서 처음 만들어져 마리 앙트와네트가 프랑스에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콜릿광이었던 앙투와네트는 자신이 원하던 맛을 위해 베르사이유에 초콜리티어를 운영했다. 특히 휩드 크림이나 오렌지꽃 향미가 담긴 액체 초콜릿을 좋아했다. 베르사이유 궁전 안에는 오렌지 나무 온실도 마련해 주스로 마실 뿐 아니아 화장용으로도 사용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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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arie Antoinette(2006) directed by Sofia Coppola

 

그녀의 점심식사는 거대했다. 파테(Pâté, 돼지 간이나 조류, 혹은 생선 등을 갈아 향신료와 와인 등을 섞어 반죽으로 길게 만들어 구운 요리), 굴, 랍스터가 나온 후 스캘롭(가리비), 오리, 연어, 빵가루를 입혀 조리한 푸아그라(fois gras), 토끼탕이 메인 디쉬로 나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치즈, 마카로니, 크림을 넣고 조리한 야채를 간식으로 먹었다. 디저트로는 프티 푸르(petits fours, 한입 크기의 과자나 케이크), 설탕절임 과일, 웨하스(wafers)가 제공됐다. 

 

휠러에 따르면, 이처럼 루이 16세의 궁정은 칼로리가 높은 호화 요리가 이어졌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의 허리 사이즈는 23인치(58센티)를 유지했다. '패션의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는 혁명에 무엇을 입었나(Queen of Fashion: What Marie Antoinette Wore to the Revolution, 2006)'의 저자 캐롤라인 웨버(Caroline Weber)는 "프랑스 궁정에서 강요됐던 뻣뻣한 고래뼈 코르셋을 착용할 필요없이 충분히 날씬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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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파리 여행 중 둘러본 베르사이유 궁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로 가득한 룸.

 

마리 앙투와네트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는 현대에도 진리지만, 바로 가벼운 저녁식사다. 왕비는 저녁에 보통 삶거나 구운 닭 혹은 뿔탉(guinea fowl, 기니아 새)와 함께 익힌 야채와 간단한 야채수프(채수, vegetable broth)으로 조금만 먹었다. 둘째, 18세기 말 베르사이유는 배관시설이 결여되어 냄새가 진동해 식욕을 억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소피아 코폴라의 영화에서 묘사된 것(샴페인 즐기기)과는 달리 마리 앙투와네트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으며, 레모네이드에 비스킷을 담가 먹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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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 Marie Antonine in a chemise dress, 1783, Hessische Hausstiftung, Kronberg, Germany / Élisabeth Louise Vigée Le Brun, Self-Portrait, 1790, Gallerie degli Uffizi, Corridoio Vasariano, Florence, Italy

 

마리 앙투와네트는 음악에 조예가 깊어 궁정에 최신 오페라를 공연하고, 배우로 출연도 했다. 또한, 당대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비제-르브룅(Élisabeth Vigée Le Brun, 1755-1842)을 궁정화가로 발탁해 초상화를 그리게 했다. 마리 앙투와네트가 아니었다면, 동갑내기 초상화가 비제-르브룅은 미술사에서 잊혀졌을지도 모른다. 르브룅은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자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 헝가리, 러시아 등지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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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1.08.09 22:35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영화"마리 앙토아네트"를 오래전에 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앙토아네트 왕비가 눈부시게 아름답고 의상과 머리 스타일이 화려해서 그것을 유지할려면 다른 일은 아무 것도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저런 의상과 머리를 가꾸는데는 돈과 시간이 엄청 들텐데, 언제 백성을 생각하고 돌보겠냐며 혼자 중얼거리고 더 나아가서 그녀를 증오했던 기억이 납니다. 왕비의 입에서 "초코렛 초코렛"하는 대사도 기억에 남네요. 이렇게 아름답고,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38살이란 짧은 생애를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사실을 보면 "허무"라는 어휘가 실감납니다. 마리 앙토아네트 왕비가 오페라를 좋아했다고 하는데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이신 테레사 여욍의 DNA를 받아서일까요?

    주말을 맛있게 보냈습니다. 냉면을 좋아해서 자주 해먹습니다. 동치미 냉면을 사다가 사리를 끓는 물에 50초정도 삶아서 찬물에 건져놓고 냉면 그릇에 사리와 육수를 붓고 배즙을 넣고 수박 한조각, 노란 참외 한조각, 조선오이를 반개 채썰고 삶은 달걀 반쪽과 겨자와 깨소금을 약간씩 넣고 사리 위에 얹으면 오색냉면이 됩니다. 색과 맛이 어울려서 한그릇을 뚝딱 비웁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