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영화제 리뷰 (6) 파워 오브 독(The Power of the Dog): 제인 캠피온의 '말보로 맨' ★★★☆
NYFF 59 (9/24-10/10) <5> The Power of the Dog ★★★☆
'파워 오브 독' 미궁에 빠진 카우보이의 섹슈얼리티
제인 캠피온 마초 영화로 베니스 영화제 감독상 수상
*'파워 오브 독' 예고편
https://youtu.be/ELvKuuXdfCU
1993년 뉴질랜드 감독 제인 캠피온(Jane Campion, 67)은 '챔피온(Champion)'이었다. '피아노(The Piano)'로 여성영화 감독 최초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 첸카이거 감독의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霸王別姬 와 공동 수상)을 석권했다. 뿐만 아니라 제작비 7백만 달러를 들인 '피아노'는 미국 내에서만 1억4천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여성감독으로 작품성과 상업성의 두 마리 토끼를 거머쥔 세계적인 거장 대열에 오른 것이다.
제인 캠피온은 화려한 비주얼과 인간의 본능 묘사에 탁월하다. 오페라/연극 연출가였던 아버지와 배우 겸 작가였던 엄마 덕분에 연극계에 통달했지만, 대학에선 인류학을 전공한 후 회화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회화의 한계에 부딪힌 캠피온은 영화 매체에 매료된다. 1986년 9분 짜리 단편 '오렌지 껍질(Peel)'로 칸 영화제에 입성해 여성감독 최초로 단편 황금종려상을 품에 안았다.
제인 캠피온의 장편 영화 포스터. 왼쪽부터 '스위티' '내 책상 위의 천사' '피아노' '여인의 초상'.
이후 장편 데뷔작 '스위티(Sweetie, 1989)',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 1990)', '피아노' 그리고 니콜 키드만 주연의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ny, 1996)'까지 제인 캠피온은 여성의 정체성과 자아 찾기를 탐구해온 페미니스트 감독이다. 2008년 영국 시인 존 키츠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사극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 2009)'는 그의 명성에 비해 실망작이었고, 캠피온은 영화계를 떠났다.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트윈 픽스(Twin Peaks)'같은 TV 미스테리 드라마 시리즈 'Top of the Lake'와 속편 연출에 몰두했다.
12년이라는 그토록 오랜 부재 끝에 캠피온은 시네마로 복귀했다. '피아노'의 뉴질랜드 해변과 여인 이야기에서 벗어나 몬타나 목장의 말보로 맨(Malboro Man) 이야기 '파워 오브 독(The Power of the Dog)'이다. 캠피온은 이 영화로 지난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The Power of the Dog by Jane Campion, NYFF59
"나를 칼날에서 건져 주시고, 하나밖에 없는 이 소중한 생명을 개와 같은 저 원수들의 세력에서 구해주소서.
(Deliver me from the sword, my precious life from the power of the dog!).”
-Psalm 22:20-
1920년대 몬타나의 목장을 운영하는 카우보이 필(베네딕트 컴버배치 분)과 조지(제씨 플레몬스 분) 버뱅크 형제 이야기다. 마초맨 필은 사악하다. 동생 조지를 '뚱뚱이(Fatso)'라 부르고, 동생의 부인이 된 여인숙 주인 로즈(커스틴 던스트 분)을 "싸구려 사깃꾼(You're a cheap schemer)"라며 능멸하고, 로즈의 피아노 연주를 자신의 밴조 연주로 망친다. 로즈의 아들 피터(코디 스미트-맥피 분)가 접은 장미꽃을 불태우고, 그를 'Miss Nancy"라고 놀린다. 로즈의 의사 남편이 자살한 것도 필이 치욕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목장 방문을 앞두고 목욕을 제안하는 조지에게 필은 소리지른다. "나는 냄새 나지, 근데 난 그게 좋아!"
The Power of the Dog by Jane Campion, NYFF59
그런데, 왜 필은 사악한 카우보이가 됐을까? 누가 그의 야만성을 잠재울 수 있을까? 필의 멘토였던 '브롱코 헨리(Bronco Henry)'와는 어떤 관계였을까?
영화는 주인공 필의 잔혹한 행동에 대한 설명, 그의 섹슈얼리티나 트라우마에 대한 묘사가 미약하다. 암시만 있을 뿐이다. 장편 소설의 대하 드라마를 스크린에 옮기면서 캐릭터들의 비밀은 미궁 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제인 캠피온 감독은 언론 시사회 후 대화 시간에서 캐릭터가 "복잡하다"고 몇차례 반복하며, 각색의 어려움을 시사했다.
오늘날 남성 감독들이 레즈비언 이야기를 더 대담하고, 노골적이며,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는 반면, 여성 감독의 게이 스토리는 은닉되거나, 베일에 가려진듯 하다. 여전히 여성 감독의 카메라 앞에서 동성애자는 클로젯 안에 갖혀있다고나 할까? 몬타나의 대자연은 알고 있을 것이다.
The Power of the Dog by Jane Campion, NYFF59
필 역의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아마도 생애 최고의 역이 될지도 모른다. 그가 스크린에 등장할 때마다 또 어떤 잔인무도한 행위를 할지 아슬아슬할 정도로 실감나는 눈빛, 제스추어로 열연했다. 필의 캐릭터가 보다 탄탄하게 그려졌더라면, 필은 잊혀지지 않는 스크린의 악한으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살찐 맷 데이먼같은 제씨 플레몬스는 아역배우 출신으로 커스틴 던스트의 실생활에서 두 아이를 낳은 파트너이기도 하다. 과묵하나 동정심 있는 조지 역의 플레몬스가 던스트와 스크린에서 절묘한 호흡을 맞춘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필과 형제라는 것에는 여러모로 신빙성이 떨어지는 얼굴이다. 커스틴 던스트는 마초 세계에서 미아 패로같은 섬세하고, 연약한 서부의 여인으로 변신했다.
제인 캠피온은 원래 로즈 역에 '핸드메이즈 테일(Handmaid's Tale)'의 엘리자베스 모스를 캐스팅할 예정이었지만, 스케줄 때문에 커스틴 던스트로 교체되었다. 이와 함께 조지 역도 폴 다노(Paul Dano)에서 던스트의 파트너 제씨 플레민스에게 돌아갔다. 엘리자베스 모스와 폴 다노는 이 영화에 보다 다이나믹한 케미스트리를 보여주었을 것 같다. 한편, 피터 역의 코디 스미트-맥피는 키다리에 큰 눈동자의 창백한 청년으로 '사이코'의 안소니 퍼킨스를 연상시키는 미스테리에 필과 성적인 야릇한 긴장감을 발산하는데, 성공한듯 하다.
The Power of the Dog by Jane Campion, NYFF59
영화 '피아노'에서는 마이크 나이만(Mike Nyman)의 영혼을 두드리는듯한 최면적인 멜로디가 긴 여운을 남겼다. 필, 조지, 로즈, 피터...4인조의 드라마 '파워 오브 독'에서 조니 그린우드(Jonny Greenwood)의 배경 음악은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의 불협화음으로 억압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Radiohead)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는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다니엘 데이 루이스 주연의 스릴러 '피가 있을지어다(There Will Be Blood, 2007)'와 하루키 원작, 트란 안 홍 감독의 멜로 드라마 '상실의 시대(Norwegian Wood, 2010)'의 음악을 맡은 바 있다.
'파워 오브 독'은 대자연이 단순한 병풍이 아니라 캐릭터로 숨쉬는듯한 서부극이다. 여성 촬영감독 아리 웨그너(Ari Wegner)은 스펙터클한(배경은 몬타나, 실제 촬영은 뉴질랜드) 산세와 빛이 흐드러지는 숲까지 수려하게 담아냈다.
엘리아 카잔 감독의 영화 '에덴의 동쪽(East of Eden, 1955)'에서는 농장주의 반항아 아들 칼(제임스 딘)은 아버지의 신임을 얻는 모범생 형 아론의 약혼자(줄리 해리스)와 친밀해진다. '존 스타인벡의 소설 '에덴의 동쪽'은 성경에서 양치기 동생 아벨(Abel)을 살해하는 형 카인(Cain)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쓰여졌다. '파워 오브 독'에서 필과 조지 형제는 맹자의 성악설(性惡說)과 순자의 성선설(性善說)의 전형적인 인물로 보인다. 야만스럽고, 잔혹한 필은 악한 성품의 화신이며, 관대하고, 매너 좋은 조지는 측은지심이 있는 선한 인간이다.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서 카메라는 두개의 창문 통해 바깥 자연 풍경을 트래킹 숏으로 담는다. 이것은 필과 조지가 보는 다른 세계에 관한 메타포일까?
데니스 림 NYFF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열린 '파워 오브 독' 감독, 배우, 촬영기사와의 대화.
10월 1일 언론 시사회 후 뉴욕영화제 프로그래머 데니스 림의 사회로 제인 캠피온 감독과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 커스틴 던스트, 코디 스미트-맥피, 그리고 촬영감독 아리 웨그너와의 대화 시간이 열렸다. 페미니스트 캠피온 감독은 커스틴 던스트와 생일이 같다면서(4월 30일) "이게 우리 여자들이 일하는 방식"이라며 파안대소를 했다. 127분. 11월 17일 개봉. 12월 1일 넷플릭스 스트리밍.
The Power of the Dog
FRIDAY, OCTOBER 1 6 PM/ 9 PM
SATURDAY, OCTOBER 9 12 PM
https://www.filmlinc.org/nyff2021/films/the-power-of-the-dog
Jane Campion이란 여성 거장감독에 대해서 자세히 써주셔서 잘 읽었습니다. 세계적 감독의 대열에 오르기까지 그녀가 영화에 쏟은 정열이 대단함을 느꼈습니다. 칸 영화제에서 피아노로 여성최초로 화금종려상을 탄 실력파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Power of Dog'으로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으니 성별을 떠나서 거장감독임을 증명했습니다. 아카데미 감독상도 머지않아 타게되는 기쁜 소식을 기대합니다. 여성의 정체성과 자아찾기를 탐구하는 캠피온 감독에게 박수갈채를 보냅니다. 이 큰 과제를 어디까지 탐구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도 여성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한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단순히 모성애와 자손을 보존하는 역할이 여성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네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