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와의 랑데부 (4) 발자크 원작 '잃어버린 환상(Lost Illusions)' ★★★★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3/3-13)
2022 프랑스 영화와의 랑데부 <4> 발자크 원작 '잃어버린 환상(Lost Illusions)' ★★★★
순수한 청년시인, 어떻게 '기레기'로 전락했나?
Lost Illusions /Illusions Perdues by Xavier Giannoli/ Auguste Rodin, Monument to Balzac, 1898 (cast 1954), MoMA Collection
*Lost Illusions by Xavier Giannoli 예고편
https://youtu.be/fc68AURE-O0
부끄럽게도 프랑스 대문호 오노레 드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의 소설 한편 읽어본 적이 없고, 로댕의 위풍당당한 발자크 조각으로 더 친숙하다. 2022 링컨센터 프랑스영화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2)에서 상영되는 '잃어버린 환상(Lost Illusions /Illusions Perdues, 2021)'은 동명의 발자크 소설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오늘날도 다를 바 없는 배금주의, 출세주의, 계급 갈등, 부정부패, 거짓 뉴스와 대중조작 등을 다룬 프랑스 사극이다.
자비에르 지아놀리(Xavier Giannoli) 감독이 직접 각색한 '잃어버린 환상'은 나폴레옹이 세인트헬레나섬에서 유배중 사망하고, 루이 18세가 집정하던 1821년이 배경이다. 시골 출신 가난한 청년 루시앙 드 뤼방프레(벤자민 보이신 분)은 시인 지망생이다. 예술가에겐 돈이 없고, 부자들에겐 재능이 없다. 부자 남편은 사냥에 빠졌고, 외로운 부인은 젊은 예술가를 후원하다가 그와 사랑에 빠진다. 출세를 꿈꾸는 루시앙은 귀족 부인 에밀리(세실 드 프랑스 분)와 파리로 도피해 애정행각을 벌인다. 평민의 흔적인 아버지성 샤르동 대신 어머니 성 뤼방프레를 취하고 제 2의 삶을 개척한다.
Lost Illusions /Illusions Perdues by Xavier Giannoli
당시 파리 거리는 쓰레기 천지였다. 지아놀리 감독은 화장실이 없었던 그 시대 오물과 진흙탕이 가득한 거리, 남성들의 부츠, 여성들의 향수 광고를 보여준다. 거리 뿐만 아니라 사실 정치, 언론, 출판계도 부패했다. 당시엔 돈 자체가 '귀족'으로 취급됐으며, 신문과 만평은 막강한 힘을 자랑했다. 펜이 칼보다 강했던 시대이자, 돈에 매수당한 언론인들이 대다수였고, 대중은 활자에 나오는 루머, 비평, 모든 것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작가를 꿈꾸던 루시앙은 기자가 되어 돈의 맛을 보게 된다. 루시앙의 책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출판인(제랄 드빠르디유 분)이 돈을 싸매고 찾아오고, 오페라 공연 기사는 돈에 따라 찬사와 혹평이 갈린다. 극장에는 박수부대와 야유부대가 준비되어 있다. 모든 것이 돈과 연줄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루시앙은 마침내 문장을 매춘하는 기자로 추락한 것이다. 즉, '기레기'로 전락한 것이다. 매춘부 출신 배우 코랄리(살로메 디와엘스 분)와 결혼한 루시앙은 부인이 장 바티스트 라신(Jean Baptiste Racine)의 작품 주역으로 발탁시키는 힘을 발휘하지만, 결국 돈의 권력으로 자멸을 자초하게 되는데...
Lost Illusions /Illusions Perdues by Xavier Giannoli
발자크는 32세 차이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소르본대 법대를 졸업했다. 법률가 대신 작가를 지망하자 부모의 재정지원이 중단됐다. 그즈음 발자크는 나폴레옹 동상에 "이 자가 칼로 이룬 것을 나는 펜으로 이룰 것이다!"라는 낙서를 했다고 한다. 발자크는 본명 대신 필명으로 통속소설을 쓰면서 22세 연상의 명문가 부인을 비롯, 공작 부인 등 후원자들과 연애를 했다. 인쇄업과 출판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후 빚더미에 올라 수도복처럼 긴옷을 입고, 하루 50여잔의 커피를 마시며 15시간씩 글을 써서 20여년간 '인간희극' 등 97권을 냈다.
당대 거칠은 문체로 비도덕적인 인간군상을 염세주의, 회의주의 시각으로 묘사한 발자크는 당시 대중의 인기를 누렸지만, 비평가들은 혹평했다. 이에 대한 발자크의 대답이 '잃어버린 환상'인 것이다. 그러나, 후대 도스토예프스키, 오스카 와일드, 빅토르 위고 등은 그를 찬미했다. "사람의 얼굴은 하나의 풍경이요, 한권의 책이다"라고 말한 발자크는 풍자적이며 사실주의적 소설의 대가로 프랑스 문학사에 커다란 획을 그었다.
발자크의 반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환상'의 영화판은 시대를 초월한 젊은이의 야망, 계급갈등, 언론과 정치의 부패, 예술의 잣대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드는 영화다. 루시앙 역의 벤자민 보이신을 비롯, 소설가 역의 자베에 놀란, 부패 신문사 발행인 뱅상 라코스테의 3인조 연기는 수려하다. 하지만, 귀족 부인 에밀리 역의 세실 드 프랑스의 공허한 눈빛과 배우 코랄리 역의 징징거리는 살로메 디와엘스의 연기가 이에 대응하지 못한다. 그래도, 출판사 대표 제라르 드빠르디유의 존재감은 연기의 불균형을 살린듯 하다. 발자크를 첫 대면하기에는 대만족스러운 작품이다. 149분.
Tuesday, March 8, 9:00pm, Friday, March 11, 6:00pm
https://www.filmlinc.org/films/lost-illusions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March 3-13, 2022
Walter Reade Theater (165 West. 65th St.)
https://www.filmlinc.org/festivals/rendez-vous-with-french-cinema
올려주신 발작크 원작영화 잃어버린 환상을 읽었습니다.
야심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움이라는 것을 알겠네요. 주인공 뤼시앙의 야심이 하나하나 타락하면서 망가지는 것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바 없네요. 배금주의와 거짓이 항상 우리가 사는 사회에 존재함은 어쩔 수 없는 사실임을 잘 나타낸 영화이네요. 대문호 발작크의 작품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