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610) 허병렬: 이름에 실린 바람
은총의 교실 (75) About Names
이름에 실린 바람
모모푸쿠 요리사 데이빗 장의 한국 이름은 장석호, 유튜브 요리사 '망치 여사'의 본명은 김광숙, 영어명은 에밀리 김이다.
우리에겐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을 수록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자유가 많아도 도저히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것 세가지가 있다. 첫째는 태어나는 민족이나 국가이다. 둘째는 남녀의 성별이다. 셋째는 자기 이름이다.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어드 민족의 남자나 여자로 태어나서 어떤 이름을 꼭 가지겠다고 원하여도 그것을 이룰 수는 없다. 요즈음 후천적으로 국적이나 이름을 선택하는 일이 있어도 일반화된 일은 아니다.
미국에 이민온 한국인을 생각해 본다. 어느 기간이 지나 절차를 밟아 미국시민이 되었다고 하자. 시민이 되면서 미국 이름으로 바꿨다고 하자. 이는 후천적으로 국적과 이름을 바꾼 것이다. 여기에 2세들이 태어나서 아예 처음부터 미국 이름으로 시민권을 받게 되낟. 이럴 때 성만 빼고는 서류상으로 일반 미국인과 똑같다. 한국 학교에 나오는 학생의 대부분은 한국식과 미국식의 두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중에서 한국 이름은 주로 가정과 한국학교 용이고, 미국 이름은 주로 미국 학교용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하겠다.
때로는 미국 이름만 가진 학생도 있다. 그럴 때는 한국 이름도 따로 지어주시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한다. 그만큼 한국 이름이 가지는 뜻이 크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가 상당 부분에서 정반대일 때가 많은데, 성명의 경우도 그렇다. 미국 이름은 사전 맨 뒤에 알파벳 순서에 따라 나와있을 정도로 그 숫자가 적다. 그것은 참고자료일 뿐이고, 각자가 짓는 개성적인 이름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보다는 이름의 수효가 훨씬 적다고 본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같은 이름이 많다. 하지만, 한국은 성과 이름의 수효가 반대이다.
성씨의 수효는 3백이 못되지만, 성 밑에 붙어다니는 이름의 수효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 이유는 성은 대대로 이어지지만, 이름은 부모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그많은 김씨, 이씨, 박씨를 어떻게 구별하느냐는 미국 사람의 질문을 곧잘 받지만, 성과 이름을 붙이면 똑같은 때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조부모나 부모가 창작한(때로는 작명사의 도움도 받지만) 이름에는 각별한 소망이 가득 담겨 있다. 오복을 상징하는 뜻깊은 한자를 찾아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고유한 한국말 중에서 부모의 기원이 담긴 고운말을 선택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한국 이름을 보면서 그 부모들의 자녀에게 바치는 사랑과 정성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들이 한국 이름도 가지기를 희망한다. 그들이 자라면서 부모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 싶다. 부모의 끝없는 사랑을 느끼게 하고 싶다. 때로는 학생들에게 한국 이름이 가지는 뜻을 부모에게 듣고 오라는 숙제도 내준다. 그들은 샛별같은 눈을 반짝이며 제 이름이 가진 뜻을 내게 알려준다. 이름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우주 속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과 모든 현상에는 제각기 다른 이름이 있다. 내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맙고 반갑다. 그렇다면 다른 자연물이나 사람의 이름도 바르게 불러야하지 않겠는가. 이름이란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름 사랑의 이유가 있다.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대신하는 이름을 사랑과 자랑으로 대하게 되며, 이름에 상처가 가지않도록 노력하게 된다. 이런 현상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으로 이어진다. 이 만큼 이름을 소중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국 이름이 불려도 대답을 못하던 학생들이 요즈음은 "네"하는 대답에 익숙해졌다. 이런 경향이 한국문화에 가까이 가는 첫걸음이라고 본다. 이름이 두 가지 있어서 거치적거릴 것도 아니다. 본인이 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대로 불리우면서 특별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도 거주지를 바꾼데 따르는 변화이다.
말하자면 미국식 이름이 있더라도, 한국식 이름을 갖도록 권한다. 한국식 이름으로 불릴 때마다 한국혼을 불어넣을 수 있는 귀한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철이야, 고운아, 보람아, 복길아, 나리야...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허 선생님이 아이들을 한국이름으로 부르는 그 목소리 속에서 한글사랑과 한국의 얼을 깊게 느끼면서 선생님을 우러러 봅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