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0 K-Art 단색화 부활하다
33 Keys to Decoding the Korean Waves #20 Korean Monochrome Painting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0 K-Art: 단색화(Dansaekhwa) 르네상스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5대 거장의 부활
Park Seo-Bo's works,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2015, Christie's New York Photo: The Korea Society
고려청자의 나라에서 단색화의 한국으로
"벽옥처럼 푸르고, 수정처럼 찬란한"
고려의 명문장가 이규보(1168-1241)는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찬미했다. 예전에 미국의 메이저 미술관에서 'Korea'하면 고려청자(Goryeo Celadon)의 나라,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 정도로 인식됐다.
그러나, 이제 세계 미술계는 한국 현대미술에 열광하고 있다. 1970년대 독재 하에서 캔버스와 마주하며 수행했던 한국의 단색화 거장들이 40여년만에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박서보, 고 윤형근, 정상화, 고 정창섭, 하종현 화백, 5인방이 K-Art 한류를 이끄는 단색화 거장들이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광복을 거쳐 한국전쟁, 이후 군사 독재와 민주화 운동, 그리고 디지털 시대를 겪은 세대다. 중국의 아이 웨이 웨이(Ai Weiwei), 일본의 야요이 쿠사마(Yayoi Kusama)가 현대의 아시안 스타 아티스트들이라면, 단색화가들은 미술계에서 새로이 발굴된 '코리안 갤럭시(Korean Galaxy)'다.
#K-ART 미국에 이는 단색화 열풍
2015년 9월 주간 뉴요커(New Yorker)는 '미술계 정상의 한인들(The Koreans at the Top of the Art World)'에서 한국 단색화의 부상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뉴요커 잡지는 파워 갤러리들의 지부 확장, 경제 호황으로 막강해진 아트 콜렉터, 뮤지엄이 평가절하된 작가들을 발견하기 시작하는 최근 세계미술계의 동향에 즈음해서 한국의 단색화가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2011년 이우환 화백의 회고전을 기획했던 구겐하임뮤지엄의 알렉산드라 먼로(Aelxandra Munroe) 큐레이터는 이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이라고 비유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2016년 1월 초 세계 미술계의 경향(A Year of Highs and Corrections in the Art Market)을 보도하면서 1970년대 한국에서 활발했던 단색화의 복귀를 거론했다.
"아트 콜렉터들이 세계 미술사에서 무시됐던 샛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추상화, 단색화(Dansaekhwa)는 2015년 미국의 블룸&포(Blume & Poe), 알렉산더 그레이 어쏘시에이츠(Alexander Gray Associates)에서 전시됐다. 하종현(Ha Chonghyun), 윤형근(Yun Hyongkeun), 박서보(Park Seobo), 그리고 정상화(Chung Sang-Hwa)는 이전에 세계 시장에서 무명이었지만, 2016년부터는 달라질 것이다. 이브 클랭(Yves Klein, 프랑스 미니멀리스트)을 연상시키는 정상화의 벽돌색 모노크롬 회화(2015)는 홍콩에서 110만 달러에 팔렸다."
Overcoming the ModernDansaekhwa:The Korean Monochrome Movement, 2014, Alexander Gray Associates,
뉴욕의 첫 단색화 전시는 2014년 첼시의 알렉산더 그레이 어쏘시에이츠(Alexander Gray Associates)에서 열린 그룹전 'Overcoming the ModernDansaekhwa: The Korean Monochrome Movement'(2/19-3/29)이다.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정상화, 하종현, 허황, 이동엽 작가를 소개한 이 전시는 샘 바다우일(Sam Bardaouil)과 틸 펠라스(Till Fellrath) 큐레이터가 한국에서 리서치를 통해 기획한 전시다. 바다울리와 페라스는 2021 프랑스 리용 비엔날레(La biennale de Lyon) 큐레이터로 발탁됐다.
같은 해 9월 LA, 블룸&포(Blume&Poe) 갤러리에서는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 권영우 화백의 작품을 소개하는 단색화 거장 그룹전 'From All Sides:Tansaekhwa on Abstraction'(9/13-11/8)이 선보였다. 큐레이터는 2013년 단색화를 이론으로 정립한 최초의 영어권 도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University of Minnesota Press)를 집필한 조안 키(Joan Kee) 미시건대 교수다.
Dansaekhwa and Minimalism , 2017, Blum & Poe
블룸&포는 2016년 LA와 뉴욕에서 '단색화와 미니멀리즘(Dansaekhwa and Minimalism, 1/16-3/12-LA, 4/14-5/21-NY)'으로 한미 모노크롬화 비교전을 열었다. 이 전시에서는 이우환, 정상화, 박서보, 윤형근, 하종현, 권영우 등 한국의 단색화가들과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 로버트 라이만(Robert Ryman), 로버트 어윈(Robert Irwin), 솔 르위트(Sol LeWitt),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칼 안드레(Carl Andre) 등의 작품이 소개됐다.
2015년 10월 뉴욕 크리스티(Christie's New York)에서는 단색화 거장 그룹전 '자연을 이루다: 한국 모던 추상화와 단색화(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10/8-23)를 열었다. 이 전시에는 김환기(Kim Whan-ki 金煥基, 1913-1974), 이성자(Rhee Seundja 李聖子, 1918-2009), 정창섭(Chung Chang Sup 丁昌燮, 1927-2011), 윤형근(Yun Hyong-Keun 尹亨根, 1928-2007) 등 4인의 작고한 작가와 박서보(Park Seo-Bo 朴栖甫, B. 1931), 정상화(Chung Sang-Hwa 鄭相和, B. 1932), 하종현(Ha Chong-Hyun 河鐘賢, B. 1935), 그리고 이우환(Lee Ufan 李禹煥 (B. 1936) 등 4인의 건재한 거장들의 작품이 모였다.
Forming Nature: Dansaekhwa Korean Abstract Art, 2015, Christie's New York
이어 그해 가을부터 뉴욕 메이저 갤러리에서는 단색화 거장들의 개인전이 봇물을 이루게 된다. 2015년 맨해튼에서는 하종현 화백의 'Conjunction'(티나 김 갤러리, 11/6-12/12), 정창섭 화백의 '묵고(Meditation, 갤러리 페로탱, 11/3-12/23), 윤형근 화백의 개인전(블룸&포, 10/30-12/23)이 동시다발로 열렸다.
이후 단색화는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구겐하임 뮤지엄(Guggenheim Museum, 뉴욕/아부다비)을 비롯,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Art Institute of Chicago), 워싱턴 DC의 허쉬혼 뮤지엄(Hirshhorn Museum), 퐁퓌두센터(Centre Pompidou) 등지의 컬렉션으로 들어간다. 이와 함께 경매시장에서 단색화 작품의 가격이 치솟았다.
#단색화: 기원에서 재발견까지
from Korean Monochrome Painting to Dansaekhwa
Monochrome: Painting in Black and White, National Gallery, UK, 2017
흑백사진이 컬러사진보다 강력한 메시지를 보여주듯, 앵그르에서 피카소, 그리고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 화가들은 컬러를 배제한 단색(Monochrome)을 종종 실험해왔다. 2017년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서는 '모노크롬: 흑백 회화 전(Monochrome: Painting in Black and White, 10/30-2/18, 2018)은 렘브란트, 앵그르, 피카소, 리히터, 올라퍼 엘리아손 등의 작품을 소개했다.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에서는 2012년 피카소의 흑백 회화전(Picasso Black and White, 10/5-1/23, 2013)'을 열었다.
Agnes Martin Retrospective@Guggenheim Museum, 2016
'Korean Monochrome Painting'에서 '단색화(Dansaekhwa)'로 우리 고유의 이즘이 된 한국의 단색화는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미니멀리즘(Monochrome Minimalism)이나 바네트 뉴만(Barnett Newman),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색면 추상(Color Field Abstraction)과는 다르다.
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 ‘White, Tokyo Gallery, 1975
1970년대의 한국 단색화(Dansaekhwa)는 세계적으로 잊혀질 수 있었던 미술사조였다. 단색화는 어떻게 40여년 후에야 세계적으로 공인되었나?
단색화의 시초는 1972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제1회 앙데팡당(Indépendant)전이다. 이 전시에 소개된 이동엽(1946-2013)과 허황(1946- )의 백색 회화가 심사위원 이우환 화백에 의해 파리 비엔날레(La Biennale Paris)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단색화가 그룹으로 첫 선을 보인 것은 1975년 동경 긴자의 도쿄화랑(東京画廊, Tokyo Gallery)에서 열린 '한국 5인의 작가, 5가지 흰색(Korea: Five Artists, Five Hinsek ‘White)'이다. 이 전시에는 권영우(1926-2013), 박서보(1931- ), 서승원(1941-), 허황(1946-), 이동엽(1946-2013)이 참가했다. 한국 작가들에게 흰색은 백의민족과 조선 백자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정신성이다. 세계적으로 단색화 열풍이 불자 도쿄 화랑은 43년 후, 2018년 같은 제목의 전시를 리바이벌했다.
CHUNG SANG-HWA: Tansaekhwa, May 31, 2016, Dominique Lévy Gallery
영국 테이트갤러리 리버풀(Tate, Liverpool)에선 1992년 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이우환, 이강소 그룹전 '자연과 함께(Working with Nature: Traditional Thought in Contemporary Art from Korea, 4/8-6/1)'에서 71점을 소개했다. 6인의 작가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의 나이가 7살에서 23세 사이로 학생이거나 군에 징집됐으며, 전쟁으로 친구나 가족을 잃었다. 테이트는 이 작가들이 자연을 소재로 역동적이며 질감이 풍부한 작품이라고 해설했다. '단색화'로 이름붙여지기 전이다.
1995년 서울 관훈갤러리(Kwanhoon Gallery)에서 '에콜 드 서울 20년-모노크롬 20년'전이 열렸다. 아직 '단색화'로 명명되기 전, '모노크롬'이 타이틀로 붙여졌다. 이듬해엔 갤러리 현대(Hyundai Gallery)가 '19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Korean Monochrome Painting in the 1970s)'에서 정창섭, 윤형근,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이우환, 하종현, 김기린, 이승조, 서승원, 최명영, 이동엽, 진옥선, 윤명로, 김진석, 이봉렬, 곽인식, 김홍석, 권영우 등의 작품을 전시했다.
'단색화(Dansaekhwa)'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모노크롬 회화, 모노톤 회화, 단색 회화, 단색 평면회화, 단색조 회화 등으로 불리웠다. 그러다가 2000년 제 3회 광주 비엔날레(Gwangju Biennale)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의 영문판 카탈로그에서 윤진섭 큐레이터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알려져 있다. 이 특별전은 한국 단색화와 일본 모노하(物派)의 미적 특질, 양식적 특성 및 제작 방식에 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미국 중심의 미니멀리즘과 단색화, 서구의 오브제 미학 및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와 모노하가 각각 차별화 될 수 있는지를 조망했다.
2012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윤진섭 큐레이터 기획으로 열린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 Korean Monochrome Painting, 3/17-5/13)'전이 첫 공식 단색화전이다. 이 전시엔 김환기, 곽인식, 박서보,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윤형근, 하종현 등 전기 단색화 작가 17명과 이강소, 문범, 이인현, 김춘수, 노상균 등 후기 단색화 작가 14명 등 총 31인 작가의 150여점이 소개됐다.
2013년 미시간대의 한국계 교수 조안 키(Joan Kee)는 해외 첫 단색화 연구서 'Contemporary Korean Art: Tansaekhwa and the Urgency of Method'를 출간했다.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대표는 2013년 5월 런던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에서 단색화를 소개하며 뉴욕 구겐하임, 디아아트센터, 런던의 테이트갤러리, 파리 퐁피두센터 등 메이저 뮤지엄 이사회 아트컬렉터들에게 팔았다.
Dansaekhwa, May 8–August 15, 2015, Palazzo Contarini-Polignac , Photo: Kukje Gallery and Tina Kim Gallery
2015년 한국의 국제 갤러리(Kukje Gallery, 대표 이현숙, 사진 위)와 이 대표의 딸이 운영하는 뉴욕의 티나 김 갤러리(Tina Kim Gallery)가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La Biennale de Venezia)의 특별전으로 팔라쪼 콘타리니-폴리냑(Palazzo Contarini-Polignac)에서 '단색화'(Dansaekhwa, 5/18-8/15) 전시와 포럼을 열었다.
2004년 광주비엔날레 예술 총감독 출신 이용우 큐레이터가 기획한 이 전시엔 김환기, 권영우, 이우환, 박서보, 정창섭, 정상화, 하종현의 작품이 선보였다. 서구의 미니멀리즘, 일본의 모노하와는 달리 유니크한 미학과 역사적인 배경을 고찰한 '단색화' 특별전은 1970년대 우물에서 길어올린 미지의 한국미술, 단색화를 세계 미술사 궤도에 올려놓게 된다.
이제 세계 미술사의 궤도에 오른 단색화는 일본의 구타이 미술(具體美術)과 모노하(もの派)나 이탈리아의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 독일의 제로 그룹(ZERO group)처럼 세계 미술사에서 한국의 독창적인 미술 유파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중이다.
#1970년대: 왜 단색화였나?
Yun Hyong-keun, January 17-March 7, 2020, David Zwirner, NYC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요/
그 깊은 바다 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 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 앞에 떠오는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 위에 어른거리오/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 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 하나가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어디 있겠소...
-김민기의 '친구'(1971)- https://youtu.be/r0X9dflCO_A
신 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 소리 호르락 소리 문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 소리...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1974)-
1970년대 한국의 노동자, 지식인, 예술가들은 박정희의 독재에 각자의 방식으로 저항했다. 봉제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22세에 근로기준법 법전과 함께 분신자살했고, 김지하 시인은 1970년 부패와 비리를 풍자한 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반공법 위반으로 수감됐다. 1971년 가수 김민기는 데뷔 앨범 '아침 이슬'을 출반했고, 민중가요가 된 이 노래는 1975년 유신정부의 긴급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이 됐다.
군사정권 하에서 엘리트 화가들은 모노크롬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윤형근, 정상화, 정창섭, 박서보, 하종현 등 제 1세대 단색화가들은 절망 속에서 침묵으로 저항했다. 때문에 광주항쟁 이후 1980년대 민중화가들은 그들을 "현실 외면" "서구 미니멀리즘의 모방" "몰개성" 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Marisol, Diptych(1971)/ John Outterbridge, Broken Dance(1978-82)/ 하종현(Ha Chong-Hyun), Conjunction 74-26(1974). #420, Museum of Modern Art
그들에게 침묵은 현실 도피였을까? 하니면, 저항이었을까?
김환기 화백의 사위였던 윤형근 화백의 삶은 한과 울분으로 얼룩졌다. 1947년 서울대 미대 입학한 후엔 동맹휴학 등 반정부 운동에 가담했다가 제적당했다. 6.25 전쟁 발발 직후엔 대학시절 시위 전력으로 보도연맹에 끌려갔다. 1956년엔 전쟁 중 피난가지 않고 서울에서 부역했다는 명목으로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했다.
1973년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 중엔 중앙정보부장의 힘으로 부정입학한 재벌가 학생의 비리를 문제시했다가 '레닌 베레모' 착용 반공법 위반 명분으로 체포됐다. 그가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한 때는 1973년 만 45세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중 시민 학살에 충격을 받은 윤화백은 가족과 함께 파리로 떠났다.
David Reed(1946, San Diego, California- ), #90, 1975, Oil on five joined canvases (left)/ Park Seo-Bo(1931, Yecheon, Korea - ), Ecriture No. 55-73, 1973, Graphite and oil on canvas. Guggenheim Museum
박서보 화백은 그림을 '난을 치는 것'에 비유하며, 몸과 마음을 수양하는 의미라고 말한다. "한때는 '저것도 그림이냐'며 사회적 멸시도 받았지만, 내 작품은 스님이 반복해서 독경하듯 끊임없이 반복한 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림은 자신을 비워내는 도구이며, 수신하는 과정의 찌꺼기가 바로 그림이다. 그냥 찌꺼기가 아니라 정신의 결정체인 것이다"라고 밝혔다.
2019년 미시간주 블룸필드힐스의 크랜브룩미술관(Cranbrookl Art Museum)에서는 2019년 특별전 'Landlord Colors: On Art, Economy, and Materiality'(6/21-10/6)에서 한국을 비롯 이탈리아, 그리스, 쿠바 및 디트로이트의 경제적 사회적 격동기에 제작된 작품을 소개했다. 한국 편에서는 1970년대 독재시대의 유신체제 하에서 작가들 이우환(Lee Ufan), 하종현(Ha Chong-Hyun), 권영우(Kwon YoungWoo), 박현기(Park Hyun-Ki), 박서보(Park Seo-Bo), 윤형근(Yun Hyong-Keun) 화백의 단색화를 조명했다.
#오방색(五方色), 백의민족(白衣民族)과 단색화(單色畵)
Elizabeth Keith, Two Korean Kids, 1919/ Korean Bride, 1938
우리 민족은 상징을 좋아한다. 한민족은 전통적으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바탕으로 오방색을 기조로 의식주 문화에 적용해왔다. 음양오행설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음과 양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오행(나무-木/불-火/흙-土/철-金)/물-水)의 변화에 의해 생겨나고 소멸한다는 이론이다.
우주와 인간의 질서를 상징하는오방색(五方色)은 5가지 색(황-黃/청-靑/백-白/적-赤/흑-黑)을 말한다. 각 색은 황(중앙-신성함), 청(동-탄생, 희망), 백(서, 절개), 적(남-생명력), 흑(북-죽음)을 의미한다. 우리 민족이 아기의 돌과 명절에 입히는 색동옷이나 연지곤지 화장, 혼례복도 부정한 기운을 막고, 무병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뜻이었다. 보자기에서 구절판, 비빔밥, 잡채 음식의 색깔, 그리고 궁궐과 사찰의 단청까지 화려한 컬러의 하모니를 찾아볼 수 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 못지않은 화려한 컬러의 스펙트럼을 구사해왔다.
이중에서도 흰색은 우리의 상징색이 되었다. 중국인들은 붉은색과 황색을 좋아한다. 빨간색은 행운의 빛깔이며, 노란색은 황제의 색이었다. 우리 민족은 흰옷을 즐겨 입던 백의민족(白衣民族)으로 불리웠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의 부여(夫餘)조에는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가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라 기록되어 있다. 우리 민족은 고대국가부터, 신라, 고려, 조선, 구한말에 이르기까지 흰옷을 즐겨 입었다. 고구려 고분 쌍영총 벽화에도, 조선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에도 흰옷을 입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신윤복, 휴기답풍(携妓踏楓), '혜원풍속도첩(蕙園風俗圖帖)' 중, 서울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135호
"까마귀 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조처럼 흰색은 지조와 순결을 의미했다. 흰색은 태양과 빛, 그리고 하늘을 숭배하는 상징적인 색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문인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朝鮮常識問答, 1946)'에서 우리 민족이 흰색옷을 즐겨 입게 된 유래에 대해 "태양의 자손으로서 광명을 표시하는 흰빛을 자랑삼아 흰옷을 입다가 나중에는 온 겨레의 풍속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제사 때도 흰옷을 입고, 흰떡, 흰술, 흰밥을 드렸다.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시대엔 선비의 색깔이 된다. 이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은 저항의 상징으로 흰옷을 입었다. 3.1 운동 때는 흰 한복을 입은 조선 백성들이 시위했으며, 의병들도 흰옷을 입고 투쟁했다.
유대계 독일 상인이자 항해가인 에른스트 야콥 오페르트(Ernst Jakob Oppert, 1832-1903)는 1868년 통상 수교를 빌미로 흥선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의 묘소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인물이다. 오페르트가 집필한 '금단의 나라: 조선기행(Ein verschlossenes Land. Reisen nach Corea, 1880)'에는 '옷감 빛깔은 남자나, 여자나 다 흰색이다"라고 나온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님 웨일스(Nym Wakes, 1907-1997)는 남편 에드가 스노우(Edgar Snow)와 1930년대 중국 연안에 체류하며 조선인 독립투사 김산(金山, 본명 장지락,1905-1938)의 생애를 소재로 '아리랑(The Song of Ariran)'을 집필했다. 님 웨일스는 "아낙네들이 시냇가에 모여 방망이를 두들겨가며 빨래를 하는 광경을 본 후 "이상주의와 순교의 민족이 아니라면, 깨끗한 청결을 위해 그토록 힘든 운동을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컬러-자유의 스펙트럼 Color-the Spectrum of Freedom
Chung Chang-Sup, Meditation, 2015, Galerie Perrotin, New York
1970년대 군사 독재 치하에서는 인권이 탄압됐으며, 검열로 인해 예술가들은 창작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다. 오방색은 표현의 자유를 상징한다. 화가들 역시 팔레트에서 다양한 컬러를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사치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단색(Monochrome), 그것은 유신체제의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순결한 컬러의 메타포일 것이다.
단색화가들은 이들은 미니멀리즘을 도입해 무채색을 택하고, 서예, 수묵화, 한지, 마대, 고령토, 배압법, 묘법 등 한국적인 매체와 테크닉으로 재해석했다. 수묵화의 전통에 입각,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노자사상을 바탕으로 오랜 시간 동안 수행하듯 반복적인 작업이다. 그 결과 2차원의 캔버스엔 한국 재료의 풍미, 유니크한 질감과 함께 한 시대의 아픔과 한(恨)과 울분 등 한민족의 정서가 담겨있다. 시간과 밀도, 그리고 에너지(기, 氣)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한국적인 추상화, 마음의 풍경인 것이다.
물감을 바른 후 마르기 전 연필로 빗금을 긋는 박서보 화백, 청색과 갈색 물감을 면포나 마포 위에 반복적으로 칠해 번지게 하는 윤형근 화백, 고령토를 칠한 후 선을 토대로 뜯어내고, 메우기를 반복하는 정상화 화백, 캔버스 위에서 닥죽을 반죽해 그리는 정창섭 화백, 그리고 마대 뒷면에 두꺼운 물감을 바르고 앞면으로 밀어내는 하종현 화백의 기법은 단색화 거장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Kim Guiline, Selected Works: 1967–2008, Lehmann Maupin, New York. Photo: Elisabeth Bernstein
한편, 2017년 리만모핀 갤러리(Lehmann Maupin) 갤러리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김기린 화백의 첫 미국 개인전 'Kim Guiline/ Selected Works: 1967–2008'(2/6-2017)을 열었다. 1960년대 프랑스로 이주한 김 화백은 70년대 유신체제를 겪지 않았다. 그가 1960년대 후반 빨강, 노랑, 파랑, 초록 등 오방색을 연상시키는 원색의 기하학적 추상화 작업을 하다가 이후 '침묵과 저항의 무채색'이 아닌 원색의 모노크롬으로 진화한 것도 단색화 5인방과는 구별된다.
때문에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는 서양의 미니멀리즘(Minimalism)이나 모노크롬(Monochrome Painting)과 다르다. 작가의 개념적 표현에 집중한 미니멀리즘과 달리 단색화는 정치적 억압기 한국 화가들의 금욕적이며 명상적인 에너지가 함축된 작품들이다. 저항정신으로 마음을 비우고, 노동집약적인 반복적인 행위로 완성한 '보이지 않는 마음의 그림이다. 달항아리처럼 텅 빈듯 하지만, 충만한 마음과 질감이 느껴지는 회화다.
단색화 열풍으로 한국 근현대 미술이 새로이 주목받으면서 한국 미술서, 특히 단색화 주제 도서가 이어져 출간됐다. 가장 주목하만한 것은 올 3월 런던의 미술 전문 출판사 파이돈(Phaidon)에서 처음으로 발행한 한국미술사 전문서 '1953년 이후의 한국 미술: 균열, 혁신, 교류'(Korean art from 1953: collision, innovation, interaction)'다.
이 책은 2017년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에서 열렸던 심포지엄 '1953년도 이후의 한국미술'에서 출발했다. 내용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추상미술부터 한국 아방가르드의 실험 운동, 단색화, 민중미술, 한국 현대사진, 북한의 조선화, 1990년대 전후의 한국미술, 한국의 신세대미술,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 한국 여성 미술, 한국의 미디어 아트, 1980년대와 1990년대 코리언 아메리칸 아트 등 총 13장으로 구성됐다. 정연심 홍익대 예술학과 교수를 비롯해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 킴벌리 정 캐나다 맥길대 교수, 시각 문화학자인 케이스 와그너 영국 런던칼리지 교수가 책의 필진이다.
이외에도 단색화 전시를 소개한 메이저 갤러리들이 카탈로그와 작가론을 출간해왔다. 국제 갤러리는 2014년 김기린, 박서보, 윤형근,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하종현 그룹전 카탈로그 '단색화의 예술(The Art of Dansaekhwa, 윤진섭, 알렉산드라 먼로, 샘 바다우일, 틸 펠라스 공저, 2015)'을 출간했다.
블룸&포 갤러리는 조안 키 교수가 쓴 'From All Sides: Tansaekhwa on Abstraction'(2015)를 냈다. 또한, 2018년엔 하종현 화백의 작가론 'Ha Chong Hyun'(by Alfred Pacquement, Barry Schwabsky, Hui Kyung An, H.G. Masters), 2019년엔 윤형근 화백 작가론 'Yun Hyong-keun'(by Kim Inhye)이 영문으로 출간됐다.
DANSEAKHWA 미술 장르 공인
뉴욕타임스도 단색화가들에 주목해왔다. 2021년 6월 한국미술계의 거두가 유산을 계획하다(A Towering Figure in South Korean Art Plans His Legacy)'에서 단색화 운동의 핵심인물이었던 박서보 화백의 삶과 작품세계를 대서특필했다. 2022년 4월 뉴욕타임스는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 리뷰(Postcards From the Biennale: His paintings travel, but Ha Chong-hyun stays in Korea; Anselm Kiefer melds art and sculpture at the Doges Palace)'에서 하종현 화백과 독일 출신 거장 안셀름 카이퍼(Anselm Keifer)를 나란히 소개했다. 하종현 화백은 코로나 확진으로 한국에 머물렀다.
한편, 광주비엔날레(Gwangju Biennale)는 2022년 단색화 거장 박서보 화백의 이름을 딴 '박서보 예술상(Park Seo-Bo Art Prize)'을 제정했다. 박 화백이 기탁한 재원으로 설립된 이 상은 2042년까지 시상하며, 상금 10만 달러가 주어진다. 1995년 창설된 광주비엔날레는 2014년 온라인 미술매체 아트넷(Artnet.com)에 의해 이탈리아의 베니스 비엔날레 (La Biennale di Venezia), 독일 카셀의 도큐멘타(Documenta), 미국의 휘트니 비엔날레, 유럽의 마니페스타(Manifesta)와 함께 세계 5대 비엔날레로 선정됐다.
뒤늦게 발견된 한국의 단색화는 이제 미술사에서 장르로 공인됐다. 런던의 미술관 테이트(TATE)는 웹사이트에서 단색화를 미술용어, 정식 미술장르로 설명하고 있다.
DANSEAKHWA: THE KOREAN MONOCHROME MOVEMENT(단색화: 한국의 모노크롬 운동)
"1950년대 서구의 모더니즘이 한국의 예술문화에 끼친 영향을 조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힐환으로 결성된 거센 운동이다. 단색화는 형식적으로는 리얼리즘과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단색으로만 그리고, 모더니즘 추상을 위해 캔버스의 평면성을 강조하는 양식을 선택했다. 이 운동은 전후 민족의 정체성, 소속감과 전통을 둘러싼 투쟁을 강조한다. 그림에 반복적인 무늬와 몸짓을 사용함으로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보편적이면서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미학적 양식을 창조하고자 시도했다. 단색화 작가로는 하종현, 허황, 이동엽, 이우환, 박서보, 윤형근이다."
K-ART: 서울, '세계 미술 메카'로 부상중
단색화의 발견, 한류의 파고를 타고 서울이 세계미술 지도에서 메카로 부상했다.
한국의 미술시장이 달아오르면서 서양의 블루칩 갤러리들이 속속 오픈하고 있다. 파리에 기반을 둔 파워 갤러리 페로탕(Galerie Perrotin)은 2016년 삼청동에 서울 지점을 오픈한 첫 글로벌 화랑이었다. 페로탕은 2014년 뉴욕에서 정창섭 화백 개인전을 열었던 갤러리로 2022년 8월엔 신사동에 제 2 서울 지점 '페로탕 도산파크'를 오픈했다. 페로탕은 한인작가로는 박서보, 김종학, 이배, 박가희, 김홍석, 이승조의 작품을 거래해왔다.
이어 같은 해10월엔 런던, 아부다비, LA에서 운영해온 바라캇(Barakat Contemporary)이 첫 아시아 지점을 삼청동에 오픈했다. 2017년 3월엔 이우환 화백이 소속된 뉴욕의 파워화랑 페이스(Pace) 갤러리가 한남동에 서울점을 열었다.그리고, 2017년 12월엔 이불, 서도호 작가가 전속된 뉴욕의 리만머핀 갤러리(Lehmann Maupin)가 서울점을 오픈했다. 구정아씨의 작품을 거래하는 베를린의 파워화랑 쾨니(KönigGalerie)는 2021년 강남구 압구정로에, 이어 이불씨의 작품을 거래하는 오스트리아 타데우스 로팍(Thaddaeus Ropac)도 갤러리를 오픈했다. 그리고, 올 4월엔 아니카 이(Anicka Yi), 매튜 바니 등이 소속된 뉴욕의 글래드스톤(Gladstone) 갤러리가 LA, 브뤼셀에 이어 청담동에 아시아 첫 지점을 열었다.
대규모 아트페어도 서울로 향하고 있다. 2022년 9월엔 국제 미술 박람회 프리즈(Frieze)가 서울에서 처음 열렸다. 뉴욕, LA와 런던에서 열려오던 아트페어 프리즈가 아시아 첫 도시로 서울에 상륙한 것이다. 국제갤러리의 이현숙 대표는 2013년 프리즈 런던에 처음 단색화를 소개했었다. 프리즈 서울(Freize Seoul)은 2002년 시작된 한국 최초의 국제미술박람회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서울 코엑스 건물에서 동시에 열렸다.
프리즈 서울엔 하우저앤워스, 가고시안, 리만머핀, 페로탕, 국제, 현대, 아라리오, PKM, 리안, 제이슨함, 조현화랑, 학고재 갤러리 등이 세계 20개국의 갤러리 119곳, 키아프 서울엔 세계 17개국의 164개 화랑이 참가했다. 여기에 73개 화랑이 참가한 KIAF Plus까지 신설되어 350여개의 갤러리가 몰려 서울이 바야흐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미술 도시로 부상했다.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정창섭 화백은 내가 고교시절(이화여고)에 예고 미술 선생이셨습니다. 키도 크고 잘 생기셔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예고와 같이 한 건물을 썼기 때문에 정창섭 선생님은 매일 볼 수 있었고, 선생님의 그림도 방과 후나 노는 시간에 올라가서 보곤 했습니다. 우리 교실 바로 위층이(맨 꼭대기층) 미술 작업실이 었으니까요. 그림이 크고 단색화가 아니고 색채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매일 선생님을 봤고, 그림을 봤습니다.
이성자씨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와서 60년대에 전시회를 열었는데(서울 어딘데 장소 이름은 섕각안남) 감명 깊게 봤지요. 파리에서 공부하고 오셨다고 해서 멋진 파리쟌으로 생각하고서 친구랑 같이 갔었죠. 그런데 너무 수수하고 파리의 체취는 전혀 없어서 친구랑 이성자 화백 흉을 본 기억이 나네요. 게다가 그 당시 위키 리란 개그맨이 있었는데 이성자 화백의 남동생이라고 해서 친구랑 화랑 구석퉁이에서 낄낄 웃은 기억이 납니다.
세월이 쏜 화살처럼 지나갔습니다. 초로의 노인이 돼서 그때를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짓습니다. 컬빗 덕에 이런 추억을 꺼내게됨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엔돌핀을 많이 갖게돼서 신이 납니다.
나의 사랑 뉴욕컬빗아, 잘 있어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