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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이영주: 에스더의 베가 하우스
뉴욕 촌뜨기의 일기 (58) 에코 산장에서
에스더의 베가하우스
오렌지색이 멀리서부터 시야를 사로잡는 차고. 차고 안은 라운지로 꾸몄습니다. / 모닥불 소왕국. 불을 크게 키워놓고 좋아하시는 작은 아버지의 불장난.
싱글클럽 호리카의 막내 에스더의 주말 하우스는 뉴욕 업스테이트 덴버(Denver, NY), 베가 마운틴(Vega Mountain) 중턱에 있습니다. 주말하우스를 에스더는 베가하우스라고 부르기에 저는 라스베가스 생각만 하고 왜 베가하우스인가 궁금했는데, 집이 위치한 곳이 베가마운틴 중턱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이해했습니다.
베가하우스 올라가는 길 오른편엔 키 큰 미류나무가 일렬종대로 사열하고 있고, 그 끝자락에 에스더의 베가하우스가 있습니다. 집 앞이 베가마운틴 로드이고, 뒷마당은 베가마운틴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집앞이 길이라 처음엔 생각이 복잡했는데, 있어보니 하루종일 차가 10대도 안 지나가고, 인적은 그저 한 두명뿐인 무늬만 길입니다.
베가하우스 앞은 양쪽으로 넓은 목장의 푸른 초원이 펼쳐지고, 그 초원 너머로는 캣츠킬의 첩첩산들입니다. 캣츠킬 산의 아름다움과 위용이 결코 몬태나 산의 웅장미에 지지 않습니다. 몬태나산은 무지 높고 침엽수들이 하늘을 찌를듯 남성적으로 장대하나, 캣츠킬의 산들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져 큰 몸통을 겸손하게 보이게 합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파스텔 그린과 한 톤 낮춘 오렌지색 계열의 나무들이 색깔의 농담으로 각기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빽빽이 차 있고, 그런 그들이 산의 등고에 따라 층을 이루고 있는 이곳 풍광은 여성적이면서도 따뜻하고, 매우 정서적입니다. 높이와 색깔이 다른 이들을 저는 감히 ‘산의 무지개’라고 명명했습니다. 이곳 토박이 리치 영감은 색깔이 영롱한 캔디 이름을 붙여 표현한다던데, 캔디 이름은 에스더에게 듣고도 잊었습니다.
라운지 칠판에 환영사가 있었습니다. 안개 낀 베가의 아침/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누워 방문객을 맞는 개구리/ 모닥불 자리. 아주 단정한 모습입니다. / 난로가는 불멍! 때리기에 아주 좋습니다.. 갈 적마다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갈비도 구워 먹고, 고구마도 굽습니다.
뒷마당의 하이라이트는 모닥불 왕국(제가 감히 그렇게 명명했습니다) 입니다. 돌로 야트막하게 쌓은 모닥불 화덕 주위로 엄청 긴 통나무를 잘라 만든 벤치가 두 개 기역자로 있고, 목공예를 좋아하는 에스더의 작은 아버지가 만들었다는 나무 의자도 몇 개 있습니다. 통나무 벤치는 뒷마당 숲이 빽빽해서 시야가 시원하도록 나무들을 솎아, 그렇게 자른 나무로 작은 아버지가 벤치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차고며 부속건물 두 개는 오렌지색과 옅은 녹두빛 페인트로 칠해 설치예술처럼 분위기를 살려 어디로 눈을 돌려도 이상적인 풍광입니다. 차고는 친구들과 와인을 마실 라운지로 멋스럽게 꾸몄습니다. 주인장 미적 감각과 품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에스더가 베가하우스에 확실하게 정한 두 가지 목적입니다. 하나는 ‘환경보호’, 다른 하나는 ‘Repurpose’. Repurpose란 단어를 에스더에게 처음 들었는데, 사전에 찾아보니 ‘다른 목적에 맞게 만들다’, 라고 나와 있습니다. Recycle(재활용) 다음 단계라고 에스더가 보충설명을 해줬습니다.
방이 두 개인 베가하우스의 침대는 모두 나무침대인데, 물론 작은 아버지의 작품입니다. 비즈니스에서 사용됐던 선반이나 자재들도 모닥불 정원의 대형테이블과 벤치로, 집 곳곳의 나무용기로, 모두 그 분의 손끝에서 재창조되었습니다. 가구들은 동생 대니씨와 에스더, 작은 아버지, 친구들이 집에서 안쓰는 것들을 가져왔고, 때로는 대니씨가 버리는 가구들 모아 놓는 이 동네 하치장에서 쓸만한 것들을 골라 온다고 합니다. 베가하우스 입구엔 ‘Relax’, ‘Dream’이란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예쁜 차돌 두 개, 개구리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고 누워 집에 오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익살스런 작은 조각품이 있는데, 대니씨가 아내 몰래 집에서 갖다 놨다고 합니다.
베가마운틴을 끼고 뒷마당엔 평상도 두 개나 만들어 놓았고, 재미난 소품들도 여간 많지 않습니다. 집 안과 마당 곳곳에 있는 물품 하나 하나마다 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것이지 아무렇게나 놓여진 것은 없었습니다.꽃도 철철이 필 꽃들을 유념해서 에스더는 머리 속으로 설계하며 심습니다. 참, 에스더가 원래 전공이 건축학입니다.
차고 앞의 의자에 앉으면 멍! 때려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습니다. 에스더 동생 대니가 뒷마당에서 자른 나무로 만든 시계. 저도 하나 선물받았습니다./ 저는 베가하우스에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입성했습니다./ 새집. 작은 아버지 작품입니다./ 에스더는 집안 곳곳에 늘 들꽃들을 따다가 꽂아 놓습니다. 집에 올 때도 꼭 들꽃 선물을 가지고 옵니다. 저는 들꽃을 정말 좋아합니다.
환경문제를 직접 실천하는 에스더의 모습은 저를 새삼 각성시켜 주었습니다. 하긴 열렬한 환경주의자인 제 딸들도 오래 전부터 지구의 쓰레기를 줄여야 한다며 연주여행 다닐 때 호텔에 비치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무거워도 비누며 치약, 샴푸들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냅킨과 페이퍼 타올도 평소엔 사용하지 않습니다. 일상용품들도 리사이클 할 수 있는 것을 골라씁니다. 에스더도 일상생활에서 환경문제를 실천하고, 필요없는 것은 절대 사지 않습니다. 제가 자른 수박을 싸려고 은박지를 길게 뜯었더니 에스더가 재빨리 그것을 두 개로 잘라 두 개의 뚜껑을 만들었습니다. 환경 보호의 작은 시작인데 싶어 속으로 뜨끔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원인은 우리 인간의 환경파괴가 제일 큰 원인 중의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용했던 물건을 재사용하거나 새로 만들어 사용하고, 색깔의 예술로 장치된 베가하우스는 멀리서부터 고혹적인 색감으로 시선을 집중시킵니다. 비록 나이는 어려도 이렇게 올바른 가치관과 진취적 사고 세계를 가진 친구가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오랫만에 베가하우스에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난로 앞에서 불멍!을 때리며 카푸치노 한 잔을 마십니다.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싱글 클럽 호리카가 있었군요. 우아하고 품격있는 싱글클럽이네요. 베가하우스란 이름이 뭔지 매력을 느끼게 합니다. 유명 관광지도 아니고 명승고적이 있는 곳도 아닌데 한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산과 계곡이 보이는 확틔인 마당에서 옥수수랑 고구마를 구워먹는 그 광경이 부럽습니다. 베가하우스를 읽고 나니까 내 마음이 산속 조그만 마을에 와 있는듯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짐을 느낍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