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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Keys to Decoding the Korean Wave #22 1925년 조선 사람들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2 베버 신부 다큐멘터리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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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게르만 민족이 아직 숲에서 뛰어다닐 때 조선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고, 독일보다 훨씬 앞서 활자 인쇄를 발명한 나라였다."

 -노르베르트 베버 신부(1870-1956)-

 

1925년 일제 강점기 조선에 머물렀던 독일 출신 노르베트르 베버 신부는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문화를 목격했다. 가족주의와 효도, 장례풍속, 품앗이, 음주가무, 옹기, 길쌈, 짚신, 사찰, 혜화동 와이너리에서 높은 교육열까지 포착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 가장 오래된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7)는 100여년 후 한류(K-Wave)를 예지한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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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한 시대를 엿보는데 영화처럼 생생한 예술이 있을까? 한국 최초의 영화는 일제 강점기인 1919년에 제작된 김도산 감독의 '의리적 구투'다. 하지만, 필름이 소실되었고, 내용도 전해지지 않는다. 1926년 나운규 감독, 주연의 흥행영화 '아리랑' 역시 안타깝게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한국에서 필름이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화는 1934년 안종화 감독의 '청춘의 십자로'다. 시골에서 상경한 남매의 사랑과 배신, 복수를 그린 무성영화. 유성영화는 이듬해인 1935년부터 제작됐다. 

 

'청춘의 십자로'보다 10여년 전, 한국에서 제작된 기록영화가 있다. 외국인 신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무성영화다. 독일 출신 성 베네딕도회 오틸리엔 연합회 총아빠스(대수도원장) 노르베르트 베버(Norbert Weber OSB, 1870-1956) 신부는 1911년과 1925년 조선을 방문했다. 첫 방문 때는 4개월간 머물면서 스틸 카메라로 조선의 문화와 삶을 기록했다. 그리고, 1915년 이를 토대로 책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를 출간했다.

 

1925년-14년 후 두번째 방문 때는 35밀리 영화 카메라 장비를 갖추고 조선을찾았다. 베버 신부는 5개월간 서울, 금강산, 원산, 연길 지역을 누비며 문화인류학자처럼 조선인들의 농업, 풍속, 예절, 가내 수공업 등 생활 방식과 신부들의 선교사업을 1만5천미터 분량의 필름에 담았다. 

 

독일로 귀국한 후 신부는 저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맞추어 필름을 편집했다. 완성된 무성 다큐멘터리 영화 '고요한 아침의 나라'(Im Land Der Morgenstille/ 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는 1927년 뮌헨 인류학박물관을 비롯, 100여개 극장에서 상영됐다. 

 

그후 필름은 분실되었다. 그러다가 1977년 뮌헨 인근의 수도원 지하실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됐다.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점령했지만, 필름은 무사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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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베버 신부의 다큐멘터리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1925년 한국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금강산 장안사, 1920년대 파괴된 서울 동소문과 배오개 시장(현 동대문 시장)을 비롯, 아낙네들의 베틀짜는 모습, 짚신 만드는 사람들, 춤을 즐기는 노인들, 그리고 신부가 사재를 들여 재현한 전통 장례식 장면 등 한국인과 한국 문화가 다각적으로 담겨 있다.

 

성찬을 위한 포도주가 필요해 혜화동 언덕에 독일에서 들여온 포도씨를 뿌려 재배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독일인 신부들이 양반다리 자세로 앉아 젓가락으로 김치를 먹고, 딱딱한 바닥에서 나무 베개를 베고 자며 한국문화에 적응해가는 이야기도 담겨 있다. 물론 조선에서 선교사의 활동도 잊지 않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2010년 2월 성 베네딕도회 한국진출 100주년을 기념해 KBS-TV에서 한국어 해설과 함께 방영됐으며, DVD로 출시됐다. YouTube에 올라 있다. https://youtu.be/0oh0Gsc_b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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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성베네딕도회는 성인의 가르침에 따라 '기도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남자 수도회로 1909년 한국에 처음 진출했다. 선교를 위해 서울 혜화동에 수도원과 학교를 세웠으며, 이후 원산, 간도 지역의 연길에도 수도원을 세우면서 포교했다. 베버 신부는 1925년 귀국길에 조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의 화첩(21점)을 독일로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이 흘러 1975년 독일 유학중이던 유준영 이화여대 교수가 겸재 화첩을 논문에 발표한 후 왜관수도원 선지훈 신부의 노력으로 2005년 한국에 영구 대여 형식으로 반환됐다. 겸재의 화첩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 사람들의 모습을 따사롭게 담은 영화감독 베버 신부는 말년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보내다가 1956년 별세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Im Land Der Morgenstille, 1927)'의 조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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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우리는 사라져가는 이 나라를 향해 애써 '대한만세(Taihan Manse!)'라고 작별인사를 보낸다. 한 국가로써 이 민족은 몰락하고 있다. 마음이 따뜻한 이 민족에게 파도 너머로 작별인사를 보낸다. 지금 나의 심정은 착잡하기만 하다. 마치 한 민족을 무덤에 묻고 돌아오는, 장례행렬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처럼." -베버 신부-

 

베버 신부는 1911년 조선을 떠나면서 이렇게 적었다. 신부는 조선 첫 방문에서 독립투사 안중근(1879-1910) 의사의 본가를 찾아 황해도 신천으로 갔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하얼빈역에서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후 1910년 교수형으로 숨을 거두었다. 베버 신부는 유족을 위로하며 사진을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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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베버 신부는 "조선은 유럽의 한 반도국가와 비슷하다"면서 칠판에 한국과 이탈리아의 지도를 그린다. 한자도 능숙하게 쓰고 있다. 1925년 당시 수도 서울은 거리가 번잡하며, 북한산은 구름 속에 솟아 있는 산이다.

 

 "한국인들은 자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찬란함 속으로 들어가기를 꿈꾸는 민족이다."

 -베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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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그는 서울 배오개 시장(현 동대문 시장)의 풍경과 함께 주판을 신기하게 보았다. 아주 작은 거래에도 주판이 등장한다. 이 주판"비밀이 담긴 기계"라고 불렀다. 그는 날카로운 한국인들의 지혜가 담긴 고급문화에 주목했다. 주판, 화폐, 도장은 그 예다.

 

"게르만(독일) 민족이 아직 숲에서 뛰어다닐 때 조선은 이미 고도의 문화를 가진 민족이었고, 독일보다 훨씬 앞서 활자 인쇄를 발명한 나라였다."

 -베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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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한국인들의 정신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베버 신부는 특히 한국의 아름다운 효도 전통에 매료됐다. "천년 이상 지속된 유교 전통에 따라 복종, 순종, 권위에 대한 인정은 한국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족을 통해서 배우는 것. 조상과 어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은 삶의 일부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한국인의 내면화된 겸손은 카톨릭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좋은 토양"이라고 해설한다.  

 

벼농사를 하며 품앗이가족주의와 노동을 통해 성숙된 높은 수준의 공동체 문화라 평가했다. 추수 후 흥겹게 춤을 추는 농부들, 다양한 명절 축제의 그네, 윷놀이 등은 한국인들이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임을 파악할 수 있다. 

 

베버 신부는 일제강점기 옹기(항아리) '박해 시대의 성스러운 유물'이라면서 제작과정을 세밀하게 설명했다. 또한, 아낙네들이 실로 옷감을 제작하는 길쌈 과정도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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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베버 신부는 의식주 문화에 예리한 관심을 보였다. 한국에서 '민중의 신발'이었던 짚신과 일본의 나막신을 비교했다. 한국인들은 발에 딱 맞는 짚신을 신어 우아한 걸음걸이가 가능한 반면, 일본인은 엄지 발가락을 끼워 넣는 끈에 매달린 나무 샌들(게다)이 질질 끌리는 느린 걸음 걸이를 강요한다는 것. "한국인들은 거의 모두 자신의 짚신을 만들 줄 안다"면서 한국인들의 손재주에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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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어린이들이 입는 한복에 대해서도 예찬했다. 

 

"봄꽃처럼 아름다운 매혹적인 옷이다. 아네모네의 부드러운 흰색 곁에 수줍은 제비꽃의 보라색, 이 모든 것이 푸른 색 속의 붉은 꽃처럼 조화롭다. 봄의 싱싱한 기운과 기쁨만이 마법을 걸어서 만들어낼 수 있는 색의 향연이다."

 -베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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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그는 선교하기 위해 한국에 간 카톨릭 신부였지만, 한국의 토속신앙과 불교에 대해서 상세히 소개했다. 베버 신부는 금강산을 여행해 사천왕이 문을 지키는 장안사 대웅전에서 광목천왕, 다문천왕, 증장천왕, 지국천왕을 소개하며, 스님의 독경 소리, 종소리를 들려준다. "제단을 덮고 있는 우아한 지붕, 고승들의 초상화... 세상 어디에서도 이렇게 부족함과 당혹감을 느낀 적이 없다"고 고백했으며, "대웅전의 화려한 장식은 마법과 같다"고 묘사했다. 

 

베버 신부는백화암 사찰묘지, 마애불 삼불암을 구경하며, 은둔 수행하던 비구니들과의 만남도 담았다. 그리고, 한국의 미륵 신앙을 카톨릭의 메시아 사상과 연결해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사찰이야말로 아름답고 고귀한 곳. 조선이 유교 국가였지만, 삶에는 불교가 훨씬 더 강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교는 늘 민중의 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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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돌멩이들로 쌓아 올려진 시골 마을의 성황당에 대해서 '기적의 나무', '마법의 나무'라고 소개한 후 "민속 신앙은 악귀들이 만병의 근원이라고 가르친다"고 설명했다. 

 

종교는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베버 신부는 함경도에서 한국의 장례풍속을 재연해 보여준다. 그는 "치밀하게 구성된 장례 절차는 한민족의 역량, 즉 조상숭배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숭고한 행위로 부모상 후 2년간 상복을 입는다. 효성심은 한국인의 고귀한 민족혼으로 아름다운 관습은 보호해야 한다"며 책에서 10페이지에 걸쳐 장례절차를 상세히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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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성 베네딕도회 신부들은 조선 땅에서 그 나라 토착문화를 흡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금방 한국인이 다 됐다. 양반다리를 하고, 젓가락질로 매운 김치에 막걸리를 곁들이고, 쓰디쓴 한국 담배 맛을 보고, 딱딱한 바닥에서 나무 베개에 의지해 뜨거운 구들장에서 잠드는 한국식 생활방식에 적응했다.   

 

신부들은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이 가난을 떨쳐낼 힘을 키워주기 위해 혜화동에 기술학교로 숭공학교 설립했다. 카톨릭 또한, 무지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야 했다. 신부들은 조선인들의 오랜 가난은 노동, 기술, 공통체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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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서울에도 와이너리가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미사 때 필요한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성 베네딕도회 선교사들이 포도나무를 들여와 1925년 정원지기였던 에우제니오 수사가 혜화동 수도원 구내 언덕에 심었다. 독일의 대표 와인은  청포도 리슬링(riesling)이지만, 적포도주여야 하니 피노 누아(pinot noir)였을까? 전쟁은 금강산 사찰 뿐 아니라 포도원도 파괴했다. 신부는 이와 함께 숭공학교에 원예과 실습장을 마련해 독일에서 직수입한 농업 기술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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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성 베네딕도회는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조선인들의 복지 향상에 힘썼다. 다큐멘터리는 보육원의 자수 직업 교육, 원산의 성당 부속학교 해성보통학교의 운동회 모습, 수업에서 산수 문제를 푸는 학생들의 모습도 담았다. 베버 신부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에 깊이 감동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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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and of Morning Calm"(1927) directed by Norbert Weber OSB

 

베버 신부와 성 베네딕도회의 선교사업으로 1927년 원산 대목구의 신자는 1만4천여명에 이르렀다.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의 순교 이후  그 선교의 열매는 일제 강점기 피폐할 수도 있었던 조선인들의 마음잡이가 되었을 법 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는 베버 신부의 한국인과 한국문화에 대한 연민뿐만 아니라 통찰력과 지성, 그리고 감성으로 100년 후 한류(K-Wave)를 예지한듯한 다큐멘터리다. https://youtu.be/0oh0Gsc_b9k

 
 
길쌈, 짚신 기술에서 자동차, 반도체, 스마트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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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amazon.com/homi/s?k=homi  
 

독일인 베버 신부가 식민 통치하 한국에서 주목했던 아름다운 문화는 한류(K-Wave)의 DNA다. 나라를 잃은 설움이 있을지언정 우리 민족은 춤과 노래로 울분을 삭혔다. 그리고, 늘 바지런히 일을 했다. 아낙네들은 삼삼오오 앉아 길쌈을 짰고, 노인들도 마당에 앉아 짚신을 만들었다. 젊은 여성들은 자수를 배웠으며, 상인들은 주판으로 재빨리 계산했다. 조선인들은 모두 정교하게 새긴 도장을 갖고 있었다.  

 

한민족의 근면성과 손재주는 196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국제기능올림픽(도장, 목공, 기계조립, 항공정비, 냉동기술,미용기술 등)에서 금메달을 석권하는 기술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었다. 한국이 1970년대 섬유와 가발 수출에서 오늘날 자동차, 선박, 반도체,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기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2019년 온라인 쇼핑사이트 아마존(amazon.com)에서 한국산 농기구 호미가 화제가 됐다. 경북 영주대장간의 석노기씨가 만든 호미(Yongju Daejanggan ho-mi)가 원예(gardening) 부문 베스트셀러 톱10에 오르며 불티나게 팔려나간 것이다. 미국산 원예도구와 달리 ㄱ자로 30도 휘어진 '코리안 스타일' 농기구 호미는 한민족의 장인정신과 함께 세계적으로 공인됐다.    

 

100년 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In the Land of Morning Calm)' 조선은 오늘날 잠들지 않는 나라, 지구촌에서 가장 역동적인 대한민국(Dynamic Korea)으로 자리매김했다.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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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08.04 22:48
    비가 오고 폭풍이 붑니다. 어김없이 컬빗에 들어갔습니다. 베버 선교사가 찍은 100년 전 조선의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볼래야 볼 수가 없는 풍속과 모습들이 귀하게 보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토양을 만들어서 그위에 오늘의 문화를 있게해 주신 조상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브루클린 보태니컬 가든의 꽃들이 아름답습니다. 가서 직접 감상을 하고 싶지만 코로나가 가로막고 있는데다가 멀리 떨어져서 살고있어서 엄두가 안났는데 컬빗이 그곳의 꽃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꽃들의 색상을 음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laine-
  • Yh77 2020.08.07 13:23
    베버 신부님의 “ 고요한 아침의 나라 “ 다큐멘타리 정말 귀한 사진들과 영상이네요. 신부님의 열린, 따뜻한 시선이 우리 스스로는 감지하지 못했던 조선의 아름다움과 전통, 얼의 귀함을 일꺠워주네요. 한류 시리즈와 더불어 좋은 영상, 글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sukie 2020.08.09 15:35
    거의 100년 전 한국의 모습을 인류학자처럼 예리한 통찰력과 따뜻한 시각으로 담아주신 베버 신부님의 열정이 놀라워요. 나운규 영화 '아리랑'(1926)은 소실됐지만,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1927)가 남아 있는 것은 위안이 되네요. 한류 시리즈에 관심을 보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