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6 호머 헐버트와 세계인들의 한글 예찬
33 Keys to Decoding Korean Wave #26 HANGUL, Korean Alphabet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6 호머 헐버트와 세계인들의 한글 예찬
펄 벅과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등 노벨상 문학상 수상 작가들을 비롯,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글(Hangul)을 "과학적인 문자", "세종대왕은 천재", "한글은 한국이 세계에 제공하는 선물"이라는 등 찬사를 보내왔다.
이들보다 훨씬 앞서 한글의 우수성을 발견한 서양인이 있었다. 1886년 23세에 조선에 갔던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 그는 한글을 나흘만에 배워 읽고 쓰기 시작, 한글로 교과서(사민필지)를 집필했으며, 한국문화와 역사서를 출간했다. 고종황제의 자문관이었던 그는 한국의 독립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1905)고 썼던 헐버트는 한국 땅에 묻혔다.
오늘날 K-Pop을 비롯한 한류의 열풍 속에서 세계인들은 한글 배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소중한 우리의 한글을 다시 생각해 본다.
#세계적 작가 & 언어학자들의 한글 예찬
펄 벅의 한국 배경 소설 'The Living Reed'(1963) 표지엔 아리랑이 담겼다. 펄 벅과 한국 고아원의 아이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간략한 글쓰기 체계다. 자음 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언어와 음성이라도 표기할 수 있다.
세종대왕은 그 깊이와 다양한 재능에서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펄 벅, 1938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대지(The Good Earth)'의 작가 펄 벅(Pearl S. Buck, 1892-1973)은 웨스트버지니아 힐스보로에서 태어난지 3개월만에 선교사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중국의 고전 '삼국지' '수호지' 등을 원서로 읽으며 작가로서 소양을 길렀다. 펄 벅은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며,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 이름도 지었다.
펄 벅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소설 'The Living Reed(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1963)' 서문에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라고 썼다. 1964년 한국전쟁 고아와 혼혈아들의 입양을 주선하는 펄벅 재단을 설립했으며, 1968년엔 한국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The New Year)'를 출간했다. 펄 벅은 1932년 퓰리처상, 1938년엔 미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글을 배운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와 서울 배경 소설 '빛나 서울 하늘 아래'.
"언젠가는 한국어를 읽는 것을 마스터하기에 충분하다.
한글은 의사소통에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편리한 알파벳 체계다."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2008 노벨문학상 수상 소설가-
200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소설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ézio, 1940- )는 2001년 한국을 처음 방문한 후 한국에 매료되었고, 이화여대에서 프랑스 문학을 강의했다. 르 클레지오는 독학으로 한글을 배웠으며, 2017년엔 서울을 배경으로 한 소설 '빛나 서울 하늘 아래(Bitna, sous le ciel de Séoul)'를 출간했다.
"한국인들은 독창적이며, 경이로운 글자를 발명했다.
한글은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어떤 문자보다도 과학적인 체계의 글자일 것이다."
-에드윈 O. 라이샤워, 하버드대 & 주일 미 대사-
일본에서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하버드대에서 일본사를 전공한 에드윈 O. 라이샤워어 (Edwin O. Reischauer, 1910-1990)는 주일 미국 대사(1961-66)까지 지냈다. 그는 1938년 한국을 방문해 맥 매큔(George McAfee McCune, 1908-1948) 교수와 함께 한국어를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McCune-Reischauer Romanization)'을 만들었다.
"세종대왕은 세계 최고의 알파벳을 발명했다.
한글은 간단하며 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순수하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구성됐다."
-프리츠 보스 교수, 레이덴대학교-
네덜란드 레이던대의 프리츠 보스(Frits Vos, 1918–2000) 교수는 한국전에 장교로 참전했다. 1951년 대구에서 유교 서적과 한국 민화집을 구매했으며, 귀국 후엔 레이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한국학 연구의 토대를 닦았다.
제임스 D. 맥콜리 교수 *James McCawley's Interview About Hangul, 1996 <YouTube>
"한글은 세계에 존재하는 글쓰기 체계중 가장 천재적으로 고안된 글자다... 1440년대 한글 창제자들이 성취한 업적은 500년 후의 언어적 기준으로 보아도 놀랍다... 세계의 모든 언어학자들이 한글의 탄생일을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적절한 반응이라고 생각한다....때문에 나는 지난 20년간 한글날 언어학자, 동료, 학생, 친구들을 초대해 한국음식을 마련하고 우리들의 할러데이로 기념해왔다."
-제임스 D. 맥콜리(James David McCawley, 1938-1999), 시카고대 교수-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었던 최고의 알파벳이다."
-존 만(John Man, 1941-), Alpha Beta: How 26 Letters Shaped the Western World (2000)-
"발음기관을 상형해서 한글을 만들었다는 것도 독특하지만, 기본 글자에 획을 더해 음성학적으로 동일 계열의 글자를 파생해내는 방법(ㄱ-ㅋ-ㄲ)은 매우 체계적이며, 훌륭하다.... 한글은 의심할 바 없이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지적인 성취 중 하나로 기록되어야 한다."
-제프리 샘슨(Geoffrey Sampson, 1944- ), 영국 서섹스대 정보학과 교수-
"한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알파벳 기호의 모양이 발음학적 관계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한글은 한국이 세계에 제공하는 선물이다. 한글은 최고 수준의 한국문화를 상징하면서도, 한 나라를 초월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무엘 로버트 램지(Samuel Robert Ramsey, 1941- ) 미국 메릴랜드대 동아시아 언어학과 교수-
한글 조음위치
"세종대왕의 28개 자모는 학자들에 의해 세계 최고의 알파벳이자 가장 과학적인 글자 체계로 인정받고 있다."
-자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1937- ), UCLA 지리학과 교수. 1998 퓰리처상 수상(넌픽션), 'Discovery', June, 1994-
"세종대왕은 20세기에 음운론을 완성한 서양보다 5세기 앞서서 음운이론을 체계화했다.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이론을 조합한 세계 최고의 알파벳이다."
-베르너 사세(Werner Sasse) 한국학 박사/ 함부르크대 교수/ 한양대 석좌교수(무용가 홍신자씨 남편)-
"한글은 가장 발달된 음소 알파벳이자 로마자보다 훨씬 좋은 문자가 특징이다."
-우메다 히로유키(Hiroyuki Umeda) 도쿄대 교수
"한글은 한국문화 창작물 중 단연 최고의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이너 도르멜스(Rainer Dormels) 비엔나대 동아시아과 교수-
#호머 헐버트의 '코리안 오디세이(A Korean Odyssey)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호머 헐버트,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 1905)'-
호머 헐버트에 관한 책
세계의 언어학자들과 문인들이 한글을 칭송하기 훨씬 전 훈민정음에 매혹된 서양인이 있었다. 1886년 조선으로 간 23세의 선교사 호머 헐버트(Homer Hulbert, 1863-1949)는 일찌기 한글의 우수성을 간파했다. 버몬트주 뉴헤이븐에서 태어난 헐버트는 다트머스대학교 졸업 후 뉴욕의 유니온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고종 23년 조선인들을 가르치기 위해 배를 타고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 육영공원(育英公院, Royal School)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그리고, 자신은 한글을 배우기 시작, 나흘만에 읽고 쓸 수 있었다. 3년 후엔 한글로 책을 냈다.
1889년 출간한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士民必知, 선비와 백성이 알아야할 지식)'는 국가별로 지도와 함께 역사, 지리, 면적, 도시의 수, 기후, 생산물, 인구, 인종, 언어, 수도, 산업, 특산물, 수출입 품목과 규모, 정치체제, 형벌, 신분 등급, 교육, 종교, 세제, 군사제도, 풍속 등을 내용으로 한 한국 최초의 세계지리서였다. 1896년 한국 최초의 한글 신문이었던 독립신문보다 5년 앞섰으며, 초판 2천부가 발행됐다. 1895년 백남규와 이명상이 한문본으로 번역해 발간됐으며, 2020년 소명출판사에서 원본과 현대어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호머 헐버트가 한글로 쓴 세계지리서 '사민필지'(왼쪽)/2020년 출간된 '사민일지'
헐버트는 1889년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지에 '한국어(The Korean Language)' 칼럼을 기고했으며, 1892년 '한글(The Korean Alphabet)'에서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는 인류사에서 빛나는 업적"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1903년 스미소니언인스티튜트(Smithsonian Institution)에 기고한 연례 보고서에서 "한국어는 의사소통의 매개체로서 영어 알파벳을 능가한다"고 썼다.
1905년 출간한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에서 헐버트는 "한글과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며,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그리스에 문자를 전한 카드모스(Cadmus) 왕자 못지않은 인류사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진정한 백성의 임금이었다"라고 썼다. 한글 연구를 지속한 헐버트는 '한국어 어원 연구(Korean Etymology)', '훈민정음(The Hun-min Chong-eum)', '한글 맞춤법 개정(Spelling Reform)' 등의 논문을 발표했다.
호머 헐버트는 한글의 가로 쓰기, 띠어 쓰기, 쉼표, 마침표 등을 제안했다./ 주시경(한힌샘, 1876-1914)
1894년 헐버트가 배재학당에서 조선말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중 18세의 주시경(1876-1914)이 입학했다. 헐버트는 "조선 언문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다. 이 훌륭한 글을 두고 왜 쓰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한자를 쓰고 있나?"하고 물었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던 주시경은 이말에 충격을 받고, 훈민정음을 연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896년 헐버트는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과 '독립신문'을 영문판/한글판으로 창간했으며, 주시경은 회계사무 겸 국문 교정원으로 일했다.
헐버트는 이후 주시경에게 띄어쓰기, 오른쪽으로 쓰기, 쉼표, 마침표, 한글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법을 제안했다. 주시경은 '한글'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우리말의 문법 체계를 확립해 '말의 소리'(1914)를 집필했다. 국어 보급에 앞장선 주시경은 새받침, 한자 폐지, 한자어의 순화, 한글의 풀어쓰기 등을 주장해 후진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1896년 'The Korean Respository'에 실은 아리랑 악보와 가사
호머 헐버트는 한글 뿐만 아니라 한국문화 전체에 애정을 갖고 기록하며, 배포했다. 1892년 한국 소식지 'The Korean Repository'를 출판하며 1896년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노래 '아리랑(문경새재)'을 최초로 악보로 기록했다. 그는 'Korean Vocal Music'이라는 제목으로 악보와 함께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오 아라릉 얼싸배 띄워라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 다 나간다"는 가사를 영어로 표기했다. 2013년 경상북도 문경시는 헐버트 박사와 악보를 새긴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세웠다.
그는 한국의 대외 홍보에도 앞장섰다. 1901년 영문 월간지 'Korea Review'를 창간했으며, 외국인이 집필한 최초의 영문 한국사 'The History of Korea(한국의 역사, 1905)'와 한국의 문화유산을 해설하고, 일본을 비판한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 멸망사, 1906)'도 출간했다. 그리고, 한국의 속담과 설화를 영문으로 번역하기도 했다.
고종황제의 자문이었던 호머 헐버트는 뿐만 아니라 1895년 을미사변 후 해외에 식민주의와 일본의 부당성을 비판했다. 1905년 고종은 일본의 압력이 거세지자 헐버트를 통해 미국의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친서를 전달, 일본의 한국 통제에 개입할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이미 일본과 은밀한 가쓰라 태프트 협정을 맺고, 미국이 필리핀을 받는 대신 한국을 일본에 양보했다.
헐버트는 1907년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 황제의 비밀 특사 3인(이준,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를 방문해 일본의 불법성을 폭로했다. 이에 분개한 일본제국은 헐버트를 대한제국에서 추방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헐버트는 미국에서도 서재필, 이승만의 미주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뉴욕타임스는 1906년 일본의 만행을 규탄하고, 3.1운동을 지지하며, 루즈벨트 대통령의 친일 외교정책을 비판 헐버트의 저서 'The Passing of Korea(대한제국 멸망사, 1906)'의 비평 'THE PASSING OF KOREA.; A Japanese Scholar Reviews Homer D Hulbert's Important New Book About the Little Peninsular Empire.'을 실었다.
호머 헐버트가 집필한 도서
1949년 제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으로 헐버트는 42년만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그의 나이 86세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한달 가까이 타고 있던 헐버트는 폐렴이 악화됐다. 그는 한국 땅을 밟은지 1주일 후 별세했다. 외국인 사회장으로 영결식이 열리고, 양화진(합정동)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묘비명에는 그가 배를 타기 전 AP 통신 기자에게 했던 유언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가 새겨졌다. 헐버트는 생전 한국어 별명으로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 허할보(許轄甫)를 쓰기도 했다.
1950년 한국 정부는 그에게 외국인 최초로 건국공로훈장 태극장을 추서했다. 2013년 7월 한국의 보훈처는 헐버트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으며, 2013년 서울시는 광화문 주시경 마당에 한글 보존과 발전을 위해 후학을 기르고,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던 주시경·헐버트의 부조를 설치했다.
2015년 다트머스대 동문 잡지에서 1884년 졸업생인 호버 헐버트가 조선에 끼친 영향을 주제로 한 칼럼이 실렸다. The Chosŏn One, The influence of Homer Hulbert, class of 1884, lives on in a country far from his home, Dartmouth Alumni Magazine, 2015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민족 중 하나다."
1999년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Hulbert Memorial Society)를 창립한 김동진 회장은 1949년 7월 매사추세츠주에서 발행되는 '스프링필드 유니온(Springfield Union)'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인을 칭송한 기사를 찾아냈다. 헐버트 박사는 그 이유로 "한국인은 가장 완벽한 문자인 한글을 발명, 보통 사람들도 1주일만에 배울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발명해 일본군을 격파해 트라팔가 해전을 방불케했다. (조선왕조실록처럼) 철저한 기록 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1운동으로 보여준 한국인들의 충성심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예"라고 밝혔다.
#한글은 왜 세계 최고의 글자일까?
송강호 주연,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The King's Letters, 2019)'는 한글창제 비화를 다루었다.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세계의 모든 문자를 놓고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한글이 1위를 차지했다. 2011년 영국에서 출간된 마가렛 토마스(Margaret Thomas)의 '언어와 언어학의 50대 주요 사상가(Fifty Key Thinkers on Language and Linguistics)'에는 플라톤(Plato)와 함께 세종대왕 편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 글자 한글,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어떻게 세계의 언어학자들, 문인들에게 세계 최고의 글자로 평가되고 있는 것일까?
첫째, 한글은 창제자와 창제 시기 및 창제의 원리가 알려진 세계 유일의 문자다.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이 연구로 만들어져 1446년 9월(음력) 반포됐다.
"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于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 -訓民正音-
(이달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쉽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
-'세종실록' 세종 25년(1443) 12월 30일-
우리가 기념하는 한글날(10월 9일)은 조선의 4대왕 세종대왕이 1446년 '훈민정음' 해례본(訓民正音 解例本)을 통해 반포한 날을 기린다. 한편, 북한에선 훈민정음을 창제한 날(1월 15일)을 조선글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글의 자모가 만들어진 원리를 해설하고 있다. 모음은 음양의 원리를 기본으로 단군사상에서 유래한 '천지인(天地人)'의 하늘(·), 땅(ㅡ), 사람(ㅣ)을 본떠 만들었다. 자음은 오행의 원리를 바탕으로 각 방위와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 모음은 11자, 자음은 17자였으나, 자음ㅿ(반시옷), ㆁ(옛이응), ㆆ(여린히읗)과 모음 ㆍ(아래아)는 소실되어 총 24자, 영어의 알파벳 28자보다 적다.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제70호, 조선시대 1446년(세종 28년) 간행, 간송미술관(澗松美術館) 소장. UNESCO 세계기록유산.
둘째, 한글은 창제 목적이 분명하다.
나랏〮말〯ᄊᆞ미〮 中듀ᇰ國귁〮에〮달아〮 文문字ᄍᆞᆼ〮와〮로〮서르ᄉᆞᄆᆞᆺ디〮아니〮ᄒᆞᆯᄊᆡ〮 이〮런젼ᄎᆞ〮로〮어린〮百ᄇᆡᆨ〮姓셔ᇰ〮이〮니르고〮져〮호ᇙ〮배〮이셔〮도〮
ᄆᆞᄎᆞᆷ〮내〯제ᄠᅳ〮들〮시러〮펴디〮몯〯ᄒᆞᇙ노〮미〮하니〮라〮 내〮이〮ᄅᆞᆯ〮為윙〮ᄒᆞ〮야〮어〯엿비〮너겨〮 새〮로〮스〮믈〮여듧〮字ᄍᆞᆼ〮ᄅᆞᆯ〮ᄆᆡᇰᄀᆞ〮노니〮 사〯ᄅᆞᆷ마〯다〮ᄒᆡ〯ᅇᅧ〮수〯ᄫᅵ〮니겨〮날〮로〮ᄡᅮ〮메〮便뼌安ᅙᅡᆫ킈〮ᄒᆞ고〮져〮ᄒᆞᇙᄯᆞᄅᆞ미〮니라〮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날마다 씀에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다.")
–'훈민정음 언해본' 서문-
1459년 세조의 명으로 훈민정음을 우리말로 번역한 '언해본(諺解本)' 서문에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나온다. 문자가 없는 국가라는 점이 안타까워 백성들에게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주기 위해서였다. 훈민정음은 소리나는대로 쓸 수 있어서 한자보다 쉽게 익히고 쓸 수 있었다.
세째, 한글은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다.
세계의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간단하며, 논리적이며, 고도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졌으며, 배우기 쉬운 알파벳이라고 칭송해왔다. 특히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글자를 만들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자음 중 ㄱ은 혀의 안쪽이 목구멍을 닫는 모양,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붙는 모양, ㅁ은 입의 모양, ㅅ은 이의 모양, ㅇ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떴다. 또한, 모든 소리의 기본이 되는 이 5개의 음은 5행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모음도 '천지인(天地人)'에서 둥근 하늘(·), 평편한 땅 땅(ㅡ), 서있는 사람(ㅣ)의 모습을 본떴다. 자음과 모음의 기본 형태에서 획기 추가되어 새로운 문자가 탄생한다. 경제적이면서도 체계적인 글자인 셈이다. 소리나는 대로 적은 언어이므로, 이 세상의 어떤 발음도 한글로 표현할 수 있다.
식민제국주의와 언어의 상관성에 관한 책
네째, 한글은 식민지 지배 속에서 생존했다.
세계 역사를 통해서 식민 정권은 제국의 언어를 강요하며 토착민의 언어를 말살했다.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아시아 등지의 피식민지국가 대부분은 지배자들의 언어를 강제적으로 흡수하고, 모국어를 잃었다.
식민주의의 제국어 공용화는 언어적 집단학살에 다름 아니다. 아프리카 대륙은 영국, 프랑스, 벨기에, 포르투갈 등의 식민지배를 받으며 그들의 고유어를 잃었다. 남미 역시 브라질은 포르투갈, 그외 대부분의 나라는 식민제국 스페인어가 공용어다. 카리브해 연안국은 스페인어, 영어, 네덜란드어를 쓴다. 그리고, 인도와 필리핀는 영어가 공용어다. 이들 제 3 세계 피식민지국들은 땅을 도로 찾았지만, 말을 잃고 말았다.
1943년 대만인들의 71%가 일본어를 사용했으며, 조선에선 35%에 불과했다. 한글은 일제 36년 식민지 탄압, 한국민족 말살정책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조선인들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인 한글을 지켜냈다. 조선인들은 창씨개명에 반발했다. '내선일체( 内鮮一体, 일본과 조선은 한 몸)'를 슬로건으로 내세운 일본제국의 강압적인 민족말살 정책에 저항했고, 한민족의 정체성인 한글을 지켜왔다.
영화 '말모이(MALMOE, The Secret Mission, 2019)' 포스터
일제는 1936년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을 공포했으며, 1943년 조선어 교육을 폐지하고,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2019년 엄유나 감독의 영화 '말모이'는 일제강점기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때 목숨 걸고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헌신하던 조선어학회 회원과 관련인물들을 강제연행해 재판에 회부한 사건을 다룬 역사물이다.
이 영화에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은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입니다"라고 말한다. '말모이'는 사전이라는 뜻으로 주시경 등 한글학자들이 편찬한 최초의 국어사전 이름도 '말모이'였다. 호머 헐버트 박사는 1930년대 전후 쓴 글에서 "일본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섯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문자이며 효율적인 언어일 것이다.
한글은 말과 소리의 표현이 8천800여개에 달한다. 중국어는 400개, 일본어는 300개 내외에 불과하다. 한글은 어감(語感), 정감(情感), 음감(音感)에 따라 단어의 묘미, 문체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언어다. 우리말에는 색깔, 맛, 냄새, 소리 등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표현도 다양하다.
또한, 인터넷 시대 효율적인 줄임말 신조어도 속속 탄생하고 있다. 내로남불, 가성비, 엄친아, 득템 등 축약어나 초성 게임도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 한글의 힘
구글의 역대 한글날 기념일 로고(Google Doodle)
2013년 10월 글로벌 인터넷 기업 구글(Google)의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CEO는 10월 서울의 국립한글박물관(Hangul Museum)을 방문해 한글을 예찬했다.
에릭 슈미트 CEO는 "세종대왕이 소수의 백성들만이 언어로 소통하며 상류층과 서민층의 간극에 우려하며 한글을 창제했다고 들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대한 결정이었다. 세종대왕은 600년 전에 한국인들이 정보를 용이하게 체계화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보 나눔의 비전은 구글의 사명과도 상통한다. 한국의 역사는 5천년에 이르며, 구글은 15년에 불과하다. 융성한 한국문화로부터 배우고, 세계에 그것을 나눌 수 있어서 기쁘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한국이 현 디지털 시대를 주도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자체 개발한 글자인 한글이었다고 생각한다. 문자 체계는 국가적 체계로서와 언어체계 자체로서 중요하며 한글은 중세 한국에서 현대 한국으로 전환한 이후에도 한국문화의 진정한 정수가 됐다"고 말했다.
유튜브(YouTube) 채널을 소유하고 있는 구글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협력으로 K-Pop, 한국영화 및 한복과 한옥 등과 함께 한글까지 한국문화의 홍보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iPhone) 천지인 한글 자판(왼쪽)/ 안드로이드폰(Android) 구글 한글 자판
한글은 디지털 시대 한국이 IT 강국으로 부상하는데 일조했다. 배우기 쉬운 글자 한글은 빠른 속도로 정보의 대중화를 가능케했다.
한글은 타자기 자판에 입력이 용이한 음소문자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덕분에 정보화에 유리하다. 그리고, 자음은 자판의 왼쪽, 모음은 오른쪽에 분리되어 쉽게 글자를 조합할 수 있어서 속도와 효율성이 요구되는 SNS 시대에 탁월한 언어이기도 하다. 자모음 24개로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음성적으로 표기하며, 자연의 소리와 느낌을 풍요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한글이다.
스마트폰에 문자를 입력할 때도 한글은 간편하며, 문자 생성 속도 또한 빠르다. 중국어는 동음 단어가 많아 일일이 선택해야 하며, 일본어는 가타가나, 히라가나, 한자를 비교 입력해야 한다. 2007년 MBC-TV 다큐멘터리 '한글의 힘'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의 문자입력 속도를 비교했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The Little Prince, 1943)'의 제 1장을 타자로 입력하는데, 한글이 중국어과 일본어보다 속도가 7배 빨랐다.
#세계인들의 한글 배우기 열풍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 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우치며,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훈민정음 서문-
2014 멕시코시티의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 http://mexico.korean-culture.org
미국인들의 영어를 읽고쓰는 능력, 즉 문해율(文解率, literacy rate)은 85%, 중국인은 75%다. 한국인의 문해율은 거의 100%에 달한다.
지금 세계에는 한글 배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 한때 어려운 언어, 우리들만의 소통어로 간주되었던 한글이 지구촌의 인기 언어로 부상했다. 글로벌 수퍼스타 BTS(방탄소년단)가 이끄는 K-Pop팬들은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드라마, 영화, 음식, 화장품 등 한류의 파고가 치솟으며, 한글을 배우는 세계인들도 급증했다.
한국 정부는 2007년부터 세계에서 한글학교 세종학당(Sejong Hakdang)을 운영해오고 있다. 첫해 3개국 13개소에서 2019년 6월 현재 세계의 세종학당 수는 60개국에 180곳으로 증가했다. 연간 수강색 수는 5만7천명에 달했다. 나라별로는 아시아(105개), 유럽(38), 남북미(29개), 아프리카(4개), 오세아니아(4개) 순이다. https://www.sejonghakdang.org
미국내 대학에서 한국어 수강생도 늘어났다. 미 현대어협회(Modern Language Association)이 미 2천669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2016년 사이 한국어 수강생 수는 7천146명에서 1만3천936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외국인의 한국어 능력평가 시험인 토픽(TOPIK) 응시자 수도 1997년 첫해 2천200명에서 2018년엔 33만명으로 약 150배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한글이 수출되고 있다. 말은 있지만, 고유의 문자가 없는 지구촌의 여러 종족들이 한글을 써보는 시도를 하고 있다. 1만7천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사용어가 700여개에 이른다. 그중 부톤섬의 찌아찌아족은 10여젼 전부터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했다. 태국의 라후족, 네팔의 체팡족, 남태평양군도의 파푸아족, 볼리비아의 아라마야족 등이 한글을 배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코미디언 코난 오브라이언(Conan O'Brien)은 2016년 케이블 TV TBS 토크쇼 '코난' 중 특집 'Conan Korea'편에서 한인(진실)으로부터 한글 배우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유네스코에서도 훈민정음을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유산으로 공인했다.
정인지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해설과 용례를 덧붙여 쓴 해설서가 포함된 '훈민정음 해례본'(解例本, 간송미술관 소장, 국보 제70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지정됐다.
유네스코는 또한 2004년 세계기록유산인 현존하는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 도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1372)'의 명칭을 따서 기록유산 보전에 기여한 이에게 시상하는 직지상(UNESCO/Jikji Memory of the World Prize)을 시상해오고 있다. 또한, 1989년엔 한국 정부의 기금으로 개발도상국의 모국어 발전 및 보급에 기여한 이들에게 시상하는 유네스코 세종대왕 문해상(UNESCO 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제정했다. http://www.unesco.org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한글본, 영문본. 2016 부커상 시상식에서 한강과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운데).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Vegetarian)'는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Deborah Smith, 28)는 한국어를 배운지 7년만에 쾌거를 안았다. 캠브리지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영국에 한국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전문 번역가가 없어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런던대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미스는 '월간 책'과의 인터뷰에서 "한국문학 번역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람들 관계에서 존칭과 호칭, 직급"이라고 밝혔다.
호버 헐버트 박사는 1930년대 전후 쓴 글에서 "일본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1996년 프랑스 낭시에서 열린 세계언어학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Logical Aspects of Computational Linguistics)에서 언어학자들은 한글의 우수성을 극찬하면서 세계 공통어로 한글을 사용해야할 것이라는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문자올림픽대회와 한글박물관
2009년 10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글날 제 563주년을 기념한 제 1회 세계문자올림픽대회(The 1st World Alphabet Olympic)가 열렸다. 세계에서 가장 쓰기쉽고, 배우기 쉬우며,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기위한 취지였다. 글로벌신학대학원이 주최하고, 한글학회가 후원한 이 대회는 세계에서 가장 편리하고, 우수한 한글을 널리 알려 문자가 없거나, 유명무실한 나라에 한글이 자국문자로 채택되도록 한글 보급하기 위한 취지를 갖고 있었다. 제 1회 대회엔 세계에서 고유문자를 갖고 있는 16개국이 참가한 1회 대회에선 한글이 1위(금메달), 은메달은 이탈리아 로마자, 그리고 동메달은 그리스 글자가 선정됐다.
제 2회대회는 2012년 10월 태국의 방콕에서 세계 27개국 문자(한국, 영어, 러시아,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베트남, 터키, 셀비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에티오피아, 몰디브, 우간다, 포르투갈, 그리스, 스페인, 남아공, 인도,울드, 말라야람, 구자라티, 푼자비, 말라시, 오리아, 벵갈리, 캐나다)가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여기서 한글을 여전히 금메달, 소리문자 2위는 인도의 텔루구 문자, 3위는 영어 알파벳이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각국의 학자들은 방콕 선언문을 발표하고, 자국 대학에 한국어 전문학과와 한국어 단기반을 설치하는 등 한글 보급에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다분히 주최측의 의도와 불공정성이 투영된 세계 문자 올림픽 대회는 2회로 막을 내렸다.
한국인의 한글 사랑과 자부심은 2014년 국립한글박물관(National Hangeul Museum)으로 열매를 맺었다. 서울 용산 국립박물관 인근에 자리한 한글박물관은 "국내외 흩어져 있는 한글자료를 조사, 수집, 연구하고 한글의 문화적 다양성과 미래가치를 전시를 통해보여주며, 세대와 국적을 넘어 소통과 공감을 지향하는 한글 요육으로 한글문화를 꽃피우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상설전으로는 '훈민정음, 천년의 문자계획'이 열리고 있다. https://www.hangeul.go.kr/main.do
그런가하면, 디지털한글박물관(Sigital Hangeul Museum) 웹사이트도 오픈했다. 이 박물관에선 훈민정음 창제부터 오늘날까지 대표성을 띠는 한글자료를 중심으로 '한글 100대 문화유산'을 연차적으로 선정해왔다. 1. 훈민정음(해례본_, 2 월인천강지곡, 3 용비어천가, 4. 동국정운, 5. 석보상절, 6. 훈민정음 언해본, 7. 월인석보....18. 청구영언, 19. 정조어필한글편지첩, 20 춘향전,...25. 독립신문 제 1호, 26. 홍길동전, 28. 조선말 큰사전 원고...30. 한글마춤법 통일안 등이 선정되었다. https://archives.hangeul.go.kr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